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74)
573. 뻔하고 당연한 소리
천진난만하게 웃는 밀푀유의 얼굴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선배님?”
“아니.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조금 혼란스러워서 말이다.”
“아···. 파티 관련 일인가요? 제가 도와드릴만한 게 있을까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것만큼은 나 스스로 대답을 내려야 할 문제인 듯 싶구나.”
“네. 알겠습니다. 언제든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주세요!”
그리 말하고 주먹을 살포시 쥐고, 살짝 웃으며 흔드는 그 모습은 기세등등해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네!”
그렇게 말한 밀푀유는 나를 객실로 안내했다.
객실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 하나. 그리고 침대로 이루어진 단조로운 구성이었다.
“죄송해요. 선배님을 모시기에는 굉장히 허름한 곳이라···.”
“적어도 내 사무실보다는 잘 되어있지 않나? 마음에 드는구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면 좋은 밤 되세요.”
“밀푀유.”
“네 선배님.”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려는 밀푀유를 불러 세웠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에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정돈되지 않은 말을 꺼냈다.
“파티 생활은 즐거운가?”
“물론이죠!”
“너에게는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억지로 너의 미래를 바꾼 것은 아닌가?”
“······.”
“편의점 2호점 점장이라는 위치. 학년 수석이라는 위치. 그런 것들이 이런 일련의 귀찮은 사태를 불러온게 아닌가 해서 말이다.”
그 물음에 밀푀유는 내 앞에 한 걸음 걸어와 웃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셨죠. 누군가가 운명을 대신 부숴줄 수는 없다고. 만약 그 말대로라면 저는 제 스스로 운명을 부수고,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제가 선택한 것 아닐까요?”
“그런가. 온전히 네 선택이라는 건가.”
“네. 그리고···. 정말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겠다는 생각은 안 할거 같아요.”
“······.”
그래.
마계의 문은 정말 목숨을 걸어야 공략할 수 있는 곳.
파티원들은 누구 한 명 불평이나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두려워하면서도 동참했다.
그리 생각하면···.
“알겠다. 괜한 것을 물었구나. 좋은 밤 되도록.”
“네. 선배님. 편히 쉬세요.”
그리 말하고 이번에야말로 밀푀유는 물러났고, 침대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파티는 놀이가 아니다.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저 녀석들은 캐릭터가 아니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의 무대라 생각했던 제프린을 졸업해도 엔딩롤이 올라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즉.
녀석들을 휘말리게 한 나에게는 조금 더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당연한가.”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늘어놓고 있을 뿐. 새로운 깨달음은 없다.
허나, 아주 조금 몸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더 힘내야겠구나.”
그렇게 뻔하고 당연한 소리를 한 번 더 내뱉고, 그제야 몸을 뉘였다.
***
다음날.
편의점 우유 납품건으로 사브레 남작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유는 상하기 쉽기 때문에 유통 방식에도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들이 많았다.
놀라운 것은 우유의 품질은 정말 좋았으며, 보존을 위해 소독법에 대해서도 연구한 흔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만 제프린에 도착하는 것 까지는 어떻게 성공해도, 거기서 전국으로 퍼지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십니까?”
뭐, 얼음 정령들 불러다가 우유좀 식히게 만들고 열차 깔아서 제프린으로 배송시키면 그만이다. 굳이 열차가 없어도 온도만 유지되면 우유는 어떻게든 버텨주지 않을까.
제프린 밖에 있는 얼음정령들도, 결국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의 지배력을 벗어날 수 없기에, 그들의 맹우인 내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상한 것 같으면 우선 파트라슈를 먹여보고 판단하면 그만이다. 몇 번 배송을 돌려보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협의가 끝난 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영지를 둘러봤다.
방목해서 키우는 소들과 한적한 여름공기.
동부에서 살짝 북쪽으로 쳐져 있어 그런가, 더움 그 자체인 남부나 황량한 서부보다는 더위가 덜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는 마을이라 보여드리기 부끄럽군요.”
“좋은 마을이고 좋은 영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브레 남작이 내 옆에 다가왔고, 함께 들판을 바라봤다.
잠시간의 침묵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남작이었다.
“밀푀유는 착한 아이입니다. 귀족답지도 않은 귀족가에서 태어나 권리는 없이 책임만을 지게 했죠. 다 부모인 저희가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저 아이는 귀족적 언사를 배우기 전에 소들의 건강을 살피는 법부터 배웠지요. 드레스보다 작업복을 더 많이 입었고, 스테이크의 맛보다 우유의 선별도를 더 잘 살필 줄 아는 아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부족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그래도 항상 웃으며 주위와 함께 웃으려고 노력한 아이였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아이지요.”
알고 있다.
스스로는 못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밀푀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주변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주변 모두와 친하게 지낸다. 나서는 일은 없지만 결코 비굴하지도 않다.
있을 때의 존재감보다, 없을 때의 공허감이 더더욱 클 아이다.
무엇보다, 그 아일라와 이브에게 동시에 사랑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예. 밀푀유를 키워주신 남작 부부만큼은 아니지만···. 저 아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그러니···.”
남작은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앞으로도 딸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평생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 들을 일도 없는 말이었지만,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실린 무게를 무시할 만큼 못난 놈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
그렇게 남작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사브레 영지를 떠나는 날 아침.
밀푀유 혼자 찾아와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럼 선배님. 제프린에서 뵐게요.”
“음. 그러도록 하자.”
“네···.”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녀석의 머리를 슥 쓰다듬어주고, 웃었다.
“밀푀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 아뇨. 이렇게 선배님이 가시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뵙겠구나 싶어서요. 그러면 곧 선배님께서는 졸업하시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불안해서···.”
“메세지가 있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선배님? 뭔가 말씀하셨나요?”
