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798)
798. 기적같은 하루
페어리 가든.
엘피라네의 고유기이자 궁극기.
이만한 사기기술이 또 어디있을까 싶을 정도로 더러운 능력이다.
대상을 엘피라네가 그려낸 세계에 가둘 수 있는 능력으로, 웬만한 대상은 빠져나올 생각을 할 수 없다.
우선 초월격으로 쓰는 고유기인만큼 초월의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으며, 이 세계의 모든 주도권은 엘피라네가 가진다.
환혹을 현실로 만들어서 상대를 가두는 능력으로, 일종의 공간 창조에 가깝다.
“그나마 엘피라네의 자비라고 해야 할지. 온건한 세계로 해 줬구나.”
“온건한 세계라뇨?”
원작 기준으로는 세기말 불지옥을 만들수도 있었다. 가죽재킷에 모히칸을 입은 양아치들이 중지를 치켜들고 혀를 길게 내빼면서 히얏호! 를 외치는 세계도 가능했다.
하지만 여기는···. 마치 엘피라네가 유폐되어 있었던 요정의 낙원같지 않은가.
물론 이브와 나 둘 뿐이지만, 제대로 집도 있고, 요리 도구에 식재료도 있다.
아마 이 재료들은 없어지는 순간 그대로 보충 될 것이다.
“엘피라네가 우리를 죽이려 들었다면, 정말 위험했을수도 있다.”
“아···.”
내가 허리 춤의 빈 칼집을 흔들자 이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화포식자 없이 엘피라네의 페어리 가든을 정면으로 맞았다? 여기서 뚫고 나가려면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패배하진 않았을 거다.”
“또 허세에요?”
“그렇게 받아들여도 상관은 없다.”
다만. 진짜 죽었을거다.
태초의 루비를 터트리고 그 위에 태초의 사파이어를 같이 터트려서 대폭발을 유도하고, 태초의 보석 두 개를 해먹은 위에 내가 죽어야 한다.
물론 내가 죽는건 별 상관 없다.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이브 폰 로엔그린은 어떻게 될까.
루비. 사파이어. 엘피라네.
초월급 마력 셋이 무작위로 일으키는 대폭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 무리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폐인이 되거나, 큰 부상을 입을거다.
“뭐에요?”
“아니. 아니다.”
아무리 뱃살에 뚠뚠이에 못났다고 해도, 이 녀석은 내가 선택해서 받은 파티원이다.
그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칼 한자루 뺏기고 이 세상에 갇히고 말지.
뭐. 그리고 페어리 가든은 무척이나 좋은 기능이 있다.
“이브. 이 세계는 외부와 단절된걸 넘어서서, 아예 새로운 세계라고 봐도 된다.”
“그게 무슨 이야기에요?”
“즉. 두 세계는 완전히 시간축이 다르다. 한 달 정도 여기서 쉰다 해도 밖에서는 하루도 안 지났을거다.”
“아···.”
“뭐. 대신 여기서 뭘 하든 현실에는 반영이 안 된다.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건 기억 하나 뿐이다.”
“그렇군요.”
여전히 내 말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이브.
정말 모르는 건가.
즉 여기는···.
“엘피라네가 이렇게 편안하게 만들어 준 이상. 충분한 휴게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아!”
이제야 눈치챘나보네.
자 그럼. 정신과 시간의 방을 충분히 즐겨보실까.
***
그 날 저녁은 있는 재료로 대충 스튜를 해 먹었다.
요리 스킬이 어디 가는건 아니었고,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도 지원되기 때문에 불편한 건 없다.
물론 불편한게 없는건 나 혼자인 것 같고, 이브는 아닌 듯 했지만 말이야.
“빨리 나가지 않으면···. 밀린 일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니까 여기의 한 달은 밖의 하루도 되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하루라도 밀리면 그 다음날에 이틀 어치 일을 해야 한다고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이틀 어치 일 정도는 하루만에 해낼 수 있지 않나?”
내 말에 이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뭐. 한 달이나 쉴 수 있다면 남는 거래라고 생각해야죠. 당신이 어떻게 하지 않는 한 나갈 수단도 없고요.”
“납득과 이해가 빠르니 다행이군. 그러면 어디. 야식이라도 먹겠나.”
“이봐요. 미쳤어요? 저는 살을 빼려고 여기에 왔다고요!”
“흠. 그랬지. 하지만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나. 여기에서 나갈 때는 기억 외에 아무것도 들고 나갈 수 없다고 말이다.”
