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50)
649. 사장님이 미쳤어요
오래간만에 네프티를 대동하고 제프린 문 밖을 나섰다.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선배님.”
“음. 그렇구나.”
우리가 향한 곳은 제프린 동부 너머. 라고 해도 바로 코앞이다.
가는 길에 식용 슬라임이나 고블린 정도만 나오는 아주 작디 작은 사냥터.
그곳을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하나의 거대한 정원.
즉.
빈즈의 정원이다.
말 그대로 콩밭. 콩 그 자체. 콩밖에 안 보인다.
네프티는 오래간만에 밀짚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꼈고, 나도 오래간만에 콩을 담을 배낭을 챙겼다.
“여기에 다시 올 거라고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가급적 올 생각은 없었다.”
결국 빈즈라고 해봐야 뉴비 시절 도움받는 회복, 혹은 보조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
스펙업이 되면 자연스레 사용 용도가 소멸.
그 뒤에 특수 퀘스트 받을 때 한 두번 올 뿐. 여기에 들릴 이유는 없다.
애당초 빈즈 조합식을 깊게 파는 건 나 외에도 몇 명 없었단 말이지.
허나, 오래간만에 빈즈 밭이 어떤 상황인지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특별 퀘스트 조건이 갖춰줬는지 궁금해서 찾아 왔다. 라는 건데···.
“역시나. 엄청난 양이구나.”
“네. 그렇네요.”
밭이 아니라 이건 뭐라고 해야할까···. 거대한 몬스터를 보는 기분이다.
빈즈가 서로 융합하고 합쳐지고 줄기가 대지를 뒤덮다 못해 주변 숲의 나무도 타고 오르고 있고, 난장이 났다.
“한 번 정리를 해야겠구나.”
“네. 그런데 어떻게···.”
“무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도록. 고작 제초 아닌가. 가끔 이쪽을 공격해오지만 ,제초에 지나지 않는다.”
“공격해 온다고요. 선배님?”
“음.”
빈즈의 정원은 안 들어갔으면 모를까, 초반에 재미 좀 보고서 방치해버리면 빈즈가 각성한다.
자신을 상처입힌 자를 적대하고, 주변의 모든 생물을 공격하며, 결국 숲까지 침식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특별 의뢰. 제초기를 돌려라!’ 퀘스트.
물론 나는 지금 퀘스트를 수주하지 않았지만, 그와 별개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지 빈즈가 이상 번식하고 있었다.
“빈즈에 그런 특성이 있었군요? 왜 학계에는 보고되지 않은걸까요.”
“이 제프린이 인공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 빈즈의 이상 증식 또한 위대하신 선조님의 안배중 하나지.”
농담 같지만 진짜다.
식재료 상대로도 결코 방심하지 말라는 의미였다던가. 뭐라던가.
“방심?”
“음. 이 곳의 빈즈는 공격해온다.”
“네···?”
하지만, 결국은 제초에 지나지 않고, 콩이 공격해봐야 콩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폭발하거나 얼어붙고, 때로는 감전하는 빈즈를 쏘아내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손 끝으로 빈즈를 툭 치자마자 휙! 하고 한 알의 콩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걸 심화포식자의 검면으로 슥 밀어내자, 내 뒤를 지나서 쾅! 하고 폭발음을 일으킨다.
“그저 조금 빠르게 옆으로 쳐내면 다 피할 수 있다.”
“선배님.”
“음.”
“쳐내는 건 피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회피나 패링이나 둘 다 피한다고 하지 않아?
***
그렇게 네프티와 한참 제초했다.
거의 세 시간은 넉넉하게 걸렸고, 오래간만에 함께 힘을 쓴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참을 들었다.
오늘의 식사는 네프티가 부탁한 ‘그것’
즉. 빈즈 쥬스와 보름달과 토끼가 그려진 ‘그 빵’ 맛이 나는 크림빵이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먹었던 그 식사를 맛보고 싶다기에 준비했지만, 역시 좀 부족하지 않나?
“아뇨. 대 만족입니다. 선배님.”
“그런가.”
“네!”
뭐. 추억을 회상하고 그것에 잠기기엔 넉넉하고도 남는 식사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남은 빈즈들 어쩌실 생각인가요?”
“그렇군. 지나치게 많이 생겼구나.”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로 많은 재고는 나도 곤란하다.
막말로 필티아 본체 정도의 사이즈를 수납해도 끄떡 없을 내 퀵 크리에이트용 재료 창고가 꽉 차버렸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음. 이정도로 남으면 나도 곤란하구나.”