“그렇군. 아쉽다 느낄 수도 있겠다.”
“네, 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고도 문은 아직 남아있다. 겨울방학도 있지. 가을 대축제도 있다. 편의점 사업에서도 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
“······.”
“내가 졸업하더라도, 우리들이 졸업하더라도 그렇구나···. 네프티에게 부탁해 위치전환을 쓴다면 언제든지 제프린에서 만날 수 있다. 보통 외부인 출입은 엄금이지만 말이다.”
“네, 네에···.”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도록. 네가 졸업한 후에도 계속될 거다. 이 세상은 넓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많다. 네가 싫지 않다면”
“싫지 않아요!”
밀푀유 답지 않게, 크고 뜻 담긴 목소리.
녀석도 앗, 하고는 입을 가리고 이번에는 새빨개진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싫지 않은가.”
“네. 네에···.”
“그러면, 고작 한 번의 여름이 끝나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나.”
“······.”
“너는 계속해 내 곁에 있을 것이고, 우리는 몇 번이나 여름을 맞이할 텐데.”
그리 말하고 밀푀유의 머리를 슥 쓰다듬고는 마차에 올랐다.
“네. 선배님! 그럼 제프린에서 뵐게요!”
“좋은 여름방학 보내도록.”
“네, 네!”
사브레 영지를 뒤로 하고, 마차는 조금 더 동쪽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로 들릴 곳은 동부에서 더욱 동부.
사브레 영지가 초원이라면, 이곳은 숲이 무성한 시골 마을.
네프티가 살고 있는 글루코 마을이었다.
***
뭐라고 해야 할까.
사브레 영지가 고즈넉한 초원이 있는 귀농이라면, 글루코 마을은 정말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서바이벌 촌동네다.
나무로 만든 3단의 두꺼운 방책과, 누구 한 명 할 거 없이 입고 있는, 심장 등의 급소를 가리는 두툼한 가죽 보호대.
가는 길에만 만난 몬스터가 두 마리고, 그 중 하나는 강한 공격성을 띄어 마부와 호위병이 나서야만 했다.
호위병도 여길 간다고? 진짜? 라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고, 마부도 여길 가시겠다고요? 진짜? 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둘 다 돈을 입에 물려주니 멸사봉공하여 내 뜻에 따르는 충신이 되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 즈음 되니 호위병이었던 남자의 창대가 부러져 ‘호에엥 이대로 가면 다 죽어버리고 말거예요.’ 라는 상황이 펼쳐질 뻔 했으나. 단검으로 레드 그리즐리 베어의 목을 스윽 그어버리고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아일라는 저걸 맨손 격투기로 때려잡는데, 세상 밖의 인물···. 그것도 꽤 짬을 먹었다는 호위병조차 이 정도 레벨인가.
그렇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호위병의 어깨를 두드리고 웃으며 돈을 돌려받고, 다시 마차는 글루코 마을을 향했다.
그 정도의 사고가 대서 특필할 이유도 없는, 깡촌 중의 깡촌.
글루코 마을에 그렇게 도착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를 내려주고 마차는 쏜살같이 도시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죽는건 기분 나쁘니까 용병과 마부에게 롱소드 두 자루를 팔았다.
분명 돈을 내고 왔는데, 글루코 마을에서 내리니 지갑에 돈이 불어나있는 재미있는 상황.
그리고 문 안에 들어가자마자. 저 멀리서 한 명의 소녀가 달려왔다.
갈색 단발머리. 빛나는 눈동자. 주변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미소.
나의 로열가드. 네프티.
“선배니이임!”
“네프티인가.”
“넵! 선배님의 로열가드! 네프티입니다!”
멍!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네프티 뒤를 보니, 건물만한 포메라니안이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니안을 타고 귀가했었지 저 녀석.
거대 포메라니안을 타고 돌아다니는 나의 기사.
그 어디에도 위압감도 멋짐도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네프티 다운 모습 아니겠나.
“약속대로 왔다. 네프티.”
“네! 어서 오세요!”
그리 말하고, 내 팔을 잡아끌고 간다.
“엄마! 선배님이 오셨어요!”
“프티. 봐서 알고 있단다. 어서 오세요. 울프람 님.”
“오래간만입니다.”
다정다감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보는 평민 여성.
네프티의 어머니인 라베라는 뜨개질을 하고 있다가 딸아이의 소란에 쓰게 웃으면서도 이쪽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들어오세요. 프티. 너는 준비는 끝났니?”
“아, 준비···. 네! 거의 끝났어요!”
“준비라니. 무엇을 말하는 거지?”
“아. 선배님께 말씀드리는 게 늦었네요. 아무래도 숲이다보니까 여름에는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처리하면서 같이 축제도 겸하는 게 저희 마을에 있던 전통이었는데, 한동안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부활했답니다.”
“그렇군. 잡초인가”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죠!”
나도 알 거 같다. 잡초 같은 거 말이지?
잡초를 슥슥 베고, 나무도 정리하고 해서 그걸 처리하고 식사도 나누고 하는 전통일 것이다.
“그런 전통이 있었나. 좋은 축제로군.”
“선배님도 함께 하시겠어요?”
“물론이다. 거리낄 것 없지.”
“감사합니다! 선배님이 계시면 마음이 든든할 거 같아요!!”
그리 말하며 네프티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뭔 잡초를 제거하는데 든든하기까지야.
“그럼 어서 가시죠!”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우선 근처의 그레이 울프 서식지랑 그린 오크 서식지부터 정리하고, 마지막으로는 트윈 헤드 오크까지 사냥한다고 하시던데요?”
“······.”
네?
그러니까, 여름에 정리하는 게 잡초가 아니라 증식한 몬스터였어?
축제가 아니라 장례식이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