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70)
770. 흔들리지 않는 선택
이스티티아 폰 로엔그린과의 저녁식사는 찾아오는 이 한 명 없이 단 둘이서 먹었다.
“정말 고마워! 와! 진수성찬이네!”
“그정도는 아니다만.”
“아니, 곰 가죽을 벗겨서 피도 안 뺀 고기를 장작불에 구워먹다보면 이 정도는 어마어마한 진수성찬이라니까. 잘 먹을게 남매!”
“먹는 사람이 기뻐해주면 만드는 쪽도 보람을 느끼지.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군.”
“무조건 맞을거야. 이렇게 향이 좋은걸.”
내가 만든 것은 최근 실험중인 요리들이었다. 남부의 쌀로 만든 리조또에 가까운 볶음밥이라거나, 조금 맵게 간을 한 제육볶음이라기엔 한 끝 부족한 고기볶음. 말린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내고 그 위에 호박, 감자, 밀가루를 넣어 함께 끓인 수제비에 가까운 스튜 등.
녀석은 하나하나 돌아가며 맛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남매! 진짜 맛있어. 와아···.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인데?”
“맵지 않은가?”
“조금 맵긴 한데, 괜찮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그리 말하고 내 실험 요리를 즐겁게 먹어주는 녀석.
음.
역시 나쁜 녀석은 아니다.
이 세계 사람들 입맛으로는 꽤 맵게끔 만들어졌는데도 먹는데 주저함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브가 시건방져서 까먹을 때가 있지만, 이브도 이 녀석도 켈터스 입장에서는 선배다.
즉 이브도 원래는 내 호적 아랫줄이 아니라, 켈터스에게는 믿고 의지할만한 윗사람이라는 말이고, 이 녀석이 원래 이브의 자리를 대체했을거라고 생각하면, 또 놀라울 정도로 납득이 간다.
이게 진짜 선배의 풍모인가.
“식사를 마쳤군. 후식은 어떻게 하겠나.”
“뭐든지 오케이야. 남매!”
“그렇다면 달콤한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겠다. 어디···.”
얼마전 만든 초코 토핑을 올린 에끌레르와 피넛버터쿠키. 그리고 오디를 갈아넣은 요거트에 끝으로 셔벗을 준비했다.
“와아···. 한 번도 본 적 없는 디저트들인데, 예술처럼 아름다워.”
“맛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한다. 음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홍차나 녹차도 있다.”
“응? 아냐···. 단 맛 나는 풀을 부식이라고 먹었던 야영에 비하면 천상의 디저트인걸.”
대체 무슨 생활을 하고 살았길래.
“흠. 마음에 드나?”
“아···. 단건 생각보다 먹을 기회가 적으니까.”
그리 말하면서 녀석은 식사보다 더욱 즐겁게 디저트 타임을 즐겼다.
단 것을 좋아하는 습성이라···.
이런 점에서는 또 이브가 떠오르는군 그래.
“더 있다. 얼마든지 들도록.”
“응? 아냐 많이 먹었어. 이것만 먹으면 끝. 먹고나서 또 움직여야할 거 생각하면 많이 먹어서 좋을것도 없지.”
“······.”
“이만큼 먹었으면 확실하게 움직여줘야 몸의 밸런스가 흐트러지지 않으니까, 살 찌는 체질도 아니긴 한데···. 아하하. 잡설이 너무 길었지 남매?”
그리 말하며 호쾌하게 웃는 이스티티아.
세상에.
진짜 이브의 상위호환일세.
***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가볍게 달리고 있자니 이스티티아가 내 옆에서 같이 뛰기 시작했다.
“남매는 매일 이렇게 달려?”
“매일은 아니다. 바쁠때는 빠지는 편이지.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달리려고 한다.”
“어째서?”
“결국 마지막 손패는 내 몸 하나밖에 없으니 말이다. 누구나 궁지에 몰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지 않나.”
“멋진 말이야!”
그리 말하고 이스티티아와 가볍게 조깅을 마치고, 편의점 앞에서 숨을 골랐다.
녀석은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뭐, 이브가 마법의 천재라면 이 녀석은 정 반대로 근접의 천재일 터. 이정도로 숨을 몰아쉬면 그것도 말이 안되지.
“남매. 그러고보니 검도 쓸 줄 알아?”
“물론이다.”
“그러면 검술 좀 보여 줄 수 있어?”
“보여달라? 대련을 하자는 이야기인가?”
내 물음에 시선을 마주하고 녀석은 히죽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검술만 보면 충분해. 제국 검술이든···. 남매의 자기류 검술이든 말이야.”
