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67)
566. 믿었는데
이브를 돌려보내고, 주머니에서 한 장의 티켓을 꺼내들었다.
밤하늘같은 색에, 별 같은 마크가 촘촘하게 찍혀있는 작은 티켓.
허나 이 녀석은 괴물이다.
게임의 밸런스를 제대로 붕괴시킬 수 있는 엔드 아이템이다.
【별빛 정원의 위시리스트】
【(3)개의 소원을 위시리스트에 적어내면 그중 (1)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이루어드립니다.】
【소원은 중복될 수 없습니다.】
정말 미쳐버린 아이템이다.
물론 무기 방어구 장신구중 하나씩 선택해야 한다거나, 스킬도 같은 속성으로 세개는 안 된다거나, 이래저래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신검. 신갑. 1티어 스킬 이 세개 던져놓고 하나만 터져도 된다.
반대로 이걸 쓰는 것으로 필티아를 해방시킬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해서도 잠시 고민해야 했다.
허나, 녀석은 아마도 이런 편법으로 풀려나길 바라지는 않을 거다.
“그 외에는 스테이터스 성장이나, 으음. 지정할 수 없다는게 까다롭군. 결국 랜덤이니 말이다.”
별빛 정원은 3단계라 하나만 이루어주는게 문제다.
대부분은 스킬이나 장비 지급. 혹은 파티원의 부활 정도로 쓰고 있다.
“어떻게 쓸지는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할까.”
우선 티켓을 집어넣고, 나는 남은 물건들을 바라봤다. 우선 전장에서 소환해 전투를 도와주는 두 개의 혼과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초월격 무구들의 보상.
“마도셋에 초마도무구. 하나는 속성지정에 하나는 완전자율. 이것 참.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노났군.”
몇 번이고 말했지만 결국 ‘제작’은 ‘드랍’을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솔직히 제작이 따라잡기 힘든 영역이다.
“어떻게 분배하고, 누구에게 쥐여줄것인가.”
밀푀유가 이번 전투에서 스스로의 성장을 증명했듯, 다른 파티원들도 하나 둘 성장했을거라 생각하면, 스테이터스만으로는 분배할 수 없다.
무척이나 난이도가 높은 고민이다.
물론.
무척이나 배부른 고민이기도 했다.
***
앨리스 마이스터.
장로 가문중에서도 ‘검’을 상징하는 마이스터 가문의 손녀이자, 가문 역사상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하는 인재라는 소리를 듣는 천재 검사.
평상시에는 기사도의 검. 양검 바이스 플뤼겔. 수틀리면 암살검. 슈발츠 플뤼겔을 사용하면서 공방일체의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크나큰 지병이 있다.
마이스터 가문의 혈족 외에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병.
모두에게 이 병을 들키는 순간, 자신은 괴물이라고 외면당하고 또 버려질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말이다.
허나.
가문 외 인물중에서도 자신의 지병에 대해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처음 만났을때부터 자신의 병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병의 치료법까지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행동했다.
가문 내에서 정보가 새었나···. 라고 하기엔 가문의 사람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고 상대는 무려 황자다. 자신의 지병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
그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라는 남자는, 더럽고 치졸하게도 자신의 약점을 잡아 얽힐 떄 마다 음습하고도 비열한 짓을 해온 것이다.
그 남자의 악명은 알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신을 꺾으려드는 그 남자에게 욕보여지고 버려질 것이다.
허나, 각오는 되었다.
자신의 병이 다 나아서, 할아버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가족 전체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조금 더러워진다 한들 상관없다. 이 고고한 마음까지는 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독수가 언제 다가오더라도 버텨낼 마음을 가졌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은 없다.
그 남자의 달콤한 말에, 그가 내미는 찻잎에 차갑게 얼었던 마음이 녹아버리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겠다는 그 말이 허언이 아닌듯. 남자가 건넨 찻잎은 병의 악화를 막아냈다.
그렇게 몇 개월.
“어째서죠.”
딱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남자는 자신에게 어떤 어금니를 내밀거나, 협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어째서죠.”
남자는 이 자리에 없다.
대답해 줄 사람도, 당연히 없었다.
***
그렇게 원정에서 돌아오고 며칠간.
기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편의점 저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있는듯한 시선.
