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71)
771. 망캐
이스티티아 폰 로엔그린은 우리 사이에 급속도로 침투했다.
솔직히 말해서 얘가 아예 나쁜 음모라도 꾸미고 있고, 이 모든게 다 거짓인 캐릭터면 처음부터 의심했겠지만, 그럴수가 없다는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도 그럴것이, 다른 녀석들은 의심해도 얘가 사실 나쁜 녀석이었다고 의심하면 D/Z SAGA는 즐겁고 유쾌한 학원 모험 RPG가 아니라 메인 히로인이 사실 최종보스인 불지옥 피폐 유열 RPG로 변화한다.
그러니까, 이스티티아는 좋은 녀석이다. 라는 것이 내 결론.
“남매! 오늘도 체력 단련이야?”
“음. 함께 달리겠나.”
“그거 즐거운 제안인데!”
아침에 조깅을 하러 몸을 풀면 딱 옆으로 붙는다. 이브와 똑같은 육체, 똑같은 디자인에 머리스타일의 차이만 조금 있지만, 녀석과는 다르게 팔 다리가 쭉쭉 뻗는다. 완벽에 가까운 육체라는 건 이런 건가.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이브 폰 로엔그린의 마력치가 22라면, 얘의 전체적인 스테이터스치는 어떻게 될까. 성광창 대신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을까.
대체.
이브와 같은 나이에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어떤 스킬 배분을 하고 어떤 장비를 차고 다닐까.
한 번 알아보고 싶지만 알아볼 기회가 올 거 같지는 않다.
그건 좀 아쉽네.
그렇게 이스티티아와 한참을 달리다가 공터를 발견해 몸을 풀었다.
“지난번에는 남매의 제국 검술을 봤었지 참. 그러면 이번에는 내 검술을 보여줘야겠네. 어때. 궁금해?”
“궁금하다. 현 대륙제일검의 검술은 어떤 건지 말이다.”
“아하하. 남매는 제국검술을 보여줘놓고 내 밑천까지 털어가려고? 욕심쟁이구만!”
그리 말하고 호쾌하게 웃는 이스티티아.
“음. 검이 없으니까···. 아 저기 나뭇가지가 있네.”
그리 말하고 녀석은 휙 하고 달려가 바닥에 떨어져있는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손날로 튀어나온 부분을 가볍게 베어내고는 기수식을 잡았다.
“호오. 대륙제일검을 견식할 기회라니, 영광이군.”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하하. 훔쳐갈 수 있으면 마음껏 훔쳐가라고, 남매!”
그리 말하고 이스티티아는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횡베기, 종베기, 그리고 찌르기, 되돌리기. 기본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네 개의 행동.
얼핏 보기에는 장난치는 건가? 혹은 나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기본 검술만 쓰는건가 하며 오해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이 녀석.
진짜로 이게 된다고?
“이 정도로 끝. 어때. 내 검이 어떻게 보여?”
어떻게 보이냐니.
얼핏 보면 평범한 베기와 찌르기.
허나 지독할 정도의 기시감이 눈꺼풀 뒤로 하나의 모습을 그려낸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정확히 말하자면 이영진의 검술과 이스티티아의 검술은 지독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모든것을 캔슬하고, 패링하며 그 사이에 자신만의 딜 타임을 넣는, 공격 일변도의 검술.
저렇게 건강한 육신으로 펼치는 이영진의 검.
그야 대륙 최강이겠지.
***
어째서 이스티티아가 캔슬과 패링을 섞어쓰는, 캔슬류 검술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부터 그게 가능하게끔 디자인 된 캐릭터. 라거나 폐기 도중에 이것저것 코드를 다 때려 넣었더니 됐다. 라거나 여러가지 가설은 세울 수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확 와닿는 게 없었다.
나와 똑같이 이 세계에 들어온 원작 플레이어인가 싶었다. 이게 꽤 가능성이 높은 게 프롤로그에서 죽는 울프람이나 한 번 폐기된 이스티티아나 공통점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진짜 원작 게임 유저로서 이 세상에 들어왔나 싶지만 이내 그 가능성도 지웠다.
이스티티아가 진짜 나와 같은 플레이어라고 치면 녀석은 나보다 빠르게 이 세상에 들어왔다는게 된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변혁이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가 들어왔을 때 이 세계는 지나치게 원작과 동일했다. 몇 년이나 앞서서 들어온 플레이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대로 근본주의자라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변혁을 곱게 볼리가 없다. 나는 처단해야 할 죄악인데 이렇게 가깝게 다가올리가 없다.
“뭔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요?”