“네? 잠깐만요. 설마···.”
“그래. 그 설마다. 네 지방도 뱃살도 나갈때는 전부 놓고 나갈 수 있다. 즉 한달간 네가 폭식의 끝에 거대 이브 풍선이 된다고 해도 별 문제 없다는 거다.”
이브는 그제야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늘 야식은 뭐죠?”
“글쎄.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지. 다진 사과를 찐 다음 으깨서 넣은 달콤한 사과 파이가 좋겠나, 아니면 캐러멜 소스를 듬뿍 올린 스콘도 있다.”
“어느쪽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울림이네요. 그렇다면 저는 스콘으로 하겠어요.”
흠.
그래 뭐.
아예 욕망을 풀게끔 하는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먹을때까지 먹고나서 이브가 굴러다닌다고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뭐.
***
야식으로 캐러맬 스콘을 먹고 엘피라네가 준비해 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각방으로 두 개. 거실 하나. 요리장이 따로 준비되어 있어서 냄새가 밸 일도 없다.
건물은 목재 기반이고, 우드톤으로 전체적으로 아늑하다. 거실에는 난로가 있고 큰 테이블 하나와 1인용 소파가 두 개.
방을 살펴보니 무드등과 푹신한 침대 베개. 깃털 이불까지.
침대는 꽤 큰 편이라 위에서 세 바퀴 반을 굴러도 가능할 것 같았다.
“완벽할 정도의 거주 공간이군.”
“공감이에요.”
방은 서로 떨어져 있어서 생활권이 침해될 일도 없다.
그 외에 방 안쪽에는 개인 샤워실까지.
“그만큼 엘피라네가 술을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이야기겠지.”
“이 곳에서 영원히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요?”
“음.”
“하아···. 그래요. 훌륭한 곳이고 멋진 곳인건 인정 하는데요. 동거인의 밸류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하.
이 장소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나는 싫으시다.
“내일 아침은 굶고 싶나?”
“비겁한 남자···!”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고, 이브도 분노로 얼굴을 붉혔다.
“그럼 아침에 만나도록 하지.”
“예에. 그러죠.”
서로 몸을 돌려 각자의 방으로.
후우.
최장 한 달이나 쉴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편해지는군 그래.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브는 아직도 꿈나라였다.
“이브 폰 로엔그린. 일어나라. 아침이다.”
아직 자고 있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문을 두드리며 녀석을 깨우려고 하자 안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좀 더 잘게요···.]안에서 들려오는 잠에 취한 목소리.
“거 참. 쉴 시간이 없다느니 이틀어치를 일해야 한다느니 온갖 투정은 다 해놓고, 이틀째부터 늦잠인가.”
나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브의 저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좀 더 자게 내버려 둘까.
늦게 일어날테니, 아침 겸 점심은 든든하게 챙겨주면 되겠지.
***
이브가 일어난 것은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였다.
얼굴을 씻었다만 여전히 잠이 가득한 눈.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뭐가 그리 웃겨요···?”
“미안하군.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희망의 집 동생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잠에 취한 그 모습에 웃었다.
이제야 좀 나이에 걸맞는 모습이군 그래.
“식사 준비가 끝났다. 들도록.”
“부담스러운 건 지금 먹고 싶지 않은데···.”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었다. 자. 식탁에 앉아라.”
“으···.”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식탁에 앉는 순간 이브의 얼굴이 밝아졌다.
“뭐에요. 이게 다?”
“레몬 드레싱을 베이스로 한 연어 샐러드. 갓 구운 빵과 찍어 먹을 잼이다. 잼은 세 종류가 있으니 원하는 대로 찍어 먹도록. 마실것은 그린 요거트와 블루베리 요거트가 있다.”
“와···.”
연어 샐러드를 먹자마자 녀석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이내 우리 둘은 말 없이 식사를 들었다.
먹는 사람이 쉬지 않고 음식에 몰두하는 것.
그게 요리인에게는 최고의 포상인 법이다.
***
식사를 마치고 나는 산책을 나섰다.
이곳의 정원은 밖으로 나가면 이 집을 둘러싸듯 산책로로 되어 있고, 냇물이 흐르며 작은 동물들도 있다.
한 번 천천히 도는데 약 한 시간 정도가 걸릴 정도로 꽤 크게 만들어져 있다.
하물며 화창한 봄날씨. 걷기에는 아주 좋지 않은가.
