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85)
584. Normal End.16
우리 어릴 때 들었던 말, 세상은 둥그니까 인간도 둥글게 살아야 한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손해를 감수하지 말고, 서로 합을 맞춰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허나 오늘 아침.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우으···.”
“이히히. 오라버니. 가요!”
아일라 – 스피카의 대타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타협 개시 자체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일라는 곧 잠들어야 하는 상황.
결국 스피카에게서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아일라는 도중에 잠들어 내가 업고 침대에 눕혔다.
그런고로 이번 타협은 스피카의 승리.
“그럼 이번 여름방학 끝나기 일주일 전, 오라버니와 단 둘이서! 천혜의 고도에서 만나는 거죠?”
“그렇다.”
“단 둘이에요? 사람은 많은 게 좋다느니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꼭이에요?”
“알겠다. 알겠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해맑게 웃으며 내 손길에 맞춰 머리가 따라온다. 녀석 하고는.
생각해보면 아일라도 제프린에서 바빴기에 신경 써줄 틈이 없었고, 막상 스피카가 제프린에 들어와서는 추억을 만들기 보다는 내 업무에 동참하거나 수업에 바빴으니, 어린 시절에 응당 필요한 가족, 혹은 친한 친구와의 추억이 무척이나 부족하고 그로 인해 온기를 갈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듣자하니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그 친구가 말이지.
“스피카. 앨리스 마이스터와는 잘 지내고 있나?”
“앨리스 양이요? 물론이죠! 제 최고의 친구랍니다.”
“그렇구나.”
그 감정결여 환자와 친구로 지내는 것은···. 그 아이의 감정적 치료에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정신적으로 아픈 친구가 있다면 괴로운 것은 친구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감싸주고 이해해 줘야하는 주변 사람도 매한가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픈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어른의 의무지만, 그걸 주변 친구에게 강제로 맡긴다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즉 나는 스피카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앨리스의 치료를 조금 서둘러야 할 필요는 있겠군.
“알겠다. 스피카. 앞으로도 앨리스 마이스터와 친하게 지내려무나.”
“그건···. 서부의 트라이스타와 【검】의 천재가 친하게 지내는 게 오라버니에게 좋기 때문인가요?”
살짝 사그라드는 눈동자.
세상 모든 게 손익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상인가문의 본능인 걸까. 내 말을 조금 지레짐작하고 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는 웃어버렸다.
“아니. 둘 다 나에게 있어 소중한 후배니,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나. 이건 로엔그린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울프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네! 알겠어요!”
다시 활기차게 내놓는 대답에 한 번 더 웃었다.
“그럼 아일라.”
“네. 울프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이별을 아쉽게 느끼는 녀석을 보며.
-너도 일찍 돌아오면, 스피카와 논 다음날은 함께 놀 수 있지 않겠나?
-네, 네?
파티 메세지로 보낸 말에 아일라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피카가 갸웃하고 우리 둘을 바라봤지만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모양.
“그럼. 제프린에서 만나지.”
“네. 울프람. 제프린에서 만나요.”
그래 뭐.
이거면 자매 싸움도 나름 깔끔하게 수습했고.
슬슬 열차를 타고, 중앙으로 떠날 시간이다.
***
중앙으로 간다고 해도, 바로 그 짜증나는 엠펠리움에 틀어박힐 생각은 없다.
엠펠리움도 특수맵으로 몇 가지 숨겨진 요소가 있지만, 전에 가본 결과 거기는 사람 살 곳이 아니다.
그 미쳐버린 선민의식 덩어리의 황궁에 사람이 살아버리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도구로만 보게 된다.
앞으로도 거기서 평생 살아야 할 이브에게 ‘아주 조금’ 혹은 ‘정말 어쩔 수 없이’ 같은 수식어 빼고, 순수하게 동정심을 느낀다.
뭐. 녀석은 그런 사상을 싫어하니까 황제가 되자마자 죄다 뜯어 고치겠지만 똥에 물들지 않는것도, 똥을 치우는 것도 꽤나 끔찍한 일 아니겠나.
한참을 열차가 달렸고, 이내 몇 번 마차로 갈아탔다.
