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87)
787. 용서 못 해, 죽여주마
이브의 9소절 마법.
그것도 브라이트 레인을 베이스로 사용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게···. 이게 우리들 인간의 힘이다! 죽어라아아아!”
눈이 빙글빙글 돌면서 초점이 맞지 않고 마법을 과하게 난사하는 그 모습.
말 하는 건 무슨 만화 주인공 같은데, 하는 짓은 폭주하는 적 기체다. 무서워라.
하지만, 말리기보다는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브라이트 레인은 이브의 1차 승급 기술인만큼, 그걸 9소절로 쓴다는 거 자체가 어마어마한 마력의 부담을 가지고 온다. 즉. 이건 이브의 성장의 마디가 될 수 있다.
자.
보여줘라 이브 폰 로엔그린.
악의 기체의 힘을, 신도 악마도 멸할 수 있는 그 힘을 말이다!
“죽어서 사라져! 빛이 되어라아아!”
이브의 몸이 떠오른다.
브라이트 레인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에 빛을 감싸, 거대한 광휘가 된다.
저것이 바로 이브의 최종절기의 초입···.
원래라면 도망쳐야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을 끝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다.
“냄새 나. 기분 나빠. 다가오지 마. 끈적거려. 속 쓰려. 스트레스 받아. 동물들한테 치유받고 있었는데 나는 왜 여기에 왔지? 싫어. 기분 나빠. 다 싫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는 녀석.
뭐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손의 의무니 그런 걸로 사명감에 불타서 싸우고 있던 거 아닌가?
왜 저렇게 불만이···.
【휘광익천기】
이후.
날아오른 이브는 그대로 이 만들어진 지옥 전체를 비추는 빛이 되었다.
【휘광익천기】
【1T】
【시야에 포착되는 모든 적에게 ‘빛’의 공격을 가합니다. 빛 속성이 약점인 적에게는 필중 상태의 즉사를, 약점이 아닌 이에게는 ‘성광창’의 데미지를, 빛 저항인 적에게는 약점 제거 이후 ‘성창’의 데미지를 가합니다.】
정말 개사기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파티원인 내가 저 휘광익천기에 맞아 죽을 일은 없다.
그러니 여기서 팝콘을 먹으면서 지켜봐도 된다.
갸아··· 그으으···.
좀비들이 하나 둘 정화된다.
고맙···다. 감사···해요. 아아···드디어···.
분명 마족들의 시체임에도, 삼백 년간의 실험에 동원되어서 그런가, 영면에 들면서 녀석들이 기뻐한다.
【적임에도 마족을 처치하고 그 감사를 들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축하합니다.】
【원하는 저주계열 스킬 하나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확인 결과 황실 혈통을 보유 중입니다. 저주 스킬을 얻을 수 없습니다.】
【대신 강한 저주 저항을 얻습니다.】
“음?”
강한 저주 저항은, 휘광익천기급이 날아와도 한 번 튕겨낼 수 있다.
즉 어마어마한 보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래라면 내가 아니라 이브가 획득해야 할 보상인데 왜 내가 얻었지.
그 점을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 사라져버려어어어어!”
저기서 보상을 먹어야 할 이브가 완전 미쳐있고, 보상을 얻는 조건이 감사를 듣는 것이니까 아마 나한테 온 것 같다.
아니면, 시스템은 나에게만 적용되니 어쩔 수 없는 것일수도 있고 말이야.
뭐 아무튼 그래도 이 보상은 이브 덕분에 얻은게 확실하니···.
“녀석에게도 슬슬 무엇 하나 챙겨줘야겠군.”
이브 폰 로엔그린만을 위한 신화급 장비를 하나 얻어줄 때다.
“다 죽어버려어어어어어어!”
나 참.
쟤는 언제까지 저럴 생각이래?
***
그 뒤, 완전히 탈진해 쓰러진 녀석을 받아들고, 함께 넘어졌다. 어지간히 무거워야지.
내 몸으로 받았기에, 뼈와 장기가 울부짖는다.
이 무게, 내 한 몸으로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다···.
“크으으윽.”
뼈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살려달라고 버틸 수 없다고 이제 놓아달라고···.
결국 뒹굴. 이브를 옆으로 굴려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으우으···.”
기묘한 소리를 내뿜으며 그대로 드러누운 녀석.
조금만 녀석을 밀어내는 것이 늦었다면, 아마도 내가 말려들어 죽었을 것이다.
생과 사의 위협을 느끼며 깨달음을 얻어 한 걸음 초월자에 다가갔다 해도 납득할 정도의 위기 상황이었다.
태산압정이 이러할까. 이브 폰 로엔그린의 무게를 잠시 지탱한 것만으로도 죽음을 느끼다니!
“잡 소리는 이쯤하도록 할까.”
자리에서 일어서서 실험실 내부를 봤다.
빛의 마력으로 가득 차서, 좀비 따위는 도저히 등장할 수 없는 상황. 말 그대로 깔끔하게 청소된 언데드 던전 같다.
