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86)
786. 귀족과 천민
원시 고대 던전.
즉.
황실이니 신화시절이니 하는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라, 진짜 300년 전. 전장의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던 현실이다.
이 섬은 철저하게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의도 아래에 제작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학생’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배려.
역사적 사료의 어두운 부분.
직접 본다면 황손이거나…. 혹은 교수거나 하는, 진실을 알아도 마음이 붕괴되지 않을 이들을 위한 안배.
일반 학생들이 보면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남겼어야 하는 안배다.
“그게 어디있는지 아는가?”
-네? 네. 알고 있습니다.
인벤토리에서 제프린 전도를 꺼내고, 녀석에게 내밀었다. 녀석은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남서부를 찍었다.
“여기라…. 확실한가?”
-네, 네! 확실합니다!
그리 말하고 녀석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틀림없이 맞을 것이다.
이 애니멀 페스타 아일랜드의 서브 퀘스트는 기묘하게도 정보를 구매하고 나서야 맵에 오브젝트가 생기는 방식이니까. 이 녀석이 진짜라면 정말 그 곳에 던전이 생기는거다.
그리고 여기는, 원작 기준으로도 신화시대의 던전이 있었던 곳.
“알겠다. 이걸 받도록.”
-음? 이건…. 오. 호오. 이렇게나 중독적인것이…. 오오….
내가 최고급 개껌 하나를 던져주자, 녀석은 사료인 줄 알고 씹었다가, 이내 그 딱딱함에 당황했지만, 이후 갉작갉작 소리를 내며 갉아먹기 시작했고, 다른 동물들의 부러움을 샀다.
“자. 그러면 다른 정보들도 모이는대로 보고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장 밖을 나와보니, 여전히 이브는 동물 친구들을 곁에 끼고 자고 있었다.
“에헤….”
거 참.
편하게 자는 군 그래.
***
다음날 아침.
“그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만.”
진심으로 화가 난 이브가 이쪽을 째려본다.
아니 뭐 아침부터 긁은건 아니고….
최대한 순화하자면 ‘이브는 여기에 있어. 울프람은 갈거야.’ 를 해줬던 것 뿐이다.
그냥 여기서 동물 친구들과 뇌빼기 훈련…. 이 아니라 애니멀 테라피를 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를 따라오겠다는 거다.
“어째서지?”
“당신이 이런 기묘한 곳에 그냥 놀러왔을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다만.”
“그러니까 저를 또 뺴놓고 며칠이나 행방불명이 되려고요?”
“……”
“이번 보고를 봤을 때. 진짜 혼자였으면 위험했을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건 아니다.
나의 비오의를 쓰면 그런 거북이따위 한 방에….
허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비오의를 쓴다는거 자체가, 지금 내 몸으로는 돌아오는 반동이 너무 크다.
볼을 부풀리고 이쪽을 노려보는 녀석.
알겠다. 알겠어.
“함께 가는건 상관 없다만, 꽤나 충격적인 상황일 수 있다. 괜찮겠나.”
“하. 제가 고작 충격에 흔들릴 거 같아요?”
네 뱃살은 작은 충격에도 흔들린다만.
“정말. 옳은 선택을 한 건지 모르겠군.”
”흥. 놓고 가면 끝까지 따라가면 그만이에요.“
이렇게까지 집요하면, 어쩔 수 없지.
***
이브와 함께 그 강아지가 정보를 넘긴 장소로 향했다.
“그러고보니 걷는것도 익숙해졌나보구나.”
“익숙해지지 않으면 놀릴거잖아요.”
“눈치도 빨라졌군.”
“나가 죽어요. 거기에 놀리는 것 뿐만 아니라, 놓고 갈 거잖아요.”
이브는 투덜거리다가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이동에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네 전용 수레를 만드는것도 괜찮겠군.”
“못 들은 척 좀 하라고요!”
녀석이 다시 화내고,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몇 번이나, 몇 십 번이나 했던 말 싸움.
이제는 서로 무시할 법도 하다만,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나 진심으로 반응하고 싸우고 있다.
이것도 꽤 독특한 재미긴 하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하나의 동굴에 도착했다.
숲 한복판에 이만한…. 인공적인 느낌을 내는 동굴이 있는것은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오른쪽에 있는 표지판이었다.
분명 나무로 되었건만 전혀 썩지 않았고, 그 위에는 하나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로엔그린 황실과 무척이나 닮았지만, 더욱 날카롭고 투박하다. 장식도 부족하다.
“비슷하지만 조악해요. 황실 사칭범?”
“아니. 그렇지 않다. 이게 바로 원초다.”
“원초?”
“그래. 로엔그린이 로엔그린이 되기 이전. 위대하신 선조님께서 세우셨던 중간계 연합 본부의 문양. 즉. 진짜 신화시대의 영웅들. 그 핵심의 문양.”
