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84)
683. 쌍검
D/Z SAGA는 어려운 게임이다.
당시 플레이어중 누구도 반론하지 않았던 진실이며 폐사한 뉴비들이 트럭으로 용달보내면 한 대로 뭐 어쩔거냐고 화낼 정도다.
뉴비의 죽음. 피가 흐르는 강물에서 강하게 자란 것들이 우리들 고인물이다.
그래서 공략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겼고, 고인물들은 한 명이라도 뉴비를 더 살리기 위해 공략 시스템을 짜왔다.
일정 관리. 추천하는 필드. 보스전 공략과 팁. 공략 영상까지.
잘 생각해보자.
나도 다른 게임 가서는 님 컨 좀 되시네요 소리를 듣는 진성 겜돌이였음에도, 그런 내가 전력을 다해 공략에 임하였지만 완전한 공략을 내진 못했다.
최대 규모 카페의 이터널 완장이라 불리던 내가 그 지식을 전부 들고 이 세계에 왔음에도, 모든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는것만 봐도 이 게임의 난이도를 실감하게 해준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서.
그런 이런 게임에도 숨겨진 이스터에그가 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 이 나무 동굴의 보스 그림나르의 경우 사실 필드 전체가 그림나르기 때문에 공격을 피하면서 지면을 공격하면 된다.
그렇기에 녀석의 투사체는 기본적으로 피하기 까다롭다.
그래.
슈퍼영진으로 살아가던 시절에도 전부 피하고 쳐내는 건 까다롭다. 라고 공략에 적어야 할 정도로 이 놈의 투사체는 기괴하고 복잡하다.
지금 내 재주라면 뒤로 물러서면서 지면을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콕. 콕.
덜덜 떨리는 손으로, 후들거리는 다리로, 영문도 모른 채 내 말을 신뢰하며 바닥을 찌르는 녀석이 내 등 뒤에 있다.
파티원도 아니고, 원작 기준으로도 자주 동료로 삼았던 녀석도 아니지만 내게 신뢰를 보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보통 이 던전에 진입했을 때의 켈터스의 능력치보다 낮은 편이다. 리아가 조금이라도 공격을 분담해준다면 확실하게 상처 없이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공략은 처음부터 선택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공략은 실로 단순명확하다.”
눈앞에서 쏘아지는 수천의 갈래를 모두 베어내고.
등 뒤에 있는 후배도 지키며.
한 대도 맞지 않고 이 전투를 끝낸다.
그거면 된다.
“오래간만에 써야겠구나.”
오른손에는 신화 포식자. 왼손에는 소형 단검.
내가 D/Z SAGA를 플레이하던 시절 두 번째로 좋아했던 전투 스타일.
“검은 역시 쪼개져서 쌍검이 되어야지.”
***
리아 롯테는 눈 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눈으로 따라잡지 못하는 빠르기라거나, 전투의 수준이 너무 높다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직시했음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라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오른손으로 베었다. 왼 손으로 베었다. 그리고 다시 오른손으로···베었나?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정확하게는 검격과 검격 사이가 이상하다.
하나의 행동을 했다면, 다음 행동을 취함에 있어서 반드시 시간차가 생긴다. 쌍검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양 손에 동시에 무기를 들고 활용해야 하기에 숙련된 쌍검사가 아니면 누구도 추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상하다.
저건 단순히 쌍검을 잘 쓴다는 개념이 아니다. 쌍검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기괴하다.
수십 수백. 아니 그 숫자는 동굴 전체를 뒤덮어 아마 천을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전부, 쉬지 않고 쳐내고 있다. 이건 검사의 기술이 아니다. 아니 애당초.
“인간의 기술이긴 한 건가···?”
콕. 콕.
무의식중에 바닥을 계속해서 찌르면서도, 리아 롯테는 울프람의 그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기괴하고 복잡하지만, 그럼에도.
수를 셀 수 없는 저 촉수는, 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울프람의 검격에 전부 가로막힐 것이고, 결과 리아 롯테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안전할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
고인물이지만 당연하게 취향은 있고, 경향성을 띈다.
나는 다 할 수 있지만 가장 즐겨하는 파이팅 스타일은 캔슬과 카운터다.
상대의 공격을 저스트 캐치해서 완벽하게 패링하거나 카운터를 치고, 평타나 스킬 사이사이에 캔슬을 억지로 박아넣어 다음 공격으로 이어나간다.
솔직히 더럽게 힘들다. 패링 타이밍이 더럽게 짧은게 큰 문제다. 저스트 캐치는 약 0.4프레임. 그 내에서 카운터를 치지 못하면 그대로 데미지를 입고 나가 떨어진다.
