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03)
702. 탑 시크릿
칠흑보다 깊은 어둠 속.
샤스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간은 새벽 두 시.
아무도 없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하는 명상.
평소와 별반 다름 없는 밤이다. 있는 곳이 변했지만 위치는 존재를 바꾸지 못한다.
자신이 옥좌에 있어도, 하천 바닥을 기어 다녀도 샤스타는 샤스타. 초월종이란 인세의 굴레에 묶이지 않는 법이다.
그리 생각하고 조용히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이 바뀌었다.
그래.
어디에 있든 나는 샤스타.
어둠을 지배하는 일족이자 가장 정순한 흡혈귀.
지금은 한 밤 중.
누구도 나를 강제할 수 없다.
나는 이 순간···.
딸랑.
“아. 어서오세요. 울프람 편의점입니다.”
“······.”
몸에 학습된 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손님은 이쪽을 힐끗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가리는 검은 알의 안경을 쓰고, 마스크로 입을 막고 몸을 천으로 칭칭 동여맨 금발의 여성.
그녀는 사탕 통 다섯 개를 집어서 한 번에 계산하고는 다시 이쪽을 보고 떠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그녀를 떠나보내고, 샤스타는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어둠의 권속.
어둠의 주인.
하루의 절반을 지배하는 존재.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
드디어 편의점에도 야간 알바가 생겼다.
그것도 무려 초월종 백수. 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인가.
사고 날 일도 없고 만에 하나 진상이 나와도 제압 가능하며 동시에 네 개의 편의점을 취합 보고까지 해준다.
이렇게나 편리한 알바생이 또 있을까보냐.
물론 그녀를 무급으로 피 한방울만 주고 부려먹을 생각은 없다.
편의점은 상생과 공존을 목표로 해야 하고, 사장 형도 나에게 따박따박 폐기와 함께 시급 맞춰줬다.
심지어 그 형은 주휴수당까지 줬으니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빛 아닌가.
적어도 그의 뜻을 이어받아 이 세상에 편의점 업을 넓히려는 나는, 첫 단추부터 잘 끼워 넣어야 한다.
‘편의점은 파는 물건은 좋은데 사람 부리는 게 험악하고 시급도 짜서 가장 미천한 일자리’ 라는 인식이 박히기라도 하면, 사장 형을 볼 낯이 없다.
그러니까 일을 한다면 확실하게 지불하자.
물론 샤스타가 바라는 건 내 피 뿐이고, 하루 한 방울 이상 주면 애 버릇이 나빠질까 고민되기 때문에 다른 것을 준비해주기로 했다.
그게 바로.
“샤스타. 여기로 오도록.”
“사람이 밤을 샜으면, 낮에는 자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네가 나의 계약자라고 해도 흡혈귀를 부리는 게 너무 험하군.”
“조용. 따라와보면 안다.”
그리 말하고, 나는 편의점 본점 창고 안쪽.
방금 막 공사를 끝낸 지하실로 안내했다.
“여긴···. 뭐냐. 창고 재고 정리라도 시킬 셈인가?”
“무얼. 들어가보면 안다.”
녀석을 안으로 밀어넣고 아주 작은 등을 켰다. 보라색 불빛이 방 안에 은은하게 퍼지고, 녀석은 내부를 돌아봤다.
“호오···.”
“마음에 들었나?”
“물론이다. 이것 참. 이런 걸 다 준비했나. 그렇군.”
녀석은 흡혈종. 동시에 천장에 마력으로 매달려 자기 때문에 마력 흡착 재질이 좋은 기둥을 세웠고, 아래로 길게뻗은 기둥에는 폭신한 매트를 감았다.
“이건···. 음. 좋구나. 이런 수면 방법이···. 허어. 이것 참···. 흠흠.”
샤스타는 폭폭 기둥을 때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잠들기 전에 계산서를 다시 쓰도록 할까.”
“설마, 이 장소를 제공하는 대신 피를 줄이겠다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피 말고 급여 계산도 해야 하지 않겠나.”
“피가 아니면 딱히 필요 없다만···.”
“그건 네가 피 외의 취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보자. 최근 제프린의 최저 시급은 이 정도니까 여기에···.”
얘는 네 명 분 일하니까 네 명 어치 시급에 야간수당 따로, 주휴수당 따로 지급하기로 했고, 그 액수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럼 여기서 이 지하실 사용료는 무료로 치도록 하지.”
