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37)
636. 후야제
이시스 폰 로엔그린을 내쫓은 뒤. 쇼파에 앉아 고개를 뒤로 기댔다.
아.
이대로 진짜 잘거 같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울프람. 일어나시죠. 여기는 당신이 자라고 만든 곳이 아니에요.”
“그런가. 돈은 나중에 내도록 하지. 나에게는 수면이라는 영혼의 안식이 필요하다.”
“아니 일어나라고요.”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고, 이내 내 몸에 아주 조금 체력이 돌아왔다.
정말 아주 조금, 갈증을 해소할 물 반 모금 수준.
슬쩍 눈을 떠서 이브를 보니 녀석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냥 내가 한심해서 내쉬는 한숨이 아니라, 진짜 지쳤다는 한숨.
잠깐. 설마.
“혹시 소울 체인지를 썼나?”
“예에. 뭐. 눈 앞에 있는 모자란 사람이 너무 모자라 보여서, 조금의 자비로 썼네요.”
그리 말하고 녀석은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
즉 이브는 소울 체인지를 써서 마력-체력을 변환시킨 다음 나에게 던진 것이다.
말해두지만, 저 마법은 더럽게 효율이 나쁘다.
자기 자신에게 걸어도 말도 안 되는 쓰레기 성능을 보여주는데, 그걸 타인에게 걸려면 우선 날아가는 동안 소모되는 마력. 상대의 마법 저항력까지 전부 계산해야 한다.
그럼에도 쓴 것이다.
나와 마력 파장이 맞으니 아주 조금의 효과가 올라갔다고 하나···.
“너도 피곤하지 않았나?”
“아니요오? 적어도 당신보다는 더 체력이 있는데요!”
그럴리가 없잖나.
안색이 창백하다. 멍청한 녀석.
저 놈도 이 대축제를 위해 더럽게 고생했을텐데 나를 위해 소울 체인지를 썼다는 건가.
“일어나도록 하지.”
“뭐, 왜요.”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억지로 체력을 회복시킨 것 아닌가.”
“잘 아네요. 네. 뭐. 그럼 일어나죠.”
그리 말하고 이브는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뭘 하려고 나에게 이런 흉계를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난···.
“쯧.”
이브 폰 로엔그린의 영문을 알 수 없는 호의에 기분이 나빠졌다.
차라리 짐작할 수 있는 흉계라면 이해했겠지만, 저건 그저 순수한 감사의 표시.
내가 이시스 폰 로엔그린의 잔꾀에서 녀석을 구했기 때문에 돌아온 선의.
적어도.
나는 녀석에게 이런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
그렇게 이브와 제프린 내부. 정확히 말하면 운영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회장님. 부탁하신 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네. 고생했어요.”
이브를 향해 경례를 올리는 학생.
청록색 리본이 인상적인 갈색 머리 여학생이 이브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이브는 그녀에게서 몇 개의 서류를 받아들은 뒤 이쪽을 향해 넘겼다.
역시나.
나에게 서류 작업을 시킬 생각이구나, 이 악랄한 녀석.
“뭘 확인하면 되는 거지?”
“전부요.”
“쯧. 알겠다.”
소울 체인지로 눈곱만큼 체력을 주고 나를 갈아 넣으려고 하다니, 그래 이 악랄함. 이게 이브 폰 로엔그린이지.
알겠다. 내가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도 결코 이 업무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리라.
그것이.
적어도 이브 폰 로엔그린의 대가 없는 호의보다는 편하니까.
그리 생각하며 서류에 눈을 돌리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류가 아니었다.
이브가 건넨 것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 넘는 것.
【대축제 즐거웠습니다. 제프린은 역시 제프린이네요.】
【몬스터 대전은 박진감 넘쳤습니다!】
【자판기에서 사먹는 거 엄청 재밌었어요. 맛있어요.】
【내년에도 좋은 대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네요.】
【흑빵이라고 해서 무시했는데, 부드럽고 안에 들어가 있는 크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건 방명록이었다.
이번 대축제를 여행한 방문객들이 남긴 후기였다.
그 안에서도, 분명히 적지 않은 수의 후기가 보였다.
내가 준비한 식재료들이 좋았다. 자판기가 좋았다. 내가 관리한 노점이 좋았다.