옛날 동생들과 했던 디아2가 생각나네, 액트1의 첫 던전을 정리하면 햇빛이 깔끔하게 들어오는데 마지막 좀비 한마리가 안 보여서 동굴을 두 바퀴 돌아야 했지.
“쯧. 정말 잡생각이 많아지는군.”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하지만 이 안에서 흐른 시간이 시간인만큼 연구 정보를 적은 일지나 서류 등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뭐.
이 던전 자체는 몇 번이고 와 봤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정리해본 기억은 없지만 말이야. 대충 빙글빙글돌면서 광역으로 다 때려잡고 나가는 던전이었다.
나중에 다시 오면 좀비 마족들이 바글바글해지고, 그걸 또 때려잡고 스킬 숙련작 하기에는 이만한 던전이 없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이제는 재활용도 안 되겠군.”
당연하다.
지금 저기서 자고 있는 녀석이 아예 성불을 시켰으니, 여기는 정말 정화된 거다.
물론.
저 안쪽의 비밀문은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은 진입할 수 없는 것 같다】라는 시스템 멘트는 내가 이 세계로 오기 전 까지 해금되는 일 없었다.
즉.
여기는 내가 완전히 모르는 미지의 장소이며 동시에, 개발진 기준으로도 미완성 구역이라는 이야기다.
다음 DLC의 편린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진짜 세상으로서의 제프린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가슴이 크게 뛴다.
자.
너는 나에게 어떤 새로운 세상을 보여줄거지?
문을 열고, 미래로 나아갔다.
***
구구궁.
문을 열고 또 한번의 독기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태초의 루비는 이브의 머리맡에 던져뒀다. 저 놈의 몸에서 알아서 나오는 방향제···. 가 아니라 빛의 마력과 태초의 루비가 있으면 어떤 독이 날아오든 중화할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이브의 자는 얼굴을 힐끗 보고, 문 안으로 발을 옮겼다.
다행히 독기가 흘러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았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봤다.
“그렇군. 여기가 진짜 연구실이었나.”
정확히 말하자면, 밖이 연구동 이쪽은 서류들을 정리해놓는 집무실 느낌이라고 해야겠지.
방은 꽤 컸으며, 한쪽 벽에는 책장과 서류철이 가득했다.
과연.
저게 다 내가 모르는 정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고급 정보에는 그만한 장애가 따르는가.
서류의 산 앞에 하나의 책상과 의자.
그 앞에는 시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언데드다.
저렇게 죽음의 기운을 무럭무럭 피워올리는데 어떻게 그냥 시체냐고.
즉. 이 자료를 얻으려면 보스전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원하던 바다.
내가 완전히 모르는 보스.
슬쩍 녀석의 앞으로 다가가 마력을 흘렸다. 이제 애드가 나고 인카운트 상태가 되겠지.
인간으로 쳐도 평범한 체구의 저 시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식으로 싸울지 가슴이 떨려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시체가 움직였다.
바로 보스전인가? 아니면 사전에 스토리가 있나? 난 둘 다 좋지만 기왕이면 후자가 좋다.
-이 마력은···.
후자다.
이 녀석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보스다.
거기에 목소리도 있는 거 보니 상당히 중요한 역할이다.
정답. 완전히 정답이다.
보았느냐 이브. 네가 아무리 잡몹전에서 사기캐라고 해도, 보스전은 내 전문이다.
암. 그래야지. 근접 방무 암살 딜러는 누가 뭐래도 보스전에서 날뛰어야지 안 그러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잖아요.
-이 마력은···. 하르크인가?
“······.”
속으로 오열했다.
정답. 진짜 정답이다. 하르크 폰 로엔그린의 이름을 막 부른다고? 그렇다면 삼 백년 전 인물이며, 하르크 옆에 있던 인물일 거다.
-그렇군. 하르크. 이 웃기지도 않는 섬에 나를 유폐 해두고 너는 그리 약해졌는가.
“······.”
아마도 눈이 보이지 않고, 마력만으로 나를 인지했나보다. 그래서 나를 하르크라고 생각한건가? 마력 패턴은 같지만 출력 차이때문에 약해졌다고 생각한거군.
-결국 네놈도 필멸자였구나, 그래. 이렇게나 약해졌는가. 덧없구나 하르크. 내가 그리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는 언젠가 죽을 몸. 그렇다면 그 시체를 전부 되살려 천계를, 마계를 전부 때려부수고 지배해야만 인간의 시대가 열린다고 말이다.
흠흠. 그러시군요.
이 녀석은 주전론자. 그것도 극단적인 주전론자인가보다.
300년 전의 전쟁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시체를 깨워 천계와 마계를 다 때려 부숴야 한다는 입장.
좋아. 입장은 파악했고, 스토리는 재밌다.
BGM이 깔리지 않는 게 좀 아쉽지만, 원래 이런 인트로 무비에는 대사만 나와도 좋은 법이야.
