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71)
570. 계승자
이영진으로서 살아갈 때. 나는 매 해 방학을 기다렸다.
그 이유인 즉슨, 방학은 나에게 합법적으로 돈을 벌 기회. 즉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어린 나이에 가지고 싶은 물건이 한둘일리도 없고, 스마트폰부터 시작해 컨버스. 농구화. 게임기까지 가지고 싶은 물건의 목록을 적어보라고 하면 남들이 말하는 버킷리스트보다 훨씬 더 길게 적어볼 수 있다.
허나 어린 시절의 나는 내 동생들이 그러했듯 무척이나 가난했으며, 용돈따위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여름부터 시작해 단기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있어서 꿀과 같았다.
당연히 어린 나이인 나에게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려는 점주들도 있지만,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다며 미성년자 불법 고용으로 노동청에 신고를 때려서···. 가 아니고, 아무튼 최대한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했다.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어느새인가, 봄은 지나 여름의 초입.
학생들도 너 나 할거없이 기말고사 준비로 분투하는 기간.
즉. 곧 여름방학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다.
이 세계에 와서, 제프린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여름방학.
“올 여름은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봐야겠군.”
우선은 글루코 영지에 가보기로 했다.
그 외에도, 작년처럼 외부로 돌것같긴 하다.
우선은 서부는 무조건 가야 한다. 열차내부에 간이 편의점을 만드는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엠펠리움에도 가봐야 할 거고, 마이스터 영지에 가서 앨리스의 병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한다. 루디카네···. 즉 그림자의 도시도 가볼까.
기왕 이렇게 된거, 기회가 된다면 파티원들의 고향에 한 번씩 들러보는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현대와는 다르게 갈 곳은 많고 여유는 넘친다.
“즐거운 여름이 되겠군.”
자. 어디부터 어떻게 돌까.
***
2학년 공용 기숙사.
언제든 글레스트헤임에 입주할 수 있지만, 보통 기숙사를 택하여 여기서 계속 지내고 있는 학년 수석 밀푀유 폰 사브레의 기행에 의해. 사실 이 기숙사는 엄청나게 대단한 것 아닐까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는 평범중에서도 특히 평범한 이 기숙사는, 기풍도 규율도 무척이나 평범하다.
즉. 샤워하고 나온 친구들끼리 잠옷을 입고 한 방에 모여서 떠드는 것 정도는 일상 다반사라는 것이다.
오늘도 파자마 한 벌을 입고서 ‘술 대신 마실만한 음료란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사학부 실기 2위 바닐라와 같은 파자마 한 벌로 침대에 누워서 다리를 흔들거리며 연애소설을 읽는 필기 2위 요거트.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어깨 결림을 호소하며 샤워하고 나온 밀푀유가 자리에 앉자, 방금 전까지 소설을 탐독하고 있던 요거트가 입을 열었다.
“밀푀유.”
“응. 왜?”
“여름방학에 뭐 할거야?”
“으응···? 집에서 불러서 일단 가보려고, 왜?”
“음. 혼자서 집에 가는거야?”
“그렇겠지?”
친구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한 밀푀유.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바닐라는 책을 덮고는 안경을 고쳐썼다.
“밀푀유.”
“응?”
“울프람 선배님은 내년에 졸업이야. 알고 있지?”
“그렇지?”
“즉 이번이 마지막 여름방학이라는 이야기야.”
“으, 응.”
“여름은 덥고, 더우면 사람은 시원한것을 찾아. 가장 시원한게 뭔지 아니?”
“뭐, 뭔데?”
“그건, 옷을 벗는거야. 즉 복장이 가벼워지는거지. 여름은 해방감을 만끽하고, 그에 따라서 상대의 맨 피부에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어.”
“어, 응? 으,으응?”
갑작스러운 친구의 노골적인 말에 밀푀유의 얼굴이 붉어진다. 아직 그녀에게는 이 정도의 대화 수위는 너무나 급진적이라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까. 울프람 선배님에게 네 장점을 어필할 수 있는 학창시절 마지막 기회라고!”
“으, 으응. 응···?”
“이제 학창시절의 여름은 없어! 어떻게든 공세로 나서야지!”
“아, 으. 으응···?”