몬스터와 싸우는 것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내년의 대축제도 기대된다.
【특히 편의점이라고 적힌 가게에서 파는 식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의점의 점주님은 2호 점주라고 하는데, 1호 찾으신 분 있나요?】
【편의점 샌드위치가 맛있었어요!】
방명록.
그 안에는 분명히 있었다.
밀푀유가 출점하겠다고 한 제프린 편의점 2호의 평가.
아마 오늘은 나와 함께 대축제를 돌아다니느라 장사를 하지 않았겠지만, 어제와 그제는 확실하게 한 모양이다.
“저기···.”
이브에게 서류를 넘긴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었다.
분명 어디서 본 얼굴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군, 전에 본 적이 있었나.”
“아···. 그게. 작년 초에 기사학부에서 의뢰를 요구하러 오셨습니다.”
작년 초.
아. 네프티를 소개해달라고 했던 그 때인가.
나를 보고 엄청 불편해 했었던 애다.
“이제야 기억났다.”
“저기 그게···.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황자님.”
“음?”
“제가 그간 황자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축제 실행위원을 맡으면서···. 방명록을 분류하다가···.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 말하고 고개를 꾸벅, 깊게 숙인다.
이브를 살짝 보자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것 참.
이것까지 생각했다고?
“네 사과를 받겠다.”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언제든지 기사학부 인력 사무소를 이용해주세요!”
“음. 그래. 그러도록 하지.”
그리 말하고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고, 그렇게 운영 본부에는 나와 이브만이 남았다.
“자. 그럼 오늘 제가 보여주려던 건 끝났네요.”
“어째서 이런걸 보여줬지?”
“뭐에요. 보여줘도 불만이에요? 하여간 인간이 배배 꼬여서.”
이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좀 많이 죽고 싶다.
마음을 다잡고 지금은 삶의 의욕과 불씨를 살려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순수하게 궁금하구나. 어째서지.”
“그야.”
이브는 음. 하고 말을 참았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당신도 그 뭐야···. 이 대축제에서 나름 한 게 있잖아요. 자판기 골렘이라는 걸 만들어서 노점을 대신 채웠고, 심야 노점이라는 걸 제안하기도 했고, 재료도 수급했고 강한 몬스터도 포획했고요.”
“그랬지. 그런데?”
“하지만 다른 파티원들이랑 일정을 보내느라, 이 대축제를 제대로 본 적은 없지 않나요? 당신의 출몰 보고를 들었을 때는 그랬는데요.”
“······.”
아일라와는 우리답게 돌아다니긴 했지만, 레지나와는 레스토랑에만 있었다. 네프티와는 전시를 봤고 루디카에게는 인간 배게 취급을 받았다. 밀푀유와는 골렘 노점상을 돌아보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전부 제대로 즐겼다고 하기에는 분명 어폐가 있다.
무엇보다 관광객의 열기를 제대로 느꼈다기에도 좀 부족하다.
“그래서 이런 방명록을 준비했나?”
“누군가가 노력했는데 그걸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건 짜증나거든요.”
그리 말하는 이브의 얼굴은 숨김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정말로 그리 생각한다.
이브 폰 로엔그린은 노력한 사람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게 그냥 짜증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이다.
그리고 그건,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지옥에서 올라온 혈통메이트인 이 울프람도 예외는 아닌 건가.
이것 참.
“그런가. 그렇구나. 정말 잘 읽었다. 고마운 평가들이 가득하구나.”
나의 반응에 녀석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아냥거리지 않네요?”
“무얼.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비아냥거릴 정도로 나는 심사가 뒤틀려있지 않다.”
그럼 됐고요.
그리 말하고 뒤돌아선 이브의 등에, 나는 짧게 하지만 확실하게 말했다.
“이브. 고맙구나.”
“······.”
움찔.
그 등이 떨린다.
지금 이브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구역질난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까, 그도 아니면 뭔 헛소리야 싶어 심드렁할까.
“알면, 됐어요.”
“음.”
볼 수는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이브의 목소리는 아주 조금 들떠 있다.
***
제프린을 나와 편의점으로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걸어서 마법학부 제8학구 끝까지 갔다.
