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45)
644. 예절주입
덜덜 떨면서 내 앞을 걸어가는 양갈래 꼬맹이는 거대한 화염 동굴의 입구 앞에 멈춰서서는 이쪽을 돌아봤다.
“저, 저기 인간···.”
“음. 뭐지.”
“안 뜨거워?”
“전혀 안 뜨겁다.”
“그렇구나···.”
원래라면 이곳은 무한작열이라 해서 초당 최대 체력의 50%의 도트 데미지를 받지만, 이렇게 태초의 루비를 들고 있으면 안전하다.
“자. 안내를 계속하지.”
“성소에 정말···. 정말 갈 거야?”
“물론이다.”
“그래···. 그렇구나···.”
녀석은 어깨를 다시 좁히고는 내 신화 포식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음.
신화 포식자도 불꽃을 먹어치우는데 한 몫을 하고 있어, 이 화염 동굴은 나에게 아늑하기 짝이 없구나.
어째 모양새가 그랑펠리시에 등 뒤에서 칼들고 협박하는 모습이지만, 설마 이 녀석이 칼 한자루 들이밀었다고 바짝 쫄겠어?
원작 기준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굽히지 않던 녀석인데 말이야.
녀석을 앞서 보내고, 그 뒤를 묵묵하게 걸으며 원작 스토리를 떠올렸다.
【허접. 허접 인간. 그래서 뭐야. 이 그랑펠리시에님의 발이라도 핥지 그래?】
【뭐? 우호? 내가 너랑? 저기 있잖아. 우호는 서로간에 줄 것이 있을 때 성립된다는 말 알아? 허접한 인간이랑 이 태초의 불꽃 그랑펠리시에님이 서로 줄게 있을거라 생각해?】
음.
조금 짜증난다.
꽈악.
“힉. 왜, 왜 그래 인간?”
“내가 뭘 했다고 그러지?”
“아니 칼을 쥐는 소리 들렸잖아. 방금···. 등 뒤에서···.”
나도 모르게 신화 포식자를 쥐는 손에 힘이 들어갔나?
눈치라고는 빠른 녀석 같으니.
아냐. 내가 뭐 칼 들었다고 너를 찌르기라도 하겠어? 뭘 그리 겁먹고 그러냐.
그냥 좀.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거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라.
아무튼, 이 녀석을 칼찌. 아니 음.
스토리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면, 처음에는 켈터스를 무시하던 녀석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점점 친하게 굴기 시작한다.
특히 태초의 루비에 가까운 불의 힘이 담긴 물건들을 구해올수록 진영 신뢰도와 친밀도가 올라간다.
【허접 인간.】
【삼류에 나약하고 금방 죽어버리는 인간 주제에···.】
【뭐 좋아. 이번 일은 삼류 허접에서 이류 허접 정도로 인정해 줄게.】
【수고했어.】
【······.】
【뭐. 전에 허접 인간이 했던 말대로 될지도 모르겠네】
【무슨 말을 했냐니. 까먹은거야? 잠깐. 허접 인간 주제에 나한테 한 말을 까먹었다고?】
【뭐, 그···. 뭐야. 너와 우호를 다져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그럭저럭 도움이 된 거니까!】
음.
그래. 그런 이벤트가 있었지.
아.
생각하니까 열받네.
1티어 보석을 가지고 왔더니 하는 말이 고작 저런거라고?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진짜 확 마 그냥.
꽈아아아악.
“저, 저기. 왜, 왜 그렇게 검을 세게 쥐어···?”
“음? 그랬나. 신경쓰지 마라.”
“드, 등 뒤에서 칼로 찌르려고? 진짜, 진짜로···?”
“아니 그런 것 아니다. 그저 쥐고 있을 뿐이다.”
“······.”
그랑펠리시에는 평소의 허접~ 삼류~ 쓰레기~ 하던 말버릇도 잊었는지 덜덜 떨면서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신경쓰지 말라니까 그러네.
아무튼.
더 추억을 해보자면, 켈터스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한 번 그랑펠리시에의 조력을 바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그랑펠리시에가 등장하여, 이렇게 말한다.
【흥!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이 허접 삼류가···.】
【여기서 다치지 말라고!】
【너와 나는 우호 관계니까, 네가 다치면 나도 허접 취급 받잖아!】
그리 말하며, 업화의 대군을 불러 그 최전선에 선 그랑펠리시에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다.
솔직히 말투는 싸가지 없어도, 그 모습 하나만큼은 멋있었다 할 수 있다.
음. 그 싸가지 없음도 지금 생각하면 희망의집 동생들 같으니 미운것도 그럭저럭 씻겨 나가는 기분이야.
어라.
그랑펠리시에 녀석. 사실 괜찮은 녀석이었나.
“그랑펠리시에”
“으, 응.”
“앞으로도 건방진 말투를 쓰지 말도록.”
“뭐···. 뭐라고?”
그런 말만 쓰지 않으면 나도 좀 더 편하게 너를 대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좋은게 좋은거라고 서로 이빨 드러내고 싸울 필요 없잖아?
