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24)
824. 일자전승
돈이 쌓인다.
사실 여기 오기 전 현대 한국에서는 요식업은 원자재 대비 얼마정도의 이득을 봐야 경쟁력이 생기고···. 같은 공식이 있었다. 즉 재료값에 비해 완성품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는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그건 음식집이 넘쳐나던 현대 한국 이야기고 이 제프린. 나아가서 대륙은 다르다.
모자라다. 한없이 모자라다.
체인점 개념도 없고, 그 날 공급받은 재료로 대충 만들어서 파는 요식업계다. 오늘 고기가 안 들어왔으니 감자 스튜를 먹으렴이 말이야?
물론 제프린은 매일 전 대륙에서 들어오는 물자로 풍족하지만, 그럼에도 고정적으로 보급되는 것은 까맣기만 한 흑빵 뿐이다.
미식가가 살아남기 힘든 이 세계.
그 곳에 떨어진 나. 울프람 폰 슈퍼영진.
유령과 언데드, 그리고 골렘.
누가 보면 악의 사단이라도 꾸미는 줄 알겠지만 훌륭한 배달원들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들고 묵혀둔 물자들을 비싼 값에 팔기 시작했다. 재고 소진도 되고 좋네. 슬슬 창고가 터져나갈 지경이었거든.
아무튼.
그렇게 쌓인 돈의 탑.
그 필티아마저도 이렇게 금화를 쌓아서 어디다 쓰려고? 라고 말 할 정도로 많은 양의 돈. 돈. 그리고 또 돈.
전에 나의 출금을 거절한 중앙은행 직원은 이제 맨발로 나올 정도로 내게 깍듯하다.
물론.
내 주위에서 돈이라면 1위는 필티아고 2위는 레지나고 3위가 아일라. 나는 저 어드메쯤 쳐박혀 있을 순위지만, 요식업. 유통업과 함께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상품 제작. 그리고 명품 사업과 동시에 사람들의 눈물과 시름을 못 보고 지나치는 사회 주도층이라는 이미지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은 가지고 있으면 고이는 법.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고, 돈에 한이 맺혔다 한들 엉덩이 아래에 돈을 깔아놓고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니 투자다.
투자처를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투자할 곳이 애매하군.”
“그렇군요. 하긴 그럴만도 하네요.”
내 옆에서 슈크림을 오물오물 먹던 아일라는 내 고민에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나?”
“네. 이 커스터드 슈크림이랑···. 음. 여기 생크림도 좋은데, 저는 이 딸기 크림이 제일 괜찮은 것 같아요.”
“그렇군.”
최근 동부 사브레 지방의 목축업자들과도 이야기를 끝내 신선한 우유를 받아올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유제품 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그 첫 간식인 달콤 슈크림 세트를 아일라에게 시식을 맡겼고, 아일라는 전부 한개씩 먹어보고는 평가를 내렸다.
“음. 다 좋네요. 무척 좋아요. 과일 크림이 이렇게 맛있으면 복숭아 크림이나···. 다른 과일들도 섞어보면 괜찮으려나?”
“내가 먹으라고 말해놓고 그렇지만, 꽤 많이 먹지 않았나. 괜찮나?”
“네? 괜찮답니다. 제가 살이 찔리가 없잖아요?”
그 자신감이 부럽다.
아 내가 부럽다는게 아니라, 부러워서 피눈물을 흘릴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
아일라의 외향적 성격. 조금도 참지 못하고 먼저 나서서 움직이는 습성.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광산에서 뛰놀면서 다져진 신체를 생각하면 저 신진대사량은 거의 프로 운동선수에 근접할테니, 살찌는 걸 걱정하는것도 이상한가.
아니 오히려 너무 적게 먹고 사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군. 아무튼 다음 투자처 말이다만···.”
“그렇다면 제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답니다!”
“좋은 생각?”
“네. 안전하고,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고, 투자할 가치가 있는 땅이죠!”
“흠. 어디지?”
“바로 천혜의 고도에요. 거기를 완전히 개발해버리죠?”
“지금도 소규모 채집은 무한하게 돌아가고 있다만···. 즉. 제프린 밖을 재개발하자···. 라는 건가.”
“네! 전에 말했던 단풍숲 모엔하임도 그렇고요!”
그렇지. 거기도 있었다. 천혜의 고도 이상의 품질을 내놓은 필드.
“최고급 식자재를 알아서 내뱉는 공간의 독점. 그리고 개발.”
“그리고 완벽한 독점에서 나오는 따라올 수 없는 품질 상승까지도 말이죠.”
우리가 선 발견했으니 이 개발에 대해서는 이브도 뭐라 할 수 없을거다.
