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64)
763. 모래의 바다
루디카가 전해준 일정은 코앞이었다.
세상이 이렇게나 편의주의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 주의 주말이라니, 그것도 오늘 준비하면 일정이 딱 맞을 수 있다니 이런 사기적인 스케쥴이 어디있는가.
어차피 우리는 항상 원정을 다닐 준비를 마쳐두고 있기에, 제프린을 떠나는 것도 기가 막히게 빨랐다.
포털에 오르기 전, 문득 생각나 루디카에게 물었다.
“이번에 가는 곳은 그림자 마을인가?”
“응? 아니야. 그림자 마을에서 그런 축제를 해서 외부인을 들이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도 그렇다.
진짜 그림자 마을은 샤도우 일가가 지배하고 있고, 마을의 과일가게 아주머니도 암살자로 한가닥 하는 곳이니까.
그런 곳에 괜히 외부인을 들일 필요는 없지. 외부인은 무슨 잘못이야. 비밀을 알기라도 하는 순간 사막 실종자 카운트가 하나 더 올라갈 뿐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거지?”
“자우버 령을 지나서, 룬룬마을 거쳐서···. 여기.”
그리 말하며 루디카는 제프린 출입소의 벽면 한쪽을 전부 차지한 대륙 전도를 보고 한 부분을 쿡 눌렀다.
여기. 여기라···.
“그리 말해도 잘 모르겠다만.”
“아, 미안. 사막도시 바파르라고 해.”
“바파르. 그러니까 분명히···.”
들어본 적 있다.
【양념 낙타꼬치】
【7T】
【사막의 축제도시 바파르의 특산물. 강렬한 향신료로 누린내를 잡은 것이 특징. 먹으면 마력회복 미량 상승】
“낙타고기를 주로 취급하는 곳인가?”
“그렇지 뭐. 사막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낙타나···. 코도모 도마뱀정도니까. 사막 기생몬스터는 대부분 독을 가지고 있거든.”
“그렇군.”
“바파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가면서 할게. 그게 더 즐겁지?”
“물론이다. 듣는 것 보다 직접 보고 체험하는게 낫지.”
루디카와 함께 전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양 옆으로 나란히 서서, 일도 전투도 아닌 시간을 루디카와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이 녀석은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고, 파티 내에서 무력만큼은 아일라나 이브를 아득히 뛰어넘어서 ‘내가 믿고 등을 맡겨도 무조건 1인분 이상 해준다.’ 라고 믿는 녀석이지만···.
생각보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매번 들게 한다.
“가자. 울프람.”
녀석의 생생한 미소에 고개를 끄덕였다.
***
남부로 들어서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을 덮쳤다.
물론 황실 혈통의 정신공격에 대한 면역은 이런 온도차로 인한 불쾌감 또한 막아준다.
“제프린 학생들인가? 허허! 어서 타시게!”
“잘 부탁드려요!”
거기에 낙타를 모는 마부···혹은 타부. 루디카에게 어느쪽이 맞냐고 물으니 편한대로 부르라고 했다. 아무튼, 후덕한 마부 아저씨는 우리를 보고 인상 좋은 미소를 지었다.
루디카에게 쫄지 않거나 한도 이상의 예의를 차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마부 아저씨는 민간인이다.
“울프람. 타자.”
“음.”
루디카와 함께 낙타가 모는 마차 위에 타서 앉았고, 루디카가 내 쪽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살짝 들뜬 그 모습과 미소는 보기 드물었다.
“그리도 즐거운 축제인가?”
“응? 아···. 축제를 축제로 즐겨본 건 처음이라서 말이야. 조금 들떴나? 미안···.”
“사과하지 마라. 보기 좋아서 물어본거다.”
“보, 보기 좋아? 으흠. 그렇구나. 알겠어. 그러면 조금 더 들떠있을게.”
그리 말한 루디카는 마차 등받이에 기대 다리를 흔들거렸다.
그나저나.
축제를 축제로 즐겨본 건 처음이라.
무슨 의미일까?
“두 사람은 지금부터 바파르 사막 축제에 가는 건가?”
“네. 맞아요!”
“그렇군. 젊은 친구 둘이···. 이것 참. 개방적인 세상이 되었어. 하하!”
“으아···. 아, 아하하···.”
마부의 기분 좋은 인사에 루디카가 얼굴을 붉히며 볼을 긁적이더니, 이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뭐지.
바파르 사막 축제에 뭔가 의미가 있나?
***
그렇게 낙타를 타고 축제 도시 바파르에 도착했다.
곳곳에 펼쳐진 노점은 대부분 모래먼지를 막기 위해 두꺼운 천을 몇 겹이나 사용해 천막처럼꾸며놨지만, 무엇을 파는지는 확실히 보였고, 관객들의 옷은 전체적으로 얇은 편이었다.
“이런 열기 속에서는 화상을 입는 것 아닌가?”
“응? 아니. 그렇지는 않아. 여기는 축제 도시 바파르고, 이 축제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어마어마하거든 그러니까 대여 가능한 축제 의복에는 화상과 열기 방지 마법이 걸려있어. 저 사람들이 입은건 전부 대여 의상.”
