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25)
624.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날짜는 사흘인데 사람은 네 명이라.
아 사흘은 4일이 아니다, 3일이지. 어렸을 때 이걸 가지고 얼마나 헷갈렸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요새 아이들 어휘력 수준’ 이런 말을 하지만 잘못된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임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사흘을 삼흘로 바꾸고 나흘을 네흘로 바꾸면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 을 말이다.
내 언젠가 정권을 쥐어 나랏님이 되거든 사흘을 삼흘로 고치겠다 결의했건만 하늘에 서지 못했으니 신념을 굽혀 사흘을 3일로 기억해야만 했다.
아무튼.
사흘간의 대축제에 나와 단 둘이서 놀고 싶다는 녀석들은 지금까지 네 명.
물론 녀석들에게 설명하면 된다. 미안 내가 날짜 계산이 틀려서 말이야 하하.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녀석들도 이해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옳은 걸까.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세 명 적으세요. 라는 이름이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을 적을지 ㅇㅇ(61.34) ㅇㅇ(211.237) ㅇㅇ(51.48)을 적을지 고민했던 이영진에게 이제 단 둘이서 놀고 싶다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황실혈통이 급격히 올라간 심박수를 제어합니다.】
【황실의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의 빌어먹을 패시브 스킬마저 친구 좀 생겼다고 흥분하지 마시고 캄다운을 외쳐주는 이 상황.
약속을 잡은 건 나고, 나의 실수로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싫다.
녀석들의 약속은 단 둘이서 대축제를 보고 싶다는 것.
허나 날짜보다 사람이 많다.
“이것 참. 고민이 되는군.”
그리 말하고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자, 스윽 하고 문이 열렸다.
파티원, 혹은 손님인가 하고 슬쩍 그쪽을 보니 붉은 늑대가 코로 문을 열고 몸을 안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는군, 주인.”
“오래간만이구나, 파트라슈.”
서로 끄덕, 인사만 했고 파트라슈는 음료 보관대로 스윽 걸어서 앞발로 문을 연 다음, 그대로 앞다리를 번쩍 들어 음료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음료를 공중에 툭 하고 차올려 다른 쪽 발톱으로 뚜껑부분을 가격. 공중에서 옆으로 세 바퀴 회전한 음료병은 깔끔하게 뚜껑이 따진 상태.
그대로 음료를 마시는 녀석을 보면서, 이걸 가져다 서커스에 팔면 떼돈을 벌지 않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의 기예.
“뭘 그리 보나. 이렇게 음료를 마신게 처음도 아닌데. 아 혹시 돈이 문제라면···.”
“됐다. 너에게서 음료 한두 개로 돈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보수를 줘야하니 말이다.”
“흐하하. 주인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장사꾼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리 들으니 마음이 편하군.”
“대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음료는 하나 더 꺼내 마셔도 된다.”
“음. 알겠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주인의 상담을 듣지 못할 것도 없지.”
입가를 비틀어 웃으면서 파트랴슈는 내 앞으로 슥 다가와 자리에 앉아 이쪽을 올려봤다. 어서 말이나 해보세요. 라는 의미지 이거.
“곧 제프린 대축제가 열린다.”
“음. 알고 있다. 학구를 돌아보니 다들 바쁘더군. 그만큼 잡스러운 녀석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보았다.”
“잡스러운 것들?”
“올바르지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들, 마계와 연결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기운에 음습함이 끼어있는 놈들이 있다. 그런 놈들도 처리하고 다니니 꽤 바쁘군.”
아.
양아치나 불량배같은 학생들인가.
대축제라면 검은깃발 녀석들이 암약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자경단이나 학생회에 말하면 되는데, 네가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나?”
“주인의 말은 타당하다. 나는 늑대정령이며 내년에 주인과 여왕님과 함께 이 땅을 떠나면 돌아올 일도 없겠지.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것도 타당한 말이다. 허나.”
“허나?”
“아무래도, 이 섬 자체가, 이 섬이 풍기는 기운이 마음에 들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허 참. 특이한 일이야.”
“호오.”
“우리들 요정은 정령과 비슷해서 말이다. 주변 분위기에 따라 감정이 급격하게 변한다. 엘피라네 님이 안심하고 주도가로서 살아가는 것도 주변이 안정적이기 때문이지. 나는 이 섬 전체에서 풍기는,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 노력하고 싶다. 라는 기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졌고, 그러다보니 말이다···.”