허나.
노 데미지 클리어 업적은 이미 3,000 시간대에 찍었다.
그리고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맨손 클리어, 알몸 클리어, 눈 감고 보스전 하기 등등 수 없이 많은 업적을 따온 나다.
그리고 지금 하려는 것이, 약 4,000 시간을 소모해야 했던 플레이다.
어느날 평범하게 왼 손 직검으로 최종보스의 공격을 저스트 캔슬하던 슈퍼영진이 떠올렸다.
쌍검으로 저스트 캔슬을 하면 두 배 많이 캔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거 완전 병신같은 생각인데!
당장 하자!
그리고 했다.
오른손으로 막고 왼손으로 막는다. 는 결국 번갈아가면서 캔슬할 뿐이다.
요는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다.
0.4 프레임을 양손으로 쓴다는 느낌으로, 모든 타이밍에 캔슬하고 엇박자 평타를 넣을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1,000 시간. 겨우 감을 잡았다.
2,000 시간.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3,000 시간. 그 깨달음이 모두 헛된것이라 느꼈다.
그리고 4,000시간에 이르러 끝에 도달했다.
베고, 긁어내고, 튕기고, 흘리며, 다시 벤다.
오른손과 왼손이 동시에 움직이며 수 백, 수 천의 가닥을 쳐낸다.
두려워 할 거 없다. 수 천 가닥, 아니 수 만 가닥이 쏘아진다 한들, 내 몸의 피격 면적을 넘어설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건 극한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플레이임과 동시에.
결국 최고로 지랄맞은 리듬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판정을 퍼펙트 띄워야 하는 수 천 노트 짜리의 곡에 지나지 않는다.
베고, 패링. 튕기고, 다시 패링. 베고, 피하고, 패링.
신화 포식자는 당연히 놈을 포식하고 있으나, 좌수에 쥔 철검은 버티기 힘들다. 검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 버리고 다른 검을 뽑아들었다. 그 사이에 신화 포식자로 전부 쳐냈다.
생각해보면 신화포식자를 바닥에 꽂아놓고 먹으라고 시킨다음 일반 철검으로 튕기는게 더 재밌었을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어그로가 어떻게 튈지 모르니 속행하기로 했다.
“음. 잠시 잡생각을 했군.”
놈이 더더욱 절박해짐을 느낀다. 가닥을 묶거나 혹은 몇 발 사이에 다른 가닥을 숨겨 기습을 가하려 하거나, 필사적으로 나를 뚫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허나. 그래도 뚫을 수 없다.
벽 하나를 가득 메운, 저 줄기로는 내게 닿을 수 없다.
“어리석은 것. 고작 이정도로 이 몸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으냐.”
쿵.
내 몸의 몇 배나 되는 가지를 꺾어낸 그 순간.
그오오오오오.
놈이 울부짖고, 공기가 변했다.
2페이즈 돌입 연출이다.
어깨를 으쓱하고 몸을 풀었다.
“이제야 좀 즐겁겠구나.”
한 면의 벽에서만 쏘아지던 줄기가 천지사방에서 쏘아진다.
방금 내가 베어냈던 줄기마저 어떻게든 다시 엮어 내게 내던진다.
발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시야 밖 사각에서 날아오는 줄기는 날카롭다.
허나.
그럼에도 결국 조금 격해진 리듬게임.
“고작 그 뿐일 이야기.”
한때 이 녀석을 리듬게임에 비교하며 암흑지옥거병···이 아니라 괴수라고 불렸던 내게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난이도일뿐이다.
***
리아 롯테는 다시금 깨달았다.
세상에는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이다.
어째서 저 수 천의 가지를 모두 베어낼 수 있는가. 벽 한 면이라는 압도적인 크기를 상대로 작디 작은 인간이 어떻게 밀어 붙일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 가득이었기에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눈에 담으려고 했다.
아마 평생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저런 전투 방식이 있구나 저런 등이 있구나 라고 가슴에 새기기로 했다.
허나 그렇게 마음먹은 그녀도, 천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가시나무 덩굴과 그것을 받아내야 하는 울프람을 봤을 때에는 숨을 삼켰다.
“위험···.”
거기까지 말하고 뚝 멈췄다.
울프람은 그저 쌍검으로 원을 그렸다.
절제되고 아름다운 동작.
허나 그 일격을 끝으로 모든 촉수들이 녹아 내렸다.
천천히 녹아 흐르는 줄기들, 벽면의 얼굴, 숨막히던 공기가 사라져간다.
“읏.”
