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697)
696. Fire◎Flower
한밤 중.
편의점 앞 기숙사.
솔직히 말해 왜 여기에 기숙사를 지었는지, 어떻게 건설 허가는 통과 된 건지 의문이지만 황손과 약혼한 귀족가의 차녀가 짓겠다는데 딱히 말릴 이유도 없는 노릇. 이브 폰 로엔그린의 허가 아래에 스피카 트라이스타 명의로 오른 이 기숙사에는 생각보다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었다.
“여, 여기가 혹시···. 투숙객도 머물게 해주나요?”
손에 손을 맞잡고 어딘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데스크에 묻는 두 사람을 보며 스피카는 가늘게 뜬 눈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주세요.”
“네. 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연인을 위한 고해성사를 들어주며, 세계수 앞에서 연인의 증인이 된 이후 편의점으로 돌아온 연인이 눈 앞의 기숙사에 눈독들여 하룻밤 묵고 갈 수 있냐고 묻는 것.
스피카 트라이스타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파렴치하고 불경한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신분’ 혹은 ‘금지된 사랑’을 이겨내고 마음을 확인한 연인이 그 근처 기숙사에 들려 밤새 친분을 다지고 싶을 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렇게 쓰라고 내버려 둘 수는 없죠.”
근처에 적당히 골렘이 완전 관리하는 숙소 하나 정도 지어둘까···. 방음 설비만 확실하게 해서···. 대륙의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되겠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봄을 만끽하네요.”
“어머. 스피카. 지금은 가을인데?”
스피카는 슬쩍 언니의 얼굴을 봤다.
여동생인 자신이 봐도 단아하고 고운 얼굴이다. 요새는 구김살이나 독기가 빠져서 더 밝아보이는 표정.
이것도 저것도 다 울프람 오라버니와 잘 되어가기 때문이겠지.
포기할 마음은 없지만, 이렇게 태평하게 지내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가을이라도 꽃구경은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곳에 오는 연인들처럼 말이에요.”
“그렇네. 가을에 피는 꽃도 있는 법이지. 그러고보니 꽃이라고 해서 말인데···.”
“응?”
아일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떠오른게 있어요. 내일 울프람과 상의해봐야겠네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기숙사 안쪽으로 총총걸음으로 들어갔다.
스피카는 끝까지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
아침.
아일라가 찾아와 물었다.
“그러고보니 울프람. 요새 연인들을 이어주고 있죠?”
“음. 그렇지.”
“저 문득 생각난게 있어요. 제프린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랑의 묘약 이야기인데요···.”
“사랑의 묘약.”
“네! 뭐더라, 꽃이 있는데요. 그 꽃잎으로 만든 향수를 뿌리고 상대에게 고백하면 연인이 된다던가···.”
“음.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네, 네. 저도 허튼 소리라고는 생각하는데요.”
아일라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진다. 아무래도 내가 무시하고 있는 듯 느낀 건가.
사실 아니다.
나도 그 꽃과, 향수의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문 것이다.
왜 이제 와서 떠오른 것일까.
“아일라. 준비해라.”
“네? 어, 어딜 가나요?”
“···꽃 놀이를 간다.”
“꽃 놀이···. 네! 가요! 꽃놀이!”
“좋다. 그러면 파티원들에게 연락을 돌리도록.”
“네, 네!”
다른 파티원들을 모으고, 태초의 루비도 챙겼다. 신화 포식자도 넣었고 만일을 대비해 포션도 챙기고···.
아 포츈 쿠키도 챙겨야겠군.
“어서 가요. 울프람. 꽃 놀이!”
“이것 참. 그렇게 기쁜 일이 아닐텐데.”
“아뇨! 기쁜 일이에요. 울프람이 꽃 놀이를 가자고 했잖아요?”
그런가.
그렇게 기쁠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
파티원 전원이 바쁠 줄이야.
이렇게 또 나의 기대가 배신당했다.
대신 오늘은 특별 게스트가 한 명 꼈다.
그 이름도 귀여운 스피카 트라이스타.
녀석은 깡총깡총 나를 앞서 걸으며 가끔 뒤돌아보고, 뒤로 달려와 내 팔에 매달리는 등 귀여운 재롱을 떨었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자 에헤헤 웃는 모습.
그래. 여동생은 이래야지. 어디 뱃살귀신 말고 말이야.
“스피카는 일정이 괜찮나?”
