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18)
617. 죽음보다 더한 녀석들
그 뒤, 다행히 붉은 크리스탈 하나를 찾아냈다.
이번에는 방금 전 같은 사소한 실수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다지기로 했다.
우선 크리스탈에서 약 십 미터 떨어진 곳에 다른 파티원 애들을 전부 앉혀놓고 공략법을 적은 종이를 전원에게 한 장씩 뿌린다.
그 다음 내가 크리스탈을 해방하면, 자이언트 오크가 뚝하고 떨어진다.
눈 돌아간 칼에 맞지 않게 이브와 네프티 밀푀유는 대기 상태.
방금 전 같은 사냥으로 끝나지 않게 급한대로 네프티의 검을 빌렸다.
핏빛처럼 붉은 크리스탈을 해방하러 가기 전, 이브가 불러세웠다.
“뭐지.”
“잠깐 이야기좀 하죠.”
“지금은 시범을 보여야 할 시간인데 말이다.”
“다른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생겼는데, 이건 당신이 아니면 대답해 줄 수 없어서 그래요.”
“좋다. 물어보도록.”
“어째서, 사전에 이런 이상현상이 생겨난다고 설명해주지 않았죠? 위대하신 선조님의 안배를 다 알고 있다면서요? 아니면, 이건 몰랐나요? 몰랐다면···. 앞으로도 모르는 일이 생긴다는 것 아닌가요?”
그리 말하는 이브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 없었다.
음.
지금까진 다 아는척했는데, 갑자기 모르는 안배도 있어요. 라고 하면 이브가 얼마나 당황하고 불안에 떨겠는가.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님을 안다.
“알고 있었다.”
“그럼 어째서, 말하지 않았죠?”
“······.”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이벤트. 필드에 보스가 돌아다니는게 뭐 어쨌다고. 저런게 돌아다닌다고 게임이 어려워지나? 삼단 콤보.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말했다간 내 몸도 결대로 잘게 썰리겠지.
음.
뭐라고 설명하지 이걸.
잠깐.
잘 생각하면 내가 왜 이브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변명해야하지?
“언제까지 기댈 거지.”
“뭐라고요?”
“내가 얼마나 설명하고, 얼마나 이끌어줘야 하냐는 거다. 이제 스스로 자립해야하지 않겠나.”
“······.”
“애당초 나에게 기대는 인간이 아니었잖나. 이브 폰 로엔그린.”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런 위험한 일이 생기면···.”
“모두를 위해 내가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이 필티아와 접해, 너에게 비밀로 하고 마계의 문을 열었다면? 그 결과 광폭화 몬스터들이 나왔다면 너는 그저 허둥대고 있을 뿐인가? 나의 예언이 있었기에 지금은 안도할 수 있고, 내가 설명하지 않으면 두려움에 떨 것인가?”
내 말에 이브는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신의 말을···. 지금 당장 수 십 가지라도 반박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게 의지했다는 단 하나의 현실은 반박할 수 없겠지.”
내 말에 이브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좋아요. 당신이 무슨 의도로 숨겼든! 신경 안쓰도록 하죠. 멋대로 해보세요!”
“하. 그래. 그래야지.”
“무슨 말이에요?”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기에, 이브 폰 로엔그린은 빛난다고 했다.”
“네? 지,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음.
아니.
이건 울프람이 아니라 이영진의 의견이다.
“아니 됐다. 못 들은걸로 해라.”
“다 들었거든요?! 뭐라고 했어요?”
“다 들었다면서 뭘 묻고 그러지.”
“어서요!”
나는 끝까지 이브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누가 해줄까보냐.
***
그렇게 다시 한 번 자이언트 오크 공략에 대해 설명했다.
눈 앞에는 4M가 훌쩍 넘는 거구.
방금전과 같은개체가 아닌지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강하다.
【다시 한 번 설명하마 결국 거검이란 ‘휘두를 공간’이 필요하니 우선 놈이 휘두를 수 없는 아슬아슬한 공간으로 유도하는 것이 첫번 째고···.】
응애들에게 친절하게 어떻게 하면 자이언트 오크를 쉽고 편하게 상대할 수 있는지 설명했다.
절대 힘겨루기로 들어갈 생각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며, 위험하다면 최대한 뒤로 빠져서 응전한다.
그렇게 세 마리째 자이언트 오크 사냥을 끝냈고, 다음 크리스탈 앞.
“자. 이번에는 실전으로 가보도록 하지. 도전할 녀석들 있나.”
내 물음에 서로 눈치를 보다 손을 든 것은 한 파티의 리더였다.
“유즈나엘. 바닐라. 요거트.”
“네! 저도, 아니 저희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한다고 하면 또 못할것은 없다.
얘네들의 당장 스펙은 켈터스 파티를 넘어선다.
“다른 두 명은 동의했나.”
“목표를 위해서라면 지금이 최적이라고 하니까 설득당했습니다!”
내 말에 바닐라와 요거트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곧 제프린을 떠나고, 돈이 필요하다고 했지.
