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30)
629. 비기너즈
아일라와 무시무시한 뱃살 학생회장이 쫓아올 것 같은 중앙구를 빠져나와 달렸다.
내가 달리는 이유에 대해 아일라가 물었고, 나는 이브를 어떻게 매달았는지 진지하게 설명해줬다.
“어머, 그러면 울프람이 말한···. 이브에게 넘긴다는 모든 게 이브를 놀린다는 이유도 있는 건가요?”
“물론이다. 그냥 넘겨주기에는 많이 아깝지 않나. 이 정도의 불꽃놀이는 이브도 용서해주겠지.”
“글쎄요. 그 아이는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인정받으면···. 후후. 엄청 화가 났겠네요.”
“음.”
나는 아일라를 빤히 바라봤다. 왜요. 울프람? 하고 태연하게 고개를 갸웃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루어내지 못했음에도 인정받는다는것을 싫어하는 이브.
반대로, 자기보다 약한 이에게 패배하면, 그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던 아일라.
두 사람은 어떻게 보면 참 닮았다 싶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짖궃은 말을 입에 담았다.
“글쎄. 작년 초에 켈터스에게 패배했다면, 아일라 너도 무척이나 화났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울프람이 그 아이의 약점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옛날이라면.
아니 그리 먼 옛날이 아니더라도, 고작 몇 개월 전이라면 아일라는 ‘제가 그 아이에게 맞을리가 없잖아요?’ 라는 식으로 퉁명스레 대답했겠지만 지금의 아일라는 그런 가정마저 받아들일 수 있는 건가.
놀라운 발전이다.
멈춰야 하는 선을 안다.
허나 지금의 아일라라면 괜찮지 않을까.
근거 없는 기대감에 한 마디 더 내뱉었다.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그때 네가 한 대 맞았다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엄청 화내고 또 힘들고, 그때는 울프람도 옆에 없을 때니까요. 그 떄 울프람과 제가 대화를 나누는게 대체 몇년만인지 알기는 해요?”
“그랬나.”
“이쪽이 말을 걸어도 항상 노려만 보던 울프람이 완전히 사람이 변해선···.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니까요?”
“······.”
그야 뭐.
엄밀히 따지면 다른 사람이지.
내가 울프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한 건 한 거고, 다른 사람인건 다른 사람인거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만약 패배하는 게 운명이었다면 울프람이 그걸 바꿔준 게 아닐까요?”
“그런가.”
“네. 분명히. 틀림 없어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 손의 온기에 자연스레 이끌리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짖궃은 질문을 했다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욱 짖궃은 대답으로 돌아왔다.
【황실 혈통이 감정을 억제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황실 혈통 스킬에 무척이나 감사했다.
얼굴에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
그렇게 우지쾅쾅 나타났다 우주 외계인 그녀는 무서운 암흑대왕 이브 폰 로엔그린의 권역에서 완벽하게 벗어났다.
어떻게 자신하냐면, 내 메세지 창이 미친듯이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튀었어요
-야
-나와
-진짜죽일거야
-너죽이고 황성지하 감옥가는거야
-오늘 로엔그린 황실에서 황손 둘 사라지는거야
-나오라고!!!!
음.
격하게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중앙구를 벗어나 노점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울프람. 어디부터 돌아볼까요.”
“미안하군, 아일라 너에게 맡겨도 되겠나. 나는 이런 곳이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럼요! 맡겨주세요! 자, 우선은 트라이스타 상회의 출품작부터 보러 가죠! 분명 좋은 매출을 올리고 있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말인가?”
“네!”
나는 아일라를 빤히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불안감이 뇌리를 스친다.
우선, 물어나 보자.
“알겠다. 그 다음은?”
“울프람이 만든 자판기 골렘을 보러 가죠!”
“그렇군. 그 다음은?”
“울프람이 후원한 노점상의 매출 지표를 보고, 그 다음은 울프람이 크게 준비했다고 하는 골렘 자판기의···.”
“아일라. 아일라 트라이스타.”
“네. 울프람.”
“오늘 단 둘이서 놀자고 하지 않았나?”
“네. 맞아요. 단 둘이서 놀고 있잖아요?”
“모든 말에 매출 확인이나, 지표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만.”
“그랬나요?”
그랬다요.
