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56)
755. 사나이의 선택
그 뒤.
한숨 푹 자고 완전히 나았답니다! 하고 평소처럼 브이를 그리는 아일라에게 한 번 웃어준 후 짐을 정리하고 설산을 나왔다.
당연히 해골기사의 잔해도 수습. 망토를 찢어서 설계도용 가죽을 보관했다. 앞으로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재료다.
그 외에는 사령술을 위한 뼛조각이나 갑옷 파편 등을 모았다. 나중에 녹여서 사령기사나 데스나이트 아머 같은 거 만들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다 보면, 포영의 설원을 피하기 위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한 쪽은 망자의 평원이고 다른 한 쪽은 창염의 골짜기다. 그래도 왔던 길이 좋다고 망자의 평원을 통해 내려오는 도중.
“어···.”
“흠.”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을 만났다.
등 뒤에는 칠흑의 거검을 차고, 갑옷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었으며, 망토의 끝단도 낡아 잘려나가있다.
흡사 베테랑 전사를 떠오르게 만드는 모습. 저 남자가 어떤 전법을 펼칠지 그게 얼마나 위력적일지 한 눈에 보여주는 듯 한 관록.
고작 한 달만에 어떤 수련을 했던 걸까.
내가 알던 영웅의 풍모에 조금씩 닮아가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다.
“오래간만이구나. 잘 지냈나. 켈터스.”
“안녕하십니까. 황자님.”
녀석의 인사에 맞춰 그의 동료도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이미 잠든산맥을 넘어서서 망자의 평원까지 왔는가.
내가 뿌렸던 장비가 그만큼의 성능이긴 하지만 그걸 들고 목숨을 건 전장을 누비는 건 다른 이야기다.
“보기 좋아졌구나. 한 사람 몫을 하게 됐어.”
“감사합니다.”
어쭈.
이전이라면 내 칭찬에 맑고 밝게 웃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부드럽게 미소지을 뿐이다.
“깨달음이 있었나.”
“조금 있었습니다. 전사가 된다거나, 강해진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았습니다.”
“좋군. 좋은 눈을 하고 있다.”
인벤토리에서 철검 한 자루를 꺼내 들어 녀석에게 던졌다.
“이건···?”
“평범한 검이다. 밸런스는 좋지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나도 같은 걸 들지. 자. 서라.”
“서라고 하시면···.”
“전사와 전사가 만났다. 가벼운 대련 정도는 즐길만 하지 않겠나. 백 마디 대화보다 한 번의 참격이 더 알기 쉬운 법이다.”
“하하. 네. 지도 편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 뒤. 켈터스와의 대련은 정확하게 삼 십 분 걸렸다.
“후우···. 하아. 큭.”
“나쁘지 않구나. 성장세가 좋다. 검격이 날카롭군. 괜찮은 일격이다.”
켈터스가 내 공세를 삼 십분이나 버틴게 아니다.
내가 방어 일변도로 녀석의 검을 알아봤을 뿐이다.
덕분에 삼십분간 나를 공격하던 켈터스는 지쳐 쓰러지기 직전, 전력질주를 삼 십분이나 한 셈이니 그럴만도 하다.
뭐. 나쁘지 않은 검이다. 전사로서 기량이 올라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에 그리 갈증을 느끼는지 모르겠구나. 그야 가는 길은 틀리지 않았다만, 조급함이 느껴지는 검이다.”
내 말에 그제야 켈터스가 검을 놓고, 후우 하고 어깨로 숨을 몰아쉬었다.
“눈치 채셨습니까.”
“눈치 못 챌거라 생각했나.”
켈터스는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전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말 해보도록.”
“선배님의 최고의 일격을 보고 싶습니다. 한 번이라도 좋습니다.”
내 최고의 일격이라.
“어렵진 않다. 허나 네 몸으로 받으면 죽을텐데 괜찮나?”
“저, 그게···.”
몸으로 받는게 아니라 보고 싶다는 거겠지.
“농담이다. 아일라.”
“네. 울프람.”
“해골 기사만한 흑수정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겠나.”
“물론이랍니다. 자. 거기 아이들. 물러나세요.”
그리 말하고 녀석들이 물러나자, 아일라는 거대한 흑수정을 하나 만들어냈다.
하늘에 닿고 지평 끝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흑수정.
“켈터스. 네 검으로 베어보도록.”
“네? 네···!”
직후 켈터스가 모든 힘을 집중해 흑수정을 내리쳤다.
