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8)
현실의 이영진 시절.
그러니까 고아원에서 컴퓨터를 배울 당시의 이야기다.
전에도 얼핏 말했지만 컴퓨터 사양은 구렸고, 고전게임 위주로 항상 돌아갔다.
그 때문에 내가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도 제일 먼저 한 게 컴퓨터를 비싸게 맞추고 D/Z SAGA에 인생 몰빵친 거긴 한데.
아무튼.
그 안에서 할 수 있던 게임들 중에 파란 고슴도치가 나오는 게임이 있었다.
예로부터 엄청나게 갓겜이라고 알려진 그 고전 명작. 통칭 고닉3을 하다보면, 잼클즈라는 빨간머리 두더지 같은 놈이 나온다.
나중에는 동료도 되는 이 잼클즈 디 우간다는 3에서는 짜증나는 악역으로 나온다.
초 필살기 같은 보석 7개를 훔쳐가질 않나. 사사건건 방해하고 주인공인 고닉을 바닥으로 떨구고 뭐 아주 난리가 난다. 그래놓고 배를 잡고 웃으며 도망간다. 어린 마음에 얘를 얼마나 줘패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도망치는 이 장난꾸러기 재간둥이 보스’ 만 보면 우선 줘 패보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정말 얄밉거든.
그래서.
그래서 때려봤다. 별 큰 이유는 없고.
그냥. 궁금 하길래.
거 미안하게 됐다. 이해 해주라.
“크르르르르릉!”
“끼야아아아아아악?!”
아무튼 내 지시에 파트라슈는 녀석을 물어뜯으러 달려갔다.
새된 비명이 울리고, 녀석이 두 걸음 물러선다. 콰앙! 하고 방어마법이 파트라슈를 후려치고, 깨갱! 하는 소리와 함께 파트라슈가 나가 떨어졌다.
“원래 저 정도로 나가떨어질 녀석은 아닌데···. 내 마력이 부족한 탓이군.”
그래도 이거면 충분하다.
파트라슈는 할 일을 다 했다.
이 한 순간의 틈.
여기서 가장 재능 있고, 냉철하며, 하늘이 내린 천재가 상황을 인지하고, 궤도를 수정하며, 전략을 다시 세우고, 놈을 후려칠 준비를 끝 마쳤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이브에게 ‘가장 큰 주문으로 단방에 후려치라고 했다.’
그리고 이브는 내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위이이이잉. 휘이이잉.
마력이 빛으로 치환된다. 주변의 모든 의지가 성스러운 마력에 물들어 고개를 숙인다.
마력은 대기 중에 가득 차 있으나,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사용자의 강한 마력과 높은 의지 수치.
그렇다면 지금 이브는 어느 정도 강할까.
리어카에 몰래 숨겨놓은 팝콘을 들고, 나는 그 일격을 주목했다.
마력치.
18에 인간을 넘어서고,
19는 하늘이 내린 천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20은 괴물이라 칭하고
21의 대마도사는 역사서에 기록된다.
이브 폰 로엔그린.
22의 마력을 가진, 초대 황제 이후로 가장 위대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
오른 손 위에, 실로 가볍게 마력을 응축해. 빛으로 치환하고, 창으로 변질시켜 쏘아낼 준비를 마쳤다.
【성광창:단발:최강화:필중:기절】
광창 위에 신성을 입힌 성광창.
마력을 집중시키는 싱글 샷. 맥시머마이즈를 걸고, 클린히트에 메즈:스턴.
“죽어!”
오. 대사도 멋지네.
직후 이브의 성광창은 ‘그 녀석’을 향해 날아갔고, 정확하게 꽂혔다.
“끼아아아아아악?!”
어떻게든 방어 마법으로 이를 막아낸다.
녀석의 마력치가 몇이더라? 아무튼 이브보단 낮을 것이다. 저 로브 자체도 6티어의 마법 도구지만, 이브의 전력을 다 막아내기에는 지장이 있었다.
“음. 관통이나 급소관통이 아니군.”
아일라라면 아무렇지 않게 관통을 걸고 사람에게 쐈을 텐데 말이야.
광창은 녀석을 꿰뚫지 못 한 대신 그대로 후려쳤다. 쾅! 하고 몸이 날아가 산장을 꿰뚫고 뒤로 튕겨져 콰아아아앙! 하고 뒷쪽 산에 처박혔다.
우지끈. 하고 몇 개의 나무가 무너졌고, 으스러진 거목에서 송진과 먼지가 같이 피어올랐다.
이어지는 소리는 부서진 오르골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같이 반복적으로 귓가를 때렸다.
무언가가 나무에 처박히고, 다시 부딪힌 뒤 날아간다.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는 합주는 다시금 후려치고, 무너지고, 다시 처박히고, 이를 꿰뚫고 나가 또 후려쳐 무너지는 소리를 이끌어냈다.
