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13)
712. 분홍색 한 세트
“음. 으음···. 으으으음.”
제프린 서부. 그것도 외곽 너머.
열사의 지옥을 돌파해야만 나오는 드래곤의 둥지.
그것도 얕은 곳이 아니라 둥지의 심부.
드래곤들이 보통 보물에 죽고 못사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당연하게도 이곳은 보물전이다.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남긴 진짜 유물들, 몇개만 반출되어도 세상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기물들이 모인 곳.
둥지의 주인인 필티아 블루브리즈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너무 많지···?”
그녀의 가슴은 지금껏 없을 정도로 꿈에 부풀어 차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현실이란, 그녀가 300년간 살아온 발자취다.
인간이 1년을 살아도 제때 정리를 안 하면 물건이 쌓이고 그 안에서 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 땅에서 평생을 살겠다고 생각한 드래곤이 물건을 쌓기 시작하면, 하루에 모래 한 알을 쌓아도 300년이면 10만 알이 넘게 쌓이는 법이다.
즉.
필티아는 자신의 둥지 구석에 짱박거나 혹은 정리하는 것을 깜빡한 보물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금화들, 그 외에 잡동사니들이 한데 얽혀있는···. 보물고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대외적으로, 그러니까 접객용 보물고나 파파의 보물을 단정하게 정리해 둔 곳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정리에 실패한 장소를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이 땅을 나가서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보겠다는 꿈.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집과 보물고를 어떻게든 정리하기는 해야한다는 냉정한 현실.
둘 사이에서 필티아의 고뇌는 깊어졌다.
“어쩌지···.”
정리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녀의 본체보다 몇 배는 큰 잡동사니의 산을 보며, 필티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는 수 밖에 없겠네···.”
이 세상 누구보다 믿을 수 있는 동생이라면, 분명 도와주리라.
***
블루 드래곤이 편의점에 내습한 것은 어느 오후였다.
“동생 있니? 누나란다. 오늘은 누나가 동생에게 특별히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혹시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거란다.”
나는 나름대로 필티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녀석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말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
내가 필티아의 용아병이라고 불리는 정신병자 집단은 아니었지만, 외로움에 지친 어린 드래곤이라는 설정은 내 가슴을 울렸거든.
아무튼 각설하고, 이렇게 필티아가 말을 빠르게 하며 시선을 마주하지 않을 때는, 대충 정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별한 부탁이고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건 상관 없겠지만, 꽤 오래 걸리기는 하는 부탁인가?”
“앗.”
필티아는 양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힐끔 이쪽을 바라본다. 나 참.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드래곤이 뭘 그리 눈치를 보는지.
“뭐든 들어주도록 하지. 자. 편하게 말하도록.”
“그게···. 동생. 누나가 말이지 동생의 말은 항상 믿고, 언젠가 이 제프린에서 나갈거라는 확신도 하고 있거든?”
“음. 좋은 일이군.”
“하지만···. 그래서 반대로 걱정이야. 누나가 이 제프린을 비운 사이에 불충한ㅅ ᅟᅢᆼ각을 가진 학생들이 누나의 둥지를 털면 어떻게 하지?”
“그건···”
생각해보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학생들의 상향 평준화로 서부를 돌파하고, 드래곤의 둥지에 다다른다.
물론 방어 마법은 무척이나 강하고 언령 수준이겠지만, 마법 자체를 절단할 수 있는 마도구를 개발하던가 하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상에 그런 물건의 개발이 나 혼자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만이다.
“그건 곤란하군. 그래서?”
“그래서, 중요한 보물이나 빼앗기면 안되는 물건들을 지금부터 정리하는게 옳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단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그, 그런데···. 그 양이 조금, 많이 많아서···.”
“나보고 도와달라는 이야기였나. 300년간 하지 않은 방청소를 동생에게 시킬 생각이로군.”
내가 그리 말하자 필티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참.
“알겠다. 돕도록 하지.”
“정말이니?”
“물론이다. 대신 보수는···.”
“정리한 물건의 삼 할을 동생이 가져가도 좋단다. 단, 규격 외 보물은 누나와 상담할 것!”
“거래 성립이다.”
필티아와 악수하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어디.
합법적 드래곤 레어 털이를 시작해볼까.
***
필티아의둥지에 와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응···.”
“혹시 청소라는 개념을 알고 있나? 자신이 어지른 것을 정리하는 건데 말이다.”