“알겠다. 너희들끼리 공략을 성공하면 나오는 물건들은 전부 너희 소유다.”
“착한 울프람! 고맙습니다!”
유즈나엘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
그렇게 약 두 시간 후.
유즈나엘과 바닐라, 요거트 파티는 자이언트 오크 공략을 성공해냈다.
사실 정공법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이. 유즈나엘이 맞고 날아다니면 그 사이에 바닐라와 요거트가 딜을 하는 방식이었다.
뭐, 자이언트 오크에게 어떻게 될 캐릭터였다면 1티어라는 이름이 아깝다.
결과적으로 유즈나엘은 옷에 먼지만 좀 묻었을 뿐 오뚜기처럼 계속해서 일어섰고, 다른 파티들은 경악하는 시선으로 유즈나엘을 바라봤다.
나온 마동석과 푸줏칼은 이쪽에서 매입하기로 했고, 적정가로 세 명에게 나눠줬다.
“이거면 한동안 따듯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음. 거기에 이제 일자리에 고민할 이유도 없겠구나.”
나는 주변 녀석들을 슬쩍 바라봤다.
맞고 날아다니는 유즈나엘의 탱킹력이 증명되었기에, 저 어린아이가 맞고 날아다니는 걸 마음아파하기보단, 저런 탱커를 파티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같은 욕심 그득한 시선으로 변했다.
“바닐라, 요거트. 아직 목표에는 한참 부족할테니 한동안 유즈나엘과 같이 사냥을 나서도록.”
“네! 알겠습니다!”
“해충 퇴치군요. 임무 맡겠습니다.”
바닐라는 순수하게 대답하고, 요거트는 내 진의를 읽었다.
그렇게 자이언트 오크 섬멸전 튜토리얼 강습은 끝났다.
동부 숲은 이제 원정대 놈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하셔야지. 이쯤 해줬으면 나도 해줄만큼 해줬다.
그래.
뉴비 필드 강습은 끝났다.
이제는 ‘내 필드’에 출격할 시간이다.
***
편의점에 돌아와 신화 포식자를 손에 쥐었다.
극독보주를 흡수해 은은하게 보라색으로 빛나는 검신.
평소에는 순백색의 검이었다가 내가 의지를 불어넣으면 보라색으로 변한다.
“어린 시절에 이런 장난감이 있었지.”
장난감 플라스틱 칼. 무적 슈퍼 레인저 레드 칼이라는 이름이었던가.
햇빛에 비추면 보라색으로 빛나는게 꽤 멋있었는데 말이야.
검을 수납하고 편의점을 나서 제프린 지정 금역을 단순에 뛰어넘었다.
붉은 크리스탈은 ‘지역 한계 레벨’이라는게 존재해서 동부 숲 기준으로는 자이언트 오크가 끝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은 어떨까.
화산지대는? 포영의 설원은? 망자의 고원은?
거기에서 나오는 광폭화된 몬스터는, 얼마나 강할까.
물론 붉은 크리스탈을 건드리지 않으면 광폭화 하지 않지만.
필드에는 ‘기간트 몬스터’라는 이름의 보스 몬스터들이 산재한다.
“실수로 나갔다가 다른 녀석들이 위험해지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서 정리해야겠군.”
오늘 내로 처리하고 싶은 네임드 몬스터가 약 세마리.
다른 파티원들도 위험해 질 수 있기에, 이 건 만큼은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검을 쥐고 전장으로.
아니. 내가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어머. 울프라아아암. 어디 가는거죠오오오.”
“엘피라네.”
“그렇게 무서운 검까지 쥐고오? 무서운 표정도 짓고오.”
드디어 식도로 알콜을 워프시킬 수 있는 기능을 만들었는지, 내 몸 반만한 요정여왕은 잔뜩 취해서 허공을 둥실둥실 날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사냥에 나선다.”
“사냥! 어머나! 이렇게나 가슴 뛰는 말! 두근두근! 제 가슴이 터질 거 같은거 아시나요?”
심각하게 취해선 입에서 술냄새를 풍기며 내 가슴께에 얼굴을 툭 부딪친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아마 부정맥일거다.
“제프린 근처에 꽤 귀찮은 괴물들이 나타났다. 아무튼 나는 지금 바쁘니···.”
“그러면! 이 엘피라네! 함께 해도 될까요오?”
“함께 한다?”
“예! 이 전설의 요정여왕 엘피라네가 함께라면, 전투중에 도와줄수도 있구 마법도 걸어줄 수 있구 맛있는것도 먹구···.”
“요새 할 일이 없나?”
내 말에 엘피라네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 땡글한 눈망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얘도 반쯤 백수 신세인가보다.
“알겠다. 가도록 하지. 따라와라.”
“네헤!”
그렇게 예상하지 못한 주정뱅이 하나를 파티에 끼워 넣고, 전장을 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티원들이 함께 하는 수준의 든든함이 옆에서 느껴졌다.
“케흐윽.”
“······.”
트름까지 하지만, 아무튼 강하긴 강하니까.
***
북동부 망자의 고원.
