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
007. 총체적 난국
편의점 사장(진). 아니 이미 사장인가. 아무튼 나에게 편의점은 꿈과 희망의 공간이었다.
물론 비판과 비난이 쏟아질 말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진상 만나면 힘들지, 개진상은 진짜 손님이고 뭐고 멱살잡이 하고 싶지. 특히 한 달 전에 사간 삼각김밥을 유통기한 지났다고 환불하러 온 또라이는 내가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
그럼에도, 편의점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우선 폐기 식품이 짱이다.
아 못참지. 이건 못참지.
폐기로 나온 삼각김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도시락과 우유. 음료수. 그 뭐냐 냉장보관해야 하는 빵에 소세지. 줄김밥에 햄버거까지.
자주가는 편의점 세 군데가 각각 오전 10시. 오후2시. 새벽 3시라 사장님과 잘 이야기 하면 폐기로만 하루를 떼울 수 있었다. 이게 또 동네 단골 편의점이 많으면 은근히 개꿀이다.
그리고 게임 D/Z SAGA내의 제프린의 유통은 생각보다 좋았다. 마을 어디를 가던 포션 하나를 사는데 큰 돈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힐링 포션의 값은 병당 1만 린이랜다.
미쳤냐. 그 돈으로 힐포를 누가 따서 먹냐. 이 게임은 힐러 없으면 약뚫이라고 해서 물약으로 던전을 밀어버리는 테크닉이 있다. 근데 그건 게임 내에서 힐링포션이 100린할 때 뚫는 방식이다. 만 린이면 엄두도 못 낸다.
제프린 놈들, 강하게 자라고 있구나.
아무튼, 내가 제프린에 왔을 때. 편의점에 손을 내민 것은, 여러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우선 폐기 식품. 그리고 월 300만 린 정도의 수입이었다.
거기에 꽤 장사가 잘 되면 80만린으로 주간 알바 세 명을 쓰면서 나는 주말에 가게를 보고 월 50만 린 수준으로 생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부업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팔 게 없다.
마이더스의 손은 주구장창 무기나 방어구만 찍어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고급장비는 잘 안나오는 것 같다.
위그드라실은 묘목동호회 수준이다. 미쳤나 이새끼들. 그래도 과일 종자는 괜찮게 잘 판다. 그건 마음에 드네.
마도상인들은 좋은 말 재생기와 힐링 포션을 취급한다. 식물에게 힐링포션을 물과 섞어서 뿌리고 키운 뒤, 좋은 말 재생기를 틀어주면 식물이 빨리 자라는건 과학인가 마법인가.
아무튼, 이 제프린의 유통망은 개 쓰레기다. 도저히 구제가 안 된다.
그러니까.
본사에서 물건만 떼다 먹고 살기는 커녕 중세 수준으로 퇴화해서 편의점이라는 개념이 없는 시시한 세계에서, 나는 유일한 편의점 점장이 되는 것이다.
물건을 발주할 수 없는 편의점.
가내수공업으로 진열해야하는 편의점.
와. 와 정말···.
“개꿀 아닌가?”
흠.
개꿀인 것 같은데.
***
“우물. 에헤헤.”
“이브 님?
학생회실. 이브 폰 로엔그린은 느긋하게 서류를 보다 서기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서기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킁킁 거리며 학생회실의 향을 맡았다.
“왜 그래?”
“학생회실에서 묘하게 단 냄새가 나지 않나요?”
“···그럴리가?”
“그런가···? 뭔가 과일 향기가.”
“후후. 이상한 소리를 하네. 그럼 누군가가 학생회실에 간식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인데.”
“···그렇죠? 그럴리가 없네요.”
“그럼. 제프린에서 간식이 얼마나 사치인지 알고 있잖니?”
“그렇죠오···?”
서기는 이브를 빤히 바라봤지만, 이브의 입 속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브도 이브 나름대로 고민을 해다. 이대로 입 안에서 느긋하게 녹여 먹으면 그만이지만, 하필이면 이 최고급 사탕은 가진바 향도 뛰어나서 그러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바로 삼키기에도 그렇고, 결국 이브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입 안의 사탕에게 사과했다.
까득.
“?”
“뭔가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금니 사이에서 확실하게 깨진 사탕을 목으로 밀어넣고, 이브는 짐짓 모른채 서기를 대했고, 서기 역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업무로 돌아갔다. 들키지 않았음에 안도했고, 천수를 누리지 못한 사탕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서기 역시 단 것이라면 환장하는 타입. 특히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단 것에 좋아 죽는다.
