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03)
803. 인정하마. 지금은 네가 강하다.
다른 녀석들의 취미를 알아봐라.
그 안에서 네 마음에 들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걸 찾아봐라.
내 조언에 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취미가 궁금하네요.”
“진심인가.”
“네. 진심이에요. 나중에 당신이 대륙을 여행해서 어디 오지에서 실종된다 한들, 루디카만큼은 항상 곁에 두고 연락처를 확인해야 한다고요.”
“그야 그렇군. 단검의 본질을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저는 루디카와 그렇게 딱딱한 관계로 있는건 좀 그래요. 기왕 파티라는 그룹으로 묶였다면, 서로 알아가면서 친해지는게 좋지 않을까요?”
너 누구냐.
내가 알던 이브 폰 로엔그린은 이런 녀석이 아니었다.
혼자 꽁해지고 심심하면 짜증내고 취미는 울프람에게 시비걸기, 특기는 사탕 진공흡입 아니었나.
친구따윈 필요 없어요. 혼자 있게 해주세요. 밥은 혼자 먹어야 제맛이죠. 인간 관계는 서로 이득이 되지 않으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제게 줄 이득이 없잖아요. 같은 소리를 하던 이브 폰 로엔그린은 어디 갔냐 이 말이다.
어서 밥은 혼자 먹겠다고 말해라 이브.
다크 시그너였던 시절의 너는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런가. 너도 많이 컸군.”
이브는 내 말을 곰곰히 생각하다, 가슴께를 가리고 얼굴을 붉히더니 몸을 살짝 뒤로 빼곤 나를 노려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
아니.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러세요?
***
루디카 핫산 샤도우의 취미.
그게 대체 뭘지 나도 감이 오지 않는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브의 저 태도에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파티원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게 아닐까.
그래서. 루디카를 불렀다. 다행히 오늘 바로 만날 수 있는 모양.
편의점 앞으로 찾아온 루디카는 우리의 용건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곤 웃었다.
“내 취미라. 갑작스럽게 그게 궁금하다고?”
“이브가 파티원들의 취미생활이 궁금하다고 하더구나.”
“아하. 그렇군. 음. 원래는 없었다만 최근에 하나 생겼다.”
“어머. 어떤 건가요?”
루디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슥 꺼냈다.
작은 체구의 루디카 손 위에 올라갈정도로 작은 인형.
하얀색 토끼가 베이지색 가디건과 곤색 바지를 입은 아주 귀여운 인형이었다.
“이건···?”
“내가 직접 뜬 인형이다.”
“아···.”
“자수나 재봉 취미를 가져보려고 하고 있거든, 공간 제약도 적고 집중력 회복에도 좋으니까 말이야.”
“대단해요!”
“그런데 갑작스럽구나, 이브가 이런 관심을 보일 줄이야···. 무슨 일 있었나?”
루디카의 물음에 이브는 자신의 심경을 이야기했다.
최근 너무 바쁜 것. 그 와중에 취미라도 가지면서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다는 것.
이브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 루디카는 이내 방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내. 이브. 정말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어.”
“루, 루디카?”
“제국을 위해 산다는 대의도 좋지만, 그걸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거든···. 대의를 위해 사는 인간도 좋지만, 인간으로서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너무 무시해도 안 돼. 알았지?”
“아···.”
이브 이상으로, 아니 이 대륙에서 누구보다 가장 대의를 위해 살았던 것이 바로 루디카 핫산 샤도우다.
이제야 감정을 하나 둘 찾아가며, 가면을 벗기 시작한 루디카가 하는 말에는 그만큼의 무게감이 있었고, 이브도 녀석의 손을 마주잡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요.”
루디카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브.
이 또한 파티의 화합인가.
좋은 일이다.
***
그 다음으로는 차례차례로 네프티와 밀푀유를 만났다.
네프티의 경우에는 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별 대단할 것이 없었다.
물론 많이 놀란것은···.