천혜의 고도는 바다쪽 중심으로 개발하면 강한 몬스터와 조우할 일도 없고, 해상 몬스터는 아리엘이 다 막아 줄거고···.
“실로 좋은 안이구나. 아일라.”
“후후후! 그럼요!”
“평소에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건은 더더욱 네게 포상을 주고 싶구나. 바라는게 있나?”
“바라는 거···. 바라는···.”
아일라는 턱에 검지를 대고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듯. 방긋 웃고는 양 팔을 벌렸다.
그리고 눈을 감는 녀석.
뭐지.
뭘 해달라는 거지.
“아일라?”
“자! 어서!”
“······.”
여전히 눈을 감고 팔만 벌리고 있는 녀석.
뭘 하고 싶은지, 뭘 바라는지 이제야 알 거 같다.
팔을 벌리고 있는 녀석을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이게 맞나?”
“정답이에요! 무척 훌륭한 정답이랍니다.”
그래. 뭐.
이게 어떻게 포상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
아무튼 우리는 개발에 나서기로 했고, 아일라와 함께 개발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브에게선 우리가 먼저 발견한 땅에 깃발을 꽂겠다고 하니 ‘뭐 알아서 하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신 세수는 확실히 걷을거라고 하니 윈-윈인 관계.
아무튼.
골렘 군단들과 함께 천혜의 고도를 순찰하거나 모엔하임의 숲을 돌아다니거나, 그 외에도 투자 거리를 한참 찾아다니는 와중. 밀푀유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배님. 저기 선배님···.
-음. 밀푀유. 무슨 일이지.
-저 그게 곤란한 일이 생겨서···. 혹시 잠시 시간 되시나요?
-메신저라면 가능하다만, 직접 만나기는 힘들다.
-아···.
메세지창 넘어서로도 급박함이 느껴지는 밀푀유.
당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적혀오는 녀석의 고민거리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저기 그게 사실 내일 다과회에 초대되었는데요. 아니스 선배님께서 초대하신거라, 어, 엄청나게 큰 파벌이라···.
-명예를 알고 기품을 중시하는 파벌이라 듣긴 했다.
-네, 네. 그 곳에서 저희 편의점의 상품을 구매하신 분들이 꽤 많아서···. 그러니까 제가 가서 다음 신상품 소개와 기존 상품의 질의응답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감히 어떻게···.
감히 어떻게. 라.
무엇을 고민하는지는 대충 알겠다.
-밀푀유. 너는 내 편의점의 첫 사장이고, 이 세상에 몇 없는 내가 신뢰하는 녀석이다. 전권을 맡기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네, 네?
-너를 신뢰하고 있다.
내 말에 밀푀유의 채팅이 굳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불이 나도 학생에게 소화기를 건네주며 ‘너의 용기를 믿는단다.’ 라고 하는 모 마법학교 교장같은 무책임한 말이지만, 밀푀유도 슬슬 전면에 얼굴을 내밀때가 되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밀푀유는 뭐.
그렇게 소화기를 쥐어준다 한들 잘 해낼 녀석이기도 하고 말이야.
***
대화가 끝나고, 밀푀유는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울프람의 기대가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나 같은게 뭐라고, 선배님은 저렇게 믿어주시는 걸까.
지능은 수치로 잴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서 매일 힘들게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게끔 노력하지만···. 이번 항공 물류나 개인 특송 사업 등은 도저히 밀푀유가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미래에서 완성된 지도를 보고 온 것 같은 천재성.
그렇기에 밀푀유는 그 지도의 세세한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권을 맡긴다는 것은 그림을 처음부터 그려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울프람 선배님의 특성상 맡긴다고 하셨으면 정말 전부 다 맡긴다는 거고, 그건 편의점의 물자를 얼마든지 써도 된다는 의미.
결과값만 좋으면 코스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이 선배님의 방식이니까.
그렇다면···.
밀푀유는 내일 다과회에 참석할 이들의 명단을 받아들었다.
“저기.”
-네. 아가씨. 말씀하세요.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것 전부 하나하나 포장 준비해주세요. 최우선 업무입니다. 오늘 저녁까지는 제 앞에 와 있어야 해요.”
-이건 시제품 아닌가요?
“시제품이니까 의미가 있죠.”
-네. 알겠습니다.
울프람이 물류 창고 소통역으로 넘겨준 반시에게 지시하자 그녀는 시급히 하늘을 날아 떠났다.
“저를 전면으로 내보내신다는 것은, 화려한 데뷔를 바라신다는 의미겠죠. 선배님.”
곧 울프람은 졸업한다.
