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22)
621. 사흘간 고민할 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인간의 계급과 권력의 척도가 되듯. 계급사회에서 인간을 나누는 것은 계급 그 자체다.
평민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평민. 별 일이 없다면 대대손손 평민이다.
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으며, 좋은 의복이나 식사 또한 어렵다.
허나 이 제프린은 가진바 재능만 있다면, 계급과 상관 없이 사람을 받아들이는 구조이며, 이 제프린의 입학에 장난을 치는 이는 반역죄에 준하는 죄로 다스린다.
이 세계가 계급주의를 자칭하면서도, 그 계급의 정점에 서 있던 차원의 구세주가 만들어낸 절대적인 규칙.
제프린은, 계급이라는 낙인을 지워내고, 새로운 각인을 몸에 새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허나, 제프린에 들어와 보면 안다.
계급이란 너무나 타파하기 어렵고, 강철로 만들어진 천장은 쉽게 무너져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급을 부순 이는 평민들 사이에서 노래되어 불리고, 전설로 각인되어 모두의 동경이 된다.
평민. 네프테리안이 황손의 로열 가드가 되었듯.
하급귀족 밀푀유 폰 사브레가 황손 둘이 주시하는 신인이 되었듯.
저 강철 천장에 도끼질을 하고, 너클을 끼고 때려 무너트린 이들이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욕망과 야망.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오늘도 검을 휘두르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제프린 학생들에게, 묘한 소문이 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학생회에서 원정대를 모집하고 있다.
-동부 숲. 잠든 산맥을 중심으로 실력에 자신 있는 학생들이 원정을 나가, 몬스터를 토벌하고 시체 등의 보수를 얻는다.
처음 그 소문이 돌았을 때. 학생들은 반신반의했다.
믿고 안 믿고의 반신반의가 아니다.
이것에 목숨을 걸어도 되는가, 걸어서 무언가가 바뀌는가의 반신반의.
학생들에게 이 도전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그럼에도 바뀌는 것이 없다면, 하던 것만 잘 해서 좋은 취직처를 구하는 게 좋지 않은가.
목숨을 걸고 사냥을 나가다니, 그런 용기는 실력과 재능을 겸비한 천재들만 하는 것.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들었어? 원정조 녀석들.”
“응. 마동석을 얻는다면서? 거기에···.”
“마법이 부여된 장비들까지···.”
보상이 바뀌자, 소문이 돌았다.
마동석이 있다면 착용하는 무구에 마법을 부여할 수 있다.
마법 자체가 부여된 장비가 있다면, 설령 기사가 될 수 없다 해도 차원이 다른 지점에서 용병업을 시작할 수 있다.
“학생회 직할 사무소로가면, 파티원을 매칭 시켜서 동부 숲으로 보내준다던데?”
“가볼까···.”
“아서라. 되겠냐?”
“아니, 인생이 바뀌는 게 없으니까. 목숨 한 번 걸어 봐도···.”
“음···.”
한 명이 문을 두드린다.
그 뒤를 이어 다른 한 명이 문을 두드린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만든 새로운 질서.
강철의 천장을 맨손으로 부술 수 없다면 마법이 담긴 무구로 두드려라.
바꾸고 싶다면, 목숨을 걸고 도전해라.
심플하고 간단한 룰.
철혈과 같은 의지. 멈추지 않는 발걸음.
목숨을 걸어서라도, 현재를 바꾸고 싶은 학생들이 움직인다.
허나 목숨을 건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생각은 입구에서부터 바뀌었다.
“아! 진짜 패트롤비 나갔잖아!”
“으, 으음. 이번에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지.”
“패트롤비도 공짜가 아니라고! 생각보다 비싸단 말이야!”
“목숨보다 싸지 않나···?”
“그걸 말이라고 해?!”
입구에서 묘하게 신경질적으로 싸우는 한 파티.
큰 싸움인가 싶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패트롤 비용? 목숨값?
사무실 내부로 들어가 직원에게 자세한 내용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됐다.
“아. 동부 숲에 가시는군요. 그럼 벽의 지도를 잘 봐주세요. 붉은 점은 레드 크리스탈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강화 몬스터가 나오니 항상 주의해주세요. 자격이 없는 파티가 건드리면 벌금을 물립니다. 선 예약제니 조건을 갖추시면 예약서를 적어주세요. 출현하는 몬스터는 자이언트 오크입니다.”