이전 네프티와 잡템파밍하러 온 곳이지만, 사실 언데드라는 것들이 늘 그렇듯 하급과 최상급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급 좀비와 마스터 구울이 같을 수 없듯. 스켈레톤과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가 같을 수 없듯.
문제는, 이 녀석들은 중간을 모른다는 거다.
검은 깃발이 준비한 제프린 대공습 사태는 망자의 고원 몬스터들이 넘어온거고, 그 안에는 원래라면 울프람의 시체도 있었다.
뭐, 보통 언데드라면 지금 제프린 전력으로도 어떻게든 꺾을 수 있을 거다.
대공습 플래그는 분쇄됐지만, 결국 필요한 것은 구심점일 뿐이다.
즉.
인간을 끝없이 증오하는 언데드가 태어나는 그 순간 언제든 중앙구 침략이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길가던 데스나이트가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로 진화했고···. 그걸 지금 단기로 멱을 따러 가겠다. 이런건가요오···. 울프람은 대담한 면모가 있네요!”
엘피라네는 내 이야기를 듣고, 병나발을 불면서 히끅거리는 감탄사로 나를 찬양했다.
진짜 확 놓고가고 싶다 진짜.
“그렇다.”
“하지만 그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는···. 솔직히 조금 쎈데 울프람이 할 수 있는 거 맞나요? 물론 그 칼은 엄청나지만···.”
“보면 알겠지.”
망자의 고원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기가 짙어진다.
살아있는 모든것을 증오하는 기운에 피부가 따끔거리고,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가 멀리서 시작해 곁으로 다가와 귓가에 울리고 다시 빠져나간다.
【상태이상 공포를 무효화합니다!】
【상태이상 즉사를 무효화합니다!】
【상태이상 절망을 무효화합니다!】
황실혈통이 괜찮냐며 울부짖지만, 결국 정신계 공격은 내 몸과 마음을 침윤할 수 없다.
좀 더 앞으로 조금 더 앞으로.
콰득. 까드드득. 두두드드득!
수 없이 많은 언데드가 일격에 부러져 흩날린다.
보통 언데드들은 【독 상태 저항】을 들고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나의 보라색맛 장난감칼의 독은 고작 그 정도 저항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 때.
드디어 눈 앞에 놈이 보였다.
2M는 넘어보이는 탄탄한 체구. 한 손에는 장검. 등 뒤에는 랜스.
전신을 감싸는 검은 갑주에서는 죽음이 흘러나오고, 풀 헬름 속 눈빛은 새빨갛게 빛난다.
그림처럼 그린 데스나이트.
고작 2M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다.
덩치는 무시할 수 없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강약이 정해질거면 필티아는 엘피라네를 찢어발겼겠지.
“자. 그럼 시작해볼까.”
“어머나···. 진짜 할 건가요. 울프람? 녀석은 정말 강하답니다? 제가 도와줄까요?”
“엘피라네. 내가 최근 취미 하나가 생겼다.”
“어머나, 어떤 취미죠?”
“강한 몬스터를 직접 찾아가, 하나하나 다 때려 죽이는 취미지.”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엘피라네는 양 손을 볼에 가져다대고 부끄럽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니 내 취미를 방해하지 마라.”
“이번은 방해하지 않을게요. 다음부터는 저도 함께 끼워주지 않을래요? 울프람과 제가 취미까지 같을 줄은 몰랐네요.”
“생각해보마.”
그으으으으으으으
나와 엘피라네의 대화를 그냥 듣고 있기 뭐했는지,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가 이쪽을 향해 짓쳐들었다.
어딜 임마.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나에게 짓쳐드는 놈의 오른팔 관절에 신화 포식자를 박아넣고 비틀었다. 까드득 소리와 함께 덜컹. 하고 놈의 팔이 떨어져 내린다.
뒤로 물러선 놈은 당황한 모양새.
등 뒤의 랜스를 꼬나쥐었지만, 한쪽 팔이 다시 붙지 않음에 당황했나보다.
그으으으으끼이이이이이이!
죽음이 죽음을 일으켜세운다.
그래. 놈이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일으켜 깨우기 때문.
내 바로 옆에도 한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일어났고, 그리고.
까앙!
호쾌한 엘피라네의 와인병 강타로 그대로 가라앉았다.
“어딜! 앗. 울프람 미안해요. 그래도 한 마리 정도는 저 줄 수 있었잖아요. 그렇죠?”
음.
아무래도 진짜 욕구불만인가보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안 된다고 했다가 더 난리칠지도 모른다.
“알겠다. 제일 큰 건 내가 잡을 테니, 남은 데스나이트들은 네가 알아서 하도록.”
“정말인가요? 어머나. 어머나···. 후후. 이 싸움이 끝나면 둘이서 진하게 한잔 하는 건 어떨까요? 제가 살게요!”
엘피라네는 거꾸로 쥔 빈 와인병을 붕붕 흔들며 웃었다.
그렇게, 농밀한 죽음을 상대로, 죽음보다 더한 두 명이 달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