“여, 여기를 공짜로 빌려준다는 말인가?”
“음. 더 바라는 게 있나?”
“없다. 여기서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죄 아니겠나.”
나는 슬쩍 주위를 바라봤다. 세로로 놓인 기둥침대와 옷장. 테이블. 의자. 거기에 1인용 식기.
“그러고 보니 씻는 건 어떻지? 흡혈귀는 흐르는 물에 약하지 않나?”
“뭐, 좋지는 않다만, 인간 세계의 규칙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하루 한 번 씻는 것 정도는 어떻게 버틸만 하다.”
“그거 훌륭하군.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나?”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 정말 아무것도···.”
“지금 생각났는데 말이다. 피의 품질을 유지시켜주는 보관함도 필요 없나?”
“······.”
필요합니다.
작게 읊조리며 녀석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그것도 추가하도록 하지.”
“······.”
이것 참.
***
그리고 저녁.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샤스타는 폭 폭. 침대를 두어 번 때렸다.
훌륭하다. 실로 훌륭하기 그지 없다. 이런 수면 기구가 존재했었는가.
거기에 오늘은 업무 첫날이라며 울프람이 직접 손끝을 따서 피를 두 방울이나 넣어준 혈액팩이 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다.
“피 두방울은 한 방울의 두 배의 값어치가 있지.”
찔끔.
지상계의 주인 된 자의 정통된 피는 한 방울만으로도 흡혈귀를 미치게 만드는구나.
“그럼 어디. 다시 업무를 하러 가 볼까.”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며, 업무를 개시했다.
머리 네 개중 세 개를 동시에 쓰며 손님을 접객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제 겪어본바 손님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꽤 할 만한 일 아닌가.
그리 생각하며 앞치마를 두르고 매대에 자리를 잡고 서자 마자.
“심야 영업을 한다고 들었는데요···. 고기도 파나요···.”
“사탕···. 있나요.”
“아하하! 바닐라! 편의점이 진짜 밤에도 영업한다!”
“조용히 해. 몰래 나온 거니까.”
“어, 마,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뭔가. 이상했다.
정확히는 손님의 숫자가 어제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
아침.
전 날의 매출표를 확인하러 샤스타의 본체를 부르자, 어둠속에서 기어나온 샤스타는 어딘가 지친 표정이었다.
“지쳐 보이는군.”
“밤에, 손님이 너무나 많았다. 진짜 많은 일이 있었다.”
그건 매출표만 봐도 알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이 팔았네.
한 사람이 하나만 보면 모를까 이 녀석은 혼자서 매점 세 개를 관리하는것과 같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그만 둘 것인가?”
“아니···.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만.”
녀석은 힐끔 나를 바라봤다.
일단 피 때문에 포기 못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본인을 대우해 준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거겠지.
“그렇군. 좋은 생각이다.”
“음. 으음···. 계속 오늘 심야만큼 북적이는 건가?”
“더 북적일수도 있다.”
“진정으로···?”
샤스타는 머리를 감싸쥐고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몇 명을 깨물어서 기간제 권속으로 만들어서 일을 시키는 건···”
“그럼 내 피를 그 권속들에게 주도록 하지. 샤스타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피를 먹을 자격이 없군.”
“으, 으음. 그렇게 차갑게 말하지 마라. 알겠다. 안 하도록 하지.”
나 참.
제프린을 흡혈귀의 도시로 만들 셈인가.
“지금 너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고 있다 생각한다만.”
“그건 반박하지 않으마. 대신 피를 한 방울만 더 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 흡혈귀는 피로 인해 강해지고 그 영향력이 늘어난다. 너의 정순한 피는 흡혈귀들을 미치게 만들 정도의 힘이 있다. 그러니···.”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이 녀석은 원작에서 어떻게든 이브의 피를 빨려고 했고, 이 녀석의 난이도를 극한으로 올리는건, 녀석의 밤피르 바이트(Vampir bite)가 이브에게 적중 했을 때다.
【으으으음! 빛의 존재의 피는 실로 내게 잘 맞는군!】
【9초 경과! 초월종의 시간을 9초나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소리를 하면서 어둠과 동화해 모든 공격에 이뮨(Immun)을 가진다. 거의 모든 공격을 절대적으로 흘린다는 의미.