밀푀유는 요거트의 급진적인 발언에 따라가지 못했고, 옆에서 술과 보리로 만든 음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고 있던 바닐라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 기껏 철학적인 고찰을 하고 있는데 주변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요거트. 너도 연애경험 없이 책에서 본 것 만으로 떠들잖아.”
“으, 윽···. 책은 선인의 지혜야! 위대한 선조들이 써 내려온 지식의 축적이라고!”
“현실에서 체현할 수 없는 지식은 공상일 뿐이야 요거트.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진리라고 설파하지 마.”
“바닐라 주제에···.”
정말로 바닐라 주제에 날카로운 말이었지만, 모든 지식을 손끝으로 체현해 마검, 혹은 신검까지 도달하겠다 마음먹은 드워프 다운 진리의 말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요거트는 바닐라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막연하게 카페를 하겠다. 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을 실력으로 살려 대장장이의 정점에 서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바닐라쪽이 조금 더 현실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런 바닐라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밀푀유를 바라봤다.
“저 멍청이의 말은 귀 기울이지 마.”
“······.”
“애당초 옷이 가벼워진다느니 살갖이 드러난다느니, 그런 건 너나 울프람 선배님···.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나나 저 멍청한 귀쟁이만 해도 외부 기온에는 크게 영향을 안 받으니까 못 들은척 해도 돼.”
사실이었다.
어느정도 성취가 올라간 기사학부 학생들은 제일 처음 추위와 더위에서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열사의 사막과 극한의 설원을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균적인 온도 변화에서는 꽤 자유로워진다.
“그, 그렇지?”
“그렇지가 아니라. 저런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마지막 여름이라는 사실은 잊지 않도록 해.”
“우으···.”
“밀푀유. 나도 요거트의 말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
“으, 응? 어떤 부분?”
“이번 여름이 마지막이라는 사실. 그것만큼은 반박할 길 없는 진실이야. 네가 울프람 선배님과 제프린에서 보낼 수 있는 여름은 올해가 마지막이야.”
친구의 그 정확한 조언에 밀푀유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후회하지 않는 여름을 만들어.”
“응. 우리도 응원할게.”
두 사람의 따듯한 조언에, 밀푀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시간이 없다.
울프람 선배님과 함께 루디카. 아일라. 레지나 선배님은 같이 졸업한다.
그 다음해에는 네프티 선배님이 졸업한다.
오직 자신만이, 재회를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응. 그럴게. 노력할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
아무튼, 나 혼자 여기저기 간다고 해도 막상 놀러갔을 때 아무도 없으면 그건 그것대로 허망한 여행이 될 것 같아서, 우선 파티원들과 일정을 맞춰보기로 했다.
이 경우 전원에게 공지하면 메세지 창이 터질 것 같아서, 한 명 한 명씩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우선 네프티가 사는 글루코 마을은 언제 와도 된다고 할 정도로 녀석은 고향에 있을 생각인가보다.
‘에덴은 언제 와도 된답니다. 울프람!’
‘글루코 마을에 계속 있을 테니 언제든 오세요. 어머니도 기다리고 계세요!’
‘엠펠리움에 돌아간다고요? 마음대로 하시죠?’
‘그림자 마을은 동맹을 언제나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다!’
‘시엘라 영지에 오시려고 하십니까? 언제든 환영합니다. 황자님.’
그리고···. 다른 파티원들도 모두 동의해줬다.
언제든 상관없다는 건가.
이 녀석들은 방학 때 고향에만 있을 셈인가.
허나, 생각해보면 다른녀석들의 집이나 고향은 다 가봤어도 단 한 군데 안가본 곳이 있다.
바로 사브레 영지.
밀푀유의 고향.
소를 방목해 키우고, 드넓은 목초지가 펼쳐져있는 낙농업을 주력으로 삼는 시골영지라고 한다.
‘그래서 울프람. 어디부터 갈 건가요? 역시 에덴? 사업 이야기도 있으니 오래 묵는것도 괜찮죠.’
‘제일 처음 약속을 잡은건 저니까 글루코 마을에 먼저 오실거죠?’
‘엠펠리움에 갈거면 일찍일찍 가시죠?’
‘그림자마을은 동맹의 얼굴을 당장이라도 볼 준비가 갖춰져있다!’
‘엠펠리움에 들리기 전 시엘라 영지에 들리시면 최고급 차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파티원은 너 나 할것 없이 자기 고향에 먼저 오라고 아우성이다.
