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14)
814. Food for thought
라그나시앙.
유령이 ‘눈’이라는 기관에 의존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 녀석은 그런 녀석이다.
설정상 여전히 인간이고 싶지만, 죽음이 두려웠고, 그 결과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유령을 목표했다.
웃기는 이야기다.
다른 유령들을 빨아들여 자신의 영혼을 강화해 물리세계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
즉. 유령주제에 손으로 물건을 잡거나 걸어 다니고 싶어 한다.
더 웃긴 건, 아직 인간으로서의 ‘기관’을 포기하지 않았다.
듣는 것은 귀로. 향을 맡는 것은 코로, 보는 것은 눈으로···.
‘이미 시체가 되어 사라진 육체’를 ‘영혼의 부위에서 기능하게 만드는 것’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의미 없는 짓인가.
하지만 이렇게 미친놈이기에 재밌는 것 아니겠나.
유령 주제에 눈을 뜨고, 나를 본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
손을 슥 내밀었다.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히, 히이이익!
녀석이 옆으로 구르듯 무너져 내리고 내 옆을 빠져 나간다.
내 재주면 얼마든지 손으로 잡을 수 있지만 어떤 행동을 보여주는지 궁금해 지켜보기로 했다.
녀석은 바로 도르래 앞으로 달려가, 그대로 날아올랐다.
“흠. 도망을 택했는가.”
하지만.
유령이 유령의 집을 벗어나는건 공포 게임 룰 위반이라고.
이 팬텀 시타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네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지?
나직이 웃었다.
자. 나를 즐겁게 해다오.
***
음.
사실 공포게임을 좋아하던 때의 나는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때의 저는 뭐랄까···. 미쳐있었달까요. 하핫.
군대에서 모은 월급으로 고시원을 구하고, 현장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모은 돈으로 원룸으로 이사를 간 다음. 일당이 오르려던 그 순간 디스크가 터졌고 뭐 아무튼.
고시원에서 할 거 없이 보던 공포···. 아니 똥포게임 전문 인터넷 방송. 그걸 직접 하면서도 가슴속에는 켜켜이 절망과 고뇌만이 쌓여갔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게임을 해도 좀 희망이 있는 게임을 해보자 해서 접한게 D/Z SAGA. 그리고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었지.
아무튼 지금에 와서야 그 시절 추억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거지, 공포게임을 한창 사랑하던 시절의 이영진은 조금 맛이 가 있었다.
디스크에, 절망만 가져다주는 게임에, 좁은 원룸에, 떨어져가는 돈에, 연락할 곳 없는 길에, 나의 괴로움을 사랑했다고 했던 전 여자친구에···.
뭐 좋다.
이제와선 어찌되든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을 정도니 말이야.
아무튼 지금은 옛 추억이 아니라, 어딘가 숨은 유령을 찾을 때다.
자. 어디 있을까.
어디로 숨었을까.
“방금 전에 베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역시 조금 더 즐기고 싶구나.”
꼭 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라그나시앙은 2층의 구석 방에서 몸을 떨었다.
-뭐야. 뭐야. 저 인간 뭐야. 대체 뭐야?
필사적으로 유령을 내보내지만 인간의 칼질 한 번에 사라진다.
치직. 팬텀 시타델이 살짝 사그라드는 모습. 그 모습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만든 성채인데, 나의 낙원인데!
저런 침입자 하나의 손에 이렇게 무너져서는 안 되는 나만의 낙원인데!
저벅. 저벅.
인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 정말 착각일까 아니면 자신의 신경이 쇠약해져서일까.
유령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육신을 해부해서 모든 기능을 파악해 혼에 적용시킨 라그나시앙에게는 신경이 존재하고 신경쇠약도 걸릴 수 있다.
제발 환청이길, 환각이길.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자신을 항상 믿고 따라주던 아이. 인간 시절에도 함께 했던 메이드가 이쪽을 조심스레 바라본다.
자신의 소꿉친구였던 이 아이는 라그나시앙의 실험에 따라줬고, 함께 유령이 되는 길을 선택해줬다.
라그나시앙의 마법 속성으로는 ‘어둠’ 특성은 ‘고스트 그랩’
즉 유령을 손으로 쥐고, 그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힘. 당연하지만 인간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능력은 아니다.
그렇다면 유령이 되자. 그래서 우리들의 낙원을 만들자. 그녀와 그녀의 시녀. 두 사람과 함께 하던 유령들은 ‘팬텀 시타델’의 제작에 동의했다.
제국 수도에서 죽은 원혼들을 모아서 만든 자신들의 성채였다. 황실 퇴마부대가 온다 한들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딱 천 년만 그 세를 키우면, 황실과 직접 접촉해 세력권을 인정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간단히···.