아마 파티원을 부른다면 누구 한 명 할 거 없이 왔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녀석들 때문에 지쳤다는 게 들키지 않나.
그렇게 편의점으로 돌아가, 어떻게 해서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으슥한 곳에 오피스텔을 설치하고 잘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바라던 결말이 아니다.
마치 여행을 마치고 집 가는 길에 피곤하다고 근처 찜질방에 들리는 수준으로 기분이 찝찝할게 뻔하다.
그러니까 잠은 집에서 잡시다.
이불을 덮을 생각도 없이, 모포 위에 쓰러져 그렇게 죽었다.
지금까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대모험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나.
그럼에도.
사흘간 다섯 명.
이브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
그 모두와의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해 집까지 돌아왔다.
사나이 이영진, 마음먹은 일 끝까지 해내 영면에 드니 남길 아쉬움이 어디 있겠나.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도 끝끝내 나는 웃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홀로 여기에 잠들다.
***
그 다음 눈을 떴을 때. 이영진은 현대로 돌아왔습니다! 같은 마무리같은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끄럽기 그지없는 소음에 정신을 붙잡고 눈이 뜨여졌다.
몸은 물 먹은 솜마냥 축 늘어지고 양 팔도 다리도 체력이 방전되어 쥐가 나서 멋대로 춤을 춘다. 등과 명치 부근은 근육통에 뻐근하다.
그럼에도 만약 편의점에 도둑이 들었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뿐이라는 각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울프람! 일어났나요?”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편의점 밖.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녀석들. 아일라를 시작으로 하는 파티원들 중간에 나무 장작이 잔뜩 모여있고, 그 옆에는 바베큐 그릴도 준비되어 있다.
테이블에는 고기를 비롯한 요리들이 접시에 수북이 쌓여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안타깝게도 아니랍니다. 가죠!”
아일라의 흑수정 마법은 내 발 아래에 무브워크를 만들어서 나를 강제로 편의점 밖으로 이끌었다.
이 나쁜 마법의 총아 녀석. 이런 데에 재능을 낭비하지 마라.
“아! 선배님! 나오셨습니까!”
“음.”
“선배님. 안녕하세요!”
네프티와 밀푀유가 깡총 뛰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녀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선배님! 자 의자에 앉으시죠! 제가 직접 만든 의자입니다!”
그리 말하며 네프티는 나를 의자에 안내했고, 밀푀유는 내 옆으로 다가와 방긋 웃었다.
“이번 편의점 2호점에서 가장 잘 나간 음료랍니다. 한 잔 드시겠어요?”
“부탁하지.”
밀푀유가 건낸 음료를 받아 마시고 있자니 레지나가 슬쩍 다가왔다.
“황자님. 안색이 창백합니다. 괜찮으신가요?”
배려심 넘치는 그 미소는 자애로 가득했다.
“울프람! 오늘 요리는 내게 맡겨라!”
저 너머에서 매운 향초를 단검으로 능숙하게 썰고 있는 루디카는 웃으며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직 시작 안 했죠?”
“아, 이브. 어서 와요. 아직 시작 안 했답니다.”
그리고 이브까지 등장해 이쪽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일라. 이건.”
“자. 울프람. 저희다운 후야제를 시작하죠.”
그리 말하며 내 바로 옆에 붙은 아일라가 방긋 웃었다.
그래. 후야제.
누군가 둘이서 하는 게 아니라 모두 모여 하는 마무리.
정말 가슴 벅차고 따듯한 일이다.
그래. 역시 마무리는 이래야지.
그런데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아일라. 너는 열시 반 까지 잠들어야 하지 않나?”
“네. 그래서 개막식에만 참여하고 금방 자러 갈 거랍니다?”
“나는···.”
“울프람은 제 몫까지 밤늦게 놀아주세요!”
···.
······.
아니.
미안해. 나는 잠시 잠에서 깬 것뿐이야. 움직일 체력은 되지 않는단다.
밤은 혼자서 먹을게, 다크 시그너처럼 구석에 빠져있을 테니까 빛나는 너희들끼리 놀아줘.
허나 내 마음 속 외침이 들릴 리도 없고, 그렇게 후야제는 막을 올렸다.
그날 새벽.
후야제를 끝내고 겨우 잠에 빠진 내가 깬 것은 정확히 나흘 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