-결국 이렇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평생 연구나 하라면서 이 웃기지도 않는 섬에 내 실험 시설만 뚝 떼어서 처박아 둔 것이 이렇게 돌아왔구나. 너는 늙어서 나약해지고 나는 더욱 완전해졌으니 말이다.
흠흠.
좋아. 좋아. 아직 쌓인게 잔뜩 있나보다.
어디. 어떻게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지 좀 볼까.
그럼 여기서 나도 추임새를 하나 넣어야겠지.
그러니까···. 작중 하르크의 목소리를 대충 흉내내보자.
“내가 약해졌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하! 또 그렇게 나를 기만할 생각인가. 느낌 상 벌써 수백 년이 지났고, 너의 마력은 고작 한 줌이다. 크크크. 너는 수백 년 전에 나를 유폐할게 아니라 죽였어야 했다! 지금 내 힘은 너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아직까지도 그런 망집에 사로잡혀 있는가.”
-망집인지 아닌지는 이 힘을 보면 알 것이다. 자. 나의 연구 결과를 보여주마! 그리고, 내가 너를 대신해 중간계를 다시 규합해···. 유일한 삼계의 정복자가 되리라!!
구구구궁.
거대한 힘이 놈을 감싼다.
벤다면 지금이다. 신화 포식자로 그어버리면 힘이 역류하고 터져나갈 것이다. 깔끔한 기습 엔딩은 그게 맞지만···.
농담이지?
내가 얼마만에 찾아낸 숨겨진 스토리인데, 그렇게 쉽게 베어버리라고?
자. 어떻게 변하지? 사령술인가? 그도 아니면 저주? 뭐든 좋다. 너의 힘을 나에게 보여다오.
월요일 오후 6시 30분에 SBS에서 방영하는 마법소녀의 변신도 이것보다 기대되진 않을거다. 나는 놈의 진화를 충분히 기다렸다.
그리고.
-흐, 흐하하하하! 보아라! 이게 나의 힘이다! 자! 전율해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죽어라. 하르크으으으!
“호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았느냐, 이게 바로 나의 힘이다! 네놈을 한 번에 짓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
“그렇군. 엄청난 힘이구나.”
놈의 몸에 어마어마한 저주가 가득차고, 시체라고 생각했던 몸에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이런 묘사가 과연 맞는지 모르겠지만 몸에서 ‘좀비들이 피어오른다.’ 마치 전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좀비의 알을 심어놓고 그 상태로 부화하는 듯 한 느낌.
그렇게 치덕 치덕 시체 위에 시체를 덧바르고, 또 덧발라서 수 백 체의 좀비들이 거대한 인영(人影)을 이루었다.
-이게 바로, 최강의 실험체 군단들만 융합해 만든, 궁극의 개체다! 으하 으하하하하하!
그렇군.
자기 자신을 좀비 마족 미트 골렘으로 만들었다.
음.
아냐. 아니겠지.
“혹시 그걸 위해 300년을 바쳤나?”
-그렇다. 오직 복수를 위해! 나의 신념을 위해!
“그게 너의 궁극의 연구 결과인가? 등 뒤에 있는 자료들도?”
-크흐흐. 그래. 두려워하라! 전율하라! 내 등 뒤에 있는 삼백 년의 기록은, 오직 이 궁극의 육신으로 가는 길을 기록한 것!
“그렇군. 그렇단 말이지···.”
-이 이상 대화는 필요 없다. 죽어라. 죽어서 내 몸의 일부가 되어라 하르크으으으으으으!
놈의 주먹이 내게 날아온다. 놈의 손가락 하나 하나에 팔, 다리 머리, 배. 이런 게 막 섞여서 무척이나 보기 더럽지만···.
더 더러운건, 지금 내 기분이다.
쿠우우우웅.
부딪치는 소리는 주먹과 내 몸이 아니라, 주먹과 땅이었다.
주먹은 내 몸에 닿지 못하고, 그대로 신화포식자에 의해 갈라져 연구실 위에 떨어졌고, 그대로 꿈틀거렸다.
-뭐···?
“고작. 삼백 년의 연구 결과가 미트 골렘이 되는 법이라···. 등 뒤에 있는 종이도 그냥 폐지로 쓰는게 더 나을 정도의 쓰레기란 말인가.”
꿈틀거리는 녀석의 팔을 신화 포식자로 순식간에 토막냈다.
모든 힘을 먹어 치우는 신화 포식자도, 저 시체만큼은 먹지 않았다.
그만큼 저급하고, 그만큼 저열하다.
-네, 네놈···. 대체 무슨 소리를···.
“기대를 했다. 참으로 많은 기대를 했다. 저 밖에 있는 녀석이 혼자 재미를 다 보는 사이. 오직 혼자 진정한 흑막과 마주해 진실을 알게 되겠군.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뭐라···? 무슨 소리냐.
“너는 지금 내 기대를 배신했다.”
군단을 군단으로 쓰지 않고 하나로 합쳐?
궁극의 미트 골렘으로 만들어? 그래놓고 뭐? 최강의 힘?
사람 꼴받게 하네 진짜.
넌 오늘 죽을 때 까지 못 죽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