물론 혼자 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브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낮잠이라도 좀 더 잘거라 생각했다만.”
“너무 먹어서 자면 속이 괴로울 거 같거든요.”
“그런 분별력은 있는가. 놀랍구나.”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거에요?”
흠.
조금 늦게 일어난게 흠이지만 식사를 마친 후에는 운동도 한다.
거기에 영양을 생각해서 만든 식사를 별 불만 없이 다 먹는다. 즉 크게 편식은 없다. 라는 건가.
“배는 더 안 고픈가?”
“안 고프···.”
입으로는 강하게 부정했으나 이브의 배가 꼬르륵 울었다.
“사탕 하나 먹겠나.”
“주면···. 먹어드리도록 하죠.”
왜 네가 배려하듯 말하는 거지?
아무튼 포도맛 사탕 하나를 건네자 입에 물고 오물거리던 이브는 조금 빠르게 달려 내 바로 옆에 섰다.
“글애서 얻히가는거해효?”
“다 먹고 말해라. 큰 사탕을 입에 물고 말하니 발음이 다 새지 않나.”
“으.”
잠시 후. 이브의 입에서 작게 까드득 소리가 울렸다. 입 안에서 녹은 사탕을 깨문 소리다.
“어디 가는 거냐고 물었지? 낚시를 하러 간다.”
“알아 들었으면 못 들은 척 하지 말고 처음부터 대답하라고요!”
싫은데.
***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있는 낚싯대를 하나 이브에게 건네고, 낚시 의자를 두 개 만들어 느긋하게 낚시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 낚싯대에 히트는 없었다.
이 계곡 안되겠네.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이브가 소란스러워졌다.
“와, 와! 울프람! 낚싯대가 막 움직여요!”
“꽉 잡고 천천히 몸을 뒤로 빼라.”
“와, 와와와···.”
이브의 낚싯대가 크게 움직이고, 녀석은 천천히 내 지시에 따라서 대를 끌어 올렸다.
누가 봐도 대어. 이브의 팔뚝만한 생선이 펄떡거리며 올라왔다.
“와···. 크네요. 이건 무슨 생선이죠?”
“음. 연어로구나 구워 먹으면 맛있다.”
“그렇군요. 좋았어요. 자. 더 낚죠!”
이브는 다시 낚싯대를 계곡에 밀어 넣었다.
“울프람! 또 낚싯대가 움직여요!”
“음···.”
그리고 두 시간 후.
“한 마리도 못 잡은 거에요?”
“시끄럽구나. 터가 잘못 된 거다.”
“예. 예. 그렇겠죠. 그러시겠죠.”
박스 한 가득 물고기를 낚은 이브와 다르게, 내 통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이거 안되겠네.
나중에 엘피라네를 만나면 한 마디 해줘야지.
***
낚시를 끝내고, 상자는 고기째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보관한 후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는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낚아 온 물고기로 요리를 만들고, 곁들일 샐러드를 만들고, 빵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들고.
다른게 있다면 이브가 그 뒤에 취한 행동이었다.
어제와 다르게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해먹을 깔거나 흔들의자를 만들어 누운 채 별하늘을 바라봤다.
녀석을 뒤로 한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괜찮은 하루였군.”
“네. 괜찮은 하루였네요.”
“혼잣말에 대답하지 마라.”
“진심으로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해서 대답 한 거에요.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혼잣말을 하지 마세요.”
이게 내 탓이 된다고?
“흠. 이렇게 하루 종일 놀았어도 밖에서는 고작 48분이 흘렀을 뿐이라니.”
“그러게요. 정말 편하네요. 후우. 한 달 정도는 놀고 싶을 정도에요.”
“그럴 수는 없다.”
“네? 하지만 한 달은 논다고···.”
“현실과 페어리 가든의 시간의 배분을 이야기 했지. 한 달을 통째로 논다고 한 적은 없다. 조금만 쉬자고 한 거지 한달을 쉬자고 한 적은 없다.”
“아···.”
내 단언에 이브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곳에서 나가서 엘피라네에게 복수하고, 원하던 보물도 얻어야 한다. 그리 길게 쉬지는 못할 거다.”
“네, 네 그렇죠. 그렇네요. 나가야죠.”
살짝 얼버무리는 느낌이 들어 녀석의 얼굴을 살폈으나.
이브는 내게 등을 돌린 채 별을 올려보고 있었기에,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