“아….”
이브는 그제야 문양을 보고, 바로 자세를 잡고는 오른손을 들어 가슴께 위에 올렸다.
“뭘 하는거지?”
“경의를 표하고 있어요. 지금의 저희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이 문양 아래에 모인 용사님들 덕분이니까요.”
“하.”
이럴때만 황녀지 진짜.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그 기품이. 존중해야 할 것에 존중을 표할 수 있는 긍지가.
이 녀석이 어째서 그 눈부신 학생회장으로 불렸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허나.
“이 안으로 들어가면 전투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전투는 네 한계를 시험할지도 모른다.”
“시험해보라고 하세요. 오직 통과했음으로 증명하죠.”
“멋지군.”
그 각오가 멈추는 일 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네.
우리는 던전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
던전 안은 그저 어두웠다. 빛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는 분명 해가 떠있건만 습하고…. 냄새가 난다.
“이건 무슨 냄새죠?”
“독기다. 오래 맡아서 좋을것은 없으니 정화 마법으로 주변의 공기를 정화해라.”
“알겠어요. 【성광창 : 정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성창이 아니라 성광창을 쓴다. 세로로 올라온 빛의 창이 화악, 하고 주변의 삿됨과 일그러짐을 잡아먹는다. 한결 산뜻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운다.
혼자만 정화해도 되는데, 나 까지 영향권 안에 넣은 건가. 뭐, 지금은 조용히 녀석의 호의에 감사하도록 하지.
나도 태초의 루비를 들어 길을 비췄다.
아무런 특이점 없는 동굴.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성광창이 정화해야하는 독기는 더더욱 강해졌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우리는 독기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 전체를 덮는 거대한 철문.
그것이 녹슬어서 균열을 만들고, 안에서 무언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정화를 늦추지 마라. 알겠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마법을 상시 쓰고 있는게 되는데요?”
마법사에게 항상 더블 스펠을 쓰라고 하는 것은 수학 문제를 동시에 두 개 풀라는것과 같다…. 라고 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괜찮다. 위험하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너는 이 독기의 중화를 중점적으로 생각해라.”
“그러죠….”
간다. 내가 읊조리자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 포식자로 철문을 그어내고 발로 걷어찼다.
그대로 철문은 안으로 무너지고, 쿠우웅 소리와 함께 안에 쌓여있던 독기들이 빠져나온다.
“으…우윽.”
“괜찮나.”
“괜찮긴 한데요. 대체 이건….”
이브가 갑작스레 손으로 코와 입을 가렸고, 동시에 성광창이 흔들렸다.
“조심해라. 독기의 정화가 늦어지면 위험하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냄새가….”
“구역질 나겠지. 그래서 혼자 오겠다 했다만….”
“큭….”
내 말에 이브는 다시 성광창을 끌어올렸다.
“그럼 더 들어간다.”
“잠깐만요. 제대로 설명해달라고요. 이 독기는 뭐고, 이 안에는 뭐가 있는거에요?”
“내 입으로 설명할 필요를 못느끼겠구나.”
“뭐에요!?”
그야 안으로 들어가면 다 알거 아니냐.
***
안에 들어가자마자 성광창과 태초의루비를 동시에 사용해 독기를 정화했다.
그럼에도 폐부를 찌르는 시큼한 향기. 무언가 묵어버린 냄새. 사취. 그 모든것이 정화되진 않았다.
이브의 안색이 창백하다.
그러니까 오지 말자고 했거늘….
“여긴…. 대체 뭔가요? 우윽. 이 냄새….”
“아까 네가 던전 앞에서 경의를 표했다만. 전쟁이라는 건 정의만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네, 네?”
“이 던전은 거대한 공방이다. 흠. 적어도 내 편의점 열 개는 들어갈 크기의 공방이지. 삼백년 전. 무언가를 실험하던 연구실이라고 봐도 된다.”
“실험…?”
“그래. 실험. 네가 무슨 냄새냐고 물었다만 이제야 알려줄 수 있겠구나. 이건 실험체들의 냄새다. 그들이 내뿜는 사취(死臭). 그리고 약품 냄새.”
“…….”
이브의 안색이 더더욱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말해주기 싫었다.
이런 역겨운 진실은 나 혼자 알고 있으면 충분한데 말이야.
진짜 진실을 알기 전에 지금이라도 돌려 보내야지.
이런 쓰레기장에 오래 있으면 냄새도 역겹고, 몸에도 배니까 설득하기도 쉽겠지.
“돌아가라.”
“싫…어요.”
“그냥 고집이라면 그만 부리고….”
“아…뇨. 욱. 확신했어요. 이건 제가 봐야 할 곳이에요.”