서부 트라이스타의 인장이 박힌 마차와 주변을 호위하는 무투형 골렘들을 보고 있으면 도적이나 몬스터나 감히 달려들 생각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법.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나는 서부를 떠나 중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엠펠리움을 그대로 관통해, 조금 동부에 치우쳐진 시엘라 영지에 도착.
“화려하구나.”
제국의 모든 보석이 거래되는 도시.
황금의 파도가 흐르는 바다.
시엘라의 영지.
황금. 혹은 지팡이. 마치 가문처럼 평소에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오직 가주 앞에서는 모두 입을모아 이렇게 칭한다.
시엘라의 전통이 담긴 도시
엘드 시엘라.
“어서오세요. 엘드 시엘라의 모두는 황자님을 환영합니다.”
“오래간만이다. 레지나 시엘라.”
“네. 황자님. 이 땅에 방문해주신 영광. 오늘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엘드 시엘라에 서자마자 양 옆에 일렬로 도열해있는 수백의 기사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걸어와 미소짓는 레지나. 그녀의 뒤에 서있는 수백의 시종, 가신들.
말 그대로 최고 귀족의 위엄. 이 정도의 인원을 아무렇지 않게 대동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듯한 힘. 그리고 그것을 그리 대단한 권한이라 신경쓰지 않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과하지 않은가.”
“저희의 만남이고, 황자님께서 처음으로 엘드 시엘라에 찾아오신 날입니다. 어찌 준비를 소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 특별할 것이···.”
“직위를 이어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을지도 모르나, 그 점 너그러이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정중한 인사.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마치.
그래 마치 이제야 자신들의 고생이 끝날 거 같다고 생각하는 듯 한 희망.
【대중에게서 희망을 느낍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스테이터스가 잠시 강화됩니다.】
대단한 버프는 아니다.
다만, 그 버프가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크다.
정말 저 사람들은 나와 레지나의 만남에서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어째서일까.
레지나와 나는 파티원으로서의 셈법이 좀 다르다.
요컨대 가장 바깥 세계의 평가에 민감하다.
얼마 전 가주인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젊은 가주가 된 레지나.
아직 학생이라는 위치가 본인에게 있어 큰 부담으로 다가 올 거고, 그 점은 그녀의 가신들도 같은 기분일 거다.
학생. 일천한 경험. 아직 남아있는 아버지의 가신들.
그 와중에, 그녀를 가주로 옹립할때 가장 큰 지원을 했던 황손이 찾아 온 것이다.
가신들 전원을 대동해서라도 부족함 없이 맞이하고, 친애를 과시하는 것이 목적일 터.
어쩔 수 없지.
레지나 시엘라의 멘탈을 위해서라도 여기선 합을 맞춰주는 게 좋겠다.
【황실혈통을 발동합니다.】
【당신의 말에 실린 감정은 민중의 가슴에 더욱 깊게 다가섭니다.】
【레지나 시엘라. 내가 가장 신뢰하는 벗이자 동료. 그대의 환대에 감사하며, 끝모를 광휘의 파랑(波浪)을 자랑하는 엘드 시엘라에 무한한 영광 있기를.】
나의 인사에 주변에서 와아아!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울렸다. 심지어 눈물을 닦는 이들 또한 있을 정도였다.
레지나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이내 만면에 미소를 피워 올렸다.
내가 아니라면 그 멍한 표정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휙. 하고 시야 오른쪽 구석에 메세지 창이 올라온다.
-후후···. 감사드립니다. 황자님. 저에 대한 이 배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무얼.
【레지나 시엘라의 친밀도가 더더욱 오릅니다.】
【그녀의 마음이 열려 당신을 더욱 크게 신뢰합니다.】
“자. 그럼 들어가도록 할까.”
“네. 황자님.”
레지나 시엘라의 바로 옆을 걸으며, 슬쩍 곁눈질로 녀석을 바라봤다.
제대로 공략한 적도 없었지만, 기억 속 남아있는 그 어떤 그림보다 지금의 미소가 화사하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
하여 녀석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에 도착, 가볍게 차를 나누었다.
가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이곳에서는 우리 둘만이 인간이고, 다른 녀석들은 마치 그 자리에 서있는 NPC 혹은 오브젝트같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건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어머나. 익숙해지셔야 하지 않을는지요.”