누군가가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것은 틀림 없는데, 뭐 공격하고 싶으면 덤벼보라지. 나는 끄떡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슬슬 다음 상품을 생각하고, 그러고보니 슬슬 여름방학이라 이번에는 어디를 돌지도 생각을 해야하는데···.
그런 잡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자니, 편의점 문이 열렸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밀푀유인가.”
“네! 건강하셨죠! 저는 무척이나 건강하답니다! 지난 달 정산표를 가지고 왔어요!”
“그건 다행이군. 그래. 건강하다는 건 좋지. 무척이나 좋은 일이야.”
“감사합니다!”
“그래서, 네 건강과 어깨에 걸친 그것은 관계가 있나?”
“아. 앨리스 양이요?”
어. 그 앨리스 양.
토끼 사냥을 갔다 온 귀족마냥 아무렇지 않게 어깨에 들쳐메고 있는게, 좀 엄청 내 정신을 우주로 날려버리는데 말이야.
“어쩌다 그렇게 됐지?”
“아, 아아. 편의점에 오는 길에 수풀에서 힐끔 사무실쪽을 보고 계시길래. 앨리스 양. 뭐 하세요? 하니까 갑자기, 제 모습을 들킨 이상 기절해주셔야겠어요! 라고 덤비셔서.”
“덤비셔서. 그래서?”
“그래서 한 방에 이렇게···. 들어오시는 힘을 이용해서 손목을 잡고 공중에서 두 바퀴 반을 빙글빙글 돌리고 그 다음 【무명권 : 기절】을 정타로···.”
“그런가. 그랬군.”
“네, 네에.”
밀푀유는 송구하다는 듯 미묘하게 웃었지만,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질러야 했다.
둘의 스테이터스 차이가 얼마인데 선공을 양보하고 기본기만으로 기절시켜서 업고왔다고?
밀푀유.
내가 아끼는 후배 밀푀유야.
너는 정말로.
“키우는 맛이 있구나. 언젠가 내 뒤를 잇는다면, 그 칭호는 실로 너에게 합당하다.”
“네, 네?”
나중에 고인물로 빡세게 키워줄게.
***
아무튼. 밀푀유는 자신이 공격적으로 행동한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지, 꾸벅 인사하고 앨리스만 던져놓은 후. 지난달 2호점 매출 정산표를 건내주고 사라졌다.
결국 편의점에는 소파 위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 앨리스와 나 뿐.
“여기는···.”
“정신이 드나.”
“예···. 친절에 감사···. 힉.”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힉. 이라는 소리를 하다니, 엄청난 인사로구나 앨리스 마이스터.”
“시, 싫어···. 뭐, 뭐에요. 제, 제가 왜 여기에 있죠. 돌 려보내주세요. 싫어···.”
아니 내가 뭐 잡아먹냐.
내가 빤히 보자. 앨리스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배를 가리다가, 이내 소파 구석까지 물러나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었다.
긴 은발도 몸을 전부 가려주지 못했고, 눈은 두려움에 젖어 덜덜 떨고 있다.
뭐지.
마치 내가 유괴라도 한 것 마냥.
아, 설마.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는 건가?”
“모, 몰라요···. 저, 저를 유괴하신건가요? 믿었는데···. 그런 분까지는 아닐거라고 믿었는데···.”
어떡하냐. 얘 진짜 모르나봐.
“음. 그러면 네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하도록 할까. 뭐, 그리 덜덜 떨지 마라. 꽤나 유쾌한 이야기니 말이다.”
“네, 네에···?”
“우선, 너를 업고 온 것은 내가 아니다. 밀푀유였다. 기억에 있나? 밀푀유가 그러더군 편의점을 음습한 시선으로 관조하던 네가 밀푀유에게 정체를 들키니 ‘이렇게 된 이상 기절해주셔야겠어요!’ 라며 덤벼들었다고 말이다.”
“네? 그럴리가···.”
“그리고 직후 손목을 잡혀 공중을 두 바퀴 반 돈 다음 바닥으로 떨어지고, 거기서 밀푀유가 【무명권 : 기절】로 한 번에 기절시켰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밤에도 쌀쌀하니 말이다. 버려두기 뭐해서 편의점까지 업고 왔다.”
“······.”
“정말, 기억 나는게 하나도 없나. 앨리스 마이스터?”
“저, 그게···. 그거···. 그게요. 기, 기억 안납니다. 우, 울프람 황쟈님···.”
