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10)
810. 걸었던 길
디멘시아가 사라진 이후. 엘피라네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서 하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긴장을 푸는 건 상관 없다만, 저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거요? 뭐 천천히 해도 된답니다. 대왕 벌레가 사라진 이상. 저기서 나오는 건 다 애벌레에요.”
“그런가.”
한 마리 더 기어나오는 다크 실피의 머리통을 산산조각 낸 후, 엘피라네는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들은 적은 없다.
엘피라네 루트에서도 지나가듯 언급만 할 뿐이고 말이야.
“저 디멘시아···. 자신을 오웬이라 칭했는데.”
“네. 그랬죠. 제 신경을 박박 건드리려고 한 말인 것 같은데···. 짜증나게도 잘 먹혀 들었답니다. 정말.”
“들려줄 수 있나? 복잡하거나 말하기 힘들다면 괜찮다.”
“말하긴 힘든데 복잡하진 않아요. 디멘시아는 제 여동생이고, 제가 항상 지켜줬고, 제 등뒤에 숨어서 전쟁을 지켜보기만 했죠.”
“······.”
들어보면 여기까진 별 문제 없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라는 건데.
“하지만 전쟁에서 수 많은 동족들이 죽어나가는 걸 본 디멘시아는 어느날 머리가 돌아버렸어요. 중간계는 결국 이길 수 없다. 죽음은 결국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살고싶다. 자. 그러면 방구석에서 혼자 지내던 음습한 애가, 잘못된 가치관을 배운 채 영생을 추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엘피라네는 손을 내젓고 어깨를 으쓱했다.
“가족을, 동족을 전부 제물로 바친다음 마왕에게서 영생을 부여받았죠. 그녀를 따르던 벌레들도 똑같이 영생을 받았답니다. 저 심장 보이죠? 저게 그 영생의 증거에요. 세계에 저 심장이 하나라도 있는 한, 심장은 증식하고 다크 실피를 낳으며, 디멘시아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죠.”
“어마어마하군.”
진짜 주방의 B였냐고.
“네. 하지만 장점만 있는게 아니라서, 다크 실피는 지성을 잃고 벌레처럼 본능만 남고, 디멘시아는 영원히 저 벌레들의 둥지를 돌봐야 해요. 부모님과 동족을 팔아서 그런 거짓된 영생을 얻는다니···. 지금 이 순간을 화려하게 살아가는 것에 가치가 있는걸 왜 모르는지···.”
엘피라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놀랍게도, 방금 전의 분노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온하다.
“화가 많이 난 것 아니었나? 평온해보이는군.”
“누구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울프람이 그 녀석의 목을 쳐 줬으니까 그런거죠.”
“······.”
“300년간 죽여도 죽여도 안 죽는 벌레를 단박에 쳐죽여줬잖아요?”
“죽진 않았을거다. 신화포식자에 즉사능력은 없어.”
“하지만 녀석의 불사를 먹어치워서, 영원한 건 없다고 공포에 떨게 해준 것 만으로도 감사해요. 제가 때려 죽여도 죽여도 다시 나타나서 짜증나게 구는데···.”
엘피라네는 픽 웃었다.
밝은 척 하고 있지만 그늘은 감출 수 없다.
“앞으로도 벌레가 나타나면 말하도록. 최대한 죽여주겠다.”
“정말인가요? 흠···. 빨리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이나 지켜야 할 약속이 될지 모르는데요?”
엘피라네는 키득키득 웃었고, 그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내가 몇 백년을 산다고 해도, 돕도록 하지.”
“그렇게 멋지게 말하지 마세요. 으흠.”
엘피라네는 손가락으로 툭. 내 가슴을 찌르고는 웃어버렸다.
우리는 잠시 서로 마주보고 웃은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주먹을 내밀어 살짝 부딪치고, 심장을 바라봤다.
“자. 그러면 이제 이걸 베도록 할까.”
“울프람이 해주세요. 제가 죽여봐야 다른 곳에서 재생 될 뿐이니까요.”
음.
정신체를 베는 다크템플러의 기분인가.
뭐 아무튼 나한테 맡겼으니 내가 알아서 해야지.
신화포식자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 심장에 박아넣었다.
파스스스, 소리와 함께 심장이 먼지로 화하고, 불길속에서 사그라든다.
“좋아요. 아주 좋아. 오오. 내가 이 모습을 보려고 대체 몇 년을 기다려왔는가. 타오르는구나, 저주받은 심장이 타오르고 있어···.”
옆에서 양 손을 모으고 눈을 빛내며 기도를 올리는 엘피라네.
녀석을 무시한 채. 신화포식자는 저주가 가득 담긴 심장을 먹어치웠다.
그러고 보니.