“침대. 테이블. 의자. 화장대. 하나같이 다 고급품이에요. 마감 처리에 틈이 없어요. 물론 재료 자체의 품질이 낮아 황실 발주 수준은 아니지만···. 웬만한 하급 귀족가는 눈에 불을 켜고 주문하지 않을까요···?”
“아! 감사합니다!”
네프티가 만든 가구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품질을 자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고보니 네프티는 대방패술의 달인. 거대한 방패를 양 손으로 번갈이 쥐면서 등 뒤에 있는 이를 보호하고 모두 흘려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즉. 생각보다 재주와 힘조절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이야기.
“훌륭한 물건 아닌가, 나도 써보고 싶을 정도다.”
“선배님! 부디 가져가주세요!”
“아니. 그렇다 한들 멀쩡한 가구를 버릴수는 없지 않나. 지금 쓰는 가구들이 망가지면 그때는 부디 부탁하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네프티는 내 거절에도 눈을 빛내며 방긋 웃었다.
음.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녀석의 호의를 거절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이브가 눈을 살짝 크게 뜨곤 의외라는 듯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쓰고 있는 물건을···. 그저 한 순간의 충동만으로 바꿀수는 없다···. 엄청 서민적인 생각이지만, 반대로 위에 서는 자로서 나쁘지 않은 대답이네요.”
“그런가?”
“예에. 저희가 의미 없는 사치를 하면 안 되니까요.”
“정말, 선배님은 대단하십니다!”
네프티와 이브가 나를 올려친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내 안의 소시민 감성이 뭘 아깝게 버리고 그래. 라고 말하는 것뿐인데 말이야.
그 뒤.
이브와 함께 밀푀유의 취미도 들었다.
“제 취미라니, 갑작스럽네요. 두 분께서 관심 가질만한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들려줄 수 있을까요?”
“네. 그러면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리 말하고 밀푀유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냉동고였다.
“이런 냉동고를 가지고 있었나?”
“학년 수석에게 나오는 품위 유지비랑, 선배님께서 일정부분 보수라고 주신 편의점 2호점 판매대금. 그리고 기타 수익들을 모아서 차렸답니다!”
돈이 들어가는 취미인가.
소소한 취미일거라 생각했더니, 편의점 급으로 무척이나 큰 취미 아닌가.
“춥네요.”
“그야 냉동고니 말이다.”
이브가 살짝 몸을 떨었다. 태초의 루비를 쓸까 했지만, 냉동고로 초대한 이유가 있을 터.
“걸쳐라.”
“뭐에요. 이거?”
“내빙의 망토다. 추위 공격에서 몸을 막아준다.”
이브는 망토를 받아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 이내 입고 있던 망토를 벗고 내가 건넨 망토를 둘렀다.
“따듯하네요.”
“흠.”
당신이 만든 망토를 누가 쓸 거 같아요? 얼어죽고 말지! 같은 소리를 할 거 같았는데, 생각보다 순순하네.
아무튼 밀푀유는 이쪽의 대화에 눈치채지 못한 채 쭉 나아갔고
우리는 추위를 견디고 밀푀유의 뒤를 따라갔다.
“자 봐 주세요!”
냉동고 구석. 바로 한가득 놓여 있는 거대한 유리병들이었다.
약 서른 개. 병 안에는 하얀 액체. 즉 우유로 가득 차 있다. 얼어있는가 하면 녹은것도 있다.
“이 우유들은 뭐지?”
“아이스크림을 비롯, 우유로 만들 수 있는 간식들을 시험하는 곳이에요. 일종의 실험실이죠.”
“어마어마하네요.”
이브의 말에 나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밀푀유의 취미라고 하기엔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다.
“어쩌다 이런 취미를 가지게 됐지?”
“아···. 그게 동부에 우유가 너무 남는데, 우유는 쉽게 상하니까요. 하지만 동부에서 치즈를 만들자니 기후도 잘 안맞고,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만들거나 간식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판매처를뚫어보자고 생각해서요.”
“그게 취미인가?”
“네! 다른 일에 부담 안 가게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는 밀푀유.
그렇군.
