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92)
792. Step by Step
필티아와 향한 곳은 탑의 상부가 아니라 지하였다.
이 탑 자체가 굉장히 귀찮은 던전이라 오르지 않는건 다행이지만, 탑 지하도 만만치 않게 귀찮은 곳.
횃불 몇 개로 불만 밝히고 있는 지하 공동에서 앞으로 펼쳐질 보스러시에 어깨의 힘을 풀고 있자니, 필티아가 벽에 슥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아. 여기네.”
“음?”
【용언 : 진 : 폭 : 해방】
필티아의 언령이 벽에 적용되고, 이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꺼졌다.
“용언으로 막아둔 벽이었나. 놀랍군.”
“응. 들어가자 동생. 이모님이 말씀하신 곳은 이 안에 있을 거야.”
“음. 그러도록 하지.”
D/Z SAGA 본편에서도 여기서 용언 마법을 써본 기억은 없다.
이건 본편에서 내가 왔던 곳임에도 내가 모르는 정보인 셈.
그 신비에 가슴 두근거리며, 나는 벽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벽 안은 끝없는 복도였다.
허나 우리가 생각하는 동굴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끝없이 높은 천장. 그리고 양쪽에는 아주 정교한 유리벽.
그리고 그 안에는 보물이 놓여 있다.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벽과, 그 안에 놓여있는 보물들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검. 창. 활. 도끼. 스태프 같은 무구들부터, 다이아. 사파이어. 루비 등의 진짜 보석들. 왕관이나 반지 목걸이 같은 장식까지.
“이건 필티아 누나의 보물고와 비슷하군.”
“드래곤들은 전부 보물을 좋아하니까.”
“그런가?”
“그렇단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보물이 근처에 없으면 많이 지쳐.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선 보물이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단다. 즉 이 보물들은 이모님께서 제프린을 만들 당시 치유받기 위해 만든 임시 보물고라고 생각해.”
“그렇군. 임시라···.”
“진짜 보물고는, 세상 모든 보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엄청나게 거대한데도 임시라 이건가.
잠시 그렇게 걸으니 우리는 복도의 끝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군.”
“응. 도착했네. 동생.”
“준비는 다 됐나.”
“응. 결국 다 가짜잖아?”
우리 둘은 나란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몬스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들이 여섯. 그리고···. 그 뒤에 눈감고 잠들어 있는 거대한 드래곤이 하나.
“루타 삼촌. 듀플렉스 오빠. 샬타 언니. 라케테 숙모. 젤티타 이모···. 그리고···.”
눈을 감고 잠들어있는 거대한 드래곤.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필티아도 아주 잘 알고 있다.
“전 용왕.”
“응···.”
전 용왕.
란그리스 블루브리즈.
“정말 정교하구나.”
“그렇네.”
이쪽이 다가가기 전에는 반응하지 않는 모습.
그렇기에 더욱 이질적이다.
“골렘이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필티아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이들을 바라봤다.
정교하게,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졌지만 결국 세티아라는 존재가 만들어낸 골렘이다.
“저걸 전부 파괴하면 되는 건가.”
“응.”
필티아와 나는 나란히 서서 녀석들을 바라봤다.
골렘이라면 질릴 정도로 싸웠다.
“필티아 누나. 묻고 싶은게 있다.”
“응?”
“저 드래곤 골렘은 생전의 란그리스 님을 무척이나 닮았다. 아무리 골렘이라고 해도 저것을 쓰러트리는 건···.”
내 물음에 필티아는 그저 조용히 웃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
전부 끝나고 이야기하자.
***
나와 필티아.
현 제프린에서 순수한 힘으로 따지자면 아마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싸움은 무척이나 질질 끌고 있었다.
여섯체가 돌아가면서 거대한 드래곤을 방어한다. 란그리스의 골렘은 움직이지 않지만 저 여섯이 하나씩 속성 방어벽을 전개하며 방어벽을 친다.
“오래 걸리겠는걸. 동생.”
“음. 그렇겠군.”
실내인 점도 있어 전력을 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야.
필티아는 란그리스의 골렘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의 동상을 베어내야 하는 입장.
얼마 전 아버지를 성불시킨 그녀에게, 그건 얼마나 큰 아픔으로 다가올까.
시간을 들여서 싸운다는 수단은 폐기.
최대한 빠르게 때려 눕히고 돌아간다.