“그러도록 해라.”
“아니, 네가 뭔데. 하급 인간이···.”
그랑펠리시에는 참기 힘들다는 듯 목소리에 분노를 실어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허나. 치솟는 불길은 사파이어에 의해 제어되고, 태초의 루비에 흡수되며 신화포식자에 잡아먹혔다.
“······.”
“그랬으면 좋겠구나.”
“노, 노력하도록 할게.”
뭐지.
이렇게 예절바른 아이였다니.
내가 지금까지 이 녀석을 오해하고 있던 건가.
“슬슬 도착했나보구나.”
“그, 그래 맞아. 이 앞이 바로 성소야. 정식 명칭은 창염의 성소.”
“그래. 그렇군. 일설에 따르면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다 들었다.”
“이, 일설···. 아. 하르크가 말한거야? 그래 맞아. 인간들은 감히 접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불꽃의 보물들이 있지! 잘못 건드리면 불타 죽을 걸? 아무리 너라고 해도 말이야!”
“음. 그럼 들어가도록 하지.”
“정말? 정말···. 들어갈 거야?”
“그럼 여기까지 왜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하지?”
내 말에 그랑펠리시에는 다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불길이 폭사했다.
나를 향해 덮쳐오는 불길. 말 그대로 창염의 성소라는 이름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건 들어오는 이의 자질을 시험하는 거겠지. 나약한 이라면 정말 그랑펠리시에의 말마따나 그대로 타죽었을 것이다.
문을 열자마자 옆으로 슬쩍 빠져서 내가 불꽃에 폭사당할 수 있게끔 각도를 비튼 그랑펠리시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 해치웠나?”
“안타깝게도 안 죽었다.”
해선 안 될 말을 했구나. 그 말만 안했어도 어찌 되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어, 어떻게···.”
“내가 태초의 루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또 잊었나?”
“윽. 으윽···.”
거기에 이 루비는 지금 나를 정말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모든 화염 공격의 강제 면역 상태’를 부여한다.
적어도 날 태워 죽이는 건 무리다.
“그럼 이 안의 보물을 내게 안내해 줄 수 있겠나.”
“시, 싫다고 한다면?”
“그런가.”
“그래. 싫어.”
이 안은 전부 불꽃 뿐이지만, 불꽃이 깃든 신수들이 있을수도 있다.
녀석들은 물리 공격도 섞어서 쓰기 때문에 나는 그랑펠리시에를 직시하고서는 신화 포식자를 꽉 쥐었다.
음. 일단 그랑펠리시에와 작별인사를 하도록 할까.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수고했다.
“그렇다면 너는 이제 필요 없다.”
“아, 알겠어. 안내할게! 안내하게 해주세요!”
“음? 안 해도 된다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안내, 안내 시켜주세요. 잘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부탁하도록 하지.”
“네···. 감사합니다.”
녀석의 눈이 퀭하게 죽는다.
음.
방금 리본 하나가 풀릴 뻔 하지 않았나?
기분 탓인가.
***
태초의 루비를 공격 용도로 쓸 수 없다 뿐이지, 이 불돌의 격은 그랑펠리시에를 가볍게 씹어먹는다.
같은 속성이라도 상위종에 거역할 수 없기에 계급제가 유지되는 정령의 특성상. 태초의 루비나 태초의 사파이어 같은 물건들은 그 시대 정령왕의 권력 강화 수단이면서 동시에 속성의 옥새(玉璽)와 같은 의미 또한 가진다.
이게 있으면 정통성도 입증되고, 이 옥새 앞에서는 현 정령왕도 거역하기 까다로워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다른 정령왕들은 어떻게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가.
정답은 바로 각 속성의 성소에 있는 보물들로 무장해서. 가 된다.
바꿔 말하면 이 창염의 성소는 그랑펠리시에의 보물고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자산.
다른 정령들이 세를 합쳐서 반역을 일으켜 옥좌를 탈환하려 해도 여기에 있는 보물로 무장한그랑펠리시에는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무엇인지 안다.
“무, 무엇을 찾는 거야. 인간?”
“태초의 옥좌다.”
“응? 태초의 옥좌? 그건 실전(失傳)돼서 없어. 하, 하하. 그래 찾는게 없다니 아쉽게 됐네. 인간의 허접한 정보로 그 보물의 이름을 알아낸 건 좋지만 여기에는 없거든?”
“그런가.”
“그, 그래. 아니 정말 없다니까. 애당초 태초의 옥좌는 스스로 자격을 갖춘 이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보물이다.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하, 하하. 아쉽게 됐네. 허접 인간. 그만 돌아가는게 어떤가?”
음.
알고 있다. 입수가 꽤 까다로운 보물이다.
원래라면 태초의 보석을 구한 후.
같은 속성의 정령족 호감도를 최대로 올린 다음. 성소에 들어가서 그 정령왕의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맹우끼리 서로 칼을 맞대야 하는 슬픔을 딛고, 상대를 쓰러트려 인정을 받은 뒤. 보석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나 태초의 종 된 자를 쓰러트려 그 자격을 증명한 이. 이 곳에서 불꽃의 군주를 자처하니, 그대 황명을 받들어 모습을 드러내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아···?”
