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81)
781. 키다리 황자님
다행히 중간계 어디인지도 모를 동굴에 피랍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대륙 어딘가에 떨어져서 아일라한테 살려달라고 메세지를 보낼뻔 했지 뭐야.
뭐, 무슨 일 있겠냐만은 아일라와 위치전환을 이용해 이것저것 알아보고 하려면 생각보다 복잡했을거다.
다시 제프린으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돌아와서 본 제프린은 동이 터오르고 있었다. 슬슬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 일출시간은 당연히 늦어질 수 밖에 없는데, 대체 몇시간을 싸운걸까.
하지만.
“아무튼 이겼군.”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봤다.
솔직히 강한 상대라기보단 기분나쁜 상대였다. 발키리라고 하면 본디 마계 군단장급의 인사인데 이지(理知)를 상실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쉬웠다.
물론 손 하나하나를 떼어내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아무튼. 하드웨어만큼은 군단장 중간급인 놈을 이제 별 부작용 없이 쓰러트릴 수 있게 되었다. 이건 꽤 고무적인 일이다. 솔직히 군단장 한 놈 잡을때마다 몸이 성한 기억이 없어서 걱정 좀 했는데 말이야.
아무튼 오래간만의 긴 노동 때문에 허리에서 뚜두둑 소리가 나고, 어깨도 피곤하니 들어가 쉬려고 했는데···.
“어머. 황자님. 안녕하세요.”
“앗! 황자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발키리 삼자매가 이쪽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좋은 아침이구나. 다들 채집하러 가는 건가?”
“네. 그렇답니다.”
라즈가 대표격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의 축복 수집과 그 결과는 이제 보답받지 못할 것이다.ㅣ
아니 그게 보답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내 손으로 그 동굴을 개박살냈으니 가봐야 공터만 있을 뿐이잖아.
다시 그곳을 찾아가서 보물을 한 다발 놓자니, 영적 충족을 만족하는 교인에게 보물이 보상이라고 들이대는 건, 보물을 노리고 모험을 떠난 모험가들에게 지금까지 너희들의 우정과 노력이 진짜 보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말하자면.
내가 이 녀석들에게 너희들은 사실 뺑이치던 거고 완성되면 인간 도시락으로 불려갈 예정이었으며 너희들의 노고가 잔뜩 담긴 울퉁불퉁한 손은 발키리 매콤 핫윙이 될 예정이었단다. 라고 하는 건 너무한 이야기 아닐까.
그러니, 숨기자.
이 끔찍하고도 지독한 기만은 나만 알고있는게 맞다.
“그렇구나. 그럼 나도 함께 하도록 할까.”
“어머, 오늘도 채집을 도와주시는 건가요? 감사합니다.”
일단.
조금 더 생각하고 방침을 정할까.
***
그렇게 녀석들과 나물 채집. 버섯 캐기 등 일과를 하다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샌드위치를 올려놨다. 마실것도 하나 내놨다.
녀석들이 당황했지만, 오늘만큼은 너희들의 헌신을 이해한다며 넘어갈 생각은 없다.
“나 혼자 맛있는 것을 드는 것도 외로운 일이라 말이다. 함께 이야기할 말벗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자비와 봉사라고 생각하도록.”
“그리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결국 녀석들도 샌드위치와 음료를 들었다.
“와아···. 맛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어요.”
린즈와 스케골트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고, 라즈도 한 입 먹고는 손을 입으로 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곤란해요. 황자님.”
“뭐가 말이지?”
“이렇게나 좋은 식사를 한 번이라도 맛보면 더 이상 풀과 버섯만 끓여먹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걸요.”
“그렇군. 그러면 나는 너희를 타락시키기 위해 온 마족인가.”
“설마요! 그게 아니라···.”
“농담이다.”
“그리 진지한 얼굴로 농담 하지 말아주세요.”
라즈가 당황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잠시 후.
다시 약초 채집을 개시한 우리.