그런가, 다들 여름방학이 한창일 때에는 하고 싶은게 있으니까···.
이건 불침번과 같다. 처음과 마지막이 최고지.
그렇게 파티원과의 채팅으로 한창 고민중인 와중. 한 명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밀푀유는 다른 일을 하는 중인가?
“선배님.”
“밀푀유?”
편의점 문이 열리고, 밀푀유가 직접 등장했다.
마침 잘 됐다.
“밀푀유. 마침 잘 됐군. 이번 여름방학에 혹시 시간이 된다면···.”
“와 주실 건가요?”
“음?”
“아, 아뇨. 그러니까··· 메세지를 봤는데요. 정말 선배님께서 사브레 영지에 와 주시나요?”
“기회가 된다면 갈 생각이다.”
“아, 아무것도 없는데요? 있는거라고는 소하고, 우유하고, 치즈하고···. 풀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이것 참.
얘는 묘한 곳에서 자신감이 없다.
“많지 않나. 소도 있고 우유도, 치즈도 그리고 풀도 있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내 후배. 밀푀유 폰 사브레를 키워낸 환경이 있지 않나.”
“아···.”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툭 올렸다.
“자신감이 없는 것도 괜찮다. 신중한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자신을 키워낸 환경을 깎아내리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깎아내리는 것과 차이가 없음을 잊지 마라.”
“네. 네에···.”
자 그럼.
어디부터 갈지 생각해볼까.
“이것 참. 이번 여름방학은 바빠지겠군. 다들 자기 영지에 오라고 하니 말이다.”
“네···? 여, 역시 여름···. 사, 살갖···”
“음?”
“선배님! 사브레! 사브레 영지에 꼭 와주세요! 제일 처음 와 주세요!”
“흐음.”
이 녀석도 그런가.
하여간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다 같이 꿀이나 빨려고 하고 말이야.
그렇게 나를 빠르게 초대해서 고향을 보여주고, 남은 여름방학을 여유롭게 보내겠다 이건가.
나도 모르게 심술기가 동했다.
“좋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네가 최고의 성적을 거두거라.”
“네, 네? 우으?”
나는 슬쩍 밀푀유의 코를 꾹 잡고 웃었다.
황실 혈통은 이를 체통 없는 짓이라 하지 않았다. 선후배간의 이 정도의 장난은 허용범위 내라는 건가.
“아무것도 없다고 한 그 말이 괘씸해서 말이다. 네가 최고임을 다시금 증명하면 나도 동해서 최고의 후배를 키워낸 최상의 환경에 제일 먼저 가보고 싶어지지 않겠나?”
“아으···.”
이건 나쁜 말을 한 밀푀유에게 내리는 작은 시련이다.
사실 시련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 녀석이라면 기말고사에서 최상의 성적을 거두겠지.
“할 수 있겠나?”
“반드시, 반드시 해낼게요. 최고의 성적을 거둬서···. 제가 자랑하는 사브레 영지에 선배님을 최초로 모시고 싶어요.”
“그래. 그거면 됐다.”
녀석의 코를 슥 놔주자, 밀푀유는 자신의 코를 몇 번이고 매만지다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그럼 선배님. 저는 당장 기말고사 주,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선배님께 결코 부끄럽지 않은 방법으로 싸울게요! 최고의 후배를 믿고 지켜봐주세요!”
“음. 다녀오도록.”
“네헤!”
그렇게 밀푀유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이브에게서 연락이 왔다.
-울프람. 어제 밀푀유에게 뭐라고 했나요?
-아니 다른게 아니라 이상한 보고가 들어와서요.
-밀푀유가 오늘 대련 훈련에서 상대하는 모든 학생을 기묘한 움직임으로 전원 일격에 기절시켰다는데.
-그 움직임을 들어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거든요?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척 하다가 억지로 흘려내고, 기묘할 정도의 연격으로 뒷목을 가격했다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말이죠.
-이상하죠? 정말 어디서 본 거 같은 움직임이죠?
-우리 파티에서 그런 움직임을 하는 이상한 사람은 단 한 명 뿐인데 말이죠.
-네가 가르쳤죠?
-뭘 가르친거야.
-야!!!!!!!!!
내 최고의 후배는 시스템 어시스트가 없는 상황에서 패링캔슬을 시도했던 건가.
대단하다.
너는 최고야. 밀푀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