어떻게 처리방법을 고민하던 도중. 아일라에게서 메세지가 날아왔다.
-울프람. 있나요?
-아일라인가. 무슨 일이지.
-저기 그게···. 스피카가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요. 잠깐 시간좀 내줄 수 있나요? 편의점에서 기다릴게요.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스피카가 곤란한 일이 생겼다는 구나. 우선 편의점에 돌아가봐야겠다.”
그렇게 우리 둘은 초토화된 빈즈 밭에서 일어섰다.
뭐, 빈즈는 사람을 시켜 정기적으로 정리하면 된다. 이브에게 짬때리면 알아서 하겠지.
***
그렇게 편의점에 돌아 왔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트라이스타 자매의 진지한 표정이었다.
큰 일인가?
“무슨 일이지.”
“저보다는 스피카가 설명하는게 빠르겠네요.”
“아, 오라버니···. 그게요. 저기···. 저희 공장은 천혜의 고도에서 재료를 수급해 오잖아요?”
“음. 그렇지.”
교내 폭력이나 왕따 문제. 혹은 이성 고민이 아니라 대뜸 사업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어깨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스피카가 해코지 당하는 일이 아니라, 사업 문제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아무튼. 스피카의 말마따나 우리는 천혜의 고도에서 재료를 수급하고 있다.
골렘을 투입해 정해진 목록만 채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최근 채집 목록에 있는 물건들 중 하나의 재고가···.”
“재고가 위험한가?”
“네. 위험해요.”
그리 말하고 스피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고가 모자라다면, 레시피를 바꾸면 될 일이다.
“얼마나 위험하지?”
“엄청나게, 위험할정도로 남아 돌아요. 재고가 터져 나가고 있어요.”
음. 방금 한 말은 취소.
절대 가볍지 않다.
생각보다 엄청 큰 문젠데?
***
마계의문 제6문을 넘어서면, 제프린에 이상현상이 발생한다.
우선 원정지에 크리스탈이 생겨나고, 그걸 해방하면 네임드 몬스터가 태어나지.
거기에 덧붙여 지형 자체에 이상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동부 숲에서 철광석이 대량 드롭되거나, 잠든 산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약초가 싹 사라지거나 말이다.
물론, 보통은 그리 큰 문제로 귀결되지 않지만, 엑스트라맵은 그 경향이 좀 다르다.
엑스트라 맵과 DLC 맵에 저 지형 이상이 걸려버리면, 가뜩이나 고급 재료들을 파밍해야하는 맵이 개판이 나고 마는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 뿐.
그 안에 있는 물건을 전부, 하나도 남김 없이 캐온 다음 강제로 밸런스를 맞추는 것.
“그래서, 뭐가 넘쳐나지?”
“설탕이요.”
“괜찮군. 설탕은 넘쳐나도 된다.”
“그리고. 우유요.”
그 말에, 모두가 굳었다.
어째서 우유가 바닥에서 솟아나는가, 그 우유는 정말 안전한가, 그런 걱정은 지금 하지 않아도 된다. 허공에 고정된 상태로 나타나니까.
정말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대마법 만만세다.
문제는, 그렇게 넘쳐나는 우유를 건드리는 순간, 유통기한 타이머가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최대한 노력해서 스택을 줄여야 한다. 즉 우유를 완벽하게 소모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유와 설탕···.”
“설탕은 그렇다 치고, 우유가 상하기 시작하면.”
“넘쳐나는 상한우유···.”
네프티와 아일라. 그리고 스피카는 그 모습을 상상하고 몸을 떨었다.
계절은 가을. 캐와야 하는 시간은 짧고, 소모해야 하는 시간은 더더욱 짧다.
“우선, 우선 우유와 설탕을 전부 긁어 모아라.”
“네? 네.”
인벤토리에 넘쳐나는 빈즈.
그리고 우유. 마지막으로 설탕.
“방법이 있나요. 울프람?”
“있다. 아니, 만들어내겠다.”
이게 있다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
2월 편의점 대행사. 발렌타인.
누군가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상대가 받을지 안 받을지 반반승부보는 청춘의 승부존.
하지만, 승부는 남녀상열지사뿐만이 아니라, 편의점 업계에서도 일어난다.
애들이 죄다 인싸라고 생각하는 초콜릿 제작사에서 대목이랍시고 온갖 포장을 화려하게 해서 납품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택받은 초콜릿은 누군가에게는 승부존의 에이스 조커가 될 수 있지만 선택받지 못한 초콜릿은 재고가 남는다.