정확히는 라즈와 나, 린즈와 스케골트로 조를 나누어 채집하기 시작했다.
“라즈. 라즈그리즈.”
“네. 황자님.”
“한 가지 묻고싶은게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물음이다. 모욕적일지도 모르나, 그리 생각된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 황자님께서 무엇을 물어보시든 오직 진실만으로 대답드리겠습니다.”
“그럼 묻도록 하지. 만약···. 너희들의 선행과 봉사가 보답받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내 말에 라즈는 침묵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무거운 질문이었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리 생각한 순간.
“무척이나 슬프겠죠. 눈물이 나고 힘들거같아요. 많이 울 거 같습니다.”
“그런가.”
“하지만, 그렇게 한참 울고, 어떻게든 털어내서 다시 평소처럼 행동할 거 같아요.”
“어째서지?”
“그야···.”
라즈는 검지를 턱 아래에 대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남이 행복해지는 걸 바라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한 행동을 후회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
“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의 미소를 많이 좋아한답니다. 발키리의 계승자 라즈그리즈가 아니라 제가요.”
“······.”
뭐야. 괜한 걱정이었나.
“알겠다. 짓궃은 질문을 했구나. 너희들의 구원은 반드시 찾아 올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안 찾아오면 찾아오게 만들어줄게.
뭐, 천계에 쳐들어가서 발키리 수문장을 뚜드려 팬 다음 와서 ‘너희들의 선행을 축복하마!’ 라면서 축사 한구절이라도 읊게 하면 되는 일이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방침이 하나 더 정해졌다.
마계의 문도 무척이나 거슬리고 짜증나지만, 반대로 천계라는 놈들도 나중에 손을 봐 줄 생각이니까.
아무튼.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이렇게 좋은 마음가짐을 가진 녀석들이 행복해져야지. 암.
나는 파티 메세지창을 켜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
채집을 마치고 발키리들의 폐허에 돌아왔을 때.
팔짱을 끼고, 발을 어깨넓이로 벌리고 태양을 등진 채,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햇빛에 반짝여 보라빛을 살짝 섞은 흑발. 망설임이라고는 없는 패왕무투의 자세. 마지막으로 당당한 미소와 흑수정색 눈빛.
누가 그 이름을 붙였는가. 아일라 트라이스타.
“어···. 어라? 저 분은···.”
리즈가 녀석을 보고 무언가 물음을 던지기 전에 쿠웅! 소리가 났다.
“저, 저희들의 집이···.”
등 뒤에서 스케골트의 비명이 들렸고, 아일라 뒤에 있던 폐건물···. 아니 폐허가 무너져 내렸다.
내 옆에 있는 라즈그리즈가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고, 아일라는 에헴 하고 코웃음을 쳤다.
“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다니···.”
“아뇨! 이 아일라 트라이스타가 무너트렸답니다!”
“어, 어째서···?!”
“그야! 이 땅과 토지의 건물주가 바로 저니까요!”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주섬주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마 건물이나 토지 관련 서류겠지. 애당초 8구역에 아일라의 땅이 지나치게 많기도 하고 승인은 금방 나왔을 거다.
“제 8구역에 이런 허름한 건물과 방치된 땅이 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 건물은 이렇게 철거 할 거랍니다!”
“아···. 아아···.”
발키리 세 자매의 오열이 들려왔고, 아일라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 녀석. 충격요법이 너무 과한거 아닌가.
내 우려도 잠시. 아일라는 음후후. 하며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고는 다시 선언했다.
“대신! 이렇게! 이렇게 해드리죠!”
직후.
아일라의 마력이 대지를 다지고, 그 위에 흑수정의 기둥이 세워졌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튼튼한 기둥 위로 석재가 붙고, 그상대로 다시 고정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층 건물.
“방 다섯 개! 거실 하나! 욕실 두 개! 환기와 물마법까지 완비한 화장실 하나! 마지막으로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 가능한 마법구조까지! 이게 바로 지금부터 이 부근에 만들어질 집이에요! 후후! 그런데 왜 우는 거죠?”