“필티아 누나. 전력을 다하려고 한다. 등 뒤에서 브레스와 용언마법으로 무차별 폭격을 가해라.”
“동생이 말려들면···.”
“누나의 공격이 동생인 나를 다치게 할리가 없지 않나. 안심하고 때려 부수도록.”
“으, 응! 알았어!”
이후. 등 뒤에서 우우우웅 하는 굉음이 들린다.
필티아가 인간형이 아니라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독할 정도로, 등 뒤에서 마력이 압축된다. 필티아의 브레스부터 시작해 초광역 포격이 시작된다.
나는 정면을 향해 내달리고, 등 뒤에서 마법의 궤도폭격이 시작된다.
쾅! 쾅! 콰아아앙!
필티아의 마법은 나를 막아서려고 하는 여섯 체의 골렘을 막아섰고, 정확하게 내가 나아갈 길을 내주었다.
드래곤 골렘까지 갈 수 있는 일직선의 길.
필티아가 만들어준 그 길을 쉼 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란그리스 블루브리즈의 골렘이 눈을 뜨려는 그 순간보다 아주 조금 더 빨리 내 검이 녀석의 목에 닿았고···.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드래곤 골렘의 목이 떨어졌다.
그 뒤로는 ‘방어형’ 골렘이 ‘수호 대상’을 찾지 못해 행동이 하나 둘 오차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끝났군.”
“응. 끝났네.”
난이도만 보면 별거 아닌 싸움.
하지만 이 싸움이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조금 크다.
“누나. 정말 괜찮나.”
“······.”
골렘의 잔해밖에 없는 이 공방에 필티아는 조용히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이쪽을 향해 가볍게 손짓. 다가오라는 의미겠지.
녀석의 곁에 앉자 필티아는 슬쩍 몸을 내쪽으로 기대 내 어깨에 기댔다.
“누나?”
“안 괜찮아요. 누나는 많이 힘들어요.”
그야 그럴 수 밖에 없지.
다른 골렘들이라면 모를까 아버지의 형상마저 베어야 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누나···.”
“후후. 후후후.”
“필티아 누나?”
“농담이야. 누나는 괜찮아. 많이 괜찮단다.”
“······.”
“어머. 믿지 못하나보네. 으음. 어떻게 하면 동생이 믿어주려나.”
필티아는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고 내가 녀석을 돌아보자 코 앞에 싱긋 웃는 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겠지?”
“괜찮아. 작별 인사는 그때 했어. 이건 그냥 골렘이잖니?”
그리 말하고 필티아는 란그리스 골렘의 머리를 들어올리더니 툭 하고 던지고는 픽 웃었다.
“그저 형태만 닮았을 뿐인 인형. 그런거에 하나하나 감정 이입을 하면 버틸 수 없단다. 그렇게 이입하다보면 아버지의 흔적을 돌아보겠다고 전 세계를 여행해야 하잖니?”
“그런가.”
“동생이 있고, 막내가 있고, 동생의 파티들이 있어.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라실거야.”
“그래. 그렇겠지. 그런 분이었으니.”
“응.”
필티아는 잠시,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는 조용히 웃었다.
정말.
성장은 우리 파티만 하는게 아니군 그래.
“돌아가도록 하지.”
“응. 돌아가자.”
지난번 문의 공략과는 다르다.
눈물 한 방울 없이 오직 웃음으로 우리는 공방을 떠났다.
***
그렇게 편의점에 돌아왔을 때. 여섯 골렘의 목을 꺼내자 세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꽤 어려운 전투였다. 보상은 확실히 받도록 하지.”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세티아는 골렘 여섯의 목을 공중에서 분해시키고는 우리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없애도 되는 건가?”
“드래곤은 지나치게 기억력이 좋고, 오래 산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것들을 기억하고 살아요. 하지만 우리들도 한계를 가진 존재. 결국 지치고 힘들다보면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죠.”
“그게, 네가 만든 골렘들인가.”
“네. 오라버니. 언니. 동생. 그리고 조카들까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저는 그 탑의 지하 공방에서 혼자 골렘을 만들었죠. 하지만 그건 돌아보면···. 결국 죽은 이를 잊지 못한 제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았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혼자 찾아가 부술 용기도 없는 겁쟁이라···. 저 대신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보면, 드래곤들이 남은 시간에 보물고에 쳐박혀 있는 것은 보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 기억에 남기려는 자기방어 아닐까.