“그, 그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단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보물고에 그 개념을 적용시키지 못했지?”
“그게···. 다른 보물고는 깨끗했잖니, 어지럽히지도 않았고 말이야. 유독 여기만 그런 거란다.”
“여기만 지저분해야 할 이유가 있었나? 부디 들려줬으면 한다.”
“······.”
“그렇군. 누나.”
“응?”
“다른 보물고는 누나가 정리한게 아니라, 아직 누나의 마수가 뻗지 못한 것이다.”
“네···. 맞는 말씀이세요.”
드래곤이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인다.
나 참.
“질타할 생각은 없다. 어디. 천천히 시작하면 되겠지.”
“천천히···. 어떻게?”
“이렇게다.”
내 몸의 수 십배는 될 것 같은 금화의 산.
그 안에 괴, 무구, 갑옷, 보석, 심지어 삐죽 튀어나온 성배나 마도서까지 보인다.
즉 필티아는 어디선가 금화를 캐모았고, 스스로 주운 보물을 대충 보물산에 쳐박은 셈이다.
하르크가 만든 보물고는 최대한 보존했지만, 이 제프린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돈이나 보물은 대충 쌓아놨다고 보면 되겠지.
그게 무려 300년 분량이니···.
각성하고. 나에게는 ‘퀵 크리에이트용 인벤토리’라는것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제작’에 필요한 재료밖에 담지 못하지만, 인벤토리라는 개념이 없는 이 세계에서는 거의 치트키급 사기 스킬이다.
왜냐하면, 이 게임에서 제작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평소에는 상상도 못한 물건을 재료로 쓸 수 있기 때문.
예를 들면.
“와아···.”
“흠. 역시나.”
【10,783린을 보관합니다】
【883,725린을 보관합니다】
【1,568,425린을 보관합니다】
‘린’
이 세계의 화폐 또한 재료로서 취급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보관할 수 있다.
내가 손을 가볍게 가져다대자마자 린이 내 인벤토리 안으로 들어온다. 최근에는 지폐로 쓰는 것이 대세지만, 본디 린은 동전이었고, 당연하게도 필티아의 레어에 있는 린은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는 원시 고대 화폐다.
그렇게 한 번, 마치 지방 흡입기를 이브 뱃살에 대고 돌리듯 린을 빨아들이자···.
후두둑. 쿡. 촤르르륵. 쾅. 둥.두두둥.
린과 린 사이에 파묻혀있던 보물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바닥에 쏟아진다.
“린은 총 얼마 있었니?”
“아직 전부 정리한 건 아니다. 이 산의 일부분···. 그러니까 약 십 분의 일 정도를 흡수했다고 보면 되겠군. 그 금액은···. 팔십억 린 정도 된다.”
“와아.”
미쳤네.
바닥에 천억 린을깔아놓은거잖아.
혹시···. 진짜 정리정돈이라는 개념을 모르는걸까.
“이제 무구는 무구대로, 방어구는 방어구대로 정리하면 된다. 그건 할 수 있겠지?”
“무, 물론이란다!”
대답은 잘 해요.
그렇게 필티아와 보물을 정리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대부분 아는 보물들이군. 흠. 흑연의 곡옥. 여기에 있었나.”
“응? 아···. 그 돌? 누나가 올해 여름에 마력 탐지를 돌렸는데 걸려들어서 주워왔단다.”
“마력 탐지를 돌렸다?”
“응. 숲이나 바다에 가서 마력을 탐지했을 떄. 사물에 마력이 탐지되면 ‘무언가 특수한 능력이 있는 것’ 이잖이? 그렇게 보물 탐색을 하러 다니거든.”
뭐야 그게.
그런 짓을 지면에 대고 했다간 마력이 얼마가 있던 남아나질 않는다.
이브라고 해도 기절하고 쓰러질건데 말이지.
이게 마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개사기 종족인가.
아무튼.
이 흑연의곡옥은 원래 시에스타의 전용 무기다. 세뇌 확률을 올려주고 자신의 몸을 어둠에 감춘다.
시에스타가 너무 빨리 악행을 접고 항복했기에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나.
아무튼.
그렇게 둘이서 금화의 산을 치우고 보물을 분류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점차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보물은 대부분 그 정체를 아는 물건들.
필티아의 감각으로 파 낸 보물은, 내가 맵핑하면서 찾아낸 보물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직 기대를 놓고 다 포기하기엔 이르다.