파트라슈는 큭큭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주운 붉은 늑대들도 그렇고, 릴리아. 라이아나 그랑펠리시에도 그렇고, 요정이나 정령이라는 놈들은 감정에 솔직하군 그래.
“좋은 일이군. 너도 이 섬이 마음에 들었다니 말이다.”
“음. 삼백 년 전의 전장. 모든 전쟁이 끝나고 인간들의 눈에 깃든 희망의 빛을 느꼈다. 뭐 아무튼 요새는 나이에 맞지 않게 속칭 나쁜 녀석들을 처리하고 다닌다.”
“그렇군. 그럼 이제 나의 고민 상담도 하나 들어줄 수 있겠나.”
“어디 말해보도록. 나는 상담사도 겸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말이다.”
파트라슈에게 사흘과 네 명의 이야기를 했고, 이내 녀석은 눈을 깜빡이곤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리해야 할 나쁜 녀석에 주인도 있었나.”
“······.”
죄송합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
파트라슈가 내놓은 안은 나를 울/프/람으로 세토막내서 한명씩 놀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아주 심플한 답이었다.
거의 정답에 가까웠기에 나도 모르게 채용할 뻔 했지만, 안타깝게도 분신술은 【닌자】직업 전용 스킬이다.
그거 말고는 대축제 타임버그를 이용해서 있을리 없는 다음날로 간다. 라는 필살기가 있긴 하다.
이 문제는 켈터스가 죽지 않으면 날짜가 영원히 대축제 넷째 날로 고정된다는 점이고, 날짜가 바뀔 때 마다 애들의 얼굴이 깨지거나 그래픽 버그가 일어나거나 배경이 새빨갛게 되거나 어제까지 정상적이던 학생이 몸통이 두개 다리가 여섯 개 달린다거나 하는 문제가 있다.
당연히 이 버그도 패스. 목소리가 깨지고 다리가 여섯 달린 파티원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야 넷째 날만 보내고, 깔끔하게 죽으면 부활스킬로 한 번 살아날 수 있긴 한데, 그건 아껴서 써야지.
그 다음으로는 아침 약속과 저녁 약속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이건 이것대로 아예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완벽한 해결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소거법으로, 차등을 둬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음.”
아예 방법이 없는 걸까.
어쩔 수 없다.
일단 파티원 전원에게 메세지를 보내보자.
그래. 어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 거다.
우선 약속 이야기를 꺼내서···.
-울프람. 단 둘만의 축제라니, 기대하고 있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앗! 선배님! 단 둘만의 대축제 정말 기대됩니다! 로열가드가 아니라 네프티로서 마지막으로 제프린에서 함께 보내는 축제니까요!
-울프람! 최고로 맛있는 요리를 먹고, 단 둘이서 제프린을 돌아보는 거지? 아하하. 감각이 죽으면서 감정도 같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단 둘이 있을 때는 가슴이 따듯해진다.
안 된다.
잘 모르겠지만, 다 함께 놀자. 라는 말을 하면 안 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띠링. 하고 메세지 창이 켜졌다.
-황자님 계신가요?
-레지나?
-죄송합니다. 이번에 단 둘이서 대축제를 돌아보겠다고 한 약속 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음.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고말고 뭔가 문제가 생겼나?
제발.
-아무래도 일이 생겨서 첫째 날은 힘들 거 같습니다. 황녀님께서 콜로세움 지원을 부탁하셔서요.
-알겠다. 첫째 날은 피하도록 하지.
-죄송합니다. 황자님과 꼭 첫날에 돌아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레지나의 메세지에는 미안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리고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말이다.
-꼭. 반드시 첫째 날에 돌아보고 싶었나?
-네.
그 말에, 영감이 번뜩였다.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알겠다. 파티원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파티 리더의 책임이지.
-황자님? 첫날은 제가 진짜 바쁠 거 같아서···.
괜찮아. 레지나.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해답은 찾았어.
우선 이브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이브. 드디어 빚을 갚을 때가 온 것 같군.
-제가 당신에게 빚을 졌다고요? 미쳤어요?
-양심을 뱃살에 같이 저장했나. 빨리 분해해서 뇌에 공급하도록.
-너 죽일 거야
-빨리 빚을 갚아라.
