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79)
779. 세이브 더 칠드런
아일라의 감사한 조언에 따라 나는 바로 결식아동들의 센터로 향했다.
아니 비밀결사의 아지트였나, 아무튼.
새까만 칠흑이 물들인 심야지만, 초승달이 조금 밝았기에 불빛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길을 찾아 찾아 비밀결사의 센터···. 아니 진짜 뭐라는 거지. 아무튼 라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낡아빠진 건물 문을 열고 지하로, 녀석들이 낭송을 하는 문 앞에 섰을 때. 불빛이 새어나왔다.
매일 풀 뜯어먹고 버섯 캐먹는 녀석들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양초불을 피웠을리가 없다. 아마 누군가 한 명은 깨어 있겠지.
드르륵. 최대한 조심히 열었으나 석문은 인정사정 없이 굉음을 울렸고, 안에서 독서를 하던 녀석은 그 소리를 눈치채고 조용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라즈그리즈.”
“어머나. 황자님. 늦은 시간인데 놓고 가신 것이 있나요?”
“아니 없다. 분실물은 없지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있다.”
“후후. 네. 들어오세요. 저와 나눠도 괜찮으시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드릴게요.”
라즈는 발키리 복음서를 덮고는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비워 옆 의자에 앉았다. 체온으로 데워놨다는 의미와 함께, 먼지 묻은 의자는 자신이 앉겠다는 배려였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것도 번거로워 녀석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이 녀석은, 아니 이 녀석들은 이런 녀석이다. 배려가 1할이고 헌신이 2할이다. 나머지 7할은 궁핍이고 말이야.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며 그저 조용히 웃는 녀석.
“라즈. 라즈그리즈. 너희들 발키리 교회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부디 거짓 없이 답해다오.”
“알겠습니다. 발키리 라즈그리즈의 세례명을 받은 몸. 거짓 한 점 없이 답할 것을 위대한 천상의 발키리님께 맹세하겠습니다.”
뭐.
이런 맹세를 받지 않아도 얘가 거짓말을 할 녀석이 아닌건 잘 알고 있다.
“우선 너희들은 일자전승의 교단이라 했다. 네 선대 라즈그리즈는 진짜 라즈그리즈···. 즉 천상의 발키리를 만나러 갔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리고 그 발키리를 만나는 법은, 선대의 계승자가 만든 신물에 축복을 담아 채워, 열쇠 삼아 기동하는 것이고 말이다.”
“네.”
즉. 선대가 후대에게 건네줄 열쇠를 만든다.
동시에 자신의 열쇠에 축복을 채운다.
열쇠와 이름을 계승하고 선대는 발키리를 만나러 간다.
후대는 계승받은 열쇠에 축복을 담고 다시 자신의 후대에게 넘겨줄 열쇠를 만든다.
“그러면, 그 발키리를 만날 수 있는 문은 어디에 있지?”
“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발키리님께 구도하는 저희들은 열쇠가 완성되는 순간, 그 곳이 어디라 한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가.”
“네.”
이건 이상하다.
마계의 문은 정확한 포인트가 있고, 천상의 문도 제프린 상공의 맵 끝자락에 존재한다.
그런데 어떻게 발키리 한정으로 ‘어디서든 문’이 튀어나오는거지?
“그러면 네 성물은 얼마나 축복이 차올랐지?”
“그것이···. 이제야 2할입니다. 제가 너무나 부족하여···.”
“축복은 어떤 방식으로 채우지?”
“숭앙의 대상이 되고, 찬미 받는 것으로 차오릅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것을 꺼리는지라, 오직 순수한 구도로 채우고 있습니다.”
축복을 빠르게 채우는 방법은 누군가의 찬미와 경배.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런것을 꺼리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기에 충전 속도가 느리다.
대신 발키리 복음서를 낭송하면서, 스스로 신심을 바쳐 가장 순수하게 채우고 있다. 라는 건가···.
“한 가지 더 질문하마. 네 선대의 신물은 무엇이었지? 그리고 그 선대의 신물도 알고 있나?”
“선대께서는 팔찌를 신물로 삼으셨습니다. 선선대께서는 반지라 들었습니다.”
“즉 고정된 신물은 없다.”
“네.”
이것도 이상하다.