사람과 관중을 타악기 삼아 요란스러운 연주를 마친 광창은 이내 잠잠해졌다.
몇 개의 나무가 그렇게 으스러졌을까. 이제 녀석의 비명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후우. 어서 정신 차리세요! 제 일격을 맞았으니 어서 쫓아가야죠!”
“네, 네에!”
이브의 지시에 다른 학생회 녀석들이 빠르게 쫓았고, 이브는 후우. 하고는 숨을 몰아쉬고는 이쪽을 바라봤다.
“전력을 다 해서 한 방에 후려치라고 했죠?”
“그래.”
“봤죠? 이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영창 시간 내의, 전력이에요.”
캐스팅 타임 8초에 5소절인가.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브는 허리에 양 손을 대고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쁘지는 않다. 아일라보다 조금 느리지만, 위력은 아일라보다 확실히 앞선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만.”
“뭐죠?”
“성광창. 단발. 최강화. 필중. 까지는 확고한 의도가 있었다. 일격에 제압하기 위한 최고의 연계였지. 그런데”
“······그런데?”
“왜 마지막에 급소 관통을 넣지 않은 거지? 기절일 필요가 있나?”
“당신은 악마에요? 그, 그걸 넣으면 후려치는 게 아니라 꿰뚫어서 죽어버리잖아요!”
“저건 안 죽나?”
“······안 죽을 걸요? 죽지는 않게끔 했어요. 아마도···.”
그리 말하는 이브는 창백해지며 나를 바라봤다.
역시.
성장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지만, 얘는 워낙 애가 착해빠져서 살기가 부족하다.
이대로 갔을 때 그 지옥의 5막을 넘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네.
원작에서는 거기서 울프람 좀비의 뚝배기를 성광창으로 깨고 그랬는데 말이지.
“그렇군. 알겠다. 다만 ···아니다. 범인의 상황을 보고 이야기 하지.”
“천천히 가도 되지 않나요? 마력을 너무 써서···.”
“음. 학생회 임원들만으로는 대응하기 힘들거나 도망쳤을 수도 있으니 네가 빨리 합류해야 할 거다.”
“도망? 저걸 맞고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기절까지 걸었는데!”
“······글쎄다.”
녀석이 그렇게 쉽게 잡혀 줄 거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
그 뒤로 모두들 합심해 잔해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박살나 쓰러진 나무의 잔해를 치우며, 성광창이 후려친 끝 부분을 향해 다가갔을 때. 먼저 온 학생회 임원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요?”
이브가 실피아를 향해 다가가 묻자,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망쳤습니다.”
“······어? 지, 진짜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공간이동의 마법을 쓴 듯합니다.”
“···이브의 공격이 너무나 강해서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을 확률은?”
“네 놈이 뭘···. 아니다. 음. 그렇군.”
실피아는 내 물음에 반사적으로 발끈하려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고, 이브는 창백해져서 이쪽을 바라봤다.
짧은 생각 끝에 실피아는 고개를 젓고는 자신의 추론을 입에 담았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산산조각이 났다면 날아오는 도중에도 쾅!”
“힉.”
이브가 살짝 놀란 신음성을 내뱉자, 실피아가 송구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브님. 아무튼 박살나는 와중에 몸 안에 있는 뭐라도 쏟아내야 한다. 허나 ‘혈흔’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합당한 추론이군. 그래서 도망쳤다?”
체중을 45kg로 잡아도 7할은 수분. 그리고 그 수분의 대부분은 피. 적어도 30kg의 피가 흐르며 날아가야 정상이라는 건가.
무시무시하긴 하네. 안 보여서 다행이다 진자.
“완전방어의 아티팩트가 있었던지. 아니면 상태이상 면역. 충격 흡수. 공간 전이의 방어 마법이 복수 걸린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겠지.”
실피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관통을 걸지 않은 게 이런 결과를 만들었나.
게임이라면 방어력 관통이나 방어력 무시가 최고지만, 아무래도 현실이고 애들이 사는 곳이다보니 강화 스펠에 제한을 두는 듯 했다.
거기에 실피아의 추론 또한 논리적이었다.
얘가 좀 멍청하긴 해도 추리는 잘 하네, 성격이 외골수라 살짝 문제긴 해도 이브의 수호기사로서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놓쳤, 군요.”
이브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상황에서 제일 충격을 받은 것은 이브였다.
자신의 일격이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 한 것인가.
“···기절이 아니라 급소 관통을 걸었다면, 도망치지 못 했겠죠? 제가 안일하게 계산해서 모두들 헛걸음을 하게 했네요.”
“이브님.”
이브가 쓰게 웃었고 나는 이브를 비웃었다.
“그랬다가는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너는 악마냐?”