“어렵지 않지. 알겠다.”
나는 평범한 철검을 손에 쥐고, 가장 평범한 제국 검술을 펼쳐보였다.
물론 평범하다고 해서 대충 펼친것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제국 검술을 가장 정밀하고 완벽하게 그려냈다.
제국 검술의 본질은 공격보다는 방어에 있다. 제국의 기사는 황족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기에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내 검을 이스티티아가 빤히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남매의 검은 그렇구나. 으음.”
“검술 시범만으로 알 수 있는게 있나?”
내 말에 녀석은 히죽 웃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을 돌렸다.
“그러면 이제 슬슬 인사를 하러 가볼까. 남매. 미안한데 안내 좀 해줄 수 있어?”
“어디로 안내해달라는 거지?”
“그야. 어제는 남매만 만났고 그대로 여기에 와서 하룻밤 묵었으니, 오늘은 다른 한 쪽도 만나봐야지.”
“······.”
아 그렇군.
워프 포털에서 바로 타이탄에 들렸다가 편의점으로 왔으니, 이 녀석은 아직 이브와 인사를 나누지 않았군.
“알겠다. 따라오도록.”
***
이브 폰 로엔그린과 이스티티아 폰 로엔그린.
두 사람 다 원류는 같기에 둘이 만나는 순간 화학작용을 일으켜 둘 중 한 명이 죽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 때 나는 누구의 손을 잡고, 누구를 처단해야 하는가 그 점에 있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자니···.
“네가 이브 자매구나. 나는 이스티티아. 만나서 반가워.”
“아, 만나서 반가워요. 이브 폰 로엔그린이에요.”
태연하게 이스티티아가 손을 내밀자, 이브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그 손을 맞잡았고 작게 흔들었다.
이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자, 반대로 이브쪽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해서.”
“아, 저도 조금 놀라고 있어요. 정말···. 후후 완전히 똑같이 생겼네요. 누가 봐도 자매에요.”
“맞아! 나도 동감해! 울프람 남매. 남매도 동의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스티티아는 다시 한 번 환하게 웃었다.
“남매도 그렇고 다매도 그렇고, 세간에서 들리는 소문과는 정 반대구나, 이넬디아 언니가 조심하라고 하길래 걱정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이넬디아가 뭐라고 했지?”
“후후. 글쎄. 안 좋은 이야기였다고만 말해둘게, 전혀 신경 안 써도 돼. 나는 타인이 타인에게 내린 평가를 그대로 믿지 않아. 내 눈으로 보고 직접 검증하고 판단하거든.”
“······.”
“그런 점에서 울프람은 착했고 이브는···. 음. 잘 모르겠어.”
“그, 그렇겠죠. 이제 막 만났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좋지 않아?”
“네, 네?”
“지금부터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이, 신기함이, 즐거움이 있잖아.”
한 쪽 눈을 찡긋 감으며 웃는 이스티티아.
결국 이브도 그 무한 긍정 에너지에 감화되었는지, 이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렇네요. 다과를 준비하죠.”
“자. 그럼 어디 이야기를 나눠볼까. 자. 울프람 남매도 거기에 앉아. 오늘은 삼남매의 감격 상봉이니까.”
음.
나도 껴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지 뭐.
***
그렇게 똑 닮은 두 사람의 담화는 하하호호 시작해서 그 분위기 그대로 끝났다.
대화가 끝나고, 이스티티아는 잠시 제프린을 돌아보겠다고 나갔고, 내가 안내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정중히 거부했다.
결국 학생회장실에는 나와 이브만이 남았고, 이브는 의자에 몸을 깊게 뉘였다. 끼이익. 의자가 비명을 지르는 와중 그 위로 이브의 한숨이 덮였다.
“꽤 긴 한숨이구나.”
“그야 저런 사람 상대로 대화하는게 속이 편할리가 없잖아요. 제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한지 알아요?”
“저런 사람이라. 너에게는 이스티티아가 어떻게 보였지?”
“완전 무결한 초인이요. 남에게 친절하고 카리스마 있고,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두루두루 잘 사귀죠. 행동력도 좋은데 강압적이지 않고 남이 쳐놓은 마음의 벽을 아무렇지 않게 파고드는데 그게 또 밉지 않아요. 무적 초인이네요.”
놀라울정도로 내 해석과 일치했다.
“싫은가?”
“진짜 싫은건 저런 사람을 꺼리고 싫어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이브 폰 로엔그린이에요.”
“의심했었나? 즐겁게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만?”