고작 한 사람의 무력에 무너져버리는 게 말이 된다고?
-없어. 이제 없어. 제인. 신시아. 올리아···. 아무도 없어. 다 저 남자에게 당했어.
팬텀 시타델의 간부가 될 녀석들은 한 명을 빼고 전부 당했다.
이제 남은 건···.
-제가 가서 막겠습니다. 라그나시앙 님.
-뭐, 뭐? 안 돼. 저 인간은 위험해. 너까지 사라지면···.
-제 능력을 아시잖아요. 인간은 저를 막아낼 수 없어요.
-그, 그렇지만···.
-믿어주세요.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이 팬텀 시타델에서 최강의 패.
최고 간부가 될 아이였던 자신의 벗.
그 아이를 보내며 라그나시앙의 눈에는 희망이 깃들었다.
-그럼 제 승전보를 기다려주세요.
-으, 응! 믿을게!
그렇게 떠나보낸 그녀.
그리고 약 십 분 후. 라그나시앙은 통지표를 받았다.
-아, 아아···.
사라져버린 벗.
그리고.
뚜벅. 뚜벅.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간의 발걸음 소리라는 통지표였다.
***
아마 녀석은 2층 구석 방에 있을 거다.
왜냐하면 4층에서 내려오면서 3층을 썰고 나왔고, 1층은 계단이나 홀이나 주방등으로 개방적으로 설계되어 있기에 숨기에 적당하지 않다.
지하 1층과 2층은 와인 저장고랑 보물고. 즉 숨는다면 2층이다.
그렇게 2층을 느긋하게 걷고 있자니 메이드 복을 입은 유령이 내 앞에 섰다.
검은 양갈래 머리를 내려 묶고, 차분해 보이는 표정의 유령.
이 녀석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 맵의 중간보스. 신디.
녀석은 이쪽을 보고 자세를 잡았다.
-거기에 서 주세요. 불한당.
“호오. 이지를 가지고 있는 유령인가.”
-이 앞을 지나가는 것은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고위 가문의 자제분으로 보입니다만 예의를 지켜주세요.
“네가 나를 막을 권한이 있나? 내가 누군지 모르지 않을텐데.”
-저는 그 분의 하나뿐인 시녀. 주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권한이 없다 하여도 막겠습니다.
“그런가.”
-이 곳은 인간세계의 법과 도리가 지켜지는 곳이 아닙니다. 설령 가장 위대한 피를 이으셨다 한들, 상관없습니다. 그저 물러나주세요.
그리 말하며 녀석은···. 들고 있는 빗자루를 허리 옆으로 빗겨 차고는 그 끝에 손을 올렸다.
마치. 저 빗자루가 검이고 지금부터 발검술을 선보이려고 하는 듯 한 자세.
당연하지만 발검술이란 기습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검집에 넣어놓고 뽑는다는 건 동작이 하나 추가되니 만큼 그 어떤 효용성도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물리법칙을 넘어선 유령이 발검술을 한다면···. 그건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일격이 된다.
재밌군.
“검사와 진심으로 싸우는 건 오래간만이군.”
-끝까지 싸울 결심이시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희의 동포가 되세요!
오.
그건 좀 유령같은 대사였어.
***
신디를 베어내는 데에는 약 십 분이 걸렸다.
말해두지만 유령은 신화 포식자를 막을 수단이 없다.
가볍게 내질렀다고는 하나 내 검을 모두 피하는 방식으로 십 분이나 견딘 것은, 녀석이 생전···. 성장한 앨리스 마이스터 급 검사라는 이야기가 된다.
허나, 그래봐야 결국 앨리스 마이스터 급이다.
나를 혼자 막는 데에는 역부족하다는 이야기지.
-안, 됩니다. 그 분께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흠. 그리 말하니 내가 악역 같지 않나.”
사그라들면서도 내 발목을 잡으려고 하는 녀석. 한 번 더 가볍게 신화 포식자를 내지르면 죽겠지만, 그랬다가 비뚤어져서 영혼 자체가 망가져 원령이라도 되면 뒷맛이 안 좋지.
“내가 여기에 혼자 들어온 이유. 그리고 너희들을 무작정 포획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뭐···라고요? 포획? 지운 게 아니라···?
“음. 잘 들어라······.”
라그나시앙의 귀가 여기에 있다 해도 못 들을 정도로 작게, 메이드 신디만 알아들을 수 있게 내 진심을 말했고, 녀석은 눈을 크게 뜨고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당황하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좋아. 그러면 이제 진짜 이 건물의 주인을 베어볼까.”
신화 포식자를 살짝 흔들었다, 안에서 흔들리는 유령은 약 사백 구십 체 이상.