“아, 네···.”
“그리고 바로 옆에 돌 표시가 보이시죠? 저건 이번에 저희들이 새로 배치한 골렘 자판기랍니다.”
“자, 자판기요?”
“네! 자, 그럼 자판기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자판기는 총 네 종류의 물건을 팔고, 지금 케어 서비스를 예약하시면 선 보증금을 받고 유사시 중앙구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패트롤 서비스를 받아보실 수 있답니다.”
그리 말하며 안내해주는 분홍머리의 소녀는 차근차근 알아듣기 쉽게 원정대 사무소가 준비한 시스템을 설명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건 동부 숲에 가시는 분들을 위한 지침서입니다. 몬스터의 약점과 식용 가능한 자생 식물등을 적어뒀으니 가급적 다 외우고 가주세요.”
“아···네.”
끝까지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지금 이 제프린은 무언가, 크게 바뀌고 있다.
***
원정조에 대한 지원과 자판기의 상용화. 골렘 자동 경비 등. 한 번에 몇 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이 방법.
물론 골렘을 한 대 만들 때 마다 트라이스타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 이브의 볼이 부풀었지만, 그래도 그 유용함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에 결국 항복했다.
그리고 아일라는 골렘 한 대당 들어오는 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쓰겠습니다.”
“그리 큰돈은 아니다만.”
“어머. 울프람.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분명 큰돈은 아니지만···. 누가 준 돈이냐도 엄청 중요하다고요?”
“즉 이브가 준 돈은 의미가 있다는 건가?”
“물론이죠. 현 제프린 학생회장이 공식적으로 의뢰해, 로열티 명목으로 준 돈이라고요. 저희 트라이스타가 학생회의 납품 기준을 통과했다는 이야기가 되잖아요?”
누가 상인가문 딸 아니랄까봐 그걸 또 그렇게 받아들이는군.
“허나 액수가 적은 것 또한 사실이다.”
“맞아요! 골렘 한 대 팔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아요. 하지만···. 후후. 그냥 모아둘래요. 이브에게서 받은 돈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그런가.”
“네!”
생각해보면, 아일라가 이브에게서 수주를 따낸다는 것 자체가 아예 없던 이벤트다.
이브는 다른 마법사와 거래할 때 보통 레지나 시엘라를 썼고, 아일라와는 대척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것도 운명의 변화인가.
좋군.
아일라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운명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알겠다. 그럼 그 돈은 아껴두고, 오늘은 내 돈으로 놀러 나가도록 할까.”
“어머나···. 정말인가요?”
“물론이다. 어디 가고 싶지? 아일라가 정하도록.”
“그럼···. 후후.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답니다!”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이내 목적지를 말했다.
음.
정말.
정말 거기에 가 보고 싶다고?
***
아일라가 향하자고 한 곳은 동부 숲.
그것도 붉은 크리스탈과 한창 전투중인 파티를 보고 싶다는 것.
“아일라. 정말 이 곳으로 충분한가?”
“그럼요. 제가 만든 골렘이 오작동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사후 대처에 소흘하지 않는 것 또한, 좋은 상인의 조건이랍니다.”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한 파티와 자이언트 오크의 전투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단언컨데 좋은 전투는 아니었다.
자이언트 오크의 공격을 피하는데 급급한 탱커와, 그 탱커를 피해 딜을 넣지 못하는 딜러.
누가 봐도 오합지졸이고, 곧 골렘이 나서서 지켜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일라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약한 자들의 싸움임에도 그렇게 흥미를 가질 줄이야.”
“물론 저들은 약하죠. 하지만 계속 약한 채로 끝날리가 없죠.”
“저들을 아나?”
음.
내가 봤을때 저 녀석들은 각각 전사. 검사. 창술사의 【7T】다.
좋게 말하면 평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흔하다.
저 정도의 퍼텐셜을 가진 녀석을 아일라가 높게 평가할리가···.
“아뇨? 모르는데요?”
“그런데도 높게 평가하나?”
“그야. 울프람이 직접 키운 반역의 군세잖아요?”
“······.”
뭔데 그게.
“저도 예전부터 가슴 한 켠데 꿈꾸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나만의 군세를 키우고 싶다. 제프린에서 사병을 보유하고 싶다. 라고 말이죠.”