우선 나는 아일라의 손을 잡고, 근처 마실 것 전문 노점상에 들어갔다.
주인은 우리의 얼굴을 알아봤는지 눈을 크게 떴다. 미안하지만 사인은 나중에 해줄게.
아일라를 앉혀놓고 자릿세로 만 린 한 장을 건넨 다음 내가 만든 음료를 두 잔 꺼냈다.
“오, 오오···. 갑자기 마실 것 부터라니, 울프람의 초이스는 개성이 있네요.”
네 초이스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아일라는 내가 건넨 음료를 받아들고 빨대를 입에 물었다.
좋아.
아일라의 입이 다물어졌으니 지금부터는 내가 말 할 수 있는 턴이로군.
“아일라. 한 가지 꼭 묻고 싶은 게 있다만.”
“네. 울프람. 뭐든 물어보세요.”
“나와 만나기 전, 그러니까···. 네 말에 따르면 ‘내가 완전히 변하고 나서’ 이전 말이다.”
“아···. 네. 제가 반역밖에 모르는 광인으로 살았던 그 시절 말이죠.”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다만.
뭐 아무튼.
“그 이전에는 뭘 하고 놀았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혹여 논 적이 없나?”
“어머 있답니다?”
“부디 듣고 싶군. 뭘 하고 놀았지?”
“광산을 캐고, 땅을 파고, 새로운 광물을 찾아보고 그러고 놀았죠!”
······.
“제프린에서는?”
“반역의 율법서를 적었답니다! 혹시 알고 있나요? 이 율법서는 울프람에게만 말하는 건데요.”
아니 몰라.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
“그렇군. 아일라는 놀아 본 적이 없다.”
“울프람. 아무리 저라도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아요?”
“그러고 보니 아일라의 교우 관계는···.”
“울프람과 파티원이 있답니다?”
“그렇군. 그럼 그 전에는···.”
“울프라아암···.”
아일라는 숫제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하구나, 무얼. 나도 사실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 친구가 없는 것도 너와 비슷하다.”
“친구 있다니까요?”
“맞다. 친구가 있었지. 파티원이라는 소중한 친구들이 말이다.”
“네. 그렇죠!”
정말.
이 녀석은 참···.
“아무튼, 우리 둘 다 친구와 제대로 놀아본 적 없고, 이성과 둘이 논 건 아예 처음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렇게 되네요.”
그런가.
“몬스터는 잔뜩 잡을 수 있고, 마계의 문도 닫을 수 있지만.”
“세상 모든 것에 반역을 일으킬 자신이 있고, 이 세상을 바꿀 각오도 되어있지만.”
나와 아일라는 서로를 마주보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웃어버렸다.
“둘이서 노는 방법은 모르는 초보로군 그래.”
“후후. 제프린 최약의 비기너즈네요.”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
결국 아일라의 매출 찾아보기, 혹은 대안으로 내놓은 반역의 율법서 같이 읽기는 폐기하고, 다시 둘이서 제프린을 걸었다.
“밥은···. 울프람이 해준 게 더 맛있어요.”
“음료도 내가 만든 게 더 낫지.”
“놀 것은···. 지금 공사 중인 놀이공원이 더 재밌어요.”
결국 뭘 하고 놀지에 대해 전부 다 적어놓고, 하나씩 소거법으로 지워나가기 시작했고, 이내 또 다시 문제점에 봉착했다.
대부분의 놀 것이 우리가 만든 것보다 시시하고, 먹을 것이 내가 만든 것보다 모자랐다.
“일단···. 식사를 할까.”
“울프람이 만든 요리로요?”
“음. 그게 맞겠지. 아무래도 노점상은···. 아무리 노력을 기울였다 한들 위생도 걱정이고 말이다.”
“찬성이에요! 하지만···. 어디서 먹죠? 편의점?”
“여기서 편의점은 조금 멀구나. 평상시와 다를 것도 없고 말이다. 새로움이 없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고 다시 생각없이 빙글빙글 돌던 와중. 아일라가 내 팔을 콕콕 찔렀다.
“울프람. 울프람. 저기보세요.”
아일라가 가리킨 곳을 보니, 꽤 넓은 땅을 차지한 노점이 있었다.
허나 신기한 것이. 테이블과 조리기구는 약 열 세트 이상 준비되었는데 요리하는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입찰에 실패했나?
