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40)
639. 그레이트 올드 원
‘그렇게 백억이면 몇 명 정도 죽어도 남은 사람이 몰빵쳐서 가지면 이득 아닌가?’를 심도 깊게 고민하던 응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당연하지만 녀석들이 나보다 지쳤기 때문에 불침번을 세우지 않았고, 대신 내가 불침번을 서는 것으로 합의.
응애들의 고른 숨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지옥의 입구에서, 나는 나무를 깎아 의자를 만들고 앉아 밤하늘을 올려봤다.
저 녀석들뿐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 키운 아이들이 이 제프린을 미래로 이끌어 가 줄 것이다.
거주구에 갇혀서 답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모험하고, 그 끝을 보기 위해 미지의 땅을 걸어 나아가겠지.
그리고 저 녀석들이 졸업하고, 그 후배들이 졸업하고···. 제프린의 역대 졸업생들이 점차 세상에 도전하여 이 대륙 전체를 잇는 가교가 된다.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이 세상을 구했다면.
우리를 시작으로 우리의 후배들이 세상을 잇는다.
“멋진 세계가 되겠구나.”
분명 피도 흐를 것이고, 충돌도 있을 것이며 더러운 이권다툼의 한복판에 빠질지도 모른다.
희귀 광물이나 자원을 독차지 하려고 싸울 것이고 수면 아래에서 더러운 암투가 오갈지도 모른다.
허나, 피와 보석을 함께 실은 세상은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럼 내가 할 것은 하나뿐이군.”
나는 이 세계의 유통을 장악할 예정이고, 열차로 산업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즉.
레일을 깔고, 열차를 쉼 없이 달리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레일 위를 막아서는 모든 것을 치워버리는 것이지.”
음.
아주 깔끔한 결론이다.
신화 포식자를 몇 번 휘두르며, 생각에 잠겼다.
첫 액션은 우리가 보여줬다.
이제 슬슬 저쪽에서도 반응이 올 때다.
【울프람.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죠. 메시지를 보면 대답하세요.】
【이넬디아가 움직였어요.】
이브의 메시지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슬슬 움직일 때다.
***
응애들과 함께 거주구로 이동한 나는 녀석들의 주머니에 대충 마정석 하나를 찔러 넣어줬다.
얘네들이 아무리 벌이가 좋다 한들 한 달은 다리 빠지게 원정을 다녀야 벌 수 있는 수입.
처음에는 이득도 없고 마음의 가르침만을 받아 ‘이거 맞아?’ 라는 표정을 띄우던 세 녀석은 나의 마음 따듯해지는 용돈에 그대로 자세를 바꿔 눈을 빛냈다.
“선배님! 이렇게 주신 따듯한 씀씀이 결코 잊지 않고 저희들이 후배들에게 이어가겠습니다!”
“네, 선배님. 믿고 맡겨주세요. 제프린의 원정은 결코 쇠하는 일 없이 미래로 나아갈 거예요!”
“착한 울프람! 고맙습니다!”
세 녀석의 희망과 용기 가득 찬 인사에 나의 가슴 또한 따듯해졌다.
이게 또 문화로 자리 잡으면, 원정에서 공친 후배들에게 선배가 밥 한번 정도는 사줘야 하는 문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아무튼, 세 응애들을 집에 보내고 빠르게 학생회실로 합류했다. 씻지 못해서 기분이 좀 안좋긴 한데, 뭐 이브 만날 때 씻을 이유가 어딨겠어. 그냥 대충 머리만 빗고 가면 되는거지.
그래서 학생회실에 도착하니 이브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원정에 나간 거 아니었나요? 그렇게 보고를 들었는데요.”
“그래. 이미테이션 헬. 거짓된 지옥문에 갔다 왔다.”
“아 거기···. 네. 분명 제프린 설계도에는 있었네요. 동부 숲 너머에 있는 곳이었죠. 잠깐만요. 하루만에 거길 다녀왔다고요?”
“음. 그랬지. 바닐라 요거트 유즈나엘의 파티와 만나 가르침을 주고 왔다.”
이브가 빤히 이쪽을 바라봤다. 뭐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옥상으로 따라오도록···.
허나 내 마음 속 멘트가 목울대를 지나 나아갈 것도 없이, 이브가 깊은 한숨을 동반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노는 줄 알았는데, 후배 교육을 하고 있었군요. 거기에···. 쯧. 제프린에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온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도 없죠. 가서 씻고 준비하고 오세요. 아직 세 시간 정도라면 여유가 있어요. 학생회 임원들이 쓰는 욕탕이 지하 2층에 있어요. 자요. 수건.”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수건은 개인 지급인데···. 으음. 후우. 어쩔 수 없죠.”
이브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옷장에 보관해놓은 수건을 내게 넘겼다.
새 수건은 아니다.
다만 깨끗하게 세탁 되어 있는 수건을 받아들었다.
나도 모르게 큰 숨을 쉬었다.
이것 참.
이 녀석은 정말 공명정대하군 그래.