콰가가가각. 검이 흑수정에 박히고 조금 나아갔다. 이내 검이 멈추고 녀석이 으쓱하고 웃었다.
“이전에도 트라이스타 선배님의 흑수정을 베어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하네요.”
하하. 웃는 녀석에게 아일라는 허리춤에 손을 대고 콧김을 흥 뿜고 눈을 감은 채 웃었다.
그러고보니 아일라와 켈터스가 한 번 크게 붙었던 적도 있었지.
그게 작년 초였던가···. 까마득하군.
“자 그럼. 내 차례로구나. 말해두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신화급 무기가 나의 본질을 뜻한다면, 내 일격 역시 신화 포식자의 연장선이다.
모든 방어를 무시해 먹어치우고, 나의 색으로 물들인다.
철검을 한 번 쥔 상태로 아래에서 위로 그었다.
아니. 한 번이 아니다.
까득. 철검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 같다. 그것을 캔슬. 검과 흑수정 사이에 상호간 내구도 감소는 없다. 허나 데미지는 확실하게 축적된다.
다시 베어나간다. 검이 울부짖으면 다시 캔슬.
일격이자 연격. 정과 동이 함께하는 모순된 검격. 베기는 한 번이나 그 안에 새겨져 펼쳐지는 기교는 수 천을 가볍게 넘는다.
우득. 우드득.
구궁···.
아일라의 흑수정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내 철검 또한 으스러졌다.
상호확증파괴의 검.
상대의 내구도, 내 무기의 내구도 신경쓰지 않는 일격이다.
원작 기준으로 공격이 끝날 때 까지 무기의 내구도 감소와 데미지 판정이 일어나지 않기에, 끝없이 공격과 캔슬을 반복하며, 상대와 자신의 무기를 동시에 제물로 바친다.
물론 이건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상대가 멈춰있지 않으면 펼칠 수 없다.
이전 비동에서 한 번 펼친 기억이 있지만, 지금은 좀 더 잘되는군.
“와아! 역시 울프람이에요!”
아일라가 옆에서 방긋 웃고, 켈터스는 하하···. 하고 어깨를 늘어트리고 웃었다.
“하하···. 역시. 황자님이십니다. 확실히 봤습니다. 그 검···. 제가 썼던 것과 같은 철검이죠?”
“맞다.”
“같은 무기로, 차원이 다른 일격···. 감사합니다.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확실하게 목표가 보였습니다. 그 일격을 따라잡고 싶습니다.”
“재밌구나. 나를 따라잡겠다.”
“하하. 목표에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께서 펼치진 일격을 저도 언젠가 저만의 방법으로 따라잡고 싶습니다.”
그야 뭐.
따라하는 건 네 자유다.
“그래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황자님.”
“숙련된 전사는 뻔뻔함 또한 미덕이다만, 네놈은 부탁이 많구나. 남의 밑천을 보여달라는 것도 모자라 부탁이 또 있다? 나는 네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여기에 있는게 아니다.”
“윽···.”
“쯧. 말이나 해봐라.”
“저기, 그것이···.”
그리 말하고 켈터스가 내게 한 부탁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주 기괴하고 뒤틀린 미소를 말이다.
***
원작 기준으로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 게임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강해질 수 있는 스테이터스는 ‘체력’과 ‘근력’이다.
여기서 명중율이라는 문제점이 생기지만 재주가 특히 높은 보정을 받긴 하나, 체력과 근력이 가지고 오는 명중 보너스도 나쁘지 않다.
회피는 방어 떡칠. 흔히 말하는 떡방어로 해결하고, 근력과 체력이 고점이니까 무거운 장비도 들 수 있다.
재주라는 능력이 회피. 솜씨. 명중. 속도. 제작성공률등 사기 스탯이긴 하지만 체력과 근력 2툴로도 근접캐릭터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통 근육돼지 근접딜캐라고 부르며, 한계가 찾아오는 타이밍이 느리고, 초반부터 막힘 없이 성장할 수 있으며 엔딩 보기에도 그럭저럭 괜찮다.
다만 이 경우에는 마법학부 루트를 포기하는 편이 좋다. 변태처럼 힘법사 6인조 할거 아니면 말이다.
아무튼 정말 괜찮은 스테이터스 배분이다. 높은 체력이 가져다주는 상태이상 저항은 덤이다.
