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20)
619. 최후 방어선
학생회장 전용 의자.
최고급 가죽과 엄청나게 비싼 깃털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브에게 있어서는 애증이 담긴 의자다.
이 자리의 무게를 생각하면 어깨가 뻐근해지는 한 편, 반드시 자신이 해야하는 의무감에 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서류를 읽는다.
내부 서류 분류팀을 두어 마감기 일과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을 앞에 오게끔 한 이브는, 첫 서류부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붉은 크리스탈(가칭)으로 인해 출몰하는 광폭화 몬스터가 떨어트리는···.】
“후우.”
이브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말한 【붉은 크리스탈】
그걸 건드리면 나오는 ‘강한 몬스터’ 그리고 그들이 떨어트리는···. 울프람의 표현을 빌리면 드랍하는 물건들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확정적으로 떨어트리는 ‘마동석’ 다른 하나는 일정 확률로 떨어트리는 ‘자이언트 오크의 장비’
우선 마동석.
마정석과는 다르게 내부에 마법을 새길 수 있는 마력이 담긴 돌.
당연하지만 마법 감응력이 높은 금속이 따로 필요 없고, 만들기 간단하다는 점에서 마정석과는 궤가 다른 가격을 자랑한다.
즉 마도구를 만들기에 가장 특화된 물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품질은 좋지 않지만, 도매가로 팔아도 제프린 한 학기 학비는 충분히 될 수준.
보통 4인 1조의 파티라면, 1년에 붉은 크리스탈을 여덟 번 사냥하는 것으로 학비를 충당할 수 있다.
재물이 있는 곳에는 욕망이 있고, 욕망은 언제나 사고를 단짝삼아 함께 다닌다.
이 마동석으로 생길 사고를 생각하며,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의 문제는 자이언트 오크의 장비다.
조사 결과 이 장비들은 하나같이 ‘강화’가 붙어 있었으며, 그 중에서도 품질이 좋은것들은 더욱 좋은 기술이 붙어 있었다.
예를들면 광폭화나 체력상한해제. 하급 버서크 등등.
이것만으로도 재능 있는 학생이 일선의 기사와 합을 겨뤄볼정도의 장비다.
물론 거검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학생은 특히 한정적이지만, 마법이 깃든 무기를 녹이면, 높은 확률로 마법이 깃든 주괴가 나오고, 이를 손에 맞는 무기로 제조해내면 그만이다.
지금 제프린에 저 자이언트 오크를 실력만으로 안정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파티는 단 둘.
하나는 당연하게도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이끄는 파티.
두번째는, 정체불명의 유즈나엘이라는 학생과 2학년 후배 두 명의 파티.
우리 파티야 그렇다 쳐도, 아예 신인들이 그 몬스터를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은 원정조에 큰 파장으로 번질 것이 틀림없다.
거기에 풀린 물건들의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큰 게 풀렸어요.”
이브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우리 파티에서 그 정도 물건을 욕심낼 사람은 없지만, 일반 학생들이 그 정도의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는 남자가 아니다.
“거기에, 언제까지 의존할거냐고 물었죠.”
그에게 의존이라니 한 적도 없고 생각도 해본 적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
이브 폰 로엔그린이 차기 황위 주자가 된 것도, 지금 그 어떤 황손들보다 치고 나갈 수 있던 것도 결국 울프람이 있었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물건을 이렇게 쉽게 풀었지?
대체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지?
“뭘 하고 싶은거에요. 진짜.”
깊게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질문을 입에 담아봐야,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묻고 싶지는 않다.
그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이브 폰 로엔그린.
빛의 황녀라 불리는 그녀 또한 고집과 자존심으로 가득 찬. 같은 나이대의 여자아이였다.
서류를 정리한 이브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안건을 확인했다.
【제프린 가을 대축제 현황 보고서】
“아. 그러고 보니 슬슬 대축제 시즌이군요. 어디보자···.”
몇 장 팔랑팔랑 넘기며 확인하던 이브는 이내 서류를 구겨버렸다.
“울프라아아암···!”
또 너야?!
***
쉬이이이이익.
킬러 스네이크라 불리는, 어디서 어디를 봐도 베놈바이퍼의 하위호환인 뱀의 목을 따고 어깨를 푼다.
【축하합니다. 기간트 몬스터를 세 마리째 잡았습니다.】
【기간트 슬레이어 타이틀이 강화됩니다.】
“이걸로 거대 괴수는 세 체! 훌륭하군요. 울프람.”
