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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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시작과 끝
꽤 많은 고행을 거치고 제프린에 돌아온 날이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필티아를 위해 쓰기로 했다.
아직 그 정도의 체력은 있다.
“동생. 괜찮니? 힘들다면 누나랑은 다음번에 놀아도···.”
“아니. 괜찮다. 정말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도록.”
“으, 으응.”
“그것보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지금 바로 이야기해줬으면 하는군. 필티아 누나는 어디에 가고 싶지?”
“그, 그게···. 사실 누나도 잘 모르는 곳이란다.”
“그 말은 이상하군.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잘 모르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누나가 가고 싶은 곳을 동생은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동생은 이 제프린의 지형에 해박하지 않니?”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가고 싶은 곳을 말하도록. 어디든지 좋다.”
“누나는.”
필티아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붉어진 얼굴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굉장히 강한 몬스터들이 나오는 곳에 가고 싶어.”
“으음. 강한 몬스터라.”
뭐 이해할 수는 있다.
드래곤이니까 사냥본능이 깨어났을수도 있고,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일수도 있고.
하지만
“필티아 누나가 강한 적이라고 말 할 정도라. 이건 생각이 좀 필요하겠군.”
잠시 생각에 잠기자 필티아는 손을 내젓고 어색하게 웃었다.
“동생이 부담된다면 가지 않아도 된단다? 위험할 수도 있고, 장소만 알려주면 누나 혼자도 다녀올 수 있고, 그도 아니면 아예 다른 곳도···.”
“아니, 내가 부담된다는 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으, 응?”
“상대는 강한 단독개체가 좋은가. 집단전이 좋은가. 그걸 물어보고 있는 거다.”
뭐.
드래곤도 혼쭐 날 정도로 어려운 던전이라면 몇 개 있긴 하지.
그나저나 필티아가 이런 걸 물을 줄은 몰랐네.
어디보자.
빡센 곳 중 괜찮은 게 어디가 있을까?
***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곳은 ‘흑연의 회랑’이라는 지하 던전이었다.
“그런 곳은 들어 본 적 없는데?”
“누나도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물어본 것 아니었나? 믿고 따라오면 된다.”
“으, 응.”
필티아는 내 말에 석연찮아 하면서도 쫄래쫄래 내 뒤를 따라왔다.
물론 내 말이라면 철썩같이 믿어주던 필티아가 이렇게 고개를 갸웃하고 조금이나마 의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흑연의 회랑이 위치한 자리가 정말 기묘하기 때문이다.
마법학부와 기사학부 부지를 지나 더욱 안쪽으로 중앙을 지나 동부 끝으로 간다.
이곳은 정말 응애들이 뛰노는 마을.
우리가 도착하자 집에 돌아갈 돈이 없는, 이 학교에서도 서민이며 더더욱 가난한 학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명은 드래곤이며 교수. 다른 한명은 황자니 당연하다.
이 방학에 기숙사 사감 대리를 잠시 맡은 학생은 두려움에 떨어 우리에게 말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동생 여기는···.”
“그래. 신입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제5기숙사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일단 다른 학생들을 물리도록 하지. 누나. 부탁해도 되겠나.”
“아. 음. 응. 알겠어.”
필티아는 내 말에 으흠.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이 기숙사에서 잠시 점검할 것이 있으니 다들 조금만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니?”
“아, 네 네에···.”
“미안. 머무를 곳이 부족하다면···.”
필티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학생들을 어디에 머물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새.
이럴 때는 쉽고 간단하고 화끈한 해결법이 있어요.
나는 근처에 누가 뭐라해도 저는 평범한 일반시민이에요. 라고 말하는 특색 없는 여학생에게 물었다.
아. 얘가 기숙사 사감 대리다.
그럭저럭 초기에는 잘 써먹었다. 버프계열 마법사기도 하고, 7티어정도에 위치하지만 초반 성장세가 좋아서 뉴비에게 추천하는 파티에 가끔 껴있기도 했지.
다만 후반갈수록 성장세가 더뎌지는 바람에 극초반에 포텐 높은 캐릭터를 구해서 컨빨로 극복하는 게 정석 공략법이 되어갈수록 버려지는 비운의 캐릭터.
아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참.
“뭐 하나 묻지.”
“네, 네! 말씀하세요!”
“이 기숙사에 지금 총원 몇 명이 남아있지?”
“정확히 35인입니다.”
“전원 기숙사에 있는 것 같지는 않군.”
“네. 다들 훈련이나, 외출을 나간 경우도 있습니다···.”
녀석은 나를 보면서 파들파들 떨었다.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알겠다. 우리는 오늘 하루정도 이 기숙사를 빌려야 할 듯 하다.”
“아···.”
