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00)
599. Beside You
공룡은 멋지다.
강철은 단단하다.
그렇기에 강철 공룡은 멋지고 단단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의 어린시절 낭만을 모두 그곳에 모아놓은 듯한 디자인.
초합금으로 만든 뼈대 위에 날카로운 기계의 살을 덧댄 괴수.
베이스는 T-REX지만 등 뒤에는 삐죽삐죽한 가시가 잔뜩 솟아있다.
“위대하신 선조님께서 명하신 고대 전쟁기계 괴수 골렘의 마지막 남은 한 개체다.”
“그렇군요.”
“이 제프린에 남아있는 골렘답게, 근처에 다가가지 않으면 깨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이 곳은 안전하다···. 아일라 듣고 있나?”
“그럼 다가가면 깨어난다는 건가요?”
“그렇지.”
“저 거체가? 일어나서 포효하는 건가요?”
“그렇게 된다.”
“그건···.”
“그건?”
“정말 보고 싶어요! 울프람! 잠깐 다가갔다 와도 되나요?”
“멈춰라.”
그 마음은 무척이나 공감하고 나도 하고 싶지만, 이 놈도 어엿한 ‘보스’다.
천혜의 고도가 난이도가 높은 맵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이 해안절벽은 그 맵의 히든 지역과 같다.
즉.
이 놈은 단독개체로 마계의 문 보스와 준할 정도로 강하다.
그럴 거면 그냥 이 놈을 양산해서 마계의 문에 때려 박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하르크 이 멍청한 놈아. 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언제나 게임 내의 밸런스와 현실의 밸런스는 다른 법이다.
이 놈은 ‘설정상’ 그렇게 강해서는 안 되지만 ‘인게임 배치상 최강급에 준한다’라는 기묘한 포지션을 자랑한다.
다른 거보다, 기믹이 조금 짜증난다고 해야 할까. 해결법이 한정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아일라가 가장 최적의 조합일지도 모르겠네.
“일단 아일라. 저 놈과 싸운다는 것은 마계의 문의 수문장과 싸운다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다.”
“그만큼 강하다면···. 울프람은 어떻게 하고 싶나요?”
“나는.”
아일라는 이쪽을 빤히 바라봤다.
여기서 물러나자고 하면, 물러나주겠지.
위험하다. 아일라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파티원 전원이 오는 게 안전하다.
수십 가지의 이유가 떠오르고, 그 중 하나를···. 아일라가 무어라 반박할 수 없는 논리적인 이유를 입에 담으려는 순간.
“울프람. 저는 오늘 지금 이 순간,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고 싶어요.”
“······.”
다 함께 모여서 싸우는 게 나을수 도 있다. 마법사 조를 밖에 배치하고 근접전을 특기로 하는 파티원들만 모아서 싸우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워보고 싶구나. 저 거체. 저 괴물과 만난 기쁨을 담아 내 능력을 부딪쳐 그 끝을 보고 싶다. 아일라.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너와 단 둘이서 저 녀석을 쓰러트리고 싶다.”
“좋아요. 그럼 하죠.”
위험할 수도 있다.
내 어리광에 아일라를 말려들게 하는 걸 수도 있다.
허나, 녀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하자고 대답했다.
“그럼 지금부터 녀석이 어떤 식으로 활약했는지, 대전쟁에 적혀있던 이야기를 해주마.”
“네!”
아무리 그래도 하르크의 안배라고 사기 치긴 좀 그래서 역사서인척 해야 하지만 말이야.
***
흑수정 발판을 걸어 놈이 누워있는 지상에 내려섰다.
마치 동굴 안에 또 하나 섬이 있는 모양새. 그리고 저 거체는 그 섬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등 뒤에는 나갈 수 있는 길 하나. 그리고 천장에는 촘촘히 박혀있는 금속파편들.
저거 하나하나가 최고급 금속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상은 식량. 지하는 재료가 되는 셈인가. 정말 하늘이 내린 은혜. 천혜의 고도라 이름붙을만 하다.
퇴로는 우리 뒤에 있는 동굴 출구 하나 뿐. 말 그대로 이 뒤를 빼면 나갈 길은 없다.
분명 무섭고 두려워야 하지만, 그럴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저 가슴이 뛰는 것을 즐기며, 심박수를 머릿속으로 셀 정도로 흥분된다.
세상에, 최상급 금속으로 만든 거대 공룡과 싸우다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고, 이내 녀석의 인식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휙. 하고 녀석의 눈이 떠진 후. 불빛이 들어온다.
