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83)
582. City of Hero
다음날 아침.
“울프람! 좋은아침이에요!”
나는 아직 좋은 아침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건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밝고 활기찬 목소리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아침’을 선포하고 있었다.
저 말에 선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열기와 기세는 선포라는 말 외에는 형언할 수 없었다.
즉.
푹 자고 일어난 아일라 트라이스타의 완전 부활.
그에 비해 나는 지난 밤 잠을 좀 설쳤다.
물론 황실 혈통은 그 어느때나 ‘추해지지 말라’ 라는 효과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피곤은 조금 넣어둘 수 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아일라를 바라봤다.
“좋은 아침이구나. 아일라.”
“네!”
“네가 얼마나 좋은아침인지는 알겠다. 아주 한 눈에 알 수 있겠군.”
“그런가요? 마음이 통해서 기뻐요!”
“그래. 네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잠옷 차림 그대로 이곳을 향해 달려 온 것을 보면, 얼마나 이 즐거운 아침을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 알 수 있구나.”
그 말에 아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그리고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여름이라 그런가 한층 더 얇은 원피스형 잠옷. 허리에 끈이 하나 있어 몸에 맞춰 조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호쾌하고 펑퍼짐하게 입고 있는 아일라.
“아, 아···. 음. 울프람.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한데요···. 그러니까···.”
“음. 뭐든 말해보도록. 내 너의 말은 언제든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잠깐, 잠깐 문을 닫고, 이 약 1분간의 시간을 없던 일로 한 다음. 제가 옷을 갈아입고 오면···. 다시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지.”
“네. 그럼···. 염치없지만···. 문을 닫아 줄 수 있나요?”
“음.”
툭. 하고 문을 닫자마자 촤아아악! 하는 소리가 문 밖에서 울렸다. 과연. 아일라의 재주는 인간의 한계에 근접했다고 할 만큼 재빠르다. 저 멀리서 ‘아가씨?!’ ‘소가주님!’ 같은 소리가 들리지만 모른 척 했다.
아일라의 말마따나, 우리의 1분은 사라졌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시 한 번 아일라가 웃으며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울프람!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이구나. 아일라.”
이번에는 제대로 제프린의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보고, 나는 웃어버렸다.
지금부터 강의라도 들어갈 셈인가.
아니 분명히···. 빨리 갈아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코디를 신경쓰지 않고, 가장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외출복인 교복을 선택했으리라.
그 점 또한 참으로 아일라 답군.
“자! 나가죠!”
“어딜 말이지?”
“어디겠어요. 에덴 중앙이죠!”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저택을 나섰다.
“아, 아가씨···. 오늘은 가주 대행 업무로서 신설되는 울프람 시에 가셔야 합니다···.”
메이드가 다가와 아일라에게 일정을 설명했지만, 아일라는 웃으며 그 일정을 접어놨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저와의 접견을 바라셨는데, 그보다 우선할 일이 있을까요?”
“저···. 그것이···.”
메이드는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고, 아일라는 미소로 나를 이끌었다.
이 정도 자유분방하고 자기 멋대로 사는 건 아일라 답긴 한데···.
그 전에.
“새로운 시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아일라?”
“자. 가요! 울프람!”
······.
아니.
제대로 설명해줘.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
그렇게 아일라의 손에 끌려 에덴 중앙을 춤추듯 돌아다녔다.
시장을 가기도 하고, 이런 영지라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숙소가 모여있는 곳이나 하층 마을을 가기도 했다.
원래 가난은 신도 박멸할 수 없는 법. 당연히 빈부의 차등은 여전하다.
그리고 가난이란 언제나 윗사람을 향한 불만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허나.
“오! 공주님! 안녕하세요!”
“라시나! 딸은 잘 지내요?”
“그럼요! 요새는 제프린에 다니겠다고 얼마나 극성인지.”
“후후. 그래요! 제프린은 좋은 곳이니까요! 트라이스타 장학금도 신청해보라고 하세요!”
“어머. 그럼 뇌물을 드려야겠네. 옆에 계신 분이랑 같이 드세요!”
“후후. 뇌물 받았어요!”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사과 두개를 들고 와 하나를 내게 넘기거나.