“대여 의상이라···. 꽤나 돈이 되겠구나.”
“응.”
노출도가 생각보다 많이 높다. 만화나 각종 매체에서 보던 이집트 의상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우리도 저걸 입어야 하나?”
“으, 음···. 입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제프린 교복은 어디에서나 통하는 정장이잖아?”
그것도 그런가.
학생에게는 교복이 최고지 암.
“그럼 어디 축제 구경이나 하도록 할까.”
“후후. 바파르 축제는 규모가 꽤 크니까 조심해야 할 걸? 체력 분배를 잘 하는게 좋아.”
그리 말하며 루디카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새롭다.
루디카 핫산 샤도우가.
지옥에서 올라온 컨셉충이거나, 그게 아니면 컨셉을 던져버리고 차분한 모습만 보여주던 녀석이 이렇게나 들뜬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었다.
그 나이 또래에 걸맞는 미소에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으, 응? 손? 아···. 잠깐 그러니까. 음. 잠깐만?”
그리 말하고 루디카는 손바닥을 슥슥 옷에 닦고는 천천히 내가 내민 손을 향해 그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두 손이 닿기 직전.
“도착했으면 먼저 보고해달라고 했죠?”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살짝 높은 톤의 상냥한 목소리.
한동안 들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울림에 뒤를 돌아보니, 허리 아래까지 회백발을 늘어트리고 목소리와 한치도 다름이 없는 다정한 눈매로 이쪽을 보고 있는 암살계의 귀재가 있었다.
“세실 샤도우.”
“오래간만입니다. 황자님. 그리고 루디카.”
“세, 세실?”
“황자님. 잠시 루디카를 빌려도 될까요?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알겠다. 잠깐 축제를 돌아보도록 하지. 연락은 스마트판이 있으니 공중에 띄우면 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킬거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세실 샤도우가 루디카를 납치했고, 나는 홀로 남았다.
***
혼자 축제를 돌아보면서도 내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루디카에게 손을 내밀었을까.
루디카 핫산 샤도우는 파티원이고 소중한 녀석이다.
그야 함께 축제를 돌아보고 있으면 즐겁지만, 그게 방금 전 내가 손을 내밀 이유가 됐을까.
잘 모르겠다.
서로 손을 잡고 우리 함께 축제를 돌아봐요. 와 나란히 서서 돌아봐요의 차이는 뭘까.
아무튼. 혼자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세실에게 크게 혼났는지 루디카는 반쯤 혼이 빠져서 돌아왔다.
“루디카. 왜 그러지?”
“예정에도 없던 일정이···. 하필이면 오늘 저녁이라니···. 내 일정이 전부우···.”
머리를 붙잡고 고민하는 녀석.
“오늘 저녁에 뭔가 할 일이 있나?”
“있다고 할까. 생겼다고 할까···.”
“그럼 바로 가야 하나? 이번 외출 전부를 쓸 정도인가?”
“아니 그건 아냐, 오늘 저녁 일만 해결하면 남은 일정은 풀어주겠다고 했어.”
“그러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울프람을 초대해 놓고 방금 전도 그렇고 오늘 저녁에도 혼자 내버려두게 되는데?”
“이 축제에서 함께 할 시간이 더 길다.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되는 일 아닌가.”
“정말? 화 안났어? 실망 안 했어?”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루디카는 방금전처럼 떨면서도 손을 내밀었고 이내 손이 맞닿았다.
“가도록 하지. 둘러보고 싶은 곳이 많다. 안내해주겠나.”
내 물음에 녀석은 생긋 웃고, 나를 이끌듯 한 발자국 앞을 걸었다.
***
그 뒤 사막 축제를 돌았다.
축제 도시 바파르의 특산품인 미니 모래시계나 흔들거리는 모래 액자 등.
그 외에도 사막 전통 춤 공연이나 전갈 낚시. 피리로 코브라를 가지고 노는 등. 생각보다 다채로운 볼거리들도 충분했다.
축제도시 바파르는 내 상상 이상으로 ‘축제 도시’로서 완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품이나 상연물은 누가 생각한거지?”
“우리 선조님이라고 해. 초대 핫산님. 사막은 아무래도 팔게 없으니까 뭘 팔까 고심하신 결과 나왔다고 적혀 있어.”
“그렇군. 역사와 전통이 있는 축제였나.”
“거기에 삼백년 어치의 지식이 합쳐진거지. 개량되고 또 이어진것들, 사라진것도 그만큼 많지만 말이야.”
“멋진 도시구나.”
그 뒤에는 사막 전통 요리도 맛봤다.
낙타꼬치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맵거나 향이 강한 요리들이 특징이었다. 낙타 젖과 사막의 열매를 함께 갈아 만든 요거트도 있었고, 특이한 것은 쌀 요리들이 드물지 않게 보였다는 점이었다.
물론 쌀알이 길쭉해서 내가 생각하는 밥맛은 안 나왔지만, 꽤 그리웠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해가 어둑해질 무렵.
“울프람. 나는 슬슬 시간이 돼서···.”
“아. 그렇군. 다음 합류는 언제지?”