하지만 사탕은 고급 식자재며 사치품.
이브는 울프람에게서 가져온 사탕의 남은 갯수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7알. 아직 충분히 남아있다. 하루 하나씩 먹으면 일주일을 먹을 수 있어.
울프람이 어디서 이런 사탕을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울프람이 사탕을 전부 쓴다면 그 녀석의 재정도 끝장날 것.
“잠시만 살려두도록 하죠. 이 사탕을 전부 먹고, 당신이 그 자산을 전부 파탄 냈을 때. 그때가 당신의 끝입니다. 울프람.”
이브는 몰래, 사탕 한 알을 입에 넣었다.
“헤헤.”
남은 것은 이제 6알.
종말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
***
“다음 묘목을 뭘 준비하지.”
8마법구의 편의점은 아직 간판도 없지만, 그래도 딱 하나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텃밭이었다.
왜 입구 밖에 텃밭이 있을까. 이게 정말 편의점일까, 가슴 두근두근거리는 전원라이프 아닐까.
하지만 울프람에게는 그런 전원 라이프를 즐길 체력이 없다. 아무튼 나는 위그드라실에서 받은 과일 묘목들을 심고, 그 위에 물과 힐링포션을 섞은 영양제를 뿌린 후 좋은 말 오르골을 틀었다.
【너는 착한 아이야.】
【힘내라. 할 수 있어!】
【이번 강의 공강이래!】
【교수님이 과제 적게 내신대!】
【너는 이번 학기에 박사학위를 딸 거야! 힘내!】
좋은 말 오르골.
미쳐버린 유사과학의 화신이다.
그 실험을 기억하는가 양파에게 좋은 말을 들려줬더니 양파가 더 크게 자랐어요! 라고 하는 실험.
어린 시절 그걸 봤을 때 그럼 양파는 한글을 이해할 중추가 있는건가?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멍청한 실험이었다.
당연히 유사과학이었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랑 비슷하다.
그런데 이게 마법이 섞이면, 정말로 ‘좋은 작용’을 해버린다.
처음에는 마법부 대학원생들의 마인드컨트롤 요소로 썼던 이 자기 최면 행복회로 오르골을 식물에게 들려주면 정말 ‘더 크고 맛있게’ 자라버리는 이스터에그가 실존했다.
그리고 나는 이 좋은말 오르골을 대학원생들을 통해 주문했고, 절찬리에 써먹고 있다.
과일을 따서 으깨고, 걸러내서 졸인 뒤 식용 슬라임을 섞는다.
그 이후 틀에 맞춰서 굳힌 다음, 잘라놓은 종이로 하나하나 쌌다.
이거 한 알이 만 린이니까, 내 인건비를 생각하면 이보다 좋은 부업도 또 없다. 내일 팔 사탕 준비는 이걸로 끝.
“흐으···히이···후우.”
돈 벌리는 건 기쁜데. 이러다 진짜 죽겠다.
“제발 버텨라. 빌어먹을 몸뚱이.”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단다.
편의점 바닥에 자빠져서 움찔움찔 몸을 떨면서 나는 세상에게 빌었다.
빌어먹을 체력2 3만 됐어도···!
“···지금 뭐 하는건가요?”
그 때, 편의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스윽 들어왔다.
손님이다. 젠장. 오늘 마수걸이인데 누워서 맞이해야 하다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꼴이라 장사를 못 할 거 같군. 미안하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러고 있는거죠?”
“체력이 다 해서 그렇다.”
“······일으켜 세워 줄까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목소리다.
······아일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무방비 할 때 흑창 한 방이면, 그대로 원큐에 가는거 아닌가?
젠장, 움직일 수 없는 분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이내 아일라의 손아귀에 잡힌 나는, 다정하게 들어올려졌다.
“괜찮아요?”
“······괜찮다.”
그리고 아가 울프람은 그대로 쇼파에 쓰러지듯 앉게 되었고, 나를 마주보고 아일라가 앉았다.
“도움을 받았군, 그래서 무슨 일로 왔지?”
“···후후. 당신의 계획을 보고 감탄해서 저도 모르게 찾아왔네요.”
“아 그런가. 그렇군. 작전. 그래.”
“네. 그래요. 그렇고말고요. 좋은 작전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런거지?”
“예. 그런거죠.”
“그래.”
