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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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 사회인
그 뒤 레지나 시엘라와의 담화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주변에 가신과 기사를 수 천 명을 대동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받는다.
무언가 하나 하려고 하면 시종들이 대신 하려고 하고, 레지나와 나는 그저 앉아있을 뿐.
병풍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셀럽의 삶? 그런 느낌이다. 아니 그것보다 더하지.
“레지나. 조금 대접이 과하지 않나?”
“사람을 물리겠습니다. 황자님.”
“아니 아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네?”
레지나에게 말을 꺼냈지만, 나 또한 이게 무엇이 문제인가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나저나 많은 시선을 받음에도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네. 놀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어째서 놀라야 하나요?”
많은 인간의 시선을 신경 써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 라고 하였는가.
사실 그 말에는 꽤나 공감하는 바다.
이게 대상인가문의 가주될 사람의 품격인가.
놀랍구만 그래.
“그런가. 대단하군.”
“으음···.”
내가 짧게 반응하자 이번에는 레지나가 이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왜 그러지?
“황자님. 황자님께서 많은 하인들의 대동을 싫어하고, 소규모로 움직이시는 것을 즐기는 것은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거기에 으흠. 무엇을 오해하시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호오.”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다?
그거 재밌네. 나는 하지 않은 오해를 이 녀석은 해명하려고 한다.
어디 들어볼까.
“우선. 저는 계급 통치수단으로서 무척이나 효율적이며,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인간 사이에 계급이 있다 한들, 그들을 죽을 만큼 부려먹는 나쁜 고용인은 아닙니다. 나쁜 귀족도···.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호오. 그래서?”
“즉. 저는 이곳에 있는 가신과 하인들을 무보수로 이 더위속에서 부려먹는 게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보수를 지급하고 있고, 이들은 지금 저희 주위에 필요합니다.”
“······.”
“이 또한 업무의 연장선입니다. 다들 저희 주위에서 저희의 시중을 들고, 그 세력을 과시한다는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의 거대한 회사. 혹은 독특한 산업현장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황자님께서 평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대 인력의 대동은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우물쭈물 하는 레지나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나는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레지나는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구나.
우리의 시중을 드는 이 인원들이 전원 불복종에 의한 강제 노역이라 생각했지만, 레지나는 이 또한 하나의 산업 현장이라 말했다.
세를 과시하고, 시중을 받는 것 또한 산업이며, 모두에게는 보수를 지급하고 있다. 라고 말이다.
이것 참.
나도 모르게 손을 슥 들어서 레지나의 머리 근처에 가져다 대려는 그 순간 녀석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아···.”
“음. 이거 미안하군.”
이런 아저씨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하나의 그···. 개인 인권 유린? 그런거에 걸릴지도 모른다.
손을 거두자, 레지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게···. 싫은 게 아니라.”
“아니라?”
“저, 그것이···.”
레지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금빛 머리를 한 번 정리하고, 붉은 눈을 살짝 감고, 양 손을 모아 내 앞에 다가와 무릎 꿇었다.
“레지나 시엘라?”
“저기, 저도···. 저에게도 그런 은혜를 내려주신다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깨를 덜덜 떨고 있다.
아, 그렇군.
이 녀석은 지금 대 가문의 가주로서 황자인 내 말을 거역할 수 없다.
이 녀석의 반역이 성공했던 건 어디까지나 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러니 내 폭거에 저항할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완전히 물릴 수도 없는 노릇 우리를 보는 시선이 너무나 많다. 여기서 안하면 그건 그것대로 불화의 단초라는 소문이 돌지도 모르는 노릇.
어떻게 해야 하지.
농담이 아니고, 수 천 명. 아니 그보다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철저하게 교육된 이들답게 수군거리는 소리는 없었다만, 그만큼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레지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쓰다듬는 대로 녀석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대로 관계가 무너진다.
【황실의 격을 감히 시험합니다.】
【황실 혈통이 시험에 응합니다.】
넌 또 뭔데.
따지고 들기도 전, 몸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콕.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검지로 레지나의 이마의 정중앙을 살짝 찔렀고 녀석은 눈을 뜨고는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황자님? 저기 머리를···.”
【쓰다듬어 줄 거라 생각했나?】
“저, 저기···. 으읏. 네. 아직 그 정도의 포상을 받기에는 부족함이 있겠지요.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하하. 농이다.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무얼. 여기서는 보는 눈이 너무 많지 않나.】
“아···.”
황실 혈통은 그리 말하며, 묵직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주변 모두가 황급하게 시선을 깔고, 고개를 조아린다.