“네. 괜찮아요! 그래서. 어디로 가나요?”
“뭐,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멀다고 할 수 있지.”
“네, 네?”
“따라오면 안다.”
“네! 어디든 믿고 따라갈게요!”
스피카는 땡글땡글한 눈과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꽃놀이라···. 기대되네요.”
“음. 나도 깜빡 잊고 있었다.”
“울프람이 꽃놀이를 잊었다고요? 그러면 저희들이랑 꽃놀이를 갈 생각이었나요?”
“음? 음···. 그렇게 되나. 크게 틀린 말은 아니구나.”
“기뻐요!”
아일라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계절을 잊은 꽃놀이라···. 기대됩니다.”
“음. 깜빡해서는 안 됐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 꽃의 진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진입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우리 입장에서 가기 엄청 까다로운 곳이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해야 하나.
북동부 망자의 평원을 넘어서서 더욱 북부로,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싸늘한 초원이 나온다.
정식 명칭은 이름 없는 초원이지만, 아무튼 여기가 우리의 목적지다.
“울프람. 여기는 꽃이 없는데요···?”
“뭐, 지금부터 문을 열면 된다. 따라오도록.”
“네, 네!”
그렇게 말하고 인벤토리에서 날개를 꺼냈다.
“이건, 어라 그러니까···.”
“방황하는 소천사의 날개다. 지금부터 문을 열 준비를 해야하니 조금 물러나 있어라.”
“네, 네!”
소천사의 날개 위에 포츈 쿠키를 손으로 으스러뜨려서 뿌렸다.
“우와···. 먹다 남은 과자 부스러기를 카페트에 흘린 기분이에요.”
“음. 주인에게는 나중에 사과하도록 하지.”
포츈 쿠키에는 아주 소랑의 축복이 존재하고, 이걸 날개에 밀어 넣는 것으로 축복이 채워진다. 그렇게 가득 축복을 채운 날개는 이내 스스로 빛을 내며 떠올랐고 그리고···.
“어라···?”
“포털···?”
아일라와 스피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열린 포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절경.
푸르다, 붉다, 노랗다, 보랏빛을 머금었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총 천연의 꽃밭이, 지평선 너머까지 퍼져있다.
시야 전체가 꽃으로 가득차서, 머리가 오직 꽃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단 한 순간이지만, 꽃이 하늘보다 많은 충격.
“와아···.”
바로 옆에서 아일라가 내게 살짝 의지해 감탄사를 내뱉었다.
***
천족은 사람의 감정을 먹고 산다.
숭앙. 숭배. 자신들을 의지하는 그 감정을 먹어 스스로의 힘을 강하게 키운다.
그렇기에 유즈나엘의 목소리는 듣기 좋고 사람을 홀리는 능력이 있고, 언젠가 인간이 천족의 감정 자판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르크는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하르크의 동료중 한 명은 축복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떻게 인간의 감정 기저에 파고들어 장난을 칠 수 있는걸까?
그걸 보다 좋은 쪽으로 이끌고 가면, 천족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행복해 질 수 있는거 아닐까?
인간의 힘으로 불행을 모두 지울 수 없다면, 가끔은 축복이라는 기적에 의지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그는 한 송이의 꽃을 빼돌렸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꽃을 빼돌려 천계와 중간계 사이에 문을 열고 그 안에 꽃을 심었다.
하르크 몰래, 린디 몰래. 결코 들키지 않게끔 행해진 일.
이 제프린에서 사랑을 꿈꾸는 이에게, 꽃이 찾아가 행복을 전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허나.
하르크의 동료였던 남자는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이 꽃이야 말로···.
“오라버니! 우선 돗자리부터? 아니면 식사부터 할까요? 꽃 놀이를 왔으면 놀아야죠! 자, 어서 놀아요!”
본론을 꺼내기도 전, 스피카가 내 팔을 잡고 이끌었다.
“음. 그렇구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지. 그럼 어디···. 조금은 놀도록 하자.”
“네!”
다행히 꽃놀이를 할 정도의 도구는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다 갖춰져 있었고, 우리는 돗자리를 깔고 식사를 준비했다.
신난 스피카는 꽃밭에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만들고, 음료를 준비했다.
스피카가 노래를 부르고, 그 행복에 맞춰 꽃잎들이 흔들렸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엄청나네요···.”
“음. 300년간 방치한 꽃밭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한 송이로 시작했을터인 이 꽃밭 전체가 화려하게 개화하지 않았나.”