보통 종교의 심벌은 그 규격이 명확하다.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하며 그래야 사람들의 숭배를 모으기도 쉽다.
그런데 마치.
주먹구구식으로 디자인하고, 일회성으로 쓰는 듯 한 역사는 뭐란 말인가.
“다른 녀석들의 성물도 그런가? 그렇다면 어떤 성물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네? 네···. 우선 선대 스케골트님은 석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선대 린즈님께서는 티아라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런가.”
생각할수록 기묘하고, 동시에 찜찜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직접 쳐들어가서 알아보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러면 끝으로, 내가 너의 성물에 축복을 전부 채우면, 당장이라도 발키리를 만날 수 있나?”
“네? 아···. 가능합니다. 하지만···.”
녀석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
아니. 아니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저 성물은 라즈그리즈의 신앙의 증표. 그걸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너무한 처사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써보자.
“라즈. 네 후계에게 줄 성물을 나에게 넘겨줄 수 있나?”
“네, 네? 입교하시려고요?”
살짝 말문이 막혔다.
생각해보면 내가 입교하는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
머뭇거리고 있자 라즈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발키리는 대대로 여성만 될 수 있는데요···?”
아차차.
그걸 또 깜빡했다. 내가 발키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계승자에게 전해주는게 아니라 당대 계승자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이에게 전해주는 성물이 있습니다. 우호선린의 증표라고 하는데 그, 그걸 황자님께 내어드릴게요.”
“신중하게 건네줘야 하는 물건 아닌가?”
“저는 무척 신중하답니다. 세상 제일로 의심받아 마땅한 저희들을, 가장 의심하셔야 하는 분께서 다가오셔서 친구가 되어주셨으니까요.”
“그런가.”
“네. 여기에 있습니다. 받아주세요.”
그리 말하며 라즈그리즈는 우호선린의 성물을 내밀었다.
팔찌 모양의 성물을 손목에 차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히 받도록 하지.”
“네, 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밤이 너무 늦었다. 촛불을 끄고 잠에 들도록.”
“아,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황자님도 좋은 꿈 꾸세요.”
그리 말하고 라즈그리즈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나는 녀석들의 아지트를 나왔다.
초승달로도 비춰지지 않는 으슥한 초원에 서서 하늘을 올려보며 생각을 점검했다.
원작과 현실.
내가 알던 천족과 발키리 교단.
몇 번이고 되뇌인 설정과 방금 라즈가 해준 증언.
머릿속에서 하나 둘 퍼즐이 맞춰지고, 이내 깊은 숨이 나왔다.
좋은 꿈이라.
꿀 수 있으면 좋겠는데.
“드물게도 악몽을 꿀지도 모르겠군.”
이럴 때 내 직감은 꽤 잘 맞는 편이라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한숨이 더 깊어졌다.
***
으슥한 곳으로 몸을 옮겨 팔찌를 착용한 후, 인벤토리에서 퀵 크리에이트로 포춘 쿠키를 찍어냈다.
그 뒤 포춘쿠키에 담긴 미약한 축복을 계속해서 팔찌에 쑤셔 넣었다.
하나에서 열. 열에서 천. 천에서 다시 일만.
만 개 분량의 축복을 먹어치운 팔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구우우우웅. 소리를 내며 눈 앞에 하나의 포털이 열렸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발키리를 만날 수 있는건가. 내가 모르는 설정이군 이라는 호기심 이전에 먼저 헛웃음이 나왔다.
축복을 머금어 푸르고 찬란해야할 포털이 붉다. 거기에 끈적한 마력도 섞여 있다.
순수하게 천계의 문을 열었다면, 그 안에는 피도 마력도 필요 없다. 오직 축복의 순수성이 천계로 사람을 인도하게 되어 있다.
즉.
“이 너머는 천계가 아니다.”
첫 번째 단추부터, 내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포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을때. 내부는 검디 검었다.
발걸음을 내딛자 다리 아래에서 바삭. 소리가 들렸다.
마치 수분을 다 내뱉고, 그 형태조차 겨우 유지하는 모래덩어리를 밟는 듯 한 감각.
한 발 더 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더 들어가자, 쿵. 하고 등 뒤의 포털이 닫힌다.
【발키리의 성소에 진입했습니다】
“······.”