“어째서지?”
“앞으로 황자님께서는 수 만, 아니요. 수 백만을 넘는 사람들을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 지금의 대업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인간을 인격이 아니라 숫자로 보라는 말인가.”
“그런 말씀을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 수백만이 황자님만을 보고 있을 텐데, 그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의식해서는 할 일도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음.
인간을 도구로 보는 나쁜 버릇은 없나보다.
이 녀석 루트에서는 그런 느낌도 있었는데 말이야.
허나 그 말을 동의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나저나.
나에게 이런 조언도 하고 말이야.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되었나보군.”
“네?”
“보기 좋은 얼굴이다. 흔들리지 않고 가야 할 길을 찾는 신념 깃든 얼굴.”
“아···. 과찬이세요.”
양 손으로 볼을 가리며 붉어진 얼굴을 숨지는 레지나.
정말이지.
처음에는 무섭기 그지없었던 여자였다.
그야 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는 수틀리면 칼빵놓고 우리 같이 죽어요. 아니 죽는 게 아니에요. 영원히 하나가 되는 거예요. 라고 말하는 캐릭터였는걸.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일이 있었나?”
“아···. 후후. 네. 있었답니다.”
“호오. 부디 들려줬으면 하는군. 무슨 일이지?”
“후후. 짐작 가는 부분이 없으신가요?”
“글쎄.”
아니.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가문 내부의 일이 안정되고, 파티에서 아일라와 경쟁하고, 가주가 되었다.
이제 레지나 시엘라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행복한 상태일거다.
녀석의 대답을 채근하자, 레지나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편 후. 솔직하게 심경을 고백했다.
녀석의 마음을 낫게 해준 것은 바로···.
“미술치료랍니다.”
“미술치료.”
상상도 못한 대답인데. 미술로 치료를 했다고?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심리상태를 분석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말이야.
“그렇군···. 꽤나 좋은 치료법이었나보군.”
“네에.”
음.
아냐. 레지나도 이제는 어엿한 내 파티원이다.
여기서 상상도 못했는데? 그런 치료가 필요했구나 하고 대화가 끊기면 서로 민망할 것 아닌가.
상대가 내 기대와 완전 다른 대답을 내놓아도, 거기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좀 더 이야기 해 볼까. 어디보자···.
“나도 그림에 그럭저럭 관심이 있던 몸이라 말이다.”
“아···. 예. 예술가의 거리를 황자님께서 지원하셨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하면···. 레지나 시엘라. 네가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보여 줄 수 있나?”
“정녕···. 보고 싶으신가요?”
“물론이다. 내게 보여줬으면 하는구나, 네가 어떤 심경으로 어떤 작품을 그렸는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다들 물러나세요. 저와 황자님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른 가신들이 고개를 숙여 자리를 비우고, 레지나는 각오를 다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에게 그림을 보여준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럽겠어.
【완전히 피해버린 절망적 분기에서, 또 하나의 희망이 피어납니다.】
【상호 신뢰도를 판정합니다.】
【최상의 신뢰도입니다. 죽음 외에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축하합니다.】
【레지나 시엘라의 마음은 견고하여 진실이 밝혀진다 한들 그녀는 뒤틀리지 않습니다.】
【허나 주의하세요.】
【하나의 결말에 가까운 트리거가 작동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여기서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님?
갑자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뭔가 보면 안 될 거 같은걸···.
고작 그림인데?
허나 시스템은 지금까지 내게 허언을 한 적이 없다.
즉.
레지나의 그림은 잘 모르겠지만 ‘진짜 위험하다.’
“레지나. 레지나 시엘라.”
“네. 황자님.”
“네 그림은 정녕 나에게 보기에 자랑스러운가?”
“네···? 그리 물으시면 아직 조금, 아니 많이 부족합니다.”
“그, 그렇다면 완성된 너의 그림을 보고 싶구나. 내 앞에 있는 레지나 시엘라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아···. 후후. 네. 그리 하시지요. 언젠가 자랑스레 황자님께 보여드릴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제일 먼저 봐주세요.”
“음. 그러도록 하마.”
【하나의 결말을 회피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