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88)
788. 모두의 꿈을 짊어진 검
벤다. 또 벤다.
나를 집으러 오는 엄지와 검지를 벤다. 철퍽 소리가 나며 손가락 떨어져 나간다. 쿵, 바닥에 손가락이 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그 순간도 잠시. 찌직···.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절단면에서 다시 손가락이 튀어 나왔다.
더욱 크게, 더욱 굵게.
그 순간을 지켜보고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손가락이 튀어나와 경직된 손목을 베고 앞으로, 한 발 더 들어가자 놈이 움찔 하고 물러선다.
-하르크으으으···!!
놈이 손바닥을 펼친다.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이내 손바닥 전체가 마치 보자기처럼 거대해졌다.
움찔할 틈에 내게 닥쳐오는 거대한 저주의 장막. 바로 나를 뒤덮고 시야의 빛을 차단한다.
하지만 움찔할 틈이라도 내게 준다면, 대처하고 베어낼 수 있다.
손가락의 줄기를 따라 검을 내지르고, 빼곡히 들어찬 저주 사이로 천장의 빛이 다시 파고들었다.
놈은 자신의 비장의 공격이 막혔다는 것에 당황해 괴성을 내질렀다.
-하르크 하르크 하르크으으으으 이 자식!!!
녀석은 계속해서 하르크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마력으로 나를 인지하기 때문일까. 녀석에게는 내가 아직도 하르크로 보이나보다.
“나는 하르크가 아니다만”
-헛···소리 마라. 나를 기만하지 마라! 그 더러운 검격! 모든것을 자신의 검 아래에 뒀다는 오만! 아직도 녹슬지 않았구나 하르크으으!
음.
내가 하르크로 보이는건, 마력 파장뿐만이 아니라 검격도 그런건가.
칭찬으로 들어도 되겠지?
내가 잠시 반응을 망설이는 사이 이번에는 주먹에서 거대한 좀비 철퇴가 나를 후려치려 든다. 주먹이 아니라, 그저 거대한 좀비의 뭉치가 어깻죽지에서부터 죽 늘어나 나를 향해 날아온다.
그것을 옆으로 빗겨베어서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깻죽지 부분을 긁어내려 팔을 떨어트렸다.
다시 한 번, 덩어리가 떨어져내려 폭음이 귓가를 후려친다.
-흐하하 의미 없다. 네 공격은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보아라! 이 무한한 부활을! 나는 불사신이다!
“불사신이라.”
-그래 이 몸은 불사신이다. 하르크, 네가 늙고 나약해지는 사이 나는 불로불사를 손에 넣었단 말이다! 이제 그만 포기해라!
“그거 좋군. 불사신이라면, 질릴 때 까지 베어도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잖나?”
-뭐···?
툭.
놈의 오른 다리가 그대로 찢겨 몸이 크게 무너진다.
찌직···. 다시 다리가 솟아나 자세를 잡는다.
실질적 데미지는 없어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어 언제···. 언제 벤 거지?
순간 놈이 움찔거리고···. 그것이 공포에 기인한 떨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제라.”
-자, 장난치지 마라. 언제 나를 벤 거냐!
“자. 언제일까. 네가 저주로 나를 포박하려 들 때? 아니면 처음 오른 팔이 잘렸을 때. 손가락을 베었을 때. 아니면 마치 망치처럼 나를 으깨려 들 때?”
-장···난 치지 마라! 하르크으으으으!
반응할 수 없었다.
아니.
눈치챌 수 조차 없었다는 두려움.
깨달아버린 절대적인 격의 차이.
놈의 몸에는 지금 공포가 깃들었다.
“장난 칠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불쾌하니 말이다.”
뭐.
괴물 자식이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두려워하든 상관 없다.
너는 여기서 죽어야 한다.
아니 내가 반드시 죽여주마.
몸에서 살심이 피어오른다. 신화 포식자를 꽉 쥔 손에선 당장이라도 피가 흘러내릴것 같다.
그래.
나는 지금 무척이나 꼴받았다.
이 녀석이 히든 지역 보스주제에 고작 미트 골렘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의 꿈이 짓밟혔다는 사실에 말이다.
‘슈퍼영진’
‘영진좌···.’
내 등 뒤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등에 짊어졌던 무게가 어깨를 붙잡았다.