“예약해놓은 숙소에 먼저 돌아가도 돼. 내가 찾아갈게.”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미안, 정말 함께 있고 싶었는데, 진짜 빼기 힘든 일이라 미안해.”
“아니. 신경쓰지 마라.”
녀석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더니 그대로 멀어져 사라졌다.
루디카의 기척이 사라지고, 또 하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쪽을 향해 쏘아내는 마력파장을 느끼며, 어둠속에 말을 걸었다.
“할 말이 있으면 마력파장을 쏘는게 아니라, 모습을 드러내고 직접 말을 하는게 낫지 않겠나. 세실 샤도우?”
“어머나. 죄송합니다. 직업병인듯 합니다.”
손을 작게 쥐어 입가에 가져다대고는 키득키득 웃는 녀석.
거 참. 직업병 한 번 살벌하네.
“그럼 안내를 부탁하지.”
“어머. 어디로 안내할지 알고 계셨나요?”
“루디카가 자리를 비우게 된 건 너를 만난 이후다. 그러니 지금부터 루디카가 뭘 하는지 보러 가는 것 아닌가?”
세실은 살짝 눈을 뜨고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재능은 단련할 수 있지만, 감은 천성적인 것이죠. 역시나 훌륭하십니다. 황자님. 루디카에게만 주는 건 아까울 정도로요.”
“?”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칭찬으로 듣기로 했다.
***
우리가 향한 곳은 축제의 뒷편이었다.
뒷편. 의미 그대로 정말 뒷편이다.
떠들썩한 밖과는 다르게 놀라울 정도로 고요하다.
외부가 행사장이면서 동시에 무대라면 이곳은 준비실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동시에 그만큼 교묘했다.
수십 갈래길의 축제현장에서 스물 두 번의 골목길을 정확하게 꺾어야만 나오는 무대 중앙의 공백.
그 중앙에 전신을 감추는 로브를 깊게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인 이들과, 등 뒤에 작은 불길을 피운 채 춤을 추는 인영이 하나 보였다.
춤을 추는 인영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하늘하늘한 전통복을 입고, 양 손에 단검을 들고, 허리춤에 두 개의 금환(金環)을 달고 춤을 추는 녀석.
춤은 유려하면서도 동시에 절도 있었고, 아름답게 휘며 사랑스러웠다. 오른 발로 땅을 밟고 대지를 박차 허공에서 반 바퀴를 돈다, 그에 따라 길게 늘어진 허리춤의 매듭이 함께 따라오고 허공에서 금환이 서로 부딪쳐 찰랑. 한 번의 소리가 난다.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금속음으로 기분나쁠만도 하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찰랑거리던 소리는 마치 냇물소리처럼 상쾌했다.
“루디카는···. 무슨 춤을 추고 있는 것이지? 의식 자체가 궁금하군.”
슬쩍 옆을 보니, 세실은 언제 갈아입었는지 몸 전체를 가리는 로브를 입고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것도 의식인가 싶었지만 말을 하는 것은 상관 없는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사랍니다.”
“제사?”
“네. 모래의 바다로 돌아간 역대 핫산을 기리는 제사입니다.”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원래 제사중에는 이렇게 떠들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네요.”
세실은 천천히 저 춤의 기원을 설명했다.
“핫산들이 죽으면 대대로 아무도 모르는 사막 한 가운데에 그 시체를 묻는 풍습이 있답니다. 모래에서 태어난 핫산이 모래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풍요로운 가을에 열리는 바파르의 축제는 올 한해도 남부가 무사했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 남부를 지켰던 역대 핫산들을 기리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원래라면 제가 하기로 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당대 핫산이 온다고 하지 뭐에요?”
“그래서 납치했나.”
“네. 당대 핫산이 부재중이라면 모를까. 당대 핫산이 참석했는데 제가 역대 핫산에게 보내는 춤을 춘다면 어떻게 비춰질까요?”
“역심인가.”
“물론 모르쇠로 일관할 수 있지만, 루디카의 춤을 듣고 싶었답니다.”
그 말에 다시금 루디카를 바라봤다.
춤은 점차 화려하고 격렬해진다.
불꽃 위를 뛰어다니면서 허공을 노니는 모습은 말 그대로 모래와 불길의 정령.
소리가 점차 커진다. 냇물을 연상시키던 금환의 소리는 이내는 강물처럼 다채로워진다. 소리의 끝이 어디를 향할지 짐작된다.
냇물이 흘러 강을 이루고, 그 끝에 원류에 도착한다.
철썩. 저 멀리서 부드러운 파랑의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모래의 바다.”
“네. 저 춤으로 바다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그것이 당대 핫산에게 부여된 무거운 짐이죠. 저 아이는 핫산이 된 해에 바로 해냈답니다.”
“······.”
그야 그렇겠지.
“감히 죄스러워 다른 샤도우들은 눈에 담을 수 없지만, 귀로는 들을 수 있답니다. 저 춤을 직접 보신 황자님은 어떻게 느끼고 계신가요?”
그 물음의 답은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왔다.
“아름답구나.”
틀림없이 루디카 핫산에게는 처음 내리는 평가였지만.
그 감상에 한 점의 거짓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