그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도 그렇겠지. 여름이라 노숙도 해볼만하다곤 하지만, 아무리 낡아도 바람을 막아주고 침대도 있는 기숙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아니지 넉넉잡아 내일까지 이 근처에서 가장 비싼 외부 손님용 여관비를 내주마.”
“네···?”
손가락을 튕기자 손 위에 턱하니 2,000만 린의 지폐가 올라왔다.
하루에 20만 린으로 35인이면 조금 거스름이 많이 남기는 하지만 말이야.
“네가 가서 전원분 이틀치를 예약하고, 모두의 이름을 적고 오도록. 오늘 석식부터 모레 조식까지 전부 세트로 결제하면 얼추 맞아 떨어지겠군. 바로 부탁할 수 있겠나?”
“네, 네!”
그리 말하고 학생은 내 돈을 받아들고 그대로 휭. 하고 달려나갔다.
“와···. 와아아!”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 만세!”
다른 학생들은 갑자기 돌아가는 이야기의 전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내 이름을 환호했다.
무뚝뚝하게 서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고 좌중을 바라봤다.
이 자식들이, 내가 환호성 받으려고 이러고 있는 줄 아나.
“너희들. 지금 당장 나가 노는 녀석들을 붙잡아서 공지해라. 오늘은 기숙사에 오지 말고 외곽의 호텔로 가라고 말이다. 알겠나. 그리고 그대로 모레까지 돌아오지 마라.”
“네! 황자전하!”
그리 말하고 녀석들은 잽싸게 빠져나갔고, 텅 빈 기숙사 로비에는 나와 필티아만이 남았다
“동생. 괜찮아?”
“뭐가 말이지?”
“저 아이가 정말 예약을 잘 할지···. 그리고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거 아니니?”
필티아의 말에 나는 웃어버렸다.
“괜찮다. 저 녀석은 믿을 수 있다. 그리고 돈은 많아.”
“아는 사이···?”
“아니. 그냥···. 그렇군.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치지.”
거기까지 말하고 어깨를 으쓱하자 필티아는 더더욱 당황했다.
물론. 사감 대리 녀석이 내 돈을 떼먹는 일 따윈 없었다.
여기가 섬이니까. 도망치지 못하니까. 내 일을 제대로 완수하면 황실과 연을 쌓을 수 있으니까. 뭐. 그런 이유가 아니라.
여기는. 주인공 켈터스가 처음으로 시작하는 기숙사.
즉. 나에게 있어서도 추억의 공간이다.
허접한 기숙사. 티어가 높지 않은 녀석들 고향에 돌아갈수도 없어서 방학에도 얼굴을 비추던 놈들.
처음에는 파티에 넣었지만, 점차 가용률이 줄어들고, 기숙사마다 히든 버프가 있어서 고급 기숙사가 좋다는 게 판명되고 나서는 제일 먼저 이 기숙사에서 벗어나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내 D/Z SAGA의 추억이 시작된 곳임에는 틀림없다.
나도 여름방학때 게임 내에서 린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일정이 꼬였으며 에밀런을 해야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 추억이 깃든, 뉴비 시절의 고향이라고 해야할까.
조금 감정적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싸구려 지원으로 포털비가 없어서 고향에 못가는 녀석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추억이 되겠지.
“화, 황자님. 돌아왔습니다! 35인 전원분 이틀치 식사와 호텔 예약 끝났습니다. 황자님 명의로 했으며 저, 그러니까···. 여기 영수증과 잔액입니다!”
“음. 수고했다.”
사감 대리는 양 손으로 내게 영수증과···. 그리고 지폐다발을 내밀었다.
“약 100만 린 정도 남는가.”
“네, 네!”
“수고했다. 이건 수고비로 쓰도록.”
“아···. 과분합니다. 황자님!”
“정말 많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네 수고에는 적당한 비용이지. 안 그런가?”
“아으···.”
내가 건넨 지폐는 10만 린 한 장이었다.
녀석은 안절부절 하다가 이내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음.”
그렇게 기숙사가 정말로, 완전히 텅 빈 이후에 나와 필티아는 천천히 기숙사의 지하실을 향했다.
“예상 외네 동생. 돈은 많다고 해서 누나는 다 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럴 수 있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고작해야 100 만린.”
“응.”
“하지만, 저 녀석들이 여름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일하는데,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8만린이다.”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고작 저런 일에 100만 린을 줘버리면, 저 녀석의 노동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진다.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잘못하면 스스로 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겠지. 누구는 심부름 한 번에 100만 린을 주는데, 누구는 하루 열 시간 일해야 8만 린을 버니까 말이다. 오히려 과한 성과금이 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녀석들의 향상심을 자비라는 폭력으로 부수고 싶지 않다.”