‘용서하지마 영진좌’
‘우리들의 꿈을 짓밟은 녀석을 베어줘’
‘우리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우리가, 수 백 시간, 아니 수 천 시간, 아니 수 만 시간동안 찾아 헤매었던 이상향을 배신한 쓰레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마!’
이브호위무사. 너희들은레지나양이라고불러라. 필티아의용아병, 돌찐, 이브남동생이진섭. 넷플팝니다방제9938, 천사의날개를끌어안고···.
나와 함께했던 고인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열하고 증오하고 원망하고 분노한다.
꿈을 배신당한 이들의 탄식이 귓가에 울린다.
【다음 패치에는 연구실 안쪽이 열리겠죠?】
【ㄹㅇ 안그러면 걍 이게임 망한거임】
【솔직히 DLC한편 더 내줄때 됐지 ㅋㅋ】
【여기 말고도 진입불가지역들 다 DLC되는상상함 특히 거기】
【아 거기 ㅋㅋ ㄹㅇ국룰이지 그거 안해주면 걍 망한거임 걍】
녀석들은 모멸의 대상이었다.
‘아직까지 그 겜이나 잡고 있어요? 개발사가 다음 작품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라는 팩트 앞에서도 다음 DLC를 믿고 게임을 플레이해왔던 녀석들이다.
접근불가지역, 미공개지역을 믿고 계속해서 루트를 찾아보기 위해 도전하던 녀석들.
결국에는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뜻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다.
이 연구실 안쪽에 있는 진입불가 지역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함께 꿈을 꾸던 녀석들이다.
즉.
내가 내딛은 이 발걸음은 슈퍼영진의 발걸음이 아니라 우리 카페 고인물 모두의 발걸음이다.
‘가라! 놈을 죽여버려! 영진좌!’
‘우리의 원한을 풀어줘! 슈퍼영진!’
‘믿고 있다고!’
‘우리의 수 만 시간을 날리게 만든 쓰레기 같은 보스를 죽여버려!’
그들의 영혼이 그 마음이 내 등 뒤에서 외치고 있다.
물론 실제 목소리는 들어본 적 없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그러니까.
용서할 수 없다.
“모두의 마음을 이 등에 업고, 네놈만큼은 철저하게 때려부숴주마.”
-뭐, 뭐라는 거···거헉···!!
베고, 또 벤다. 왼팔 오른다리를 베어서 무게중심을 박살내고 부활하기 전에 목을 그어버린 후 반 바퀴 돌면서 왼쪽 손목을 그어버린 후 반 바퀴를 마저 돌며 오른쪽 옆구리를 찌른다.
-크하하학! 의미, 의미는 없다···. 의미는 없다고 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다시 전신이 부풀어오르며, 육체가 돌아온다.
신화포식자가 포식하지 않으니, 놈을 전부 베는 것은 무척이나 지난한 일.
허나 상관 없다.
“무한한 부활이라 했나.”
-그래 이제야 나의 두려움을 깨달았나!
“그렇다면, 무한에 가깝게 벨 수 있겠군. 질리지 않겠어.”
-뭐···라고?
이건, 나만의 증오가 아니다.
자, 우리 모두의 증오를 받아라!
이게 바로 지금도 현실에서 D/Z SAGA의 특수 루트를 찾고 있을 내 동료들의 증오다!
**
그렇게 두 시간 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놈을 베었다.
두 시간 전력을 다한 검격.
하지만 결단코 내 필살기나 비오의는 쓰지 않았다.
무한한 캔슬도 필요 없었다.
그저 베고, 또 베었다. 짜증을 담아, 우리의 울분을 담아서 말이다.
놈의 부활이, 몸에 심은 좀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몸에 심은 무한에 가까운 좀비를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설령 세포 단위라 해도 전부 베면 끝.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것이 바로.
꿈틀···.
“그런 모습이 되었음에도 살아있는가.”
-······.
완전히 침묵한 좀비.
아니 좀비라 부르기에도 묘한 검은 덩어리.
그 크기는 거대하나, 그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완전히 죽였다. 여기에 있는 건 그냥 덩어리.
하지만 죽이지 못했다.
웃기게도, 이 놈은 특성 ‘불사’를 얻었는지 신화포식자로 베어넘겨도 죽지 않는다.
다가가서 놈을 체크해보니···.
【거대한 불사의 덩어리】
【모든 죽음을 반사하는 거대한 덩어리입니다. 죽음을 무효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격시 데미지 총량에 따라 그 색과 형질이 변합니다.】
“음···.”