“공주님! 좀 괜찮은 광산 없습니까? 최근에는 영 괜찮은 광산이 없어!”
“나는 한동안 광산 탐색쪽에서는 손 뗐어! 좋은 광산은 스피카한테 물어보는게 어때?”
“알겠슴다! 스피카 작은 공주님께 물어보겠슴다!”
“좋은 광석 발견하면 언제든 사무소로 들고가! 비싸게 사줄테니까!”
“예이!”
덩치 좋은 광부 아저씨의 능청스러운 제안을 흘려넘기거나 말이다.
가난한 마을이라 더더욱 트라이스타 가문, 그것도 차기 가주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수도 있건만, 적어도 이 곳에서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모두가 아끼는 아가씨.
아니.
“공주님?”
“으, 으흠. 다들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에요!”
“그렇군. 스피카가 작은 공주님이라면 아일라는 공주님이지.”
“서부가 독립이라도 한다면 제가 공주님 소리를 듣는건 맞죠?”
“뻔뻔하게 나오지만, 얼굴이 새빨갛구나 감기라도 걸렸나. 아일라 공주님?”
“울프람?”
아일라는 붉어진 얼굴로 이쪽을 노려본다. 농담은 이 정도로 할까.
“그나저나 정말 아는 사람이 많군, 다들 아일라에게 인사하고 있지 않나.”
저 멀리서 공주님! 안녕하세요! 하고 손드는 어린 아이에게 아일라는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고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그리고, 아이가 웃으며 멀리 떠나가자 다리를 펴고는 이쪽을 보고 웃었다.
“워낙 오랜시간 같이 지내서 그래요. 어릴때부터, 계속해서요.”
사랑스럽게 마을을 바라보는 아일라는, 이내 내 손을 잡고 다른곳으로 이끌었다.
“자! 가죠. 울프람!”
“또 어딜 말이냐.”
“그야. 제가 만들고 있는 두 번째 계획이 시작되는 곳이죠!”
***
그렇게 열차를 타고, 아일라와 같이 어딘가를 향했다.
열차는···. 솔직히 말해서 객석 열차라고는 생각할수 없는 진동이 있었다.
그래. 제일 처음 우리를 태웠던 그 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진동.
“그때 그 열차가 맞구나.”
“네. 이건 재빠르게 퇴역해서,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답니다. 그냥 버리기에는 부품이 아까워서요.”
그럴 수 있지.
“이 노선 자체도 에덴에서 가기 편하라고 깐 것 뿐이지, 실제 여행용으로 쓰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그러니까···. 미안해요. 울프람. 손님으로서 여기에 왔는데···.”
“이 앞은 ‘손님’용이 아니라 ‘관계자’용 길이라 이거군.”
“네···. 울프람은 여행중이었는데 이렇게 일에 연관시킨 모습이 된 거 같네요.”
내 앞에서 열차의 진동을 참는 아일라를 보고, 머리에 손을 툭 올렸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휴식이다. 아일라.”
“일 중독이에요.”
“나태하게 놀고 있는 인간보단 낫지 않나?”
“그야 그렇지만요.”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어떤 일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달래자, 아일라는 한숨을 내쉬고는 시트에 깊이 몸을 묻었다.
저럴수록 진동이 더 심해질텐데, 괜찮나.
“정말. 울프람은 언제나 그런 식이에요. 가끔은 화 내거나 불평 불만을 말해도 되는데.”
“고려해보도록 하지.”
열차가 우리 둘을 싣고 한참을 달리다 이내 멈춰섰다.
석탄을 떼는 열차가 아니라, 마동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용한 건 또 좋네.
“내리죠. 울프람!”
“음.”
그리 말하고, 역이라 부를수도 없는 간이 정거장에서 내려서 잠시 걸었다.
“자. 울프람 여기에요. 제가 울프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
“호오.”
시선을 앞으로 던지자, 확 트인 시야가 눈을 가득 채웠다.
그렇구나.
이렇게 확 트인 황야를···.
“황야지 않나?”
“네!”
그렇군. 나에게 황야를 보여주는 의미를 캐치하자. 분명 이렇게 넓고 거대한 시야를 가지라는 의미인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이건 아일라가 내는 퀴즈다. 녀석의 마음을 읽어서 어째서 이 곳에 나를 불렀는지 생각하자.