“…….”
“당신 입으로 말했죠. 이 곳은 로엔그린이 로엔그린이 되기 전의 원초라고, 말이에요.”
구역질을 참으면서도 이브는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봐야돼요. 로엔그린의 정점에 서려면, 로엔그린의 빛도 어둠도 전부 알아둬야 한다고요….”
“버틸 수 있겠나?”
“저를 얕보지 마세요….”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못 버티면 내가 지켜주면 그만이다.
“진짜 어둠이 온다. 자. 전투를 준비해라.”
“전투…?”
“그래.”
앞에서 철퍽. 철퍽 소리를 내며 녀석들이 다가왔다.
그으…그으으…그우어….
가아…갸하하하하하학….
“저건, 대체 뭐죠?”
“나는 이 곳을 연구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연구했길래 이렇게 시체 썩는 냄새와 약품 냄새가 진동을 할까.”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북동부의 망자의 평원에, 300년전 죽어버린 전사들의 시체가 언데드로 부활했듯 ‘시체가 다시 일어나서 전사가 되는 현상’ 자체는 그리 드물지 않다.
그러니까.
“삼백년 전 신화시절의 용사들은 생각했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군의 피해만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과는 아주 간단하게 도출됐다.
“죽어버린 마족의 시체를 언데드로서 부활시킬 수 있는가. 나아가 마족과 싸우게 만들 수 있는가. 당시에는 꽤 화두가 됐었던 연구 주제라고 하더군.”
죽었음에도 안식을 취할 수 없는 언데드 마족.
그 연구실이 바로 여기다.
***
이브의 비위와는 별개로, 이 던전이 가지는 메세지의 무게와는 별개로 나는 이 던전을 참 좋아한다.
그으으어어어 갸하아아아아악!
우선.
이 던전은 몬스터가 많다. 더럽게 많다.
그것도 하나같이 다 저주와 어둠의 마력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나와는 상성이 무척이나 좋다.
휙. 하고 베면 마족 좀비가 한마리. 허공에 단검을 던져 마족 좀비가 또 한마리.
이 D/Z SAGA의 던전에서도 무척이나 밀도 높은 실내 던전이기 때문에 훨윈드 한바퀴에 좀비들이 좀비였던 것들로 사라진다.
심지어 언데드다.
이대로 시체를 전부 정화하는게 아니라면….
그으으…. 가아아….
놈들은 다시 몸이 대충 붙어서 이쪽을 향해 달려든다.
원작 기준으로도 완벽한 소각은 불가능했다. 이 장소 자체에 남겨진 시체가 너무나도 많거니와, 안에는 기계가 있어서 언데드를 찍어낸다고!
검술 숙련이나 다수와의 전투. 그 외에 스트레스 해소까지.
이브가 얼마나 절망하든 상관 없이, 나는 베고 또 베었다.
물론.
내 파괴본능을 깨우고 싶어서 이 곳에 온건 아니다.
이 안에는 【지금은 진입할 수 없는 것 같다】라고 불리는 ‘미개봉 영역’ 즉 패치가 되지 않아 가본 적 없는 문이 하나 더 있다.
그래.
그곳이 진짜로 내가 봐야하는 곳이다.
원작 기준으로도 내가 모르는 정보가 남겨진 300년전의 실험실. 분명 뭐가 있어도 있을거다.
그리 생각하고 한 번 더 몹을 몰아서 그대로 대량학살을 펼치려는 찰나
【성광창 : 브라이트 레인 : 최강화 : 연사 : 지역장악 : 필중 : 유도 : 확인사살 : 자동 재연사】
등 뒤에서.
상상도 못한 9소절의 마법의 날아들었다.
“이브….”
“하아, 하아. 누가 또 지켜지고 끝날 거 같아요? 이 정도 진실을 알았다고 무너질 거 같아요? 웃기지 마세요. 제 한계를 멋대로 단정짓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떨리는 어깨. 창백한 얼굴. 몰아쉬는 숨.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
하지만 다리는 후들거림에도 서 있었고, 창백한 얼굴임에도 적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울 것 같은 입으로도 마법을 영창했다.
“이브….”
“저를 얕보지 마세요.”
멋지다.
정말 멋지긴 한데….
갸아아악! 그아아악! 캬아아오아아악!
자동 재연사가 발동된 최강의 브라이트 레인 때문에, 멋대로 좀비들이 죽어자빠지고 있다.
정말, 깔끔하게 광역 마법으로 청소된다.
말 그대로 핵앤슬래시의 더러운 광역 마법사 놈들의 사냥법.
“하하, 다 타버리세요. 오물은 빛으로 정화에요!”
좀비들을 보며 웃음치는 이브.
그래. 다 좋은데
그런데 이러면 내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 더러운 직업 격차가 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