“이스티티아 폰 로엔그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완전히 얼이 빠졌어요? 기가 막혀 진짜.”
“음?”
그렇게 물어온 이브.
아, 여기는 학생회장실이다. 이브가 이스티티아 관련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그나저나.
얼이 빠지다니.
“내가 이스티티아에게 얼이 빠졌다고?”
“뭐. 이해는 해요. 이스티티아는 좋은 사람이죠. 이 혈통에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나도 동의한다.”
“지금 저를 멸시한건가요?”
아니 네가 먼저 말 꺼내놓고 이렇게 급발진이 들어온다고?
“이 혈통 전체를 이야기한 거다. 너도, 나도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잖나.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고정관념이 심하고, 고집쟁이에, 편견이 있지. 그런 주제에 남을 미워하거나 증오하는 것으로 풀려고 하고···.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몰라.”
“윽. 으윽. 윽···. 으극.”
이브는 내 말이 이어질 때 마다 가슴께를 붙잡고 고통에 떨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군. 우리들은 어린 시절에 철저하게 교육되고 거의 저주에 가깝게 서로를 증오하라고 배웠을텐데 말이다.”
“아···. 이스티티아는 어린 시절에 황실에 없었으니까요. 그 뒤로도 스승과 단 둘이서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황실의 저주에서 피해간 거죠.”
아. 그게 그렇게 되는가.
“로엔그린답지 않은 로엔그린이구나.”
“누가 아니래요. 하지만 외모는 제 자매가 맞는걸요.”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물론 이스티티아쪽이 훨씬 더 건강하지만 말이야.
“잘 모르겠군.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다.”
“완전히 빠져들었네요. 그렇게 이스티티아가 신경쓰여요? 아예 이스티티아와 파티도 짜겠네요.”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정한 녀석 외에는 그 누구도 파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흥. 누가 모른다고 했나요.”
뭐야.
그러면 왜 물어본 거야?
“이브.”
“됐고, 사탕이나 하나 먹어요. 잡생각의 끝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당분은 머리에 좋으니까.”
그리 말하며 이브는 사탕 통에서 알사탕을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세상에.
그 이브가 내게 사탕을?
갑자기 화내다가, 삐지다가 사탕까지 준다고?
너 이브 아니지.
***
결국 이스티티아와의 이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
아무래도 비밀을 전부 파헤치지 못한 게 좀 걸렸지만, 이대로 우리에게 간섭하지 않고, 서로 웃으면서 무혐의로 보고해준다면 이쪽도 파헤칠 생각은 없다.
“이스티티아. 돌아갈 채비는 거의 마쳤나.”
“응? 마쳤어. 마쳤어. 애당초 칼 한 자루 들고 전 세계를 방랑하면서 살았는데 뭐. 이번에도 이넬디아 언니가 계속 부탁하는 바람에 한 번 들어준 거지, 나는 기사보다는 방랑자가 어울려.”
“그런가. 고생이 많군. 아니 고생도 아닌가. 네 실력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있겠나.”
“어라. 울프람 남매. 내가 얼마나 강한지 본 것처럼 말하는데?”
“그야 보지 않았나, 며칠 전 공터에서 말이다.”
“호오. 그러고 보니 못 들었지. 내 검을 어떻게 봤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기를 중심으로 끝없는 공세를 펼치는 속공의 강검. 이어질리 없는 흐름을 세계를 짓이겨서라도 펼쳐나가는 검술로 봤다만.”
내 말에 이스티티아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정말 제대로 봤네?”
“음. 내가 본게 정확한가보군.”
“대단해. 엄청나. 포상이라도 하나 주고 싶을 정도야!”
“포상이라.”
“응. 마음만 같아서는···.”
“그럼 하나 받도록 할까.”
“응?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아니.
큰거 하나 있잖아.
“대륙 제일검에게 사사받을 수 있다면, 검사로서 더 바랄 것이 있겠나.”
“아하. 그런 포상. 어렵지 않지. 오히려 바라던 바야.”
***
결국 이스티티아가 정말 나처럼 이 세계에 들어온 녀석인지. 아니면 그저 미친 재능으로 캔슬을 성공시킨 초월격인지. 그도 아니면 이 망할 세계가 혹시 버그라도 일으켰는지.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녀석과 대련을 해보기로 했고, 녀석은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보급형 롱소드도 아니고 서로 목검을 들고 연무장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인사하는 목소리가 겹치고, 고개를 꾸벅 숙인 후.
검을 제대로 잡고 서로 마주봤다.
“선공은 양보할게.”
