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91)
791. Beginners
세티아 골드스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그렇군요.’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라는 소년과 자신의 조카.
소년쪽은 별 다른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조카쪽은 아무리 봐도 소년에게 생각이 있어 보이는 모습.
세티아 수준으로 오래 살면, 마력의 흐름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눈치챌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아직 감정 컨트롤이 어려운 젊은이일수록 더더욱.
물론 필티아의 감정 조절은 어리숙한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상대쪽.
그러니까 저 금발의 살짝 날카로운 눈. 그럭저럭 잘 생겼지만 그 속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청년 쪽은 어떨까.
세티아가 느낀 바로는 정말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인간이 이 정도로 감정을 숨길 수 있어도 되는 걸까.
아니 이상하다. 여기까지 오면 ‘부동’ 혹은 ‘정신력’계열에 신의 축복이나, 반대로 신의 저주가 걸렸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속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다.
거기에 이어 그가 들고 있는 저 검.
스스로의 뜻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초월자들이나 가질만한 검인데, 그 특성을 슬쩍 살펴보면 ‘흡수’와 ‘변화’다. 즉 베고, 먹어치우고, 자기 식으로 바꿔내는 검이다. 분명 마력으로 움직이는데 마검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흉흉함이다.
짓쳐들고 베어내고 포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게 저 청년의 본질이라 생각하면 무척이나 놀랍다.
방금 전 청년과 진짜 검을 마주했다면 어땠을까. 꽤 즐거운 싸움이 되지 않았을까.
저 청년의 나이를 생각하면, 같은 나이의 하르크 꼬맹이보다 강한건 확실하다.
저런 남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아무래도 우리 조카는 남자 보는 눈이 있는 듯 하군. 세티아는 그리 생각하며 내심 웃었다.
문제는 저 청년이 필티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인데···.
“필티아. 그리고 울프람. 이 늙은이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습니까?”
“부탁이라 하면?”
“사실 저도 이 섬을 만드는데에 일조했었습니다. 이 섬은 저희들의 추억의 상자입니다. 하지만 추억이란 항상 좋은것만 기록할 수는 없는 법이죠.”
“즉 이 섬에 괴로운 추억이 있다는 말인가?”
“예에. 이 섬에는 저의 괴롭고 서글픈 추억들도 있죠. 늙으면 남는게 미련뿐이라는 말이 있듯, 이 섬에 있는 미련 중 하나를 처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직접 할 자신이 없군요.”
“그러니 우리에게 부탁하겠다는 건가.”
“예에.”
“보수는?”
“제 모든 지혜를 빌려드리죠. 물론 물질적 보상도 가능합니다.”
울프람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맡도록 하지.”
***
세티아의 미션은 다음과 같았다. 이 제프린의 숨겨진 지역에 있는 괴물 하나를 처리하고 증표를 가지고 와라.
섬의 제작자의 부탁. 그리고 숨겨진 지역.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 뛰게 만들지 않나.
“필티아. 이건 제가 당신에게 주는 기회랍니다. 그 지역에 가서, 그 아이를 처리하는데는 적어도 사흘은 걸릴 거에요. 그 사이에 당신은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세요. 알았죠?”
“이, 이모님?!”
“용족으로서 당당하게 행동하세요. 저희는 포식자이며, 왕성한 공격정신을 가진 종족입니다. 알겠습니까?”
“네, 네···! 하,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죠?”
“한 밤중에 낭만 있는 대화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끌고 가세요. 알았죠?”
“네, 네? 그런 기회를 어떻게···.”
“어떻게든 야영을 시작하세요. 이유는 혼자서 생각할 수 있겠죠. 나의 조카. 필티아?”
“네, 네!”
세티아와 필티아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모험 준비를 마쳤다.
“그럼 두 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네!”
“다녀오도록 하지.”
세티아에게서 지도를 받아, 우리는 제프린을 떠났다.
“필티아 누나의 등을 타면 금방이긴 하다만···.”
“너, 너무 서두를 거 없지 않니? 좀 천천히 가자.”
“음. 그러도록 할까.”
평소라면 좋아! 누나 등에 타렴 이러고 말했을 필티아가 무슨 일이지?
***
우리가 향한 곳은 제프린의 서북부. 그것도 사막의 한복판에 있는 곳이다.
가는 길에는 당연히 서부 사막을 지나야 한다.