그 때 이브의 피를 배부르게 먹었을테니, 많이 주면 안 된다.
“안 되겠나 사장? 진짜 한 방울이면 된다···.”
“흠.”
하지만 한 방울 정도라면 뭐. 괜찮나.
만약 얘가 사고를 쳐도 필티아랑 엘피라네한테 부탁하면 그대로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공짜로 주긴 그렇고.
“재미있는 정보를 얻고 싶구나. 내가 모를 법 한 옛 정보들 말이다.”
“음. 나는 태생이 이 모형 정원에서 살아서 말이다. 조직의 존재인 네가 모를만 한 정보는 이 섬의 정보밖에 없다만?”
“그거면 됐다.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신비하고도 오래 된 정보들을 저울 한 쪽에 올리면, 그 반대편 접시에 내 피를 올리도록 하지.”
“하면···. 좋다. 어디. 이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선 꿈의 이야기임을 전제로 깔고서 말이다. 어둠을 근간으로 삼는 우리는 꿈에서도 깨어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안에 가장 신비하고도 운무에 몸을 감춘 공간이···.”
“몽경성역 말인가.”
“어째서 알고 있지······?”
그러고 보니 이비랑 만난지도 꽤 됐네.
“그, 그럼 이 섬의 끝 지하에 있는 인형들만 있는 도박장이···.”
“음. 꽤 신비한 것들을 교환할 수 있지. 수익에 따라 갈 수 있는 방이 따로 있더구나.”
“어째서···.”
어째서 알고 있냐니.
아니 그것보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 밖에 말 못 해?
“아무래도 피는···.”
“그, 그럼 이건 어떤가. 진짜. 진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다. 네 선선대. 그러니까 나와 계약했던 그 빛의 존재 말이다. 그 녀석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알고 있다.”
“어서 말해보도록.”
“어, 어?”
“어서 말해보도록. 가급적 빠르게. 급하다.”
“하, 하지만 정말 수치스러운 과거다만? 네 가족의 수치를 알고 싶은 거냐? 보통은 가족의 수치는 숨기려고 하지 않나?”
“그럴리가. 어서 말하도록.”
“하, 하지만···.”
“너는 분명 어제 선선대를 배신하고 나에게 붙겠다고 했다. 배신했다면 배신자답게 전부 불도록.”
“음. 그렇구나.”
내 선선대.
내 선대가 이오라면, 그 위는 이시스다.
이시스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기억이라니, 이 얼마나 유쾌하고 신나는 비밀일까.
“음. 그렇구나. 그러면 말하도록 하겠다. 정말 괜찮겠지?”
“그래. 너는 배신했지만, 배신할 걸 예측 못한 이시스의 잘못이다. 네가 배반의 짐승이라 욕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좋다. 그러면 어디···. 네 선선대. 그러니까 자기를 이시스 폰 로엔그린이라 소개한 여자가 이 낙원 북동부에 있던 허름한 내 성을 찾아왔을 때 말이다.”
“그때는 거기에 살았던가.”
“그랬지. 그때 그 여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당차게 북동부에 혼자 왔고, 나와의 거래를 제안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낮과 밤의 교차점이었다. 당연히 나는 잠을 설쳤다.”
“그랬군. 그래서?”
“음. 어둠의 힘을 개방했다. 무척이나 화가 났거든. 조금 겁을 주려고 해서 말이다.”
“호오.”
그랬군.
이시스 폰 로엔그린이 처음으로 초월종의 힘을 접했을 때인가.
“그래서?”
“음. 어린 나이였지만 당차긴 했다. 내 힘을 견딜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 말하며 샤스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서론이 길군. 그래서 그 수치스러운 과거가 뭐지?”
“거기서 말이다. 음. 공포에 질려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해야 했다 하나. 음. 이것 참.”
그리 말하며 샤스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공포에 질려.
영역 표시.
아하.
그렇군. 그러셨다. 이거지.
“하하하. 그런가. 그 천하의 이시스 폰 로엔그린이. 뱀파이어를 보고서 말이다. 공포에 질려서···. 으하하하!”
“음. 뭐. 이런 비밀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부터 하루 한 방울씩 주도록 하지. 무얼. 더 바라는 게 있나?”
“어, 어?”
그래.
천하의 이시스 폰 로엔그린이 지리셨다. 이 말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