아.
그러고보니 들어본 적 있다.
비가 오면, 하늘과 대지가 맞 닿은듯 보이게 만든다는 장소.
바로 소금 사막이다.
“곧 비가 오는가···. 그렇군. 그 풍경을 내게 보여주고 싶은 건가?”
“아뇨? 비는 안 오는데요?”
“······.”
그럼 뭐지.
“아, 그렇군요. 제가 설명이 부족했네요. 으흠. 그러니까요. 울프람.”
아일라는 짐짓 점잖은 체를 하며 헛기침하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설명보단, 보는게 빠르겠죠?”
“황야밖에 안 보인다만.”
“보는 각도를 바꾸면 다른게 보여요!”
그리 말하며 흑요석의 계단을 만들어 성큼 나를 끌고 올라갔다.
허공을 수놓는 자색 계단.
지상이 멀어지고 하늘이 가까워진다.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내 손을 힘 있게 쥐고 있는 부드러운 손을 생각하면 그런 염려를 순식간에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지상보다 하늘에 더욱 가까워졌을 때.
“자. 울프람. 이제 보이죠?”
“보이는구나. 아주 잘 보여.”
아일라가 내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무척이나 잘 보였다.
무한한 땅을 유한하게 한정짓는다.
자연을 상대로 스스로가 살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한다.
이 서부의 한복판. 황야는 지금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골렘들이 석재나 나무를 나른다. 저기서 보라색 마력이 번쩍이고, 거대한 골렘의 어깨에 올라타 웃으며 지휘를 내리고 있는 쪼그마한 녀석이 보인다. 양갈래머리가 인상적인 녀석의 지시에 휙 휙 건축재료들이 한곳에 모인다.
“스피카도 노력하고 있네요.”
“그리고 모두가 노력하고 있지.”
“네. 이걸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아일라의 자상한 미소.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에, 아주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도시.”
“네! 서부는 광물은 많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너무나 적어요. 그래서 만들어지는 신도시!”
“그렇구나.”
“에덴이 오랫동안 이 서부를 지탱해줬다면, 이 새로운 시는 서부 유통과 물류의 중심이 될 거에요. 모든 열차가 이 곳을 지날거랍니다.”
“모든 역들의 중심. 허브를 맡는 것인가.”
내 말에 아일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꿈을 꾸듯 이야기했다.
“장담할 수 있어요. 이곳은 제국의 수도 엠펠리움보다 고상하지는 못할지언정. 이 세상 어느 땅보다 활기찬 생명의 땅이 될 거에요!”
“그런가.”
“네! 여기서 모든게 시작돼요. 제 반역도, 우리의 이야기도 전부요! 후후. 지금이라면 편의점 위치를 선점시켜줄수도 있다구요?”
“이것 참. 뇌물이라도 바쳐야겠구나.”
나와 아일라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웃어버렸다.
“좋은 도시가 되겠구나.”
“좋은 도시로 만들거에요.”
“그리 되겠지.”
“어머.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남 이야기처럼 말하면 안 돼죠.”
아일라는 빤히. 나를 올려봤다.
무슨 소리지?
“제가 만드는게 아니에요. 같이 만들어가는거죠. 이곳에 이주할 사람들과 트라이스타 가문. 그리고···. 울프람도요.”
“그 안에는 나도 들어가는가.”
“물론이죠!”
나는 동의한 적 없지만, 아일라 안에서는 이미 계약서에 자필로 사인하고 간인하고 날인까지 했나보다,
“알겠다. 미력하나마 최대한 돕도록 하지.”
그제야 녀석은 만족한 듯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웠다.
그러고보니.
아직 한 가지 못 들은게 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뭐지?”
“모든 시작의 도시. 결코 절망하지 않는 도시. 부족함을 수치라 느끼지 않고 스스로 희망을 잡아내는 도시. 그래서···.”
“그래서?”
“울프람 시에요!”
······.
·········.
“그런가. 울프람 시.”
“네!”
“그 작명은···. 진심이로군?”
“이미 제국에 서류를 제출했고, 승인했답니다?”
진짜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