쿠구구구구구궁.
귀를 의심했다. 그 정도로 거대한 굉음이 동굴 전체에 울렸다.
그 다음은 눈을 의심했다.
이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젠장. 내가 가진 단어의 숫자는 이리도 부족했나.
허나 감히 저것을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표현하자면 그래.
웃기지만.
누워있는 빌딩이 일어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빌딩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체가. 놈이 우리를 내려본다.
명확하게 적이라 인지하고 움직인다.
“아일라.”
“네. 울프람!”
퀵 크리에이트로 그 자리에서 인벤토리에 있는 최상급 금속을 정련해 건틀릿을 만들었고, 그 위에 태초의 루비를 장착해 건넸다. 허공에 뜬 건틀릿을 받아든 아일라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착용한 후. 내 앞을 달려 나갔다.
【태초의 루비가 격에 맞지 않는 장비에 장착되었습니다.】
【장비에 불꽃의 마력을 깃들게 합니다.】
【태초의 루비에 강제적인 재사용 대기시간이 추가됩니다.】
태초의 루비를 건틀릿에 장착시켜 불꽃의 기운을 스며들게 하는 대신 본연의 회복 능력은 전부 사라진다. 아일라의 양 주먹에 불꽃이 깃드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내 제조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태초의 루비는 급이 다르다, 속전속결로 처리하지 않으면 건틀릿이 견디지 못하고 증발해버린다.
나는 단검을 들었고, 아일라는 건틀릿을 든다.
우리 둘의 공격력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훌륭한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방어는 완전히 도외시했다. 입고있는 교복에 아무리 마법을 걸어도, 마법이 걸린 중갑옷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재주가 높은 근접 전사들은 원래 천하고 가죽밖에 못 입는다.
판금은 탱커들이나 입는 것.
공룡 골렘이 몸을 낮추고 자세를 잡는다.
놈이 죽을 때까지 춤 출 준비는 끝났다.
***
눈앞에 있는 거대한 건물만한 괴수는 강적이다.
발톱은 날카롭고 두 다리는 민첩하며, 몸체에 쓸리는 것만으로, 아니 몸체가 불러일으키는 충격파만으로도 몸이 흔들린다.
그렇기에 두근거렸다.
【아일라. 잘 들어라.】
【놈의 공격방법은 총 세 개. 그중 하나만 조심하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허나 문제는 녀석이 어째서 신화시절에 전투골렘으로서 마족을 학살하고 다닐 수 있었는가. 라는 점이다.】
【녀석은 대기 중의 마력과 저주 축복을 뒤흔들어서 섞어버린다.】
【즉 마법도 축복도 저주도 제대로 발동하지 않으며, 백드래프트 현상으로 사용자가 크게 다칠수도 있다.】
【너의 흑수정도, 이브의 빛도, 레지나의 늪도 저 녀석 주위에서는 함부로 발동할 수 없다. 억압이 아니라 융합. 말 그대로 모든 걸 비틀어버린다.】
【방법은 육체 강화나 혹은 스스로 작동하는 마도구를 이용하는 것.】
그래서 태초의 루비가 달린 이 건틀릿을 받았다.
울프람이 말하길, 보물중의 보물.
그것을 자신에게 건넸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아일라 트라이스타를 인정해주겠다는 말일까.
전자도 좋지만, 후자가 더 좋다.
지켜지는 것 보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서로 함께하며 함께 웃고 우는 관계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으야아아앗!”
놈의 공격패턴은 셋.
하나는 깨물기. 다른 하나는 꼬리치기.
이 두개만으로는 그저 짐승과 별 다를바가 없다.
가장 끔찍한 것은 등 뒤의 가시에서 사출되는 금속의 폭탄.
“아일라. 조심해라.”
“네!”
날아오는 수 백발의 탄환을 모두 눈으로 파악하고 움직인다.
허나 그 움직임은 트라이스타 유술이 아니었다.
항상 등을 바라봤던 남자의 움직임이다.
“아일라?”
“이제 더 이상. 뒤에서만 지켜보진 않을 거라구요?”
아일라는 웃었다.
마계의 문에서는 무능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뒤가 아니라 곁을 걷는다.
부축을 받게 아니라 함께 걷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
솔직히.
아니 조금 많이 놀랐다.
아일라의 움직임은 트라이스타 체술도 아니고, 한창 대련했을 때 조금이나마 익혔을 터인 핫산류 보법도 아니다.