-그래서, 뭔데요.
-별 대단한 게 아니다. 이번 대축제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이브는 이내 긍정의 답변을 보냈다.
-알겠어요. 어렵진 않은 일이네요.
좋아.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
그 다음은 축제 준비가 한창인 노점상을 돌아봤다.
한 달이나 남았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술렁거리며 분주하다.
이브 폰 로엔그린의 치세에는 놀 거리가 무척이나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그러고 보니 슬슬 공장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데 인쇄소도 하나 만들어서 딱지나 찍어낼까.
마동석을 넣은 입체 필드도 써서 진짜 듀얼리스트들만 모이는 제프린을 만들면 떼돈을 벌 거 같은데.
물론 그 지폐의 산은 이브의 성광창으로 인해 분해될 거 같으니 그만둬야겠다.
친구들끼리 소소하게 즐길 보드게임 몇 개 정도 만들어서 출시하는 게 최선인가.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며 제프린을 걷고 있자니 저 멀리서 우웅. 하고 골렘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화사한 색의 머리를 자랑하는 후배.
“밀푀유. 뭘 하고 있지?”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뭘 살지 고민 중이었답니다.”
“네가 편의점 물건을 말인가? 네 돈으로 살 필요가 있나.”
“후후. 그것도 있지만요. 빈틈 찾기 놀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빈틈 찾기?”
“네!”
그리 말하며 밀푀유는 이얍! 하며 손가락을 쿡 내밀었다. 마치 옆구리의 빈틈을 찌르는 듯 한 장난기 가득한 자세.
뭐, 새로운 놀이인가? 골렘의 옆구리를 찌르는 놀이? 그건 빈틈이라 지건이나 육왕건이라고 한단다.
“무슨 놀이지?”
“아···. 지금은 새로운 걸 찾아내는 중인데, 일단 찾아낸 것 만 말씀드릴게요. 어디보자···.”
밀푀유는 골렘 앞에 서서 으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흑빵, 아니 음료수. 아니 티슈? 으음. 흑빵인가? 아냐 흑빵이 좋을 거 같긴 한데, 역시 음료수로 줄래?”
【알겠습니다】
밀푀유의 현기증 나는 주문에 골렘은 즉각적으로 대답했고 그렇게 나온 것은 티슈와 음료수였다.
“으음? 이거 신기하군.”
“그렇죠? 그래서 추론을 해봤는데요. 얘는 명확한 단어는 주문으로 이해하고, 그 다음 부정이 붙으면 부정으로 이해하고···.”
그리 말하면서 밀푀유는 계속 설명했다.
요약하면 흑빵-아니-음료수-아니-티슈 를 하나의 주문으로 이해하고, 흑빵-아냐-흑빵-음료수를 하나의 주문으로 이해해 두 개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허점이 있었나.”
“네. 그래서 대축제에 직접 장사하러 나서는 자판기들에게는 앞에 주문 방법을 확실하게 붙여야겠어요.”
“그렇구나···.”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놀랐다.
밀푀유가 하고 있는 것은 골렘의 버그 테스트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스스로 테스터를 자처한 게 아니라 ‘무언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테스트해볼까.’ 라는 발상을 떠올렸다는 점이다.
골렘 자판기는 역사상 최초.
그 곳에 결함이 있을 거라 생각해 찾아와 주문하고 오류를 기어이 찾아내는 모습까지.
정말, 이런 애가 원작에서는 그냥 탈락하는 엑스트라였다니···.
“훌륭하다. 밀푀유.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아하하···. 과찬이세요. 선배님.”
“아니. 무언가 포상을 주고 싶을 정도다. 바라는 것이 있나?”
“바라는 것···. 바라는 것. 네. 있어요.”
“뭐지?”
“저, 선배님과 함께 단 둘이서 대축제를 돌아보고 싶어요. 언제든 좋으니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밀푀유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차마 거절할 수 없다.
오늘, 무분별한 약속으로 그렇게나 고뇌했다.
그러니 거절하는 게 맞다. 거절하는 게 맞는데.
이 눈을 보고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다만, 조금 특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는데, 괜찮나?”
“트, 특별···. 아, 알겠습니다. 네!”
후우.
그래. 뭐. 별 수 있나.
수틀리면 몸을 토막내건 분신술을 배우건 하면 되겠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