이 녀석은 워낙 성실하고 똑똑해서, 취미라는 것은 자신의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게 하는 선에서 하는 여가 활동. 이라고 생각하나보다.
내가 봤을때는 동부 특산품의 명운을 건 일생일대의 대승부같은데 말이지.
“어마어마하네요. 만약 성공하면 사브레 영지도 일약 대영지가 되겠어요.”
“아? 아아. 그렇네요. 대영지···. 대영지가 될 가능성도 있네요.”
“어머. 그 부분까진 생각 안 했나요?”
“그게···. 저는 저희 영지에서 나오는 우유가 정말 맛있으니까. 그걸 다른 분들이 좀 더 드셔주셨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해서요···.”
그리 말하는 밀푀유는 부끄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나와 이브는···.
“저기 선배님? 이브님? 왜 제 쪽으로 다가오시는거죠? 저기 갑자기 머리를 쓰다듬으시면···. 두 분께서 말 없이 쓰다듬으시니까 무서운데요?!”
나와 이브는 한동안 말없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착하다.
***
그 다음 취미는 레지나 시엘라였다.
“제 취미.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저야 뭐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소설 쓰기. 편지 쓰기. 연애소설 탐독. 좋은 신부가 되는 법에 대한 공부. 요새는 귀족들이 성공하는 대하 야망 소설이나···. 그림에도 조금 취미가 있답니다.”
“그렇군요?”
“네. 후후.”
레지나는 우아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정신이 좀 맛이 가서 그렇지, 레지나는 정말 제대로 된, 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귀족 영애라 할 수 있다.
“그렇군요. 그렇게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으면 피곤하지 않나요?”
“아뇨.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그 안에서 누군가의 강제성이나···. 의무적으로 하는 건 하나도 없답니다. 이브님.”
“그런가요? 하지만 그렇게 취미가 많다면 하나하나 할 틈도 없을텐데.”
“분명 저도 바쁘지만 취미라는 건 시간이 나서 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음···. 저는 시간이···.”
“그렇기에 취미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좋아한다고 인정하는 것 부터 시작하는거죠. 저는 소설을 읽는것도, 쓰는것도, 그림을 그리는것도, 편지를 쓰는것도, 신부 수업을 하는 것도 다 좋아한답니다. 그렇기에 시간을 낼 용기가 생기는 것 아닐까요.”
이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를 바라봤다.
“울프람. 당신도 그런가요?”
“음. 그렇다. 나도 취미 생활에 크게 몰두하는 습관이 있다만, 한 번도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무척 바쁜데도요?”
“바쁘지만, 그 바쁨을 넘어 설 정도로 취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설 정도로 좋아해야 한다···. 라는 거네요. 갑자기 정신론이라니···.”
이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허나 비꼬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납득 한 얼굴이다.
그래.
결국 취미는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더라도, 좋아한다는 마음이 우선되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는 법이다.
최악은 할 일이 너무 많다면서 취미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
“알겠어요. 그러면 저도 변명보단 우선 하기 위해 노력해보죠.”
“취미를 추가하거나 바꾸는게 아니라, 일단 흥미가 이는 것에 도전해 볼 생각인가?”
“네. 이제와서 새로운 취미를 가지는게 아니라, 처음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 볼려고요.”
“그런가.”
녀석의 눈이 올곧게 빛난다.
갑자기 새로운 것을 찾겠다며 이것저것 손대는 것 보단 어떻게든 처음에 흥미가 일었던 것을 마주보고 짬을 내서 우선 해 보는 것.
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이브가 내린 대답은 내가 제시한 대안보다 훌륭하다.
어쩔 수 없네.
“이브. 받아라.”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순백으로 빛나는 열쇠를 녀석에게 건넸다.
내 생각에 아마 처음 주는 건 아일라가 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나는 처음으로 이브 폰 로엔그린의 판단이 내 판단보다 옳다고 납득했다.
그 기념으로 주는 선물.
꽤 하는구나 이브 폰 로엔그린···.
이번만큼은 너의 승리로 치도록 하지···.
허나 다음번에는 결코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승리를 만끽하도록 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