눈 앞에 아주 작은 옥좌 하나가 나타나게 된다.
불꽃이 양각되고, 뜨겁게 타오르지만 그 형체는 틀림없는 ‘의자’.
허나 그 위에 앉는 것은 내가 아니다.
우선 옥좌 사이즈가 내 손바닥 크기라서 앉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럼 이걸 어디에 쓰느냐.
【태초의 옥좌】
【1T】
【한 속성의 정령의 신뢰를 얻고, 정령왕을 쓰러트림으로서 진정으로 자격을 갖춘 이 앞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옥좌입니다. 크기가 작아 인간이 앉을 수는 없지만 태초의 보석을 거치할 수 있습니다.】
【태초의 보석을 거치할 수 있습니다.】
【한 속성의 정령들과 최고의 신뢰를 쌓았습니다.】
【정령왕을 쓰러트렸습니다.】
【태초의 보석을 거치하시겠습니까?】
【1. 태초의 루비】
【2. 태초의 사파이어】
【태초의 루비를 거치합니다.】
【완성된 태초의 루비가 각인됩니다.】
【길고 긴 시련 끝. 당신의 여정은 하나의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업적. 완성된 원소의 주인을 달성했습니다.】
【이후 절대 소유주를 바꿀 수 없습니다.】
태초의 루비를 거치하자, 이내 옥좌가 화르륵 타오르며, 내 손아귀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듯. 나를 따르겠다는 듯.
그 위에 앉은 태초의 루비 또한 한 세트가 되어 두 번 다시 뽑아낼 수 없다.
“어, 어떻···게. 어떻게 한 거야? 옥좌···. 아니. 옥좌는 그렇다 쳐. 루비···. 루비는···.”
그랑펠리시에의 눈이 한없이 떨린다.
아마도 눈치 챘겠지.
이제 태초의 루비는 완전해졌고, 내게 귀속되었다.
“태초의 루비도, 옥좌도 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겠지.”
“아···?”
그나저나.
이게 되긴 하네.
원작 기준으로도 조건에 ‘정령족과 최고의 신뢰를 쌓기’ 랑 ‘정령왕에게 인정 받기’ 두개가 같은 속성을 지칭하진 않았거든.
즉 얼음 정령과 친해지고, 불꽃 정령의 성소에서 옥좌를 꺼내면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뭐. 그렇게 됐구나.”
“그렇게 됐구나. 가 아니잖아···. 네가 가진 그 보석. 그 보석이 없으면 나는···. 나는 저 망할 얼음 계집한테 영원히 이길 수 없다고! 아니 원래 그건 우리 정령족 거잖아! 돌려줘!”
“그렇게 됐다.”
“그렇게 됐다가 아니고!”
양 손으로 땅을 짚고 주저 앉은 그랑펠리시에는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눈불이 바닥에 하늘하늘 떨어진다. 쟤는 안구에서 불길이 흐르는구나. 처음 알았네.
하지만 뭐.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랑펠리시에. 여기까지 안내 수고했다. 원초의 루비와 원초의 옥좌는 본디 둘이서 하나. 이로서 완전해졌다 할 수 있다.”
“······.”
“그리 괴로워하지 말도록. 내 지금까지 길을 안내해 준 너를 위해 특별히 자비를 베풀 생각이다.”
“내게, 줄거야···?”
“아니. 그건 아니다.”
“······.”
울지 마라.
“태초의 보석과 옥좌가 하나 되었을 때. 가장 큰 이점이 뭔지 아나?”
“뭐, 뭔데?”
“이 불꽃의 권능을 언제든 다른 이에게 빌려줄 수 있다.”
“아···?”
설정상 왕이 옥좌에 앉아 그 권세가 절대적이니 군대정도는 얼마든지 빌려줄 수 있다. 라고 하던가?
아무튼 짧게 요약하자면 지금부터는 태초의 루비는 우리 파티원 전원이 언제 어디서든 캠프용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거기에 작은 꼬마 하나 추가한다고 별 일 생기는게 아니거든.
“그, 그럼···.”
“앞으로 내 말을 잘 듣는다면, 이 힘을 빌려주는건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다.”
“자, 잘 들을게. 잘 들을게···. 그러니까.”
“잘 들을게. 라.”
“으, 응?”
“아니, 조금 말이 짧지 않나. 그리 생각했을 뿐이다.”
“아···.”
“다시 한 번 들려주겠나?”
“잘 들을게···요.”
음.
아주 좋아.
예절 주입이 확실하게 되었구만.
【정령왕을 굴복시켰습니다!】
【당신의 업적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하르크 폰 로엔그린에 준하는 업적입니다!】
좋아.
드디어 이 녀석도 친구가 될 준비를 마친 듯 하다.
“앞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군.”
“네···.”
그렇게 벌벌 떨지 말고.
내가 잡아먹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