“필티아는 괜찮았나요?”
“네. 그냥 골렘인걸요.”
“어머···.”
“필티아는 네 생각보다 강하다. 걱정하지 말도록.”
세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방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울프람. 그럼 보수를 지급하기 전에···. 잠시 필티아와 둘이서 대화를 나눠도 괜찮을까요?”
“알겠다. 잠깐 자리를 비우도록 하지.”
보상은 뭘 받을까.
꽤 고민이 되는 걸.
***
울프람이 자리를 비우고, 필티아와 세티아는 편의점에 마주 앉았다.
용언의 절대마법으로 외부와의 소리를 전부 차단하고 세티아는 방긋 웃었다.
“그래서. 진전은 조금 있었나요. 필티아?”
“으, 음···. 우애는 다졌다. 라고 생각해요.”
“우애를 다졌다···. 즉 남녀의 관계는 안 됐다. 라는 거군요.”
“네, 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고개를 숙이는 필티아. 세티아는 그런 그녀를 보고 턱을 손으로 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뭐. 미혼인 제 조언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안 했답니다.”
“미···혼이셨어요!?”
“그렇답니다?”
“······.”
필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세티아를 바라본다.
미혼.
올해 그녀의 나이가 팔천을 넘는 것으로 아는데 미혼···.
“아, 아아···. 결혼을 안 하신 거군요.”
“연애도 안 했답니다?”
“네!?”
“용왕의 동생으로서 잘못하면 용족간의 균형을 무너트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정무에 치여 살다가, 결국 혼기를 놓쳤죠.”
“······.”
지독한 기시감.
분명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 본 기억이 있는데···.
“결국 다른 모든 동료들이 죽고, 그 다음에는 그들을 추도하는 시간을 가졌죠. 드래곤들의 동상을 만들고 세상을 되돌린다는 의무에 살았답니다.”
“그, 그러시군요.”
“그러니까 필티아. 조심하세요.”
“네, 네?”
“알고 있나요? 연애 경험이 없는 것을 저주하는 것도 고작 수백 년. 아예 연애를 안하고 수 천 년을 살면, 노처녀라는 말에도 완벽하게 견딜 수 있게 되고, 아예 연애라는 개념이 머릿속에서 말소된답니다.”
“아···. 아아······.”
필티아의 몸이 강풍 앞 버드나무잎처럼 떨린다.
“거기에 필티아. 당신은 용왕의 딸이잖아요? 즉. 당신도 무언가에 집중해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성격입니다.”
“아, 아직은 그렇게 빠진게 없는데···요.”
“그런걸 찾으면, 분명 연애와 상관 없는 삶을 살 거에요. 그것에 미쳐서 수천 년을 살다가 이내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거랍니다.”
8천년.
연애 경험이 없는 삶을 8천년이나 살아서, 이제는 노처녀라는 범주를 가볍게 넘어서고, 그런 지적에도 웃어 넘길 수 있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눈앞에 있는 이는 잘못된 길을 걸어버린 필티아 블루브리즈의 결말.
그게.
자신의 삶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에 필티아의 마음이 아주 조금. 파직 소리를 내며 깨졌다.
“아. 아아···. 아아아아······.”
“힘 내세요. 필티아. 그래도 저 아이는 무척이나 멋지고···. 다정한 아이 같으니까요.”
오열하는 필티아의 어깨를 다독이며, 세티아는 문 밖에서 기다리는 울프람의 등을 빤히 바라봤다.
***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용언급 마법을 썼는지, 내부의 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무색투명한 미소를 짓는 세티아. 그리고 그 옆에서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떠는 필티아.
무언가 두려운 드래곤의 전승이라도 알려 준 걸까.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봐야겠군.
“자. 울프람. 울프람 폰 로엔그린. 하르크 꼬맹이의 후예이자 현 용왕의 의뢰를 해결해준 인간. 당신이 바라는 보상은 무엇입니까?”
세티아는 양 손을 펼치고, 부드럽게 웃었다.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나?”
“네. 물론이랍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보물. 지혜. 혹여 제 육체를 바란다면 내어드리도록 하죠.”
그 말에 필티아가 휙 하고 세티아를 바라봤다. 눈이 경악으로 물들고 입을 떡 벌린다.
나 참.
저런 농담에 반응 한 번 격하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