“이 신화 포식자가 이렇게 축복과 저주를 먹어 치우는 것 자체가 어떤 변이를 몰고올지 신경쓰이는군.”
지금까지 마족도 어마어마하게 베고, 천족도 베고, 마력도 베고 했는데, 나중에 저주에 물든 마검이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아···. 그건 상관 없을거랍니다. 울프람.”
“어째서지?”
“당신의 검을 전에 제가 한 번 가져간 적이 있잖아요? 그때 휘두르진 못했지만 ‘어떤 녀석’인지는 그때 전부 확인했답니다. 상관 없을거에요. 신화 포식자. 아주 멋진 이름을 가진 그 아이는 이름에 맞게 전부 먹어치우고, 그리고 자신의 색으로 바꿔간답니다. 당신의 이름에 걸맞게말이죠.”
엘피라네는 키득키득 웃었다.
뭐.
그 요정여왕이 하는 말이다, 거짓은 아니겠지.
그렇게 심장을 전부 먹어치운 이후. 하늘에서 무언가 팔랑. 하고 떨어졌다.
떨어지는 종이를 집은 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뭔가요. 그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돌아가도록 하지.”
“네. 그러죠. 아 울프람. 할 말이 있어요.”
“뭐든 말 하도록.”
“고마워요. 덕분에···. 무척이나 편해졌답니다.”
***
【진 각성권】
【켈터스를 포함. 각성하지 못한 캐릭터를 최종 각성상태까지 끌어올려주는 각성권입니다】
아이템에 적힌 한 줄.
짧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어느정도냐면 나만의 이세계에 앉아서 잠시 사용처를 고민해야 할 정도.
“모두들 포텐셜이 있으니 말이다.”
즉 이건 강제적으로 ‘초월격’으로 만들어주는 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파티에 초월자가 하나 늘어나는 것 만으로도 전장이 크게 바뀐다.
엘피라네의 주먹이 한 번에 백 명을 타겟한 것 처럼 미친듯이 활용하긴 힘들어도, 저마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니 부족함 없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변수가 너무 많다. 결국 확정적으로 내가 알 수 있는건 네프티와 이브인가.”
아일라의 무와 마법의 극의나, 루디카의 초월. 레지나나 밀푀유도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우리 파티에서 제일 먼저 이걸 쓸만한 건 그 두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네프티보단 이브.”
“우와. 혼자 방에서 사람 이름을 중얼중얼 부르지 말아주세요. 기분 진짜 나빠요. 대체 뭐 하는 거죠?”
슬쩍 뒤를 바라보니 뚠뚠이 녀석이 이쪽을 찌릿 하고 노려보고 있다.
“언제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여긴 내 세계다.”
“알고 있어요. 그러면 열쇠를 가져가시던가요.”
이브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자신의 작업대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어라. 여기 이렇게 넓었던가?”
“뭐라?”
“음···. 아니 꽤나, 넓어진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은 아니지. 내가 가져 온 물건들이 여기서 이렇게···. 네. 넓어졌네요. 당신 뭐 했어요?”
뭐 했냐니.
아.
신화 포식자로 뭐 하나를 먹어치우긴 했지 참.
“넓어졌으면 넓어진 대로 편하게 쓰도록. 말이 많구나.”
“흥.”
내 말에 이브는 뚱한 표정을 지은 후 악세서리 제작 작업에 들어갔다.
나도 녀석의 얼굴이 보이는 소파에 앉아 슬쩍 말을 걸었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별 일 없나? 학생회나···. 기상이변 등 말이다.”
“얼마 전에 동부 숲에서 그레이트 오크 말고 트윈 헤드 트롤이 나왔어요.”
“큰 사고였군. 어떻게 됐지?”
“네프티와 밀푀유가 나설 것도 없이, 원정조가 전부 처리했답니다. 원정조들도 차근차근 강해지고 있어요.”
“······.”
“제 재량으로 잠든 산맥 이후. 망자의 평원까지 원정조가 진입하고 있고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있어요. 다음 지역을 어디로 풀지 고민이네요.”
“짧은 기간에 어마어마하게 강해졌구나.”
“원래부터 다들 소질이 있던 거겠죠. 그저 억눌려 있었을 뿐.”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다.
그래.
게임 기준으로도 강해지자면 또 강해질 애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길을 제시해줬다면, 누구든 강해질 수 있었다. 억눌러졌던게 튀어나온 거였나.”
“그것도 있고···. 다들 부상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
“죽더라도 꿈을 꾸다 죽고 싶다는 원정조가 참 많더라고요. 저희가 꿈을 억누르고 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될 정도로요.”