“아···.”
내 속내를 설명하자, 필티아는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뭐. 녀석이 들으면 헛소리 말고 100만린을 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군.”
“후후. 아니. 동생의 마음이 옳다고 생각해. 동생은···. 참 저 아이들을 아끼는구나.”
“아낀다라.”
처음부터 만날 수 있지만, 결국 이제와서야 만난 녀석들이다.
정말 아꼈다면 조금 일찍 만났겠지.
“그래서. 여기에 정말 강력한 몬스터가 있니?”
“그럼. 있고말고.”
건물의 지하를 한참 걸으면, 창고가 나온다.
창고의 문을 열면, 사람의 몸의 1/3정도 크기의 생쥐들이 몇마리 보인다.
“어머나. 생쥐네. 그것도 조금 화가 많이 났는 걸?”
“그렇지.”
“이 아이들이 나보다 강하다는 건···. 아니지?”
“설마. 우선 저 쥐들을 싹 다 정리하도록 하지.”
이게 이 게임의 최초의 의뢰형 퀘스트. ‘창고에서 들리는 소리의 정체!’다.
필티아의 손짓 한번에 생쥐가 생쥐였던 것으로 변하고, 그 생쥐였던 것도 증기가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한참을 더 걸어 창고의 벽을 보면.
누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색이 조금 다른 수상한 벽이 있다.
“이 벽 안에···. 뭐가 있는 거니?”
“누나가 그렇게나 바라던 던전이다.”
“···으, 응?”
검은 단검을 들어 정확하게 결을 맞춰 그어내면.
구구구구궁 소리를 내며 벽이 열리고, 그 안에 새로운 길이 보인다.
【히든 던전 흑연의 회랑에 진입합니다.】
【흑연의 회랑은 지하 12층으로 이루어진 비밀 던전입니다.】
【한 층을 공략할 때 마다 다음 층이 열립니다.】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던전이니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다만 이 흑연의 회랑을 공략한 상태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혹시 히든 패스를 알고 계신가요? 제한시간내에 입력해주세요!】
그러니까.
분명 마지막 히든 패스가···.
‘천년의 어둠을 머금은 동굴도 순간의 빛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였던가.
【히든 패스를 입력했습니다.】
【17회차 이후의 패스워드를 입력하셨습니다.】
【흑연의 회랑의 이름이 심연의 회랑으로 바뀝니다.】
【지하 100층으로 늘어납니다!】
【환영합니다!】
【거주지에서 언제든 심연의 회랑을 향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층을 자유롭게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몇 층을 향하시겠습니까?】
원래라면 별로 열 생각은 없었는데, 필티아가 그렇게나 던전을 가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이건 온라인 게임에 흔히 있는 탑 컨텐츠다.
이 또한 D/Z SAGA가 모바일 게임뿐만이 아니라 PC 온라인게임으로도 런칭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더미 데이터.
1회차에는 고작 12층에서 시작하지만 18회차까지 클리어하면 100층 풀 오픈에 전 층 자유입장권. 거점에서 이동포탈 생성등의 편의성이 생긴다.
다만 내가 여기를 열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 100층을 도는 건 2년내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보상이 전혀 없다.】
그냥 순수하게 컨트롤 실험이나 파티 전략 실험을 하는 용도인데, 심지어 여기서 죽으면 진짜 죽기 때문에 실험도 못 한다.
개발 의도가 완전히 불명이다. 대체 왜 만든 걸까.
그나마 추측하기론 할 거 없는 고인물을 괴롭히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론.
정말.
여기도 엄청나게 돌았지 진짜.
그립네. 여기도 나의 추억의 장소다.
100층까지 노 물약으로 돌파하기 같은 거 타임어택 하고 그랬는데. 그립네.
그런 나의 추억을 필티아가 공유하고 싶다고 하니, 나도 도와줄 수밖에 없잖아?
“그럼 갈까.”
“그, 그래···. 그런데 정말 놀랍네. 신입생 기숙사 지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누나는 상상도 못했어.”
“그런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그러니?”
당연하지.
최초의 퀘스트에서 엔딩을 보고나면 연계해서 최종난이도 던전이 열리는 건 국룰 아니겠어?
“총 100층이니 우선은 33층···. 아니지. 31층부터 시작하지.”
“으, 음···. 생각보다 낮네?”
“그런가?”
“그럼. 잘은 모르겠지만 한 80층부터 시작할 줄 알았단다.”
“자신이 있나보군?”
“그야 누나는 드래곤이니까.”
나는 필티아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가는 게 좋다.”
“응. 동생의 말을 따를게.”
갈 수는 있는데.
80층이라.
필티아가 두드려 맞고 나가떨어지는데 2초쯤 걸리려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