아니.
아일라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권력자 겸 용역 겸 재개발회사 사장 겸 개발인력 같잖니.
저항할 시간도 주지 않고 건물을 헐어버린 다음 대뜸 신축 건물을 올렸는데 애들이 안 울고 배기겠니? 난쏘공도 이거보단 길었던 거 같은데?
슬쩍 아일라를 보니 녀석은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고, 결국 내가 파티 메세지로 애들이 왜 우는지 설명해줄 수 밖에 없었다.
“아, 아아. 그렇군요. 하지만···. 음. 그러니까 여기선···. 아하. 그래요. 으흠! 으흐흠! 거기의 세 사람! 잘 들으세요!”
“네···. 네.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조용히 나가겠습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아, 아무튼. 하지만 이 근처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고 해서 당장 사람이 몰려드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몰려들겠죠. 이렇게나 멋진 건물을 세우실 수 있는걸요. 이 부근에도 행복이 넘쳐날거라 생각하면 저희는 행복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오.
드물게도 아일라가 당황한다.
거주지를 빼앗기고도 슬픔을 끊고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는 녀석들이다.
맛이 갔다는 점에선 아일라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당황하는 아일라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었고, 아일라는 도와달라는 듯 힐끔 이쪽을 봤다.
우물쭈물하는 녀석의 모습이라니, 진짜 드문데 이건.
조금 더 지켜보고 싶지만, 그랬다간 아일라가 삐질수도 있다. 그것도 재밌겠지만···.
좋은 일 하러 온 녀석을 놀리는것도 할 짓은 아니지.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희 눈 앞에 서있는 저 당찬 아이의 이름은 아일라 트라이스타. 좋은 녀석이다.”
“네, 네?”
“자. 아일라. 너무 장난만 치지 말고, 왜 이런 건물을 만들었는지 천천히 말해주겠나.”
“네, 네! 그러죠! 으흠. 아무튼 이 근처에는 사람들도 모자랄 거고, 상권이 만들어질 것도 아니에요. 혹시 알고 있나요?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금방 낡고 무너져내린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집에서 살 사람들이 필요해요.”
“아···. 공개적으로 지원자들을 모집하시는 거군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러니까···. 으흠. 여러분들이 이 집에서 살아보고, 문제점이 있는지 좋은지 저에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네? 하, 하지만 저희는 그런 돈이···.”
“돈 대신 여러분들의 체험과 시간을 사는 거에요. 좋은 거래잖아요?”
“저, 저희들의 시간 따위···.”
라즈를 보며 아일라는 그제야 싱긋 웃었다.
“울프람에게 들었답니다.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다고 한 것. 그런 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거에요. 결코 값싼 대가가 아니에요.”
그리 말하고, 아일라는 라즈의 손을 맞잡았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손은 곱지 않고 거칠 것이다.
허나 그렇기에 녀석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하, 하지만 고작 저희들의 시간으로···.”
“그러면 앞으로도 행복해지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네, 네?”
“그게 의뢰주의 부탁이었답니다.”
“의뢰···주?”
아일라는 슬쩍 이쪽을 바라봤다. 발키리 세자매가 이쪽을 황급하게 본다.
갑작스럽게 이목이 집중되고, 녀석에게 음성을 날렸다.
-내 정체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울프람도 제가 당황할 때 잠시 재밌다고 지켜봤죠? 다 들켰다구요.
아.
그걸 눈치채다니 이래서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맞다. 내가 부탁했다. 너희들의 집이 너무 낡아서 말이다.”
“아, 아···.”
그제야 세 명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다 이해하고는 이쪽에 달라붙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자님···.”
“고마워요. 정말,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감···감사 합니···다. 흑···.”
갑작스레 달라붙어 우는 녀석들을 달래며 아일라를 슬쩍 봤다.
녀석은 한쪽 눈을 찡긋하고 혀를 빼꼼 내밀며, 겨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저 녀석이 진짜···.
하.
이번만 봐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