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3)
울프람이 아니라 이영진의 입장에서 에밀리 하이멜로디는 굉장히 뜻 깊은 히로인이었다.
말해두지만 메인히로인은 아니다. 서브 히로인. 그 중에서도 찐 서브다.
2학년때 얘는 마법학부를 고르지만, 기사학부에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하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서브맵 요정의 성지에 사는 엘피라네랑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다.
걔는 이브 루트를 탄 뒤에 중간에 꺾어야 하지만 얘는 언제든지 공략 루트가 열려있고, 진입 조건도 쉽다.
특정 스킬 【요리】를 찍는게 바로 이 에밀리 하이멜로디의 루트를 여는 방법이다.
간단하게, 요리를 파티원에게 잔뜩 선물해서 교내 평판작을 하다 보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서 말을 걸어온다.
처음에는 “우리 요리에 대해 대화하지 않을래?” 라는 식으로 말을 걸어온다.
거기에서 에밀리 루트를 달리기 시작하면, 갑자기 다른 스토리가 멈추고, 오직 에밀리 루트만 펼쳐진다.
난이도도, 지금까지 전개한 스토리도 관계 없이, 에밀리와 켈터스 두 사람만의 세계로 날아가고 월드도 그렇게 맞춰서 바뀐다.
파티 육성 배틀 아카데미 RPG인 D/Z SAGA라는 작품이 열혈 요리 소년만화가 된다.
심사위원이 우주로 날아가기도 하고,
검은 깃발의 어둠의 요리조직과 맞서기도 하고,
전설의 1티어 7대 요리도구를 모으기도 하고,
최연소 황실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
그 싸움의 끝에, 하이멜로디 왕가를 요리로 설득시켜 자유를 찾은 에밀리는 켈터스와 연인이 되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전 세계를 요리로 행복하게 해준다.
솔직히.
솔직히 말하자.
무슨 약을 먹으면 이런 스토리가 나오지?
물론 각 히로인들마다 테이스트가 너무 달라서 따라가기 힘든게 이 D/Z SAGA의 큰 매력이기도 하긴 하지만 말이야.
뭐 아무튼 에밀리는 그런 히로인이고, 내가 엔딩 본 카운트는 그 합이 1,631회.
너무 자주 봤기 때문에 얘가 진짜 뒤끝없이 착하고 순수한 애라는 것 또한 안다.
그러니까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만···.
“요리를 가르쳐 주세요. 스승님.”
“···지금 몇 시라고 생각하지?”
“새벽 세 시 반입니다. 요리를 가르쳐 주세요. 스승님.”
“······.”
세시 반인데 그게 어쨌냐고 나를 본다.
“요리를 가르쳐주세요. 스승님.”
“돌아가라.”
그렇구나.
게임에서는 똑 부러지고 올곧은 애가 현실이 되면 상당히 귀찮구나.
좋은걸 배웠다.
***
에밀리는 정확하게 여섯시에 다시 찾아왔다.
요리인 옷을 입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기본이 되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군.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스승님.”
그리 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 나는 에밀리 하이멜로디 엔딩을 1,631회 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뉴비 시절.
지금 당장 눈앞에서 생생하게 모든 게 떠오르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어디보자.
“우선 에밀리 하이멜로디. 나는 너에게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말씀하세요. 스승님.”
아무튼 에밀리와 친밀도를 올려놓으면 엄청나게 ‘괜찮은’ 이익이 생긴다.
우선은 그걸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가자.
그걸 위해서 사제 관계를 받아들인 거기도 하고 말이야.
나도 가르치면, 그만큼 이득을 봐야지. 수업료 대신이다.
“하이멜로디. 우선 단언하마. 엄밀히 말해 나의 요리 스킬은 너보다 낮다.”
“네?”
“내 요리 레벨은 2. 너는 몇이지?”
“3입니다.”
“역시 네가 높다.”
“그렇군요. 제가 높네요.”
“허나, 단언하마. 내 발상은 이 제프린 어디를 찾아봐도 따라올 이가 없다.”
“아. 그 말씀인 즉슨.”
“즉 나는 ‘요리’를 못 할 뿐 네가 바라는 ‘착안점’에 대한 기대는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신 분이군요. 역시 제 스승에 어울리세요.”
에밀리의 몸 주위의 기운이 푸른색에서 아주 살짝 분홍빛을 띈다.
역시.
이 에밀리 하이멜로디의 친밀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몇 개 의 ‘절대적 조건’이 지켜져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에밀리 하이멜로디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그렇기에 나는 네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고, 조언하고, 착안점에 대한 새로운 제시를 할 것이다. 요리 기교는 네가 높다.”
“예. 그것으로 충분해요. 스승님.”
한 번 더 분홍빛을 띄고.
“좋다. 나는 너에게 가장 솔직하고 확실한 대답만을 할 것이며, 허튼 조언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체득하는 것은 너의 몫이다.”
“네. 스승님. 정말 감사해요. 그런 분이 필요했어요.”
다시 한 번 기운이 붉게 물든다.