“술은 다 깼나?”
“어머나···. 저는 처음부터 취한 적도 없답니다?”
내 ‘사냥’을 그저 뒤에서 싱글거리며 지켜보던 엘피라네의 목소리는 상당히 안정되어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네 술병이 녹아서 흘러내렸으니 말이다. 더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지 않나.”
“칫. 이래서 눈치 좋은 울프람은 싫다니까요.”
“와인병 안에 소환진을 넣어 언제든 술이 찰랑거리게 만들었지만, 물리적, 마법적으로 강화된 와인병은 독에는 견디지 못했다. 라는 것이지. 상태이상도 보완해야겠군.”
“예에. 맞는 말이에요. 좋은 공부가 됐네요. 그래서 사냥은 끝인가요?”
로드 오브 데스나이트. 엘피라네가 처리한 아몬. 그리고 방금 처리한 킬러 스네이크.
필드에 나서면 뉴비들은 응애 소리를 하기도 전에 죽어버릴 진짜 끔찍한 괴물들 중심으로 처리했다.
“그래.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수고하셨습니다. 울프람. 오래간만에 즐거웠답니다.”
오홍홍 하면서 과장되게 웃던 엘피라네는 내 앞을 둥실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아가며, 나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고 물었다.
“울프람. 지금 처리한건 전부, 광역으로 울프람이 말하는 상태이상을 살포하는 녀석들이죠. 거기에 인간을 끝없이 죽이려고 하는 괴물들.”
“그렇다. 각각 죽음. 광기. 극독이었지.”
“마치, 언젠가 울프람의 후배들이 이곳에 올 테니 그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게끔 먼저 처리하는 것 같네요. 혹시 울프람은 그걸 기대하고 있나요?”
“언젠가 오겠지.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 후배들이, 그 후배들의 후배가 이 곳에 오겠지.”
“어머나. 믿음이 확고하군요?”
“그걸 위한 제프린 아닌가. 마계의 문이 정리되면 후배들의 어깨도 한결 가벼워지겠지.”
“······.”
“놀라는 얼굴이군. 내가 이 땅에 숨겨져 있는 비밀조차 모를 거라 생각했나.”
“어머나.”
간단하다.
어째서 전후에 인공섬 제프린을 만드는 것을 제일 우선으로 했는가.
어째서 이 섬에만 포탈이 열려 대륙 모든 물자를 받아낼 수 있는가.
어째서 차원이 다른 커리큘럼을 교육받고, 대륙의 모든 인재를 이곳에 모았는가.
어째서 섬 여기저기에 초월종들이 있는가.
그리고 어째서.
“마계의 문이 제프린에 있는가.”
“······.”
“최전선이자 전초 기지. 교육 기관이자 마지막 희망. 마계의 문이 열려 전면전이 펼쳐졌을 때. 모든 재능 있는 인간과 대륙 전체의 물자가 집중되어야 하는 섬. 인류의 성역 제프린. 수도 엠펠리움 이상으로 중요한 중간계 제 1 거점.”
“정말 다 알고 있군요.”
“그럼. 다 알고 있고 말고.”
“차라리 몰랐다면 편했을 텐데···. 그 무게를 혼자 다 짊어질 생각인가요? 원래라면 인류 전체가, 아니 중간계 전체가 짊어져야 할 무게인데.”
내 말에 엘피라네는 깊은 한숨으로, 동정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 혼자 짊어질 생각은 없다.”
“예?”
“어차피 마지막 문 까지 가면, 이 제프린도 편하게 거주구에서 놀고 있을 수는 없다. 알고 있나. 크리스탈은 붉은색에서 보라색으로 그리고···. 검은색으로.”
“검은색 크리스탈. 설마.”
“그럼 이제 자기 몸 하나 정도는 지켜야 하니 말이다.”
우리가 여덟번 째 문을 향할 때. 거주구도 안전하지 않은 그 순간이 반드시 온다.
제프린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학생들 자신뿐.
“그걸 위해서, 무구를 풀고 마동석을 풀고 있나요?”
“겸사겸사 너희들 같은 초월종도 풀고 있지. 설마 자유를 누리고 돕지 않겠다는 말을 하진 않겠지?”
“그럴리가요. 대신 끝나고 좋은 술을 한 병 부탁해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거래 성립이군.”