줄기 사이사이로 겨우 비치던 햇살 대신 멀리 터오는 동이 눈부시다.
숨을 들이쉬면 끔찍한 곰팡내와 썩은 나무냄새 대신 산뜻한 공기가 폐를 채운다.
남자. 울프람 폰 로엔그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가와 자신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절반 좀 넘게 했구나.”
“네, 네? 절반이라니요?”
설마 저 몬스터를 반 밖에 쓰러트리지 못한 걸까? 그리 생각하고 진지해지자, 울프람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 진입했을 때 이리 말하지 않았나. 나는 이곳의 수문장을 쓰러트리고, 너는 무사할 것이며,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이 곳을 나가서 느긋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제프린에 돌아갈 것이다. 라고 말이다.”
“네? 아···.”
“수문장은 쓰러트렸다. 너도 무사했다. 저 동굴에서 나왔으니···. 이제 두 개 남았구나.”
느긋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제프린에 돌아간다.
“아하, 아하하···.”
그 말에 리아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약속 하나는 잘 지키는 사람 아닌가.
“기분 좋게 웃는것도 좋다만, 그 전에 먹고 싶은게 있다면 말하도록. 메뉴부터 정한 뒤에 웃어라. 뭐든 말하도록. 오늘의 나는 기분이 좋으니 한 턱 내도록 하지.”
리아 롯테는 울프람을 빤히 바라봤다.
한 턱 낸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것이다. 빚을 만들고 싶지 않다. 누군가의 선의 뒤에 숨겨진 악의에 겁먹고 싶지 않다.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으니까, 자신은 세상 모든 것에 삯을 치르고 살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솔직하게 약속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순수하게 호의를 입에 담는다면···.
“황자님께서 가장 자신 있어 하시는 요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호오. 당찬 제안이군. 좋다.”
한 번 정도는, 그 호의에 기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그 뒤.
잠에서 깬 아일라와 네프티가 합류했고, 나무가 사라진 것에 놀랐다.
“울프람 무슨 일 있었나요?”
“미안하구나 아일라. 사실 저 나무는 보스 몬스터였고, 혼자서 처리했다.”
“그렇게 재밌는걸 혼자 하다니···.”
“음···. 혹시 화가 났나?”
“농담이에요. 화 안났어요. 울프람이 저를 부르지 않았다면, 저 보스는 제가 상대하기엔 위험하니까 배려 해 준 거죠?”
“음. 뭐, 그런 셈이다.”
“그러면 됐어요.”
아일라는 방긋방긋 웃었다.
네프티는 로열가드인 제가 지키고 싶었습니다! 라고 소리쳤지만, 끝내 이해해줬다.
그 뒤, 그림나르의 핵과 기타 재료를 전부 수습한 뒤, 제프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자 전하. 여기···. 창 돌려드리겠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리아가 내가 빌려준 창을 반납하려 했으나 거절했다.
“아니. 그건 네가 가지도록 해라.”
“어, 어째서죠?”
그야.
그 창은 이미 보스전에서 수 십 타를 먹인 장비고, 그건 압도적인 숙련도 향상으로 이어진다.
저 창은 지금 다른 누구보다 리아가 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다.
“네 손에 잘 맞지 않나?”
“그, 그건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매입하겠습니다. 어, 얼마인가요···. 이건?”
“아일라. 얼마정도 하지?”
“울프람이 직접 연마한 마창이죠? 마법적 기능은 자동 수복과 내구 강화. 강인한 일격···. 음. 매입가로는 3,000만 린 정도 되겠네요.”
“사, 삼 천···.”
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야 뭐, 이 세계에서 제대로 된 무기 하나는, 현대에서 최신형 자동차를 뽑는 것 이상으로 돈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리아는 끝끝내 반납하지 않았고, 나중에 다시 나와 원정을 가는 것으로 빚을 차감해주기로 했다.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음. 그러도록 하마.”
“네.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음.”
리아의 푸념.
“으, 으음. 어째 저랑 묘하게 겹치는 듯 한···. 하지만 리아 후배님이 더 최신식이니까···. 앗. 설마···”
그리고 영문 모를 네프티의 중얼거림.
“아. 울프람. 그러고보니 새로운 반역거리가 떠올랐는데요.”
아일라 다운 아일라.
녀석들의 재잘거림을 잠시 뒤로 한 채. 나는 잠시 다른 것에 집중했다.
【축하합니다】
【신검 신화 포식자가 수 없이 많은 난적을 만나 그 가능성을 한 층 더 진화시켰습니다】
【신화 포식자의 강화가 가능합니다】
녀석들에겐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시스템의 재잘거림이 가장 두근거리거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