【그래. 이제야 조금 시선이 맞는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무,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알았겠지. 자리에서 유일하게 내 눈을 마주보고 말을 걸고, 나의 말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너 뿐임을 말이다.】
와.
황실혈통 이거 뭔데.
말이다. 라는 목소리가 나가자마자 중후한 분위기는 더더욱 강렬해져 민중을 제압했다.
그리고.
“황자님. 그럼 머리를···.”
【쓰다듬지 않을 것이다.】
“여, 역시 제가 부족해서.”
【오해하지 말도록. 레지나 시엘라. 만약 지금 네 머리를 쓰다듬으면, 애써 아름답게 치장한 머리가 우악스러운 손에 헝크러지지 않겠느냐】
“아···.”
거기까지 말하자, 황망하다는 듯 레지나는 바닥에서 일어서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주변 모두가 황실의 위업에 굴종합니다.】
【황실 혈통의 강제적 제어가 해제됩니다.】
“돌아가자. 레지나.”
“네. 네에.”
레지나의 당황과는 다르게, 나는 몇 번이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 황실혈통이라는 스킬은 비밀이 너무나 많다.
우선,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대체 ‘어떤 혈통 능력을 각성했는지’ 밝혀지지 않은게 크다.
이 능력은, 내 육체의 자유까지 빼앗아 간다. 내 정신을 침범한다.
즉.
나는 지금 온건히 내 의사로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원래 뜻대로 살 수 없는 게 인간이고, 또 어른이라 최대한 타협하며 살려고 했지만···.
무언가에 진심을 담아 대답해야 할 때가 찾아온다.
즉.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내리지 않으면, 진심이라 생각했던 대답마저 퇴색될지 모른다.
즉.
대답을 내리기 전까지는, 적어도 이 스킬의 의문을 전부 해소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
레지나와 함께한 일련의 쇼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헤어지는 당일은 단 둘만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녀석은 사람을 물렸다.
제프린에서 보던···. 분명 정리는 했지만 어딘가 어설퍼보이는 정돈에, 사글사글한 미소를 띄며 레지나는 내 앞에서 웃었다.
“후후. 어제는 사람이 많은 게 좋다고 했다가, 오늘은 아무도 없이 혼자서 배웅이라···. 이렇게나 어리광쟁이인 저를 끝까지 내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자님.”
“무얼. 그것도 또한 레지나 시엘라 답다 할 수 있겠지.”
사랑해요와 죽일게요가 동의어인건 이 세계에서도 너 하나뿐이니까.
“감사합니다. 저를 이해해 주셔서.”
“그럼 나는 이만 갈 생각인데···. 무언가 할 말이 있나?”
“황자님. 저는 제프린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가주직을 맡게 됩니다. 이제 저에게는 자유란 없겠지요.”
“그렇군.”
“그러니 곧 끝날 거라 생각합니다. 황자님을 편하게 만나거나, 저희가 이렇게 아무런 사심 없는 신뢰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말이지요. 황자님께서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며 개혁을 논하셔도, 저는 결국 십이가문의 수장으로서, 때로는 돕고 때로는 거절해야 할 테니 말입니다.”
“······.”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저 수천, 수만의 가신과 하인들이 배를 곯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 의무이며, 그 어떤 사업이나 영지보다도 우선해야하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예. 그러니···. 내년 졸업까지가 아마도 저희에게 남겨진 마지막 유예겠지요.”
“······.”
“황자님께서 바라신다면, 그 뒤에도···. 울프람 폰 로엔그린과 레지나 시엘라의 신의는 더욱 굳게 결속될 수 있겠습니다만···.”
“무슨 의미지?”
“후후. 글쎄요.”
거기까지 말하고, 레지나는 깊게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허리를 곧게 펴고, 그녀를 기다리는 가신들이 있는 곳으로 가겠지.
나는 마차에 올라타 생각에 잠겼다.
길은 갈릴 수 있다.
모든 것은 제프린 졸업까지인가.
그 뒤로는, 한 명의 사업가와 다른 가문의 가주로서 만나야 한다.
“그런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졸업한 뒤에도 계속 함께다.
우리의 모험은 이어진다.
그것은 울프람 폰 로엔그린 혼자만의 망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대답 나올 길 없는 생각을 되뇌며, 마차 시트 깊이 몸을 묻었다.
***
그렇게 시엘라 가문을 떠나 황실을 향했다.
정말, 정말 가기 싫다.
그냥 째고 제프린으로 튈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엠펠리움에 가기 싫다.
이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시스나 이오는 없다고 한다. 거기에 레이놀드도 없다.