유통기한이 그리 짧지는 않지만, 본사에서도 더럽게 많이 발주를 넣었는지 다음달에는 무조건 행사가 들어간다.
그 모든 초콜릿을 회수해 포장을 풀어서 재납품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기묘하게 많은 행사.
사장 형마저 올해도 그 때가 왔구만, 우리 편의점 상권이 중, 고등학교라 매출은 좋지만···. 어째 길거리에서 초콜릿 냄새 나지 않냐. 영진아. 라고 말 할 정도.
사장 형. 그때는 폐기나온 페로로로쉐를 먹느라 당연히 냄새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진짜.
길거리에서 미친듯이 냄새가 나거든요.
“자!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가 직접 만든 간식을 받아가세요!”
“공짜랍니다! 한 분당 하나씩 드려요!”
결국 내가 만든 것은 ‘전부 볶고 갈고 어떻게든 응축시킨다.’ 였다.
퀵 크리에이트는 ‘제조 물품의 품질을 떨어트리는’ 경향이 있고, 동시에 ‘급속 제작’이 가능하다.
즉 빈즈의 특성을 대부분 씹고, 아무튼 볶아서 가루내서 어떻게든 응고시킨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설탕과 우유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시스템은 분명 이렇게 판단한다.
【빈즈. 우유. 설탕으로 초콜릿을 제작합니다】
【빈즈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제작 품질이 떨어집니다】
【대량 제조에 들어갑니다. 품질이 떨어집니다】
【요리 스킬을 판정합니다. 반드시 성공합니다】
【그럭저럭 먹을만한 초콜릿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치.
재고를 털어내려는 편의점과 본사. 그리고 초콜릿 제조사의 발버둥을 보는 것 마냥. 만들고 또 찍어냈다.
나에게는 태초의 루비와 사파이어가 있으니 볶는것도 응고시키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제프린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줄 수 있는 간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분량이 나왔다.
“울프람···. 저 한동안 단 음식은 못 먹을 거 같아요.”
“저도입니다···.”
“저도요···.”
나를 도운 아일라와 네프티. 그리고 스피카는 단 냄새에 질려 창백한 얼굴로 코를 막았고, 나도 동의했다.
한동안은 단 것은 못 먹을 거 같아.
-울프람. 당신이 또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아무튼. 당신이 만든 간식을 먹었어요.
-솔직히 말할게요.
-나쁘지 않은 맛이에요.
그 때.
뱃살 녀석의 메세지가 들어왔다.
그래서 뭐지.
더 만들어달라고?
-이미 저에게 들어온 분량은 다 먹어버렸고, 다른 학생들에게 나눠준 걸 빼앗고 싶지는 않답니다.
-아무튼, 제 입맛에는 그럭저럭 맞았다는 이야기에요.
-그게 전부랍니다.
그게 전부라면 슬슬 메세지를 끊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에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지만 다른 학생들의 평가는 꽤 좋은 모양이에요.
-어떻게 아냐고요?
-이렇게 단기간에 제프린 전체에 과자를 나눠주는 웃기지도 않는 짓이, 제작만 한다고 될 줄 알아요?
-학생회 임원들이 듣자마자 발벗고 나서겠다며 지원했고, 그 결과 제프린 마법학부. 기사학부 전부 나눠줄 수 있었답니다.
-뭐. 당신이 만든 그 역행의 쿠키에 대한 보답이겠죠.
-다행이네요. 당신의 선행은 그럭저럭 인정받은 모양이에요.
······.
그런가. 그런 녀석들도 생겼나보군,
내가 무언가 대답하기 전, 메세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이건 저도 전폭적으로 지원했어요.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괜찮은거 맞나요? 지형에 이변이 생긴다면, 제프린 전체가 위험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괜찮았
뭐지.
마지막에 나를 걱정한 건가?
메세지는 끊겨서 들어왔고,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약 십 분 후.
다시 메세지가 들어왔다.
-당신은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괜한 사고는 치지 마세요.
-그럼 이만.
뭐 그럼 그런가.
이브가 나를 걱정할리가 없지.
-나는 괜찮다. 앞으로 협의하고 싶군
-네. 그러도록 하죠.
메세지는 잠시 멈추고, 다시 오분 후에 갱신되었다.
-맞다.
-혹여나 위의 메세지를 읽고.
-제가 혹시 당신을 걱정한 거 아닌가 같은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럼 이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