“후훗.”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그래 작전.
······그게뭔데?
***
다행히 내가 묻기도 전에 아일라는 우아하게 웃으며 웃기는 소리를 떠들어댔다.
야망의 마녀 아일라가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나열 한 것이다.
“마법대학원의 원생들을 처음으로 고객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후후. 엄청나더군요. 그들에게서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오다니요.”
“그런가.”
“예에. 그들은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오면 그것에만 매달리는 존재. 평생 월 200만린에 삶을 걸어야 하는 자들. 사회가 돌아가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고, 오직 교수의 부름으로만 움직이는 이들이니까요. 그런 이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들었다는 것은, 당신의 길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런가.”
“네. 당신은 지금 이 나라의 차세대 석학들과 좋은 인연을 맺은 거라고요.”
“그런가.”
“후후. 정말이지, 방금 전 부터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말 하고 계시네요. 네 알겠어요. 당신의 야망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그런가. ···보다. 그걸 알다니. 대단하군.”
나도 모르게 의식의 흐름 답변을 이어 갈 뻔 했다. 그랬다간 흑창에 배때지 찔린다. 진짜다.
아무튼 내가 인정하자 아일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야망의 숙녀. 흑마술의 총아”
“후후. 좋아요. 울프람. 당신이 저를 실망시키지 않는 한 이제 이 장소는 명실상부 당신거에요. 건물주의 이름으로 보증하죠.”
“그것 참 고맙군.”
세입자 입장에서는 건물주와 사이가 좋아 나쁠게 없다.
“대신 한 가지 의문 좀 해소시켜 줄 수 있나요?”
“뭐지?”
“어떻게 대학원생들의 호감을 얻어냈죠? 그들은 졸업과 과제. 논문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을 텐데. ···비싼 질문인가요?”
아. 그거?
“흠. 어렵지 않지.”
자리에서 일어나, 개별 포장 된 사탕 하나를 아일라에게 건넸다.
“···이건?”
“까서 먹어보면 안다.”
내 말에 아일라는 종이 포장을 뜯어서 그대로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웅!”
“마음에 드나보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기묘한 함성을 지르며 나를 바라봤다.
“사, 사탕? 이건 황실에나 납품 할 법 한···. 아니 그 이상의 맛인데, 대체 어떻게···?”
“그게 내가 쓴 비장의 수법이다.”
“······나가기 전에 사탕을 잔뜩 들고 나왔나요? 아냐. 한도가 있는 방식으로 비장이라 말 할 리가 없어. 그렇다면 사탕을 만드는 커넥션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그녀가 중얼거리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떤 오해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 모른다. 이러다간 ‘제국 지하 조직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 언젠가 반역의 날개를 펼치겠군요!’ 같은 소리를 할 애다. 진짜다.
야망은 중2병과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자체 제작이다.”
“···뭐라고요?”
“재료만 있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하. 그렇군요. 이게 당신의 ‘기술’중 하나.”
기술에 악센트 넣지 마. 나까지 부끄럽잖아. 나는 침묵했고 아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제조법은 묻지 않겠어요. ···당신이 내 약혼자로서, 그리고 내 편으로서 있어 주는 한. 당신은 제 도움이 될 사람이니까.”
“그거 고맙군.”
“후후. 저야말로 기쁘죠. 울프람. 당신은 지옥 끝까지 쳐박혔지만,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날아올라서 반역의 날개를 펼치겠죠.”
아니라고.
그런거 아니라고 진짜.
원래 이런 애긴 한데 눈 앞에서 들으니까 진짜 좀 그래.
아일라는 눈을 빛내며 양 손을 펼쳤다.
“저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바라는 것?”
“이렇게 좋은 걸 보여줬으니 저도 뭔가 보답을 하고 싶군요.”
“···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는 것이야 있지. 모험에 가장 필수인 아이템.
“아카데미 동부 숲의 지도가 필요하다. 거기서 캐올 것이 있다.”
“···그게 있어도 당신의 체력으로는 힘들지 않나요? 사람을 붙여줄까요?”
눈물나게 감사한 배려 고맙다 진짜.
“···은밀한 일이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당신이 뭘 할지 지켜보도록 하죠. 지도는 내일까지 가져다 드리죠.”
그리 말하며 아일라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동부 숲을 떠올렸다.
미안하다 아일라.
“동부 숲 초반에는 ‘히든’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지.”
그러니까 이건 넘겨줄 수 없다.
나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