다만, 후계순위 2위로 점쳐지는 녀석이 현재 황궁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하니, 아마 가서 인사도 해야 할 거다.
이브가 시끄러울 거고, 다른 황손이 나를 견제하겠지.
거기에 이브 혼자 던져두는것도 미안해서 얼굴도 볼 겸, 숨겨진 요소 몇개도 해결하려고 했는데···. 정말 가기 싫다.
그래서.
“여기서 내려서 혼자 걷도록 하지.”
“허, 허나 황자님!”
나를 엠펠리움까지 모셔야 한다는 임무를 맡은 마부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 그래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다.
여기는 수도 외곽.
로엔그린 제국의 수도는 성벽이 12겹이고, 그 안에 하나하나 거주구가 있는 느낌이다. 원을 12개 겹쳐놨고, 원과 원 사이에 빼곡히 생활의 터전이 들어서 있다 생각하면 쉽다.
당연히 1번성 안쪽은 황궁이고, 2번부터는 최고위 귀족.
그리고 여기는···. 슬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서민들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10번 성벽 내 거주구다.
즉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 곳.
마차를 세우고 내리자 마부도 따라 내려서 넙죽 절을 올렸다.
“황자님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희가 큰일납니다! 부디 재고해주십시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그만 아니겠나?”
“허나···.”
마부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솔직히 여기에 마룡급 몬스터가 급습하지 않는 이상 내가 다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루정도 여유를 주면 막아낼 수 있고, 사흘을 주면 토벌도 할 자신 있다.
허나 그것을 마부에게 말 할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하면 이 ‘저에게는 처자식이 있으니 부디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중년 마부를 설득할 수 있을까.
허나 해답은 다른 곳에서, 깔끔하게 나왔다.
“황자전하의 호위 임무는 지금부터 이쪽으로 전권이 옮겨지니, 안심하고 돌아가서 생업에 종사하도록.”
힘 있고 높은 목소리. 긍지와 기품이 가득 찬 기사의 울림.
이 목소리를 잊을리가 없다. 아니 뭐 얼마나 안 들었다고 잊겠어.
등 뒤를 바라보면, 은빛 포니테일을 질끈 묶은 푸른 눈의 여기사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녀석을 보고 웃었지만, 마부는 당황해 되물었다.
“저, 그, 그쪽은 누구신지···.”
“실피아 에버그린 그로브. 이브 폰 로엔그린 황녀님의 로열가드다.”
“아, 아아···! 그, 그러십니까.”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의 호위는, 이브 폰 로엔그린 황녀전하의 명 아래에 전권 이양되었다. 그럼 돌아가도록.”
“네. 네!”
실피아가 황실의 휘장을 꺼내자 감당할 수 없는 계급의 이야기라 생각했는지 마부는 그대로 쌩하고 시엘라 영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리에 남은 나와 실피아는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웃었다.
가벼운 미소.
허나 이것은···. 절친을 만났을 때만 지을 수 있는 신뢰가 가득 담긴 미소임을 안다.
“오래간만이구나. 실피아.”
“음. 오래간만이다. 울프람. 잘 지냈나?”
“물론. 못 지낼 것 없지. 그래서···. 이브가 나를 끌고 오라고 했다 들었다만. 진짜인가?”
“그럴리가. 황녀님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실리가 없지 않나. 시엘라가문의 마차가 들어오는걸 봤고 그걸 뒤따라가다보니 네가 내렸다. 그래서 끼어들었다. 가 맞겠군.”
그렇게 말하고 실피아는 웃었다.
“그거, 주군 사칭 아닌가?”
“자유재량권으로 사칭해도 된다고 하셨다.”
이브 녀석.
이녀석에게 대체 얼마만큼의 재량권을 허락한 거지.
“그래서 울프람. 왜 내린 거지? 황성이 아니라···. 이 수도 자체에 목적이 있나?”
“아니. 그냥 걷고 싶어서 내린 것이다. 바로 황성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한창때의 정서가 불안정한 학생같은 말을 하는구나.”
“······.”
그렇게 말하니 또 그렇네.
“뭐. 그런 날도 있는 법이라 생각한다. 그럼 가지.”
“어딜 말이지?”
“시간대를 보면 식사는 아직이지? 이 근처에 좋은 밥이 나오는 곳이 있다. 식사나 들면서 이야기는 어떻지?”
“괜찮군.”
그리 말하며, 서민가라고 할 수 있는 10번 거주구를 느긋하게 걷는 친구의 등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것 참.
학생티를 벗어 직장인이 된 내 친우는, 조금 뻔뻔해 진 것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