내가 미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제프린을 위해 철야로 일했다고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휴식 시간을 벌어 준 것이다.
가끔 이 녀석, 이런 친절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평소처럼 욕이라도 하지 진짜.
***
그렇게 씻고 돌아오자 그제야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넘겼다.
“이넬디아가 움직였다. 라고 들었다. 어떤 일이지?”
“어떤 일이겠어요. 이번 제프린 대축제에서 당신이 꾸민 연설···. 그게 귀에 들어간 거겠죠.”
“그런가. 그럴법도 하군. 그래서 견제구를 날리시겠다? 다른 황손을 이용한 게 아니라, 직접 움직였나?”
“예에. 1황자도 아니고, 이넬디아가 직접 움직이는 건 꽤 신기한 일이네요.”
그렇다.
“레이널드는 등신이고, 이오는 우리의 개. 이시스는 뱀이지만 언제든 술을 담가버릴 수 있지.”
“이넬디아 언니는 두뇌파. 상대하기 까다롭죠.”
“그렇다 한들 첫째만 하겠나.”
“맞는 말이에요. 제1황자. 라이언 폰 로엔그린.”
이브는 한숨을 내쉬었고, 나도 적게나마 동조했다.
본편 기준으로 라이언 폰 로엔그린은 엑스트라에 가까운 존재지만, 엑스트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말 그대로 용사.
빛의 마법을 쓰며, 성검도 한 자루 들고 있다. 까다로운 게 하필이면 그 마법이 성검을 매개로 발현하는 거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딱 봤을 때. 아 얘는 좀 치겠구나. 얘는 용사 각이다. 싶은 멋을 자랑한다.
잘생긴 외모와 흠잡을 곳 없는 행보. 가진바 무력. 그리고 세력.
첫째라는 정통성. 그리고 성검을 매개로 발현하는 빛의 마법까지. 그림에 그려놓은 황태자다.
그렇기에 녀석에게 잔기교가 필요 없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한 것은 결국 힘을 합쳐 매머드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혼자서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는 인간은 기술도 협조도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 황태자. 최강이라 이름 붙은 녀석은 거슬리는 모든 것에 머리를 들이밀어, 자신의 정통성을 믿고 그대로 와장창 깨부술 수 있는 것이다.
그 녀석이 아니라 그나마 이넬디아면 속이 편하다.
“지난번 연회 때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그때 당했으니까 더 당하기 싫은 거 아닐까요?”
쯧.
이시스를 패도 너무 팼나보다.
“그 라이언 상대가 아니라, 이넬디아라면 아직 해볼만 하지. 그래서 뭐라고 하지?”
“언제든 좋으니 형제의 우애를 다질 겸 식사를 하자고 하네요.”
“형제는 무슨.”
비웃음을 섞은 촌평을 날렸다.
“너는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부적이었고, 내 경우에는 당장 내일이라도 폐기치려고 했던 녀석들이 말은 잘 하는구나.”
“부정은 못하겠네요.”
이브는 그리 말하며 조용히 쪼그라들었다.
뭐지. 내가 뭐라고···. 아.
“괜찮다. 네가 한 통속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히 같은 가치관을 가진 것뿐이지. 녀석들은 내가 쓸모없어서 묻으려 했지만, 너는 내가 악이라 생각해서 묻으려고 한 것 아닌가. 놈들은 사리사욕이지만 너는 정의를 집행하려 한 것이지.”
“윽. 힝. 엑···.”
이브가 조용히 쪼그라들었다.
뭐. 너도 나를 묻으려 한 건 마찬가지니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식사는 언제 하자고 했지?”
“언제든, 편할 때 연락을 달라고 하네요.”
“잘도 그러겠군. 길어봐야 이번 달, 늦어도 다음 달 내로 연락을 주지 않으면···.”
“네. 기묘한 소문이 퍼지겠죠.”
그래.
이넬디아는 손에 넣을 수 없다면, 밑작업부터 시작한다.
“나와 네가 더러운 꿍꿍이속으로 합작해 이 제국을 먹어 치우려든다. 라는 소문을 낼지도 모르겠군.”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런가?
그게 그렇게 되네.
“독사와 밥을 먹다니, 소화가 안 될 것 같구나.”
“뱀은 이시스 언니를 칭하는 게 아니었나요?”
“이시스는 그냥 뱀. 하지만 이넬디아쯤 되면 독사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지.”
어디보자.
“독사굴에 꼭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겠나.”
“네?”
“부르자. 식사는 저쪽에서 먼저 하고 싶다고 했으니 저쪽에서 찾아오게 만들면 그만 아니겠나. 최고의 만찬을 준비하지.”
이 말에 이브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 이내 웃어버렸다.
***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
현 세대 황손에서 위에서 세서 두 번째.
제1황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귀한 것만 보고, 남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요리는 최고급만 입에 맞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불려 온 적도 없을 터.
독사같은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있고, 인간을 말로, 제국을 체스판으로 보는 여자.