당장이라도 신화 포식자가 흡수시켜달라고 울부짖지만, 그 정도 제어는 이제 나도 가능하다.
검을 진정시키고 이 건물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령을 만나기 위해 걸었다.
저벅. 저벅.
사람 하나. 유령 하나.
을씨년스러운 건물에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
***
그렇게 라그나시앙이 숨었을 방문을 두드렸다.
원래라면 신화포식자로 문을 베면서 똑똑 누구세요. 나. 나. 나!! 나 유령 찢고 죽이고! 하며 들어가도 되겠지만···. 그랬다가 라그나시앙이 원령이 되면 피곤해진다.
원령은 ‘유령의 본질’ 자체가 맛이 가버리는거라 어떤 수를 써도 돌아올 수 없다.
참고로 팬텀 시타델은 정말 도시로서 기능하려고 했는지 베어낸 유령 중에 원령은 몇 없었다. 그런데 라그나시앙이 원령이 되면, 녀석과 이어진 500체의 유령 전부가 원령이 되는 거다.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자. 문 안에서 기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 들어와.
“음. 들어가도록 하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폴터가이스트가 날아오는···.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이쪽을 바라보는 여인의 유령이 하나 있을 뿐.
-너, 너 뭐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어째서. 우리는 그냥 우리의 땅이 필요했을 뿐인데···.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갑작스럽게 원망을 쏟아내는 녀석.
“너도 이 곳에 들어오려던 인간을 죽이지 않았나?”
-내가 시타델의 주인이 된 이후로는 한 명도 죽인 적 없어! 놀래키고 돌아가게 만들었지. 내가 마지막 주인이라고!
“······.”
그랬어? 그건 몰랐다.
뭐 아무튼.
이제 이 공포게임의 종지부를 찍을 때다.
신화포식자를 들고 살짝 흔들자 녀석의 눈이 흔들린다.
-그, 그 안에 신디가 있지?
“신디?”
-내, 내 친구 유령 말이야. 메이드 복 입은 아이.
“네 친구? 아아···. ‘이 녀석’ 말인가?”
검을 들어올려 검면에 신디의 얼굴을 띄워올리니 라그나시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어어!!
“조심해라.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이 신디라는 녀석이 완전히 검에 잡아 먹힐수도 있으니 말이다.”
-윽, 으윽···. 쓰, 쓰레기···. 너무해.
아니.
진짜로 위험해서 한 말인데, 갑자기 울기 있기야?
난 정말 진짜로 신디가 어디있는지 가르쳐주고, 신화포식자는 제어하기 힘들어서 한 말인데.
“아무튼, 이 신디가 어쨌다는 거지?”
-내, 내가 그 검 안으로 들어갈게···. 신디는 풀어줘. 그 검에 흡수되든 뭐든 다 할테니까. 무릎도 꿇을게, 이렇게 빌게. 신디는···. 신디는 풀어주세요.
그리 말하고 넙죽 고개를 숙이는 라그나시앙.
뭐야.
갑자기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잖아.
“둘 다 사로잡으면 그만인데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지?”
-윽, 으윽···.
“기뻐해라. 너와 신디라는 아이는 영원히 함께다.”
-윽···. 알···겠어···. 미안해 신디. 그래도 앞으로는 영원히 함께 있자.
그리 말하고 라그나시앙은 눈을 감고 목을 내밀었다.
휙.
가벼운 검격 한 번에 녀석이 신화포식자 안으로 들어왔다.
콰직. 콰지지직.
이 성채를 유지하던 힘의 근원이 사라지고, 유령 저택이 평범한 낡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직후. 아일라에게서 메세지가 들어왔다.
-울프람! 울프람 말대로 영혼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골렘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재미있는 걸 만들었다는 건···. 골렘 안에 들어갈 영혼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 500체 더 만들게요! 사용법은 등 뒤에 있는 슬롯에 신화포식자를 밀어넣고 영혼을 추출하면 돼요!
“잘 했다. 지속성은?”
-영혼은 빠져나갈 수 없고, 골렘은 무리해서 쓰지 않으면 천 년은 유지할 수 있어요!
더 좋은 이야기네.
아 맞다.
아일라에게 부탁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일라. 딱 두 체만 외관과 그 품질에 공을 들여 줄 수 있겠나?
-얼마든지 가능해요! 어떻게 할까요?
-하나는 붉은 머리의 여 마법사. 다른 하나는 검은 머리의 메이드의 디자인으로 부탁하마.
-네!
영생을 바라는 마법사.
그러면 유령이 아니라 골렘이어도 상관 없겠지.
그렇게 함께 있고 싶으면, 천 년이든 만 년이든 같이 있게 해주지.
내 아래에서 무급으로 천 년 일한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