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32)
832. 악당의 솔루션
그렇게 스텔라를 양도받았다.
스텔라 샤도우.
이 화려하기 그지 없는 암살자 소녀를 그대로 돌돌 묶어 편의점으로.
오늘은 편의점에 다들 딱히 들릴 예정이 없다고 하니, 사무실 안쪽에 눕혀놓고 의자에 앉아서 녀석을 바라봤다.
화려한 암살자. 양지로 나가고 싶은 암살자라.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런 애가 원작에도 있었더라면 과감하게 파티에 영입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폐기된 히로인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얘 루트를 공략하면 루디카와 싸우고, 그 결과 승리하면 암살업이 양지로 나가고, 실패하면 야망을 접고 같이 여행이나 하는 이야기라던가.
하지만.
루디카 핫산 샤도우라는 절대자 캐릭터가 패배한다는 건 말이 안되기 때문에 결국 폐기되었다거나. 음. 이런 상상의 회로를 돌리는 것도 게임 본연의 재미지.
녀석의 루트가 있었다면 어떤 스토리였을까.
정말 양산형일까. 폐기된 설정일까. 그런 것들을 메모하고 있자니 녀석이 일어났다.
손목을 묶어놨으니 그리 쉽게 움직일 수는 없겠지.
“으음···.”
“일어났나.”
“누구···?”
“방금 전에 그렇게 나를 견제해놓고는 얼굴을 까먹었나.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묶였어?! 큭···. 【핫산류 : 비의 : 나비의 춤】”
스텔라는 순식간에 손목으로 흐르는 피를 줄여 손목을 얇게 만든 후 매듭을 풀었다.
샤도우 가문의 암살자들은 움직임이 봉쇄되었을 때 관절을 자유롭게 빼거나 혈류를 조절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저것도 어마어마하게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다.
“흠. 재미있는 재주구나. 그래서 다음은?”
“【핫산류 : 살보 : 최종오의 : 멸화란】”
“호오. 난무계 단검술인가. 꽤 재밌는 기술이다. 어디.”
멸화란.
솔직히 말해서 꽤 무서운 기술이다. 난무계인데 모든 공격이 치명타가 된다.
반대로 말하면 반드시 급소만을 향해 오는 기술.
녀석도 진짜 죽일 생각은 없는지 검지와 중지를 합쳐서 이쪽을 공격해 왔고 메모장을 덮고 그대로 막아냈다. 목. 심장. 폐. 간. 신장. 뇌. 미간. 깔끔한 연격. 마지막으로 정수리···. 인 척 하면서 고간을 노린다. 인간의 모든 약점을 외우고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기술.
하지만 어째 명중률이 좀 허접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명중률이 어째 떨어지는 듯 한···.
“윽···. 으읏···.”
“왜 손이 떨리고 있지. 마치 수전증이라도 겪은 듯 하구나.”
“시끄럽네요···. 그, 나비의 춤을 쓰면서 혈류 조절을 실수해서 손이 조금 저린 것뿐이랍니다.”
나비의 춤과 멸화란을 쓸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혈류 조절을 실수해서 손에 쥐가 났다고?
진짜 어떤 성장 테크를 탄 거지?
“지금 황손 상대로 필살 오의를 썼다는 건, 나를 죽일 의도가 있었다. 라고 봐도 되겠나?”
“그쪽이 먼저 유괴했잖아요? 저는 정당방위라고요. 제국법에 의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권은 지켜진다고 적혀 있어요.”
이런 식으로 반항하는 건 또 처음이네.
역시 흥미로운 녀석이다.
무엇보다. 방금 전의 착하고 귀여운 척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병아리마냥 삐약거리고 있다.
이것도 재밌네.
“한 가지 정정하지. 나는 너를 유괴한 게 아니다.”
“네?”
“루디카가 너를 팔았다. 내게 네 간호를 부탁하더군. 즉 너는 지금 간병인을 공격한 것이다. 암살자를 떠나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이라 생각하지 않나?”
“거, 짓말···. 거짓말 하지 마세요.”
“아니. 진짜다. 나중에 루디카에게 확인해보도록.”
녀석의 나라 잃은 표정을 잠깐 바라봤다.
흠.
이쪽에 명백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말이야.
조금 놀려주고 싶네.
“뭐. 이번 공격은 불문에 부치마.”
“어, 어째서요? 저는 멸화란까지 썼는데. 저에게 빚을 지울 생각인가요?”
“네 멸화란이 너무 약해서, 나는 책 한 권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건 공격조차 아니다. 나약하구나.”
“······.”
내가 메모장을 흔들자 녀석의 눈도 같이 떨렸다.
그리고는 이내, 뚝. 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해오고, 적대해오고, 끝내 울기까지 하다니.
이건 감점 요인이군 그래.
“울어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울고 싶다면 바꾸고 나서 울도록.”
“알,고 있어요.”
그리 말하고 녀석은 소매로 눈을 박박 닦고는 다시 타오르는 눈길로 이쪽을 바라봤다.
열의는 아직 살아있군.
조금만 더 울었어도 내쫓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럼 이야기를 해볼까. 자. 제대로 들려주도록.”
“뭐, 뭘요?”
“샤도우 가문을 어떻게 양지로 끌어 올릴 것인지 말이다. 무척이나 궁금하군. 생각해 둔 게 있겠지?”
“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믿을 수 없다는 걸 본 듯 이쪽을 응시했다.
아니.
그런 재미있는 기획이 있으면 같이 좀 하자고.
***
처음에는 이쪽을 적대하고, 이후에는 두려워하던 스텔라는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한 번 더 의심했다.
“왜 그게 듣고 싶으시죠?”
“그야. 나도 일정 부분 공감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샤도우는 너무나 깊은 어둠속에 잠겨 있다. 그들은 보답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 거짓말···. 황실은 샤도우 가문을 그저 도구로 쓸 뿐이잖아요. 매번 피를 보는 일만 시키면서, 그저 돈 얼마. 지위 조금만으로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동의한다. 헌데 의뢰인 목록에 이 울프람의 이름은 있었나?”
“그, 그건···. 없는데요.”
“그러면 내 이야기가 아니군.”
“그, 그렇긴 한데요···.”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나.”
“네. 울프람 황자님은···. 가주님하고도 친하게 지내시니까 믿고 말씀드릴게요.”
“흠. 그 전에.”
“네?”
“습격하고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죄해라.”
“진짜요···?”