마계의 문도 이제 후반부.
싸움의 끝이 차근차근 보이기 시작했다.
***
편의점에 돌아오니 이브가 뚱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정까지 나갔다 와서 이 녀석의 얼굴을 봐야 하는가.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의 죄업이 깊구나.
“뭐지.”
“일단. 이걸 읽으시죠.”
그리 말하며 툭 내던진 것은 몇 장의 서류.
제일 앞에는 대문짝만하게 몇개 글자가 적혀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제프린 가을 대축제.”
“예에. 올해도 슬슬 그럴 때가 왔으니 말이에요.”
“그렇군. 그런데 이게 직접 찾아와서 말해야 할 정도로 중요 안건인가?”
“3페이지. 마지막 줄을 확인하시죠.”
“어디보자. 올해 출점 예정 점포가, 350점포. 뭐지. 전년 대비 감소세가 크군. 제프린 망했나?”
“안 망했어요! 거기에 당신 때문이잖아요!”
“나 때문이라니. 어째서지.”
“출점한 점포는 전부 당신과 연이 닿거나, 당신에게서 재료를 공급 받는 노점뿐이라고요!”
“그렇군. 다른 점포는 전부 경쟁력이 떨어져서 자진 사퇴했는가.”
“대축제는 점포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도 중요하다고요. 올해는 자진 사퇴한 노점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내가 관리하지 않는 다른 점포들의 위생이나 재료 품질을 생각하면, 그런 쓰레기 같은 점포에서 한 끼라도 사 먹은 방문객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힐 텐데. 그 더러운 음식을 내빈에게 먹이고 싶나?”
“윽.”
이브는 그 말에 가슴께를 쥐고는 찔린다는 듯 움찔거렸다.
“너도 억지라고 생각하나?”
“으, 음. 억지···. 아닌데요. 제 말이 옳거든···요?”
“허어. 이브. 이브 폰 로엔그린.”
“뭔데,요.”
“너의 마음 속 작은 아이가 내뱉는 양심 어린 조언에 귀를 기울여라. 자. 너도 분명 내 말에 납득해 반론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저 시비를 걸러 온게 아니라, 억지로 트집을 잡아서 나에게 무언가를 떠넘기기 위함 아닌가?”
“으, 으윽···.”
하여간.
나는 이브 앞에 앉았다.
“그래서. 나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일이 뭐지?”
“부, 부탁이 아니라 엄연히 책임을···.”
“부탁이라고 하지 않으면, 이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겠다.”
“뿌, 뿌···.”
이브는 뿌들뿌들 떨면서 뿌뿌거리기 시작했다.
“이브 폰 로엔그린.”
“뿌따···.”
“됐다. 거기까지 했으면 말하지 마라.”
“하, 하지만 총 출점 수가···.”
“알고 있다. 즉 어떻게 해서든 내실도, 풍성함도 다 챙기고 싶다는 거겠지.”
“······.”
“그리고 그건 이제 4학년 2학기가 되어서, 공식적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는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에게 의뢰를 넣을 정도고.”
“의···뢰?”
“그래. 의뢰. 학생회가 나에게 발주하는 것 아닌가?”
“으, 으흠. 그렇죠. 이제야 이야기가 통하네요. 잘 들어요. 이건 명령도, 지령도, 트집도 아니고, 뿌,딱도 아닌···. 의뢰에요.”
“그래. 그렇게 이를 갈다간 이빨 다 상하니 그만둬라.”
“아무튼! 적어도 울프람이 점포를 백 개 정도 맡아주면 어떻게든 풍성해 보이겠죠.”
“백 개라···.”
“왜요. 겁나나요? 천하의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판을 깔아 준 거잖아요. 백 개 정도 알아서 해 보라고요.”
“아니 너무 적다고 생각해서 말이다.”
“네?”
“적어도 이 백은 맡도록 하지.”
“자, 잠깐만요. 가을 대축제는 앞으로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한 달이나 남지 않았나?”
“정말, 할 수 있겠어요? 사람을 구하는 것부터가 일일텐데.”
“사람을 왜 구하지?”
“네?”
정말 아직까지 사고가 꽉 막혀있군. 멍청한 뱃살 녀석.
왜 인간이 일을 하지.
모든 노동은 이제 골렘이 할 것이다.
어디.
우선 자판기 기능을 가진 골렘을 이백 대 쯤 발주해볼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