원작에서는 없던 던전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말한 것을 보면 아마 구상 단계 정도는 있었던 것 아닐까.
문득.
원작이 밟아온 절차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MMO라고 했던가? 그 다음은 모바일로도 기획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는 두개 다 폐기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D/Z SAGA의 개발비화는 어둡고 슬픈 이야기도 담아냈으며, 충격적인 반전 또한 있었다고 했다. 그게 어느샌가 흐르고 흘러서 ‘너무 어둡지 않나?’라는 의견이 나와 끝끝내 ‘스스로 답을 내리는 성장 학원 배틀 액션 RPG’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나왔다.
하지만 어둠의 편린은 작중에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게 바로 뭐만 하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에요 하면서 레이피어로 동반칼찌를 노린 후 성공하면 서로의 핏방울이 하나로 얽혔다며 행복하게 눈을 감는 레지나 루트와 대학원생의 길을 서스럼 없이 걸어가는 이졸데 루트다.
아무튼.
이스티티아도 그렇고,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초기안들이 나왔다면.
분명 어두운 이야기도 어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파사삭.
발 아래 깔려있던 것들은 그저 모래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그 인식을 바꿔야 했다.
그으어어어어···.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있다.
위잉. 팔찌가 공명하며 천천히 내 몸을 잡아당긴다.
그래. 그렇겠지.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단순한 일 아닌가.”
고정된 문 없이 축복만 채우면 발키리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계승자에서 계승자로 한 명씩 이어지는 것도, 규격화된 성물이 없는 것도, 축복을 채우고, 다음 계승자를 위한 성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말이다.
그으으어어어어어···.
놈이 부르는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스스로 빛을 내기 시작한 팔찌를 슬쩍 보고 이내 내가 무엇을 밟았는지, 무엇이 으스러졌는지 보였다.
오른쪽을 힐끗 보니, 무너져내린 티아라가 있다. 그 앞에는 반으로 쪼개진 석장. 방금 밟아 팔찌가 흩날렸다. 데구르르, 잘못 걷어찼는지 반지가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내가 밟은 것은 지금까지 계승자들이 만들어낸 성물이었다.
오직 발키리님을 만나기 위해 축복을 모으고 인간에게 헌신했던 이들이 받아든 결과였다.
그으으으으으으···.
“그래. 지금 가고 있다.”
팔찌가 이끄는대로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거대한 석문을 옆으로 밀어내자 문이 열리고 그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에, 달빛이 스며들어온다.
하나의 재단을 위에 두고 한 명의 여기사가 이쪽을 보고 있다.
전신에 붉은 갑주를 입고, 얼굴을 가리는 투구를 꼈다. 전체적으로 날개의 형상을 본뜬 한 세트의 갑주는 누가 봐도 최고급품이었다.
내가 봐도 그 등급에 놀랄 정도니 오죽할까.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천사는 더더욱 아니다.
베이지빛 머리는듬성듬성 빠져있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네놈이 그리도 바라던 내가 왔다.”
그으으으으···.
놈의 등 뒤에는 지금까지 그 숭앙을 바치고, 오직 녀석을 배알하기 위해 평생을 걸었던 이들의 유골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장장. 수백 년간의 기만.
천상의 발키리를 만나 인류에 이렇게나 공헌했으니 인간과 천계가 공존하는 미래가 올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녀석들의 결말이 이거다.
일자 전승이면,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일회용으로 쓰다 버리면 되니, 성물이 일정할 필요는 없다.
마치 개미처럼 하나 둘 숭배를 모아 먹어치운다.
그래.
발키리 교회라는 이름의 도시락통을 준비하자.
언젠가 천상에 올라가기 위해서 몰래몰래 먹어치우자.
“천계로 올라가지 못하고 지상을 배회하고 명예로운 죽음조차 맞이하지 못하고 귀소본능만이 남아 축복을 갈구했나.”
신화포식자를 꺼내들었다.
“마지막 남은 날갯죽지까지 내 손으로 잡아 찢어 지하의 지하. 심연 속 나락까지 쳐박아주마.”
평소보다 격한 감정. 그리고 격한 말이 튀어나왔음에도.
【인류의 숙적을 상대합니다.】
【주의하세요. 타락한 발키리는 무척이나 강한 상대입니다.】
이번만큼은 황실 혈통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무운을 빕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