우리 파티에는 그런 육성법을 가진 녀석은 없다. 네프티가 그나마 가깝긴 한데 그 녀석은 딜러라기보단 탱커라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스테이터스 투자를 극단적으로 잡을 필요도 없다.
나로서도 꽤 좋아한 육성법이긴 한데 우리 파티원들에게 그걸 강요하자니 특성이 안 맞고, 애들에게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 밀푀유 같은 애들은 내가 시키면 진짜 할 거 같아서 무섭단 말이지.
그런데.
켈터스가 어제 내게 부탁했다.
그리고 오늘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물으마.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겠지.”
“네. 물론입니다!”
녀석은 내 앞에 무릎꿇고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봤다.
‘저는 근접형 전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거검을 들고 최전선에서 몬스터와 싸우는 전법을 구사하고 싶습니다.’
‘제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그 끔찍한 철권을 피할 방법이 없다면, 대방패와 중장갑옷으로 무장하고, 한 손에는 거검을 들고 싶습니다!’
‘허나 제 육체의 한계가 느껴집니다.’
‘부탁드립니다!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흠.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는 녀석.
길을 찾아내고 걸어가는데 주저함이 없는 녀석.
그런 녀석에게 도움을 주는데 박해질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네가 중점적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 근력과 체력인가.”
“네!”
“하지만 제프린의 운동법으로는 일정 이상 근육이 커지지 않아 걱정이다.”
“맞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아무래도 근육이 자라지 않아 걱정입니다.”
작중에서 봐도 켈터스는 표준 체형이다.
“음. 그런데 근력과 체력을 키우려는 이유가 철권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맞습니다. 제 머리로 날아드는 그 끔찍한 철권을 피할 수 없다면, 맞거나 막고서 반격을 노리는 쪽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그 철권이 내가 아주 잘 아는 후배가 쓰는 철권일텐데 말이야.
갑자기 죄책감이 드는데 이거.
“알겠다. 너의 성장을 도와주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거짓을 입에 담을 필요가 없지 않나. 자 그럼 어째서 이 제프린에서 네 근육. 근력과 체력이 늘어나지 않는지 한 단어로 말하자면. 음식이다.”
“음식···?”
“그래. 맞다. 이 제프린의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나, 매 끼니마다 고기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고기···. 고기를 찾아 먹으라는 이야기시군요. 알겠습니다. 요새 원정에서 버는 돈으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아니. 고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네?”
“고기의 좋은 점만 모아놓은 약을 함께 먹고 운동하면 된다. 애당초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고기를 압축한 약을 먹는게 더 많이 먹을 수 있지 않나?”
내 말에 켈터스는 크게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지만 그런 약이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만든 것이 있다. 식사를 마친 후. 이 가루를 두 스푼 우유에 타서 먹은 후 운동을 하면 된다.”
“아···.”
이 게임에는 진짜 단백질 보충제가 있다. 효과는 당연하지만 체력과 근력의 상승폭 증가.
내가 먹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근육 보조제】
【4T】
【장기간 복용시 체력과 근력 상승에 소폭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성 캐릭터들과 친해지기 어려워집니다.】
그건 바로 히든 스테이터스 ‘매력치 하락’이다.
파티원의 호감도를 올리기 어려운 건 둘째치고 체력이 가장 급했던 학년 초기. 제프린 재학생 대부분에게 미움받았을 당시 내가 이걸 먹으면 그 자리에서 사살당할수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러다가 재주 중심 캐릭터가 된 이후에는 별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음.
파티원들의 호감도를 올리지 못하는 건 둘째치고서, 그 녀석들에게 미움 받는것도 좀 걸린다. 물론 녀석들이 날 미워할 일도 없겠지만···. 그리고 쪽팔려서 이야기 하기 그렇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무튼. 이걸 먹고 운동하면 된다. 부작용은 주변에서 조금 꺼릴수도 있다는 점이지만···.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전사의 길은 고독한 길. 감사합니다! 황자님!”
음.
그래 뭐. 네가 그걸로 만족했다면 된 거 아니겠냐.
부디 장복해서 내 좋은 실험체···. 가 아니라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다.
“올 연말에는 반드시 그 끔찍한 철권을 받아내 보겠습니다!”
지금 그 녀석은 여섯가지 맛으로 이 녀석의 뚝배기를 딸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할까.
아니다.
“힘 내라.”
“네!”
아니다.
뭐. 알아서 하겠지.
한 청년의 마음이 깨질 수 있는 말은 감추고, 그저 응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