아일라는 슬쩍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울프람. 여기 있는 꽃들이 혹시. 제가 말했던···.”
“그래. 아주 조금 가공하는 것 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묘약이 만들어지는 꽃이다. 이름은 섭혼화.”
“섭혼···. 영혼을 먹는다는 의미···. 인가요?”
“그 가공은 무척이나 쉬워서 말이다. 지금 제프린의 약제사들도 얼마든지 사랑의 묘약을 만들 수 있다. 들어오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지, 들어 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채취해, 약으로 제조할 수 있지.”
“그렇군요.”
“아무튼, 전설은 진실이었고, 생각보다 많이 위험한 물건이다.”
어중간한 천족이 이걸 눈치채고, 중간계를 전복시키려 든다면 많이 위험해 질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네!”
그러니까.
“스피카. 돌아와라.”
“네! 오라버니!”
사랑을 이루어지게 만드는 꽃.
청춘과 사랑이 가득 담긴 꽃놀이.
그런 시시한 꽃놀이는 전면 금지한다.
“지금부터는 불꽃 놀이의 시간이다.”
“네?”
화르륵.
태초의 루비가, 첫 번째 꽃에 불을 붙였다.
“음. 잘 타는구나.”
“그러게요. 잘 타네요.”
“꺄, 꺄아아아아아?! 오, 오라버니?! 언니이?!”
스피카가 화들짝 우리 곁으로 붙었다.
정말 잘 타네.
역시 꽃놀이는 불꽃놀이만한게 없다니까.
거짓된 사랑따위, 전부 타올라버려라.
***
그렇게 일련의 불꽃놀이가 끝났다.
“미, 믿을수가 없어요.”
스피카의 눈이 퀭하게 죽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모든 것을 설명해줬다.
여기는 중간계와 천계의 사이.
아주 쉬운 방법으로 문을 열고 꽃을 채취하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묘약이 나온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스피카는 결국 끝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구나 스피카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 아뇨. 저도 납득했어요. 그리고···.”
“음?”
“얼마든지 이용하실 수 있었을텐데, 모두를 위해 태운 그 결단은···.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오라버니.”
“······.”
나는 조용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상 끝까지 펼쳐진 꽃밭은 전부 타버렸다.
태초의 루비는 중간계의 시작점이며 원소의 주인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축복’과 ‘저주’를 카운터치며, 동시에 극도로 그 두 개의 힘을 싫어한다.
힘을 조금 쓰는 것 만으로도 저 정도 풀밭은 전부 태워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
아무튼 화려한 꽃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 앞을 걸어가던 스피카를 보고, 아일라가 살짝 붙어 속삭였다.
“울프람. 기분이 안 좋아보여요. 혹시 태운걸 후회하나요?”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그러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게 있나요?”
“그저, 저 꽃의 존재 자체가 기분 나쁜 것 뿐이다. 마음을 쓰게 했군. 이해해다오.”
“아뇨. 저 꽃이 그렇게 싫었군요. 미안해요. 제가 눈치 채는게 늦었어요.”
아일라가 사과할 일은 아닌데 말이지.
하지만 저 꽃이 너무나 싫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마물이다. 약에 의존해 사랑을 믿고 사랑을 나누고, 결실을 맺었을 때. 그 결실은 행복할까?”
“울프람?”
“아니. 잊어다오. 허언이었다.”
쯧.
아무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영진 자체가 잘못된 사랑의 결실이 아닐까 하는 피해의식이,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있나 보다.
내가 사랑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다.
이영진도 울프람도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나서 그런가. 하여간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나아질 때도 됐는데 말이야. 가끔 발작버튼이 눌린다니까.
내 그런 발작버튼을 억누르듯 옆에서 한참을 생각하던 아일라가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울프람은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면, 그건 가짜라는 이야기죠?”
“음? 음. 그렇게 되는구나.”
“후후. 저도 그래요. 사랑의 묘약이라는 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마약에 지나지 않는걸요.”
“이해해 주는가.”
“물론. 제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아일라의 그 미소에, 나도 한결 안심했다.
이 녀석은 언제나···.
【황실 혈통이···.】
방금 무엇에, 왜 안심했지?
다른 것 보다 황실 혈통이 무엇을 억눌렀지?
“울프람?”
“아니다. 돌아가도록 하지.”
“네. 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