어떻게 보면 이시스의 초 상위호환. 이시스가 쩔어보여도 결국 위로 못 올라가고 캐스팅 보트를 자처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음이다.
그런 여자를 제프린으로 부르기 위해선, 꽤나 많은 밑준비를 해야 했다.
당연하지만 최고급 요리. 이건 이브가 말하길 황실 요리장수준의 실력을 가진 내가 대충 해결하면 된다.
그 다음으로는 식사할만한 장소. 이건 뭐, 글레스트 헤임 기숙사 중앙 홀을 빌리면 된다. 학창시절 떠오르고 좋겠지.
그렇게 식사 준비를 마치고, 이넬디아가 오는 것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내 옆에는 평소보다 우아한 자태로 앉아있는 이브 폰 로엔그린.
솔직히. 엄청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세다. 기분나빠.
“당신이 그렇게 멋부리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요. 기분 나빠.”
“······.”
놀랍게도 이브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군.
그렇다면 오늘 일정도 별 문제 없겠다.
그렇게 만찬 준비를 마치고 오늘의 주역을 기다렸다.
수십의 기사를 대동하고, 정문에서 시위하듯 들어오고 있는 이넬디아를 보며 우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래간만이군. 이넬디아.”
“오래간만이에요. 이넬디아 언니.”
이넬디아는 표정에서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중앙 홀로 걸어 들어왔다.
곁에 무장한 기사 두 명이 수행하는 것을 보니, 진짜 무력시위가 맞는 모양.
“설마, 너희들이 나를 부를 줄은 몰랐구나. 놀라운 초대였어.”
“그렇군. 오늘 이 자리에 와 준 것에 예의를 표하지. 기사는 물리는 게 어떤가. 가족끼리 대화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울프람. 이시스에게 손윗누이에 대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고, 그저 메신저라고 폭언을 내뱉었더구나.”
“음. 예의는 상호간에 합의되어야 지켜지는 것. 안타깝게도 그쪽이 먼저 무력시위로 나오는 바람에···. 이것 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면 나도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다. 이브의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주제를 알고 조용히 식사나 하려무나.”
“좋은 생각이고 올바른 생각이다. 그렇다면 어디. 내빈들까지 불러 식사를 즐겨볼까.”
“내빈? 내빈이라고 했니?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을 부르겠다고?”
이넬디아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하.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음. 이넬디아. 너도 기사 둘을 대동하지 않았나. 자고로 식사란 좋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 맛이 더해지는 법 아니겠나?”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단다. 이 자리에서 가장 상석에 있고, 너희들의 손윗누이며, 이 제국의 1황녀니까. 내가 지목하는 사람은 너희들보다 그 명예가 낮지 않음을 잊지 마렴.”
“그런가. 그렇군. 내가 초대한 내빈과 식사를 할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단다. 네가 초대한 내빈의 급을 생각하면, 시장통의 거지와 식사를 같이 하는것과 매한가지. 나를 불쾌하게 만들지 마려무나.”
“음. 그렇다고 하는데 말이다.”
내가 문 너머를 시선으로 힐끗 응시하자, 끼이익. 하고 방금 전까지 닫혀 있던 중앙 홀의 문이 열렸다.
그 앞을 막아선 기사들이 양 옆으로 일렬로 도열하고, 모두가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떤다.
위압감에 짓눌려 몸에 생기가 없으니 무기를 놓치는 추태를 보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사들 사이에서,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들이 시장통 거지들과 비슷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엘피라네 이모님?”
“아하하. 거지라···. 뭐 삼백년 전에는 얼추 비슷하지 않았나. 라이아?”
“잘은 모르겠지만, 고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마력이 부족했으니까요.”
설명조차 필요 없는, 이 제프린에 기거하시는 그레이트 올드 원 세 분의 등장.
“세 분 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현 제프린 황손이 세 분과 함께 친목을 다질 겸 식사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이브. 내 소중한 동생. 언니가 식사의 격을 떨어트리는 것 같아 미안하네요. 나중에 따로 만날까요?”
“이브. 내 소중한 제자. 시장통 거지같은 우리가 함께 식사해도 될까? 우리의 명예는 그 급이 낮아서 말이야.”
“이브. 내 소중한 동맹. 이렇게 예의없는 우리가 동석해도 될 런지요. 저희 얼음 요정들이 머물 곳은 역시 북풍한설의 한복판인가 봅니다.”
“설마요. 언니께서도 세 분의 참석이라고 아셨다면 그런 폭언은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셨을 거에요.”
이브는 세 명을 미소로 맞이했고, 잘 짜고 친 한 편의 연극을 보며 힐끗 이넬디아를 바라봤다.
음음. 딱 교과서에 그린 그대로 시선이 번지고 몸을 떨면서 식은땀을 흘리는군.
이 게임.
D/Z SAGA는 한국인이 만들어서 그런가 보편적으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유유서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삼백년 전 조상님과 야자 트던 어르신들한테 시장통 거지?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
이 순간 넌 호로자식 확정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