이제 그 사실에 두렵거나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 제일 불안한 것은, 이브의 치세 이후. 그녀의 뒤를 이어 학생회장이 될 밀푀유 폰 사브레의 치세가, 앞선 두 세대보다 확연하게 밀리고···. 그들이 후계자를 잘못 낙점했다는 평가를 듣는 것.
그렇다면 밀푀유는 어떤 학생회를 표방해야 할까.
“나는 뒷배만 크고 능력이 없다는 낙인이 찍힐 확률이 너무 높아. 그냥 아무것도 안해도 된 학생회라는 비웃음은 필연적으로 살 거야. 그렇다면···. 방법은 쉬워.”
밀푀유는 한없이 무언가를 곱씹었다.
***
다음 날.
다과회가 열리는 회장.
제프린 제 2 마법학부 고서관의 8층.
거대한 고서관이지만 무려 300년간의 역사가 적힌 고서들 아닌가. 그리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이 곳에 있는 모든 책의 제작 출판에는 아니스의 가문이 관여했고, 이 안에 있는 이들은 다들 출판업계의 거두다.
황색 언론과는 다른 진짜 정론지를 취급하는 그녀들. 본디 역사를 적어 내려간다는 것은 그만큼 숭고하고 고귀한 업무기에, 그녀들 전원이 명예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다과회가 고서관에서 열린다는 것 자체가 이들의 조금 빈곤한 현실을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한 없이 올라간 어깨만큼은 내려오지 않는 이들.
밀푀유는 아니스 옆에 딱 붙어서서 이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폈다.
외모 묘사에 적혀있는 대로, 누가 어느 집 영양인지 전부 떠올렸다.
“사서장. 잘 지내셨나요?”
“스콜라 사서. 오래간만이에요. 네. 잘 지냈답니다.”
“오늘은 정말 보기 드문 손님이 계시네요. 사서장의 손님인가요?”
“네. 그렇답니다. 밀푀유 폰 사브레. 최근 그 명예 높은 구호를 하셨던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께서 믿고 신뢰하는 후배님이시며···. 저희에게 매일 아침 행복을 선물해주시는 분이랍니다.”
“어머, 그렇다는 건···.”
스콜라라고 불린 그녀는 밀푀유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안녕하세요.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의 전권 대리인. 밀푀유 폰 사브레라고 합니다.”
“환영해요. 명예로운 저희 다과회에 참석해주셔서 고마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으로는 자신을 판단하고 파악하고 있다.
명예가 아니라 돈과 권력. 그리고 최근 일련의 유명세로 다과회에 참석한 이라는 판단.
거기에 오늘은 상품 PPL이나 하러 온 잡상인 정도로 취급하는 눈.
밀푀유는 순식간에 이들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판단했다.
자.
평소라면 높은 귀족들 사이에서 당황했을 밀푀유지만, 오늘은 결코 실패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황할 이유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울프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리 생각하니 머리가 깨끗해졌다.
“오늘 이 명예로운 다과회에, 진짜 명예를 아시는 여러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럼 시작에 앞서 제가 여러분들께 감히 선물 하나를 드려도 될까요.”
그리 말하자 이들의 눈이 빛난다.
‘역시나 상인인가.’ ‘돈밖에 모르는 천 것’ ‘돈으로 명예는 살 수 없지.’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선물은 궁금한 모양.
그녀들은 저마다 고급지고 세로로 조금 긴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밀푀유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저마다 상자를 열었고,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펜···.”
“그렇군요. 제조사도, 제조년월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저희가 아는 펜은 아니네요.”
그녀들은 흥이 식은 듯 조금 차가워진 눈으로 펜과 밀푀유를 번갈아 바라봤다.
“여러분들께서는 긍지 높은 사관. 그리고 이 고서관의 사서. 여러분들께서 쓰시는 글이 이 대륙의 역사를 기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으, 으흠. 그렇죠.”
갑작스러운 띄워주기에 그녀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그 풀린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데에는 밀푀유의 다음 말이면 충분했다.
“허나 필기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소모하고, 때로는 글씨를 지워야 하며 종이 한 장을 통째로 날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펜은 자동 필기 기능이 있는, 저희 편의점의 시제품입니다.”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눈 앞에 놓여진 이 시제품이, 공짜로 건넨 이 선물이 얼마나 큰 값어치를 가졌는지 이제야 깨달은 거다.
다시 돌아와서.
밀푀유는 자신이 어떤 취급을 당할지 알고, 그리고 울프람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떠올렸다.
상대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마라.
그저 우리가 믿는 길을 우직하게 나아가라. 라고 말이다.
진보적이고 진취적이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어 필요한 이들의 심장을 움켜쥐어 놓지 말라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