“제 정보는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어요. 대화 자체는 즐거웠지만 감사 나온 사람하고 하하호호 웃고 떠들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어요.”
내가 잠시 가만히 있자, 이브는 혼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뭐에요. 저런 사람이 실존해도 되는거에요? 나랑 똑같이 생겼는데 밝고 활기차고 완벽하고···. 그러면 제가 뭐가 되냐고요.”
뭐. 사실 이브 폰 로엔그린이 좀 내성적이고 질투도 심하고 단거 좋아하는데 운동부족이고 체력도 저질인데 방구석에 있는거 좋아하는건 다 안다.
하지만.
모든면에서 상위호환인 이스티티아가 만약 이브를 제치고 메인 히로인이었다면?
만약 페이퍼 히로인이 아니라, 정말 그 녀석을 끝까지 밀어서 제작사가 D/Z SAGA를 발매했다면 어땠을까.
“음 그런가.”
“뭐에요?”
확실한 건
메인 히로인이 만약 이브가 아니라 이스티티아라면, 나는 지금만큼 D/Z SAGA를 즐기지 않았을 거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적의 초월자가 홀로 이끌어주는게 아니라,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함께 성장하고 나아가는 두 사람이야 말로 내가 사랑하던 원작이니까.
“상관 없지 않나, 모자람이 있는게 더욱 인간답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적어도 나는 이스티티아보다는 이브 폰 로엔그린이 더욱···.”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방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려고 했지?
내가? 이브를?
하하. 이것 참. 완전히 돌아버렸군.
“더욱. 뭐요?”
“흠. 일이 생겼다. 그만 가보도록 하마.”
“잠깐만요. 울프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다 말하고 가라고요! 진짜 가요? 야! 야아아!”
뒤에서 녀석의 포효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단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기에 적합하다.’
‘태양이 너무 밝으면, 우리같이 비뚤어진 녀석들은 몸 뉘일 곳이 없지 않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버린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학생회실을 나섰다.
***
학생회장실을 나오자, 뒷짐을 진 채로 이쪽을 보며 방실방실 웃는 녀석과 마주했다.
“기다렸나.”
“오래 기다리진 않았어. 자. 같이 돌아가자?”
“음. 그러도록 하지.”
나와 이스티티아는 나란히 서서 편의점을 향했다.
“이브 자매는 아직도 나를 경계하고 있어?”
“너도 눈치채고 있었나.”
“당연하지. 애당초 감사하러 나온 사람이랑 웃으며 떠드는게 정상은 아니잖아? 내가 부담을 끼친 거 같아서 미안하네.”
“아니. 이브는 네가 밉지 않다고 했다.”
“다행이다. 나도 울프람이나 이브를 미워하고 싶진 않거든.”
“그런가.”
“응. 내 능력을 쓰지 않고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
어떤 능력인지 정말 캐묻고 싶지만, 본인이 말하기 싫다고 하니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럼 이브나 울프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며, 마족과는 진짜 싸우고 있다고 보고서를 작성하면 되겠네. 그리고 며칠정도 이 섬에서 휴양을 즐기다 엠펠리움으로 떠나면 감사 끝.”
“우리를 신뢰해줘서 정말 고맙군.”
“뭘.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게 제일이야. 그럼 앞으로 며칠 정도 더 신세질게. 괜찮아?”
“물론. 괜찮다.”
“다행이야. 울프람이 솔직하고 숨김 없는 사람이라서, 그럼 남은 기간동안 잘 부탁할게.”
“음.”
“으응? 뭐야 그 대답. 혹시 숨기는 거 있어? 그렇다면 지금 말하면 조금은 봐줄 수 있는데?”
내 옆에서 키득키득 웃는 이스티티아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숨기는 거라.
마계의 문을 심심풀이로 여는 거?
아니면 마계 군단장을 심심하면 소환해서 애들 단련용으로 쓰는 거?
아니면 반마족 에르헬과 마녀 시에스타를 마계귀환을 미끼로 수하로 부려먹는 거?
그도 아니면 진짜 천족인 유즈나엘이 제프린 내에서 신나게 뛰노는 거?
“아니 숨기는 건 하나도 없다.”
“그래? 다행이네!”
그래. 내가 숨기는게 어디 있겠어.
안 들키면 숨기는게 아니잖아. 그렇지?
아무리 밝아도, 황손 주제에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적어도 나는 이 녀석과 비밀을 공유할 생각은 없다.
“갈까 남매.”
“음. 가도록 하지.”
석양을 등에 지고, 나와 이스티티아는 평온한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