음.
발음 새는거 봐라.
너 이녀석.
전부 기억이 났구나?
***
방금 전까지 애처로울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던 앨리스는, 이제 그 감정을 공포가 아니라 수치로 바꿔서, 같은 수준으로 떨고 있다.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스펙이 낮은 상대에게 원 턴 카운터로 기절해서 자빠져서, 기절한 개구리마냥 축 늘어져서 어깨에 들쳐메여 왔는데 안 쪽 팔리면 그건 사람도 아니지. 그치.
“그래서, 왜 편의점을 염탐하고 있었지?”
“염탐이라니, 그런 수치스러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엿보기, 관음. 어느쪽 단어가 좋지?”
“그, 그런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쪽이든 이쪽을 보지 않았나. 단어의 통일은 중요하다. 어느쪽이 좋지?”
“염탐이라고···. 해주세요···.”
“좋다. 왜 염탐을 하고 있던 것이지?”
앨리스는 이쪽을 힐끗 보다가, 빠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세게 물고는, 이내 그 수치를 모두 한숨 한 번으로 바꾸어 내쉰 다음 이쪽을 올려봤다.
창백할정도의 피부가 이제 웃길 정도로 붉다.
“그것이···. 지난 번 제게 찻잎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제, 제 병을 낫게 해줄 수는 없지만, 현상 유지는 시켜주실 수 있다고 하셨죠.”
“그래. 그랬다.”
“하, 하지만 그 뒤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그래서···.”
그렇구나. 그래도 엿보기는 위법이란다.
이대로 제프린 학생회에 넘기면···. 아니 별 일 없으려나, 이 녀석 백도 어마어마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황실 염탐죄가 더 큰것 아닌가? 죄를 물으면 유치장에 쳐박기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퇴학···. 은 어렵겠지 아무래도.
반대로 이걸 약점잡아서 앨리스를 우리쪽으로 완전히 끌어들일 수 있다. 어느쪽이든 이건 저 녀석의 큰 실수다.
“그렇다 하여도 황손에 대한 염탐은, 역모죄나 반란죄로 잡혀갈 수 있음을 아나?”
“네, 네 알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본인도 확실하게 알고는 있는 모양이네.
그럼 뭐. 내릴 답은 하나다.
“미안하게 됐구나.”
“네, 네···?”
“그리 말해놓고 무신경했던 내 잘못을 탓해도 좋다. 이 건은 없던 것으로 해주지.”
“어째서···. 죄는 제가 지었는데···요?”
“아픈 아이가 낫고 싶다 찾아왔는데, 그걸 죄라 한다면 세상 모든것이 죄 아니겠나.”
얼마나 급했으면 아픈 녀석이 여기까지 몰래 와서 약이 있나 하고 지켜 봤겠나.
그것을 잘못이라 질타할 정도로 나는 나쁜 녀석이 아니다.
희망의집 동생들이 아파서, 영진 형. 영진 오빠. 아파. 하면서 울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다.
적어도, 어린애의 아픔으로 장사할 정도로 모난놈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 되었구나 지금은···. 네 병을 고칠 약은 없다.”
“괘, 괜찮습니다. 제, 제 무례를 용서해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리 말하고 앨리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이.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
“앉아라. 아직 약에 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네, 네?”
“없다면 지금부터 만들러가면 그만 아니겠나. 슬슬 때가 무르익었고 하니 완치는 불가능하더라도 어느정도 호전될 수 있을 것이다. 유지가 아니라 호전 말이다.”
“저, 정말이신···가요?”
그 말에 앨리스는 다시 자리에 앉아, 빛나는 눈동자···. 그 나이대 아이들이 보일만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물론이다.”
“어, 어떻게 만들면 될까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우선 재료를 채집해야한다. 네가 같이 따라와야 한다만,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가, 갈 수 있어요!”
“그렇군. 좋은 대답이다. 며칠 걸릴거다. 거기에 단 둘이서 떠나야 하는데, 괜찮겠나?”
“네? ···며칠을, 황자님과 저, 단 둘이서···. 밖에서요?”
“음.”
“너무해요. 믿었는데. 거짓말쟁이. 이제 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할아버님. 죄송해요. 앨리스는 여기서···.”
앨리스의 눈이 바로 초점을 잃고 이내 다시 소파 구석으로 가 몸을 웅크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갑자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