조용히 내 키 두 배는 되는 덩어리를 바라봤다.
뭐라고 해야할까.
이쯤되니 그냥 까맣게 서있는 샌드백이라고 해야 할까.
“샌드백.”
그렇군. 샌드백이라···.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용처가 될 수도 있겠군 그래.
아무튼 소득은 소득인가.
그리 생각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미안···.
미안하다 고인물들.
이 곳에는 우리들의 에덴이 존재하지 않았어.
그리 생각하고 연구실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
【미실장지역 섹터 A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미실장지역 섹터 B의 장소를 표기한 지도가 지급됩니다.】
팔랑.
한 장의 지도가 눈 위에 떨어져 내렸다.
휙.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들었다.
제프린 어딘가. 허나 어딘지는 당장은 알 수 없는 지도 조각. 그 위에 표시된 X문자.
허나 나중에 제프린 전도 어딘가와 맞춰보면 분명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있을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가.”
고인물들 나의 동료들.
보아라. 우리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구구구구궁.
연구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멍하니 이쪽을 보며 앉아있는 이브가 보인다.
“울프람···.”
“뭐지. 이브 폰 로엔그린.”
“아뇨. 제 기분탓일지도 모르고, 이런 기분 탓은 정말 기분 나쁜데요.”
“할 말이 있으면 확실히 말해라.”
“혹시···. 울었어요?”
“그럴리가 없지 않나.”
이브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다.
아니.
진짜 안 울었다니까.
***
그렇게 검은 슬라임···. 아니 좀비 덩어리?
아예 원본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녀석을 끌고 편의점으로 왔다.
이후 녀석을 편의점 옆 공터에 대충 세워놨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편의점에서 강의를 복습하던 밀푀유가 다가왔다.
“이게 뭔가요. 선배님?”
뒷짐을 지고, 살짝 상체를 꺾은 밀푀유.
녀석은 앉은 채로 설치하는 나를 내려보며 호기심을 표출했다.
“이건 샌드백이다.”
“샌드백이요?”
“음.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험할 수 있는 실험체다.”
“으, 음?”
뭐, 말하는 것 보다 보여주는게 빠르겠지.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고 놈을 때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때려도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일정 이상 때리면 이렇게 색이 조금씩 변한다.”
“아, 진짜로 변하네요.”
처음에는 검은 색. 그 다음에는 회색. 점차 때릴수록 흰색이 된다. 그 뒤로는 아마 붉은색으로 변하고, 노란색으로···. 색이 끝없이 이어질거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죠?”
“요컨데, 내가 일정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공격을 해낼 수 있고,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지는지 알아 볼 수 있다.”
“아하···. 와. 엄청나네요.”
그제야 이게 뭔지 이해 했는지 밀푀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빠른 후배라 다행이구나.”
“네. 제가 얼마나 시간 내에 공격을 쏟아부을 수 있는지, 그리고 각 공격마다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말씀이시잖아요?”
“그렇다.”
요컨데 수련의방. 수련장. 훈련장. 딜 미터기. 딜 체크기라 불리는 물건이다.
“이 녀석은 절대로 죽지 않으니, 얼마든지 때려도 된다. 어떤 색으로 변하는지는 옆에 붙여두도록 하지.”
“네! 선배님. 그럼 바로 써봐도 될까요?”
“물론이다.”
바닥에 고정이 끝나고 내가 물러서자, 밀푀유는 이야압! 소리를 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녀석이 마음껏 샌드백을 패게 내버려 두고, 그 근처에서 멍하니 앉아 샌드백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이제 B섹터를 알아보러 가려면 역시 광역딜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고 다음 모험을 준비하기 위해 이브를 불렀다.
“이브.”
“저는 지금 마음을 치유하고 있으니, 건드리지 마세요.”
몇 마리의 동물에게 둘러쌓여 녀석들을 쓰다듬고 있는 녀석의 눈에는 생기가 없다.
그 지옥같은 좀비 떼들을 잡고 난 후 녀석에게는 마음을 치료할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하.
하여간 이래서 마법사들은 말이야. 귀족 직업이라고 마음대로 군다니까.
자. 그럼 어쩐다.
다음 번 미실장 지역은 누구랑 같이 가면 되려나?
팡. 팡. 팡.
밀푀유가 샌드백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를 배경음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