“그런가. 그런 목표가···.”
아예 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다.
아일라의 파멸에는 사병 육성을 하다 이브에게 걸리는 것도 한 몫 했으니까.
“그러니까 울프람이 지금부터 사병을 키운다고 하니, 저도 그 훈련 현장을 보는 게 맞지 않겠어요? 후후. 좋아요. 다들 쑥쑥 자랐으면 좋겠네요.”
“으음.”
“자 울프람. 어서 반역의 군세를 더더욱 키워내죠! 저도 협력할게요!”
“그렇구나. 우선 아일라. 이것부터 말하도록 하마.”
“뭔데요?”
“나는 사병을 키울 생각이 없다. 저 녀석들은 반역의 군세가 아니다.”
“······.”
“오해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하지만···.”
아일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정말 아냐? 라는 의미를 담아 눈빛으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아냐.
***
나의 확고한 부정에 생각보다 충격을 받았는지, 아일라는 잠시 모든 동작을 정지했다.
허나 그렇다고 내가 학생들을 사병으로 키울 거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일라의 이해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전장에서 멀어져 대충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은 후.
아일라는 살짝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프람. 저 깨달았어요.”
“뭘 말이지.”
“울프람과 제 생각이 언제나 항상 일치할 수는 없는 거군요.”
그러고 보니 이 녀석하고 의견이 갈렸던 건 내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말고는 없었나.
정말 마음이 편할 정도로 의견이 맞아 떨어졌다.
이렇게 크게 갈린 건 또 처음 아닌가.
“그렇구나. 나도 너와 의견이 갈린 건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유를 생각해봤어요. 왜 우리의 의견이 갈렸을까.”
“부디 들려줬으면 하는군. 어떤 이유지?”
“그건 저희가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이에요.”
“······.”
아니 지금도 충분히 알만큼 아는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알아가자고?
“그렇···군?”
“요컨대 조금 더 서로를 알아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어떻게 생각하나요?”
“호오. 어떻게 알아가자는 거지?”
조금 억지 같지만, 이 녀석의 억지는 나도 모르게 허락하고 만다.
“대축제.”
“음?”
“대축제에서,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만들죠. 어떤가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꾸욱. 내 팔을 붙잡았다.
“단 둘이 있는 시간이라.”
“네. 이번 대축제가···. 저희들이 제프린에서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축제니까요. 그 뒤로는···.”
“기말고사. 그리고 겨울방학. 그리고.”
“······.”
졸업.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지금은 9월 중순.
우리가 제프린을 떠나기까지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요. 울프람. 하죠. 꼭 해요.”
“뭘 말이지?”
아일라는 두어 번 심호흡을 하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데이트. 해요.”
나약하지만 확실한 목소리.
떨리지만 올곧은 시선.
“알겠다. 하도록 하지.”
“정말인가요?”
“거짓말을 해서 뭐하나.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브 말로는 이번 대축제는 좀 길게 할 예정이라고 하니···. 첫 날을 아예 비워놓도록 하지.”
“하, 하지만 울프람은 이번에 점포 수백 개를 동시에 운영해야 하는데···.”
“완전 자동화를 어떻게든 반드시 해내보도록 하지.”
“저, 저도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할게요!”
아일라의 빛나는 표정.
방금 전 ‘의견이 갈렸다’ 라고 말할 때의 그늘은 어디로 갔는지, 녀석은 웃고 있었다.
혹시.
“아일라. 내 한 가지 묻도록 하지.”
“네 울프람.”
“부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라고 말 하고, 서로를 알아가자고 한 것 전부···. 처음부터 대축제로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변명이었나?”
“아, 아뇨오?”
그렇구나.
아일라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겠지.
“알겠다. 나는 아일라를 믿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리가 없지. 아니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 나는 아일라를 믿겠다.”
“죄송해요. 일부러 변명으로 삼은 거 맞아요.”
그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는 녀석.
하여간.
“네가 부탁한다면 그 정도의 시간은 변명 없이도 만들 수 있다.”
“울프라암···.”
“하지만 거짓말은 나쁜 일이니, 나중에 귀책사유를 물어 일을 좀 시키겠다.”
“네에···.”
아일라는 다시 시무룩해졌고, 녀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일라.”
“네. 울프람.”
“대 축제. 기대 되는구나.”
“아······. 네! 저도 그렇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