원래라면 독전갈. 독뱀. 샐러맨더나 바실리스크. 데저트울프 등 강한 몬스터가 득시글거리지만 사막의 주인이 바로 옆에 있으니 몬스터가 공격해올 가능성은 없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피크닉 감각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 이 얼마나 축복받은 모험인가.
“동생. 스, 슬슬 조금 휴식할까?”
“음? 얼마 걷지 않았다만? 걸은지 다섯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하, 하지만 너무 빨리 걸으면 오늘 내로 도착해서 내일이면 돌아오잖아?”
그야 그렇지.
그게 뭔가 문제가 되나? 고개를 갸웃하자 필티아가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괜찮나?”
“아, 아아···. 누, 누나가 다리가 아프네. 힐을 신고 걸어서 그런가봐. 오늘은 조금 쉬고 싶은걸···.”
국어책을 읽어도 저것보다 생동감이 넘칠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짜 아프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군. 파티원의 부상은 제일 먼저 케어해야 하는 문제. 필티아는 정식 파티원은 아니지만 내 안에서는 파티원과 진배 없다.
“알겠다. 필티아 누나. 의자를 꺼낼테니 잠깐 앉도록. 자.”
“으, 응? 응···. 고마워 동생.”
필티아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의자에 앉았고, 나는 녀석에게 바짝 붙어 쪼그려 앉았다.
“자. 그럼 이제 벗도록 할까.”
“응?!”
“벗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다.”
“아,네, 네?! 저, 저기 벗···.”
“쯧. 뭘 그렇게 멍하니 있나. 어서.”
“네, 네···.”
필티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만큼 괴롭다는 거겠지.
나는 녀석 앞에 쪼그려 앉아, 발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휙 하고 벗겼다.
“동생?!”
“어디 자세히 보도록 할까.”
신발을 벗기고 필티아의 발을 꼼꼼히 살폈다.
발 부상은 이동에 지장을 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신발 자체가 환기나 통풍이랑은 담을 쌓은 곳이다 보니 물집이 잡히거나 곪을수도 있다.
필티아의 오른쪽 발을 꼼꼼히 살폈다. 실제로 발등 부분이 쓸려서 조금 빨갛다. 이건 왼쪽 발도 마찬가지.
“아···. 누나 발을 걱정한 거구나.”
“살짝 쓸린 부분이 있군. 약을 바르겠다. 괜찮나?”
“응···. 괜찮아.”
발목부터 시작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연고를 꼼꼼히 발라주자 필티아는 처음에는 멍하니 이쪽을 보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얼굴을 붉혔다.
“새, 생각보다 부끄러운데 동생···.”
“찰과상이라도 있으면 오염되어 곪을 수 있다. 확실하게 봐야지.”
“으, 응···.”
한동안 필티아의 꼼지락거리는 발을 살펴 본 후. 살짝 쓸린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파악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신발을 신지 안은 채로 그냥 앉아 있도록. 지금부터 야영 준비를 하도록 하지.”
“누, 누나도 도울게.”
“아픈 사람은 그런거 하는 것 아니다. 앉아 있어라. 이건 파티 리더의 명령이다. 알겠나.”
“네, 네···. 명령에 따를게요···.”
일어서려는 필티아의 어깨를 꾹 누르자, 녀석은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얼굴이 새빨개지고 몸을 부들부들 떤다.
정말 힘든가?
***
저녁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설치한 뒤 불을 피웠다.
다닥. 다닥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
본디 사막의 늦가을밤은 춥기 그지 없지만, 태초의 루비로 인해 야영에 문제는 없다.
“오늘은 이대로 자고, 내일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겠군. 오는 길에 하루 더 사막에 머무르면···. 길게 잡아서 사흘의 모험이 되겠어.”
내 말에 필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은 이만 잘 거야?”
“그럴까 생각했다만,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군. 몬스터 걱정도 없는 야영지인만큼 조금 늦게 자도 되지 않겠나.”
“그, 그래?! 그러면 누나랑 조금 더 깨어있을까?”
“그거 괜찮구나. 그런데 무얼 하면 될지 모르겠군.”
“으, 응? 응···. 그러니까. 둘이 있을 때는···.”
필티아는 잠시 우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을 닫았다.
그래. 너도 그렇구나.
너도 이럴 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는 거지?