어디보자.
‘내게 어울려.’
‘그것으로 충분해’
‘정말 고마워’
이 대사가 에밀리가 나한테 세 번 친밀도가 올라갔다는 표기였다.
아마 네 번 하면 특전 플래그가 꽂힌다.
“그럼 제 요리를 드시고, 평가해주시겠어요?”
“어렵지 않지.”
우선 에밀리에게 요리를 시킨다.
“스테이크입니다.”
그 다음 나온 요리는 요리 레벨 3 수준.
“음. 시식하도록 하지.”
거기서 맛을 보면 그럼 반드시 ‘뭔가 부족하다.’ 라는 메세지가 뜬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한다.’ ‘얼버무리며 칭찬한다. 라는 선택지가 뜬다.
그리고 거기서···.
“별로군. 완전 부족하다.”
“그런가요.”
“우선 남은 육즙으로 만든 소스는 맛이 너무 약해. 이래서야 스테이크라기보단 생고기 구이에 가깝군. 불 조절은 괜찮았다. 스테이크를 만든다면 조금 더 진하게 만들도록.”
“···아. 정말 정확한 지적이세요. 하지만···.”
완전히 여기서 팩트로 때려버려야 한다.
진지하게 생각에 잠겨 아무 말도 못 하는 에밀리 하이멜로디를 상대로 자세를 다시하고 물음을 던진다.
“뭔가 고민이 있나?”
“······그것이, 제 태생을 아시나요?”
들어왔다.
제 태생을 아시나요.
“하이멜로디 가문의 왕녀. 성적은 좋지만, 요리인을 꿈꾸는 괴짜.”
“네. 맞는 말씀이세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 뒤로 에밀리의 구구절절 설명이 시작되고,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면 된다.
음. 그렇군. 맞다. 그랬었군. 허나 너는···.
뭐 간단하게 말하면, 에밀리 하이멜로디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이멜로디 왕가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삶이 왕가라는 명패에 묻히는 삶을 증오했다.
제프린에 유학을 왔으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요리는 황족이 만들던 왕족이 만들던 맛없는 건 맛없는 거니까, 자신은 왕가의 명패를 넘어 설 정도의 요리를 만들고 싶다.
뭐 대충 그렇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왜 명패를 증오하는가부터 시작해서 조금 어둡긴 한데, 얘는 그냥 그런 애다.
아무튼, 하이멜로디 왕가는 에밀리가 요리인을 노린다는 것을 알고, 요리 관련 지원은 완전히 끊어버렸다.
“향신료는 비싸서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고품질 향신료는 구할 수 없었고, 에밀리의 요리는 지지부진한 상황. 에밀리는 어떻게든 탈출구를 얻으려고 한다. 가 얘 루트의 기본 서사다.
그리고 여기서 플래그를 완전히 꽂으면, 바로 특전이 열린다.
“아직 무르구나, 너는 네 목표를 위해 무엇을 걸었지?”
“제 삶 전부입니다.”
“그렇군. 허나 향신료는 왕가에서 주는 돈으로만 구매하려고 하는가? 그게 네 삶 전부라면, 이미 네 삶은 왕가에 종속되어 있는 것과 진배 없다.”
“············아.”
“삶을 전부 걸었다면 스스로의 발로 걸어라. 에밀리 하이멜로디. 너는 이 학원구 밖에서 무언가를 구할 노력을 해 보았는가?”
“아, 아니요. 그런 적은···. 위험해서.”
“그런가. 지금의 너는 새장 밖을 부러워하며 실제로 모이를 얻어먹고 있는 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군.”
“윽, 그,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따라와라.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여기까지 스토리가 진행됐다면, 게임이었다면 다음과 같은 멘트가 뜬다.
【서브 히로인 에밀리 하이멜로디의 특전 조건이 채워졌습니다.】
【특전을 지급합니다!】
【새로운 필드가 오픈됩니다!】
그리고 눈 앞에는 결의를 담은 에밀리 하이멜로디가 나를 보며 이렇게 대사를 치겠지.
“따라가겠습니다. 새장 밖으로.”
좋아.
진짜 열렸다.
***
에밀리 하이멜로디는 경악했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이 남자의 말은 마치 자신의 마음 속 모든 것을 읽고 있는 듯 했다.
그의 말들은 너무나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팠다.
아프지 않은 따듯한 고통.
마치 쓸모없는 겉 껍질만 도려내는 듯 한 날카로움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렸다.
그렇구나.
돈이 없다고 향신료를 못 구한다면, 자신은 결국 그 돈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
하이멜로디의 이름이 싫다면, 하이멜로디가 주는 모든 지원조차 싫어야 한다.
자신의 어중간한 이중성에 화가 난다.
그리고, 그걸 오늘 처음 본 남자가 벗겨냈다는 것에 당황했다.
“에밀리 하이멜로디.”
“···네, 네.”
처음으로 말을 떨었다.
어째서? 상대가 황족이라?
아니다. 저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자신을 떨리게 만든거다.