허나 그 정체를 내가 모를 수 없다.
저것은 내 움직임이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움직임.
아니 이영진의 움직임.
그 위에 ‘트라이스타 체술’을 섞어 자신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저 따라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확신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읏! 하아!”
“음···.”
누가 낭만의 집합체 아니랄까봐 등 뒤에 수 백 발의 미사일을 장전해서 일제히 발사하는 필살기를 가지고 계신 공룡 골렘.
놈의 미사일을 나이프로 살짝 긁어 궤도를 바꾼 후, 전력을 다해 달려 나간다.
그리고 내 뒤를 쫓아 아일라가 달려든다.
내가 피하면, 아일라도 궤적을 읽고 따라온다.
내가 공격하면, 어째서 그런 공격이 행해졌는지 이해하고 같이 합을 맞춘다.
완전히 나와 같진 않다. 기술의 레벨에서 차이가 난다. 쓸모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다.
하지만, 어디 나와 같을 수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아일라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
전투 그 자체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드디어 입구에 달했나.”
“울프람?”
“아니. 아니다. 조금 감격에 겨워서 말이다. 이렇게 빠르게, 내가 있는 곳에 올라오려고 하다니 말이다.”
“어머나. 울프람. 저는 보호받기만 하는것도, 등을 바라보기만 하는것도 싫어한답니다?”
“그래. 그랬지. 너는 반역. 반역의 아일라 트라이스타.”
“네. 그리고 제 최고의 반역은···. 울프람. 당신의 등이 아니라 당신의 곁을 걷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을 입에 담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죠.”
수 백발의 미사일을 피하며.
가끔 날아오는 깨물기나 꼬리치기를 흘려내며.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아일라에게 건네준 건틀릿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아일라와 대화를 나누며, 이 전장을 헤쳐 나가는 이 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랐다.
허나 모든 시작에는 끝이 존재하고, 그것은 저 거대한 공룡이라 한들 예외는 아니다.
그으으어어어···.
괴로워하는 놈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울린다.
언제나 그러했듯 또 앞으로도 그러하듯. 놈들의 죽음 앞에서 나는 아무런 상처 없이 서있을 것이다.
허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검을 손에 쥐고 흔해빠진 승리를 자축하는 게 아니다.
“아일라.”
“네! 울프람!”
내가 지켜야하는 동료가 아니라, 내 움직임을 따라오는 녀석이 옆에 있다.
지금까지의 싸움도, 함께 승리를 이룩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건 조금 느낌이 다르다.
놈의 시체를 앞에 두고, 팔을 들어올렸다.
“울프람···?”
“아. 음···.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모르게 말을 절었고, 아일라는 방긋 웃고는 내리려는 내 손을 잡아들었다.
그리고.
짝! 소리가 나게 손바닥과 손바닥을 부딪쳤다.
조금 얼얼한 손바닥. 그 너머로 확실히 전해진 아일라의 온기가 느껴졌다.
“이걸 하고 싶었던 건가요?”
“하···.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울프람에 대한건 대부분 알고 있답니다.”
아무튼 승리는 승리다.
“빨리 돌아가도록 할까. 태초의 루비도 한동안 재충전을 해야 하고, 여기서는 마력도 쓸 수 없다. 다른 것보다 파티 메세지도 보낼 수 없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구나.”
“네. 울프람.”
이론상 이 골렘의 융합은 세상 모든 에너지를 강제로 섞어서 곤죽을 내놓는 거라 파티 메세지도 못 보내고, 위치전환도 못한다. 죄다 꼬이고 무너진다. 공간이동하다가 파티원을 절벽에 처박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 태초의 루비도 충전이 필요하다.
골렘의 시체를 수습해서 초고급 광물들만 인벤토리에 집어넣고서 등을 돌렸다.
이제 우리가 돌아온 길로 나가면 그만이다.
그리 생각하고 출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전의 난동으로 천장이 무너져 내린 출구가 보였다.
“앗.”
“······.”
아일라와 나는 그대로 동굴 구석으로 걸어가 흐릿하게 열을 내는 태초의 루비를 대충 땅에 박고, 벽에 기대앉았다.
“울프람···. 어떡하죠?”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해서든 출구를 파내겠다.”
“아뇨. 그게 아니라요···.”
“그럼 뭐지.”
“저, 슬슬 졸려요···.”
······.
돌겠네 진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