“누나. 최근 내가 느낀 것이 있다.”
“으, 응···?”
“아무래도 나는 내가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면 말주변이나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부족한 모양이다. 즉. 남들이 평범하게 하는 대화를 나는 잘 해나갈 자신이 없다.”
“······.”
얼마 전 밀푀유와 대화를 나눌때도 그랬다.
나는 녀석의 무기 성장 상황이나 물어봤지, 일상적인 주제로는 어떤 말을 해야될지 잘 몰랐다.
게임이라면 괜찮다.
파티원들의 스테이터스. 스킬 숙련도. 장비 상황. 던전 진행 여부.
인간을 캐릭터로 보고, 성능으로 보고, 유틸성이나 딜량으로 보던 그 때라면 그런 물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파티원들은 인간이고, 나도 그들과 함께 하기로 한 인간이다.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라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이다.
공략도 좋지만.
앞으로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갈 인간으로서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공부하는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일상적인 대화는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아···. 후후. 우후후.”
“나도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 왜 웃지?”
“아니. 동생은 인간을 초월해서 완전무결에 다가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음. 그런 셈이지.”
필티아는 나를 바라보다 이내 평온하게 웃었다.
방금 전의 긴장하는 기색 따위는 하나도 없는 평소의 웃음.
“그렇구나. 그러면 누나랑 같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해볼까?”
“좋군. 보통 어떤 주제가 좋지?”
“미안. 누나도 어릴때부터 전쟁터니, 문의 수호니 해서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해본 적은 없어.”
“음···.”
“하지만, 동생도 잘 모르고, 누나도 잘 모르니까. 지금부터 함께 찾아보는건 어떨까? 동생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좋은 생각이다. 내 취미는 요리니 만큼···. 그렇군. 사막에서 나는 식재료는 어떤가?”
“좋다아! 좋아. 그럼 누나가 사막에서 맛있게 먹은 식재부터 이야기 해 볼게!”
그날 밤.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필티아와 함께 식재료. 요리도구. 제프린 생활. 끝끝내는 사막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까지.
서로 한 잔의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품에 안고 우리들만의 일상 회화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
다음날. 이른 아침.
야영지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우리들은 곧 전투가 벌어진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한 상태로 서북부를 향해 걸었다.
필티아는 내가 만들어준 운동화를 신고, 어제보다 한결 평온하고 부드러운 얼굴로 걸었다.
역시 사막에서 힐을 신는 건 좋지 않은 판단이야.
음.
음······.
그런데 드래곤이 힐 좀 신었다고 발등이 쓸리거나 하나?
외형을 바꿨다곤 하지만, 평범한 힐로 드래곤의 피부에 상처를 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
“동생. 슬슬 목적지에 도착해.”
“그렇군. 그럼 준비하도록 할까.”
내 상념을 깨듯 필티아가 전방을 가리켰다.
시야의 끝에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회백빛 벽.
지상에서부터 시작해 하늘을 뒤덮을 듯 솟구친 그 벽은 굉음을 뿌리고 있었다.
모래벽.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서 모래를 끌어올려 하늘까지 솟구친 폭풍.
벽을 공간을 단절하는 것으로 규정짓는다면, 저 모래폭풍이야말로 훌륭한 벽이다.
원작 D/Z SAGA의 2회차 이후 열리는 맵.
보통 이런 류 게임에서 흔하게 나오고, 유저들에게 무성의하다고 욕을 쳐먹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없으면 또 허전한 지역.
바로, 엔딩 이후에 열리는 스펙강화 보스만 잔뜩 쳐박아 놓은 무한 탑 등반 컨텐츠 되시겠다.
“저 안에 분명, 하늘 높게 솟구친 탑이 있다고 했지.”
“응. 그랬지. 하늘 높게 오른 탑이라···. 놀라운걸. 누나는 정말 몰랐어.”
세티아의 말로는 탑을 오를 필요 없이. 탑을 뚫고 나간 지역에 있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 지옥같은 탑돌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누나는 탑에 오르고 싶었는데 아쉽네.”
“······.”
필티아는 이쪽을 힐끔 바라본다.
그렇구나. 필티아는 탑에 오르고 싶구나.
어젯밤 다정하게 대화를 나눴던 것과 정 반대로, 필티아의 저 메세지에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아. 안 한다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