필티아가 만든 금화의 산은 당연히 입구쪽에서부터 최신이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옛 보물일 터.
전부 다 정리할 즈음에는 나도 설정집에서만 읽었던, 그게 아니면 설정조차 없었던 보물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물을 정리하던 도중.
연분홍색의···. 양 손으로 들어도 가볍기 그지 없는상자 하나가 나왔다.
“이 상자는 뭐지. 처음보는데.”
“아···. 읏. 그거 누나한테 주렴. 어서!”
“음? 음. 알겠다.”
필티아는 빠르게 상자를 낚아채 품 안으로 숨겼다.
그리고 그 사이. 뇌 속 데이터베이스를 몇 번이고 돌린 결과.
저건 내가 처음 보는 보물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
청소를 모두 마치고 필티아는 상쾌한 표정으로 웃었다.
“고마워 동생!”
“음. 아니 그리 기뻐할 것 없다. 나도 정당한 보수를 받았으니 말이다.”
어마어마한 린.
그리고 그 안에서 그나마 내가 챙길만한 보물들 몇 개.
“그런데 보물을 너무 덜 챙긴 것 같은데···. 누나가 몇개 더 넣어줄까?”
“아니. 내가 원하는 보물이 있기에 챙기지 않은 것이다.”
“으, 응?”
“필티아 누나. 누나가 아까 숨겼던 상자.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궁금하다.”
“어, 어라. 그런게 있었나?”
“모르는 척 할 생각인가. 그렇게나 격한 반응을 하며 빼앗아 가 놓고?”
“······.”
“그 보물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말이다. 가능하면 그걸 받아가고 싶군.”
“정말? 그게 아니면 안 되겠니?”
“음. 한 번 흥미가 인 것은 손에 넣고자 하는 성격이라 말이다.”
“······.”
내 말에 필티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내게 그 상자를 내밀었다.
좋아.
내가 정체를 모르는 보물을 손에 넣었다.
오늘도 이 세계의 선명도가 한 단계 올라가는군.
어디. 어떤 보물인지 볼까.
나는 상자를 살짝 열고,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분홍색의···.
거기까지 생각하고 다시 상자를 닫았다.
“이건···.”
“어, 어린 시절에···. 누나는 지금보다 좀 많이 말랐었거든. 그래서···. 체형 보정의 마법이 걸려 있는 속···. 속···. 아무튼, 며, 몇 번 입긴 한 그···. 그러니까···.”
“······.”
“가질거니···?”
“아니. 미안하군. 돌려주도록 하겠다.”
“응···.”
필티아는 잽싸게 상자를 받아 허리 뒤로 숨겼다.
이건···. 내가 잘못한 게 맞는거 같은데.
음.
으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자, 필티아가 힐끔 이쪽을 올려보며 물었다.
“역시 가지고 싶니?”
“아니 괜찮다.”
정말 괜찮습니다.
***
결국 필티아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음을 미안해 하면서, 무언가를 더 챙겨주려고 했다.
오늘은 내가 일방적으로 실수를 한 것임에도, 착하기 그지 없는 드래곤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필티아 누나가 모은게 아니라, 하르크의 보물중 하나를 가져가라고 했고, 받지 않으면 슬퍼할 것 같아 하르크의 보물중 하나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손에 쥔 것은 하나의 몽둥이였다.
내 팔뚝만한 길이에 무게중심이 무척이나 잘 잡혀 있으다.
대충 곤봉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런데 이거 어마어마할 정도로 실사용된 도구다. 끝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피를 빨아들인거다.
“어머 그거···. 후후. 그립네. 이번에는 그게 필요한거니?”
“음. 그렇다. 빌려가도 괜찮겠지?”
“아예 가져도 된단다. 그 아이도 그게 기쁠거야.”
“음.”
【타천봉(打天棒)】
【1T】
【수 없이 많은 천족의 머리를 반으로 쪼갠 전승을 남긴 마도구입니다. 타락천족이 아니라 천족을 때려 눕혔다는 의미에서 타천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천족을 상대로 필중. 필살의 효과를 가지며, 모든 공격이 반드시 크리티컬로 적중합니다. 타격시 상대가 천족일 경우 강한 공포. 쇠약. 출혈. 정신분열의 상태이상을 겁니다.】
그 하르크 폰 로엔그린이 천족의 왕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갤 때 썼다는 몽둥이 되시겠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일곱 번째 문 공략의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