이스티티아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오른발로 강하게 땅을 박찼다. 몸 전체를 앞으로 밀어넣으며, 오른쪽 어깨가 이스티티아의 간격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검을 위로 크게 치켜들더니 반응할 틈도 없이 내 어깨를 향해 크게 후려쳤다.
이대로 가면 무조건 내 어깨뼈가 탈골될 정도의 강격.
허나, 원 스텝으로 내질러진 돌진이기에 캔슬 포인트도 무척이나 단조롭다.
부우웅.
내리친 이스티티아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분명 전력으로 몸을 던졌지만 완벽한 캔슬을 통해 조금의 시간을 번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녀석의 목에 검을 찔러넣었다.
가장 기본적인 대쉬 캔슬 평타.
이 세계의 일반적인 인물이라면 정타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검을 찔러넣는 그순간.
이스티티아가 싱긋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카가가가가각.
반응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 목을 향해 찔러 넣은 목검과 한참을 내려가 반응할 수 없어야 하는 순간에 치켜든 목검이 서로를 갉아냈다.
내 근력 수치는 이스티티아보다 낮기에 팔이 크게 튕겨나고, 자연스레 몸이 비었다. 순간 이스티티아의 검격이 짓쳐든다.
내 검을 막아낸 후 당연히 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녀석의 검이 기묘하게 꺾여 하단부터 시작된다.
아래로 낮게 깔려 내 무릎을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검. 동시에 나도 발을 크게 들어 올려 검면을 짓밟으려 했다.
하지만, 내 재주 수치가 무색하게도 그 반격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이스티티아의 검은 어느새인가 돌아가 있고, 내 발은 애꿎은 바닥만 내리쳤다.
“이것 참.”
그제야 전부 알았다.
캔슬 포인트?
아니다. 캔슬이란 행동과 행동 사이에 상대가 대처 불가능한 모션을 섞는 것이다.
저건 캔슬 포인트가 아니다. 내 패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지 투성이의 포악한 능력이다.
다시 한 번 검을 쥐고, 이번에는 제대로 붙어보기 위해 마주 본 그 순간.
후두둑.
“아차···.”
이스티티아의 검이 무너져내렸다.
그야 그렇겠지.
저 미친 기술을 단순한 목검이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할까.”
“응. 내가 질 줄은 진짜 몰랐는데, 대단해 울프람 남매.”
이스티티아는 히죽 웃었다.
이걸 내가 이겼다고 포장해준다고?
대륙 최강의 기사가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해도 되나?
“고작 목검 따위가 그런 억지를 받아낼 수 있을리 없잖나. 이걸로 내가 이겼다고 하면 나도 기분이 나쁘다.”
“억지라니? 나는 모르는 일인데.”
이스티티아는 목검의 잔해를 집어던지고 휘파람을 불면서 시선을 피했다.
“이스티티아. 세상을 비틀어서라도 공격하겠다는 건 억지다.”
“거기까지 눈치챘어? 우와아. 대단한걸? 어떻게 눈치 챈 거야?”
“내 주위에는 그런 식으로 싸우는 이들이 좀 있다. 엘피라네 요정여왕이나, 필티아 누님도 그렇지.”
“아하. 그렇구나, 그 분들은 이미 이 정도는 다 하시겠지. 역시. 울프람 남매는 대단해!”
히죽히죽 웃는 이스티티아.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즉. 저 녀석은 인생 전부를 ‘공격’에 걸었고 그 결과 벽을 넘은거다.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텐데 말이야.
“대단하군. 보통은 그렇게 공격에 맹진하지는 않는데···. 음?”
“남매?”
내가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자, 이스티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머리는 쉼 없이 돌아갔다.
공격에 걸었다? 정말 그런가? 아니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지 않나?
저 녀석의 공격은 그렇게 위력적이었나? 아니다. 피하기 더럽게 까다롭다는 걸 빼면 위력 자체는 놀랍지 않다.
그러니까 보정되는 부분이 다르다. ATK가 아니라···.
“공격이 아니라 혹시 ‘공격 성공’?”
“······.”
방금 전까지 아하하 웃던 이스티티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얼굴에 남은 것은 완벽에 가까운 무표정.
정곡이었나.
아니. 잠깐. 저게 공격 피해(ATK Damage)가 아니라 명중률(HIT)이라면 그러니까···.
“실질적인 공격력은 한없이 낮지 않나?”
내 말에 이스티티아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한없이 붉어진 얼굴, 나와 맞추지 못하는 시선.
“하, 하하. 그, 그것까지 눈치챘···어? 나, 남매는 대, 대단하네···.”
아니.
진짜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