“너와 나는 억누르지 않았다. 역대 학생회장들은 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
이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펜 끝을 입에 물고 잠시 으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지금 위로해주는거에요?”
“열쇠 내놓고 나가라.”
넌 나가라.
“짠돌이.”
“아무튼. 그렇게 멋진 녀석들이 있다면, 나도 열심히 물건을 찍어내야겠군.”
제프린은 순조롭고 잘못되어가는것도 없다. 라는 건가.
8문이 열렸을 때. 제프린 대침공에서 녀석들이 억제력이 되어줘야 하니 말이다.
순풍이 아니라, 폭풍 전의 대비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대비라 하면.
“이브. 너의 최종 각성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최근 초월에 대해서는 조금씩 감을 잡고 있나?”
“네. 저의 초월···. 뭔지는 알겠는데. 음. 으음···.”
이브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볼을 붉혔다.
“깨달은게 있다면 확실히 말하도록. 네 초월은 뭐지?”
“그게···. 제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러운데 진짜 말해야 하나요.”
“대답해라. 네 초월은 뭐지? 어서 큰 소리로.”
“알면서 하는거죠 지금!”
“어서.”
이브는 아 진짜! 하고 소리치고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작게 읊조렸다.
“세상 전부를 비추는 빛···.”
“뭐라고?”
“빛이 들지 않는 어둠을 비추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비···.”
“크게 말하도록. 어서.”
“아! 진짜아! 네! 빛이 들지 않는 어둠을 비추고, 가난한 이 힘든 이들도 공평하게 비춰주고! 세상 전부를 비추는 빛! 그게 제가 바라는 길이라고요!”
“좋다. 잘 말했다. 상으로 사탕을 두 개나 주도록 하지.”
이브는 새빨개진 얼굴로 씨익 씨익 숨을 몰아쉬었고, 내가 건넨 사탕 두 개에 얼굴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뭐.
제대로 각성하긴 했네.
참고로 초월격이라는 건 정신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브가 제대로 크지 못했다면 다른 마음을 먹었을 거다.
오직 사회 지도층만을 비추는 빛이나, 빛 아래 들어오지 못하는 죄 많은 이들을 태워죽이는 멸마의 빛. 등.
하지만 저건···. 정말 제대로 루트를 탔을 때 나오는 마음이다.
루트에 따라 타락한 이브의 경우 오직 나만이 선별하고 규정하며, 어긋나는 모든것을 징죄하는 심판의 빛이 된다. 그건 진짜 최악이다.
“제대로 성장했구나.”
“뭐에요. 갑자기 칭찬을 하고 그래요. 기분나빠.”
“됐다. 그러면 들어라. 지금 나에게 종이 한 장이 있다. 이건 네가 초월의 중입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입장권이다. 네 최종각성이 가능한 안배지.”
진 각성권을 흔들었다.
“그래서요?”
“이걸 쓰면, 너는 바로 강해질 수 있다. 더 이상 나의 괴롭힘에 가까운 승급이나 각성을 위한 시련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어때. 흥미가 이나?”
이브는 제대로 된 대답을 찾아냈다.
그러니 지금 이걸 받아서 써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흠. 당신. 자신이 했던 짓이 악질적인 괴롭힘에 가깝다는 걸 인정했군요. 좋아요. 그 종이 한 장으로 저는 당신에게서 해방. 앞으로는 기술만 연마하면서 악세서리나 만들면 된다는 거죠?”
“그렇다.”
이브는 방긋 웃고는, 실로 오래간만에 내게 중지를 치켜들었다.
“찢어버려요. 그 따위 종이.”
“······.”
“힘들고 괴롭고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그 모든 노력이 있어서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노력이 가져오는 성과의 즐거움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종이 하나에 의지해서 저 높은 곳까지 날아가라고요?”
“······.”
“지금 제가 만드는 이 악세서리들을 전부 쓰레기통에 쳐박고, 울프람 당신이 전력을 다해 만든걸 ‘이브가 만들었습니다.’ 하고 제작자 표시만 바꿔서 내놓는것과 뭐가 다르죠?”
이브는 마침내 다른 손 중지까지 치켜들고는 베에에! 소리를 내며 혀를 내밀었다.
“알겠다. 이건 내가 보관하도록 하지.”
“이제야 좀 말귀를 알아듣는군요.”
“그럼. 앞으로 강해지기 위해서 더 고통받고 싶다는 네 의지는 잘 알았다. 자. 일어서라. 고통받으러 가도록 하지.”
“······.”
“왜 그러지?”
“지금요? 바로요?”
“그렇다.”
“후우. 알았어요. 진짜. 두고봐. 용서 못 해.”
부들부들 떠는 녀석.
하지만 일어서는 동작에 망설임은 없었다.
정말.
제대로 컸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