“울프람 당신이 지적 한 거잖아요! 관통 걸라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네가 하는 소리가 너무 웃겨서 말이다.”
“뭐가 그리 웃기죠? 사람이 진지한데.”
그럼 안 웃기겠냐.
“못 잡아서 미안하니 차라리 죽일 각오로 쏠 걸 그랬다? 그게 네 방식인가? 누굴 죽일 각오는 되어 있고?”
“······윽.”
후우. 이브는 한숨을 쉬었다.
장고의 시간을 거친 후 눈을 똑바로 떴다.
흔들림 없는 좋은 눈이다.
“맞아요. 저는 누굴 죽일 각오 따위 안 되어 있어요. 그냥 안타까워서 입에 담아 본 말이에요.”
“깔끔하게 인정 하는군.”
“예. 잠시 헛소리를 했네요. 솔직히 죽이고 싶지 않아요. 저는 벌써부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프린을 좋아하니까요. 제 임기 기간에는 누구 한 명도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압만 하려 했고, 결과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했어요. ···됐죠?”
“그래. 그거면 됐다.”
“다음번에는 제압 전용 성광창을 만들어서 쏠 거예요.”
실로 오래간만에, 이 원정에서 이 녀석을 보며 기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이브 폰 로엔그린이다.
실수 잦고, 신경질적이며 멘탈도 약하고 단 것을 주면 사족을 못 쓰고, 선입견을 바꾸지 않고 고집불통.
하지만, 자신이 실수했다고 깨달으면 즉시 그 자리에서 반성하고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지 즉각 답을 낼 수 있는 녀석이다.
그래서 이 게임의 메인 히로인이고, 인기투표 1위는 아니었더라도 그 위상이 드높았으며, 이브단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언제나 이 녀석의 충신을 자처했다.
켈터스는 그런 이브의 곁에서 그녀의 실수를 지적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며 황위가 걸린 레이스를 펼치는 그녀를 보필하며 위대한 빛의 용사가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이브는 켈터스 덕분에 정신을 차리며. 학생회 권유를 받게 된다.
그래. 지금 이 원정. 즉 2-1이 계기였지 아마.
“울프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뭐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엄청 재수 없고, 기분 나쁘고, 제 족보 바로 위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짜증나는 사람이에요.”
“시비 거는 건가?”
“끝까지 좀 들어봐요. 하지만, 이번 원정에서 당신이 보여준 시야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냉정했고, 냉철했으며, 정확했고, 또한 정확했어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제 휘하 이번 기수 학생회에 들어 올 생각 없나요?”
“이브 님?!”
“제 제안이에요. 제가 당신의 방패막이 되어 줄게요. 당신은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지적 해 줘요.”
“······.”
실피아는 침묵했고 주변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하지만 강한 반발은 존재하지 않았다.
“음. 지금의 울프람이라면 뭐···.”
“솔직히 많이 의심되긴 하지만.”
“믿을 수 있을까?”
“···이번 원정은 울프람 덕분에 성공한 거기도 하고 말이야.”
“·········으음.”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학생회 가입에 큰 반발을 보이지 않는다.
이브가 띄워 준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이들을 격려했고, 이끌었으며, 지원했기에 얻어낸 합당한 권리다.
이브 폰 로엔그린의 휘하에서 생활하는 학생회는 꽤 즐거울 것이다.
놀려먹기 좋은 실피아가 있고, 이브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보람 찬 일일 것이다.
편의점은 포기해야겠지만, 나도 주류 사회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음. 학생회라.
뭐 길게 생각할 것까지야 있나.
이브는 웃으며 내 답을 기다렸고 나는 이브를 보고 웃으며 답했다.
“하하. 개 소리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구나 내 동생아 내가 왜 네 아래로 들어가야 하지?”
“···그럴 줄 알았어요.”
우리는 웃으며 서로에게 중지를 치켜들었다.
흠흠.
아니 이게 전부는 아닌데 말이야.
동생에게 해줄 좋은 말···. 오빠다운 말이라.
흠.
“아. 그리고 말이다.”
“뭐죠?”
“잘못 된 길을 걸으면 괜히 와서 시비를 거는 게 혈통 메이트 윗줄의 마음 아니겠나. 설령 나중에 잘못된 길을 걸으면 말하지 않아도 찾아 갈 것이다.”
“···울프람.”
나는 이브의 어깨에 손을 척. 하고 올리고는 방긋 웃었다.
“즉. 나는 편의점에서 꿀 빨테니 십만 제프린은 네가 이끌거라.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제 와서 학생회에 들어가야 하지? 미쳤나?”
“······당신 나중에 진짜 편의점에 세무조사 들어 갈 거니까 목 씻고 기다리세요. 1 린이라도 빼돌리면 퇴학 시킬 거니까!”
어머나.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조언해 준 손 윗 형제님께 그렇게 무서운 협박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