그저, 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그저 요리를 배우려고 했을 뿐인데, 열 번도 채 되지 않는 대화만으로, 가슴 속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지금 제프린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신진 크루의 대장인가.
아니, 솔직히 모르겠다.
이 정도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이다. 보자마자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멋대로 들어와서, 강제로 휘젓고, 끌고 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모일 것이다.
“새장 밖으로 가고 싶다면, 따라와라.”
“···네. 스승님.”
마치 자신의 속을 수 천 번은 들여다본 듯 그 행동거지. 망설임 없는 폭언에 신기하게도 가슴이 채워졌다.
***
원작 D/Z SAGA는 굉장히 히로인 편의주의인 게임이었다.
예를 들어 이브 루트를 타면 켈터스도 【성광창】을 배운다. 레지나 루트를 타면 모든 상계를 지배한 레지나의 【대마도상인의 축복】이라는 스킬을 배운다. 모든 상점 아이템의 가격이 절반이 되는 스킬이다.
즉 자기가 어떤 루트를 택하느냐, 어떤 히로인의 엔딩을 보느냐에 따라 지급되는 특전스킬이 다르다. 이졸데 루트를 타면 【칠황마검】을 배운다거나, 아무튼 히로인이 엄청 중요하다.
그렇다면 파트라슈가 끄는 내가 탄 리어카 옆에서 세 발자국 물러서서 차분하게 걷고 있는 이 에밀리 하이멜로디의 특전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신규 필드 오픈】이다.
원래 이 신규 필드가 얘 친밀도 좀 올렸다고 바로 열리는건 아니다.
여기는 어떻게 보면 스토리의 핵심이 되는 필드거든.
하이멜로디 왕가의 이름과 에밀리라는 개인 사이에서 고민한다.
평민인 켈터스와의 우정을 애정으로 키워도 되는지 고민하고, 켈터스와 다투고, 그러면서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 사이에 비오는 거리에서 서로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하고 따듯한 스프를 끓여서 역시 두 사람의 추억과 우정과 애정과 인연은 전부 요리에 있다고 실감하고, 검은 깃발의 암흑 요리계를 이기고, 뭐 그러면서 열리는 필드다.
그런데 그걸 다 하기엔 너무 길어. 아니 진짜 길다고.
거기에 그 필드 위치가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당연한 거 아냐?
혼자서 가면 되지 않냐고?
아니 그게 또 안 된다.
이 필드에 들어가려면 요리에 그 혼을 바칠 각오가 된 이가 필요하다.
이것도 초대 황제의 안배인가 뭔가 해서, 그냥 가려고 하면 맵이 안 열린다.
그러니까 빠른 친밀도, 빠른 질문, 빠른 대답, 빠른 개방을 하려면 저게 최고로 빠른 테크!
내 공략에 틀림은 없다!
“···여기는, 잠든산맥 아닌가요?”
“음. 여기서 우측으로 꺾는다.”
그리고 슬쩍 우측으로 돌면, 어머나 놀랍게도 요정의 낙원이 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포털이 웅웅거린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검의 길도, 마법의 길도 아닌 길을 걷는 자여. 그대는 무엇을 바라나?】
“저에게 하는 질문인가요? 저, 저는”
에밀리 하이멜로디는 나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여기까지 와서 청춘 우정 열혈 요리 소년만화를 할 생각은 없다.
“솔직하게 답해도 된다. 너는 뭘 하고 싶지 하이멜로디. 그 마음을 입에 담아라.”
“···선배님. 감사합니다.”
그제야. 에밀리 하이멜로디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질문에 답했다.
“저는 요리의 길. 스스로의 실력만을 평가받는, 저만의 길을 걷고 싶어요.”
【좋다. 그대의 긍지. 그대의 각오 훌륭하게 보았다. 검과 마법이 배움의 전부는 아니지. 나의 안배는 여기서 그대와, 그대의 벗들을 위해 열릴 것이다.】
그 대단한 초대 황제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을 슥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 나오는 것은···.
“어, 어어···.”
“음. 역시 그렇군.”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화이트 래빗부터, 드래고 혼 사우르스까지. 전부 식재료 뿐.
열린 나무열매는 도토리부터 수박까지 전부 식용 뿐.
근처에 버려져 있는 것은 정제된 소금부터 후추까지 전부 향신료 뿐.
“여 여기는···.”
“황가의 문헌에서 읽었지. 초대 황제께서는 검과 마법이 아니라, 요리의 길을 걷는 이를 위한 안배도 해두셨다고 한다.”
“···그, 그렇다면.”
“기뻐해라. 지금 너는 새장의 문을 열었다.”
“···아, 아아···.”
에밀리가 나를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그렇게 기쁘냐?
나도 기쁘다.
여긴 조금 위험하긴 해도, 파티원만 대동하면 꽤 괜찮게 식재를 파밍 할 수 있거든.
우선 이 맵을 열어놓는 게 진행이 편해서 어쩌다보니 네 엔딩도 천 번 넘게 봤다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