“울프람. 간판. 간판이요!”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요리터. 조리기구. 식기대여. 3만 린. 식재 별도 판매】
“호오···.”
“훌륭하네요. 이런 상법을 생각하다니, 대단한 학생들이에요.”
“그렇군. 그리고 우리에게 딱 맞지 않나.”
“네? 아···. 그렇네요. 여기서 직접 요리를 해도 되겠어요!”
반짝거리는 눈동자.
뭐야. 그렇게 해먹자고 부른 것 아니었나?
아니. 그 정도의 계산을 했을 리가 없다.
이 녀석도 나도.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제프린 최약 비기너즈니까.
“가도록 할까.”
“네!”
***
조리대 앞에 섰을 때. 아일라는 내가 대여받은 앞치마를 두르는 손을 꾹. 하고 잡았다.
“왜 그러지. 아일라. 요리에 빼줬으면 싶은 게 있나? 당근이나 피망?”
“당근도 피망도 잘 먹는답니다. 그것보다, 울프람.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그러니까.”
스윽, 하고 손에서 앞치마를 빼앗아간 아일라는 직접 입은 후 방긋 웃고,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제가 직접 요리를 해보도록 하죠! 자! 울프람. 먹고 싶은 요리가 있나요?”
“하핫···. 그렇다면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부탁하도록 할까.”
“네! 주문 받았답니다!”
그리 말하고 웃은 아일라는 잽싸게 손을 놀렸다.
“내 조언은···.”
“당연하지만, 이번만큼은 사양할게요!”
“알겠다.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지.”
“네!”
통통통. 리드미컬한 재료를 써는 소리.
요리에 방해가 되지 않게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머리.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노랫소리.
그 뒷모습을 테이블에 앉아 지켜보며 웃어버렸다.
【황실 혈통이 감정을 억제합니다】
이것 참.
이럴 때는 순수하게 즐길 수 있게끔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언젠가 이 스킬 진짜 폐기치고 만다.
***
아일라가 만든 것은 고기 샌드위치와 샐러드였다.
기대를 품고 입에 넣자 깔끔하면서 진한 맛이 일품인 샌드위치와 산뜻한 샐러드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훌륭하군.”
“스승님이 훌륭해서랍니다.”
“누군가에게서 요리를 배웠나?”
“어머. 정말 모르나요? 위대한 요리인이신 스승님이 계시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고?
“부디 소개해줬으면 좋겠군.”
“어머. 그건 어렵겠네요.”
“그런가? 공사가 다망한···.”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눈 앞의 사람을 소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
아.
“내가 제대로 요리를 가르쳤던 기억은 없는데 말이다.”
“아뇨. 잘 가르쳤답니다. 울프람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것이 우리들에겐 훌륭한 공부였어요. 싸우는 방법. 요리하는 방법. 원정에 나가서 야영하는 방법. 포기하지 않는 방법까지요.”
“그런가.”
“네. 그런가. 랍니다?”
아일라는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키득 웃었고, 우리는 식기들을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는 마쳤지만, 다시 할 것이 사라졌다.
이제 뭘 한다.
고민하고 있자니, 내 팔을 휙 하고 잡아끌었다.
이런, 지옥에서 올라온 뱃살회장인가.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팔을 잡아끈 것은 아일라였고, 녀석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단한 걸 깨달았다며 속삭였다.
“울프람. 생각해봤는데요.”
“음?”
“단 둘이서 요리를 해서 먹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웠는데,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둘이면 더 즐겁지 않을까요?”
“호오.”
“산책도 좋고, 같이 요리해먹는 시간도 좋고, 저 들판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자도 좋다고 생각해요.거기다가.”
“맞는 말이군. 너무 대단한 걸 처음부터 즐겨버리면, 제프린 최약의 비기너즈에게는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겠나.”
“네! 반역은 차근차근, 단계별로 해야죠.”
아일라는 내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프린 최강의 비기너즈가 되기 위해. 지금은 동부 숲 식용 슬라임을 사냥한다는 심정으로 시작하죠!”
“그래. 그렇구나.”
아일라의 더할나위 없는 훌륭한 제안은 곧, 우리 제프린 최약 비기너즈의 목적이 되었다.
햇살은 따듯하고, 축제는 아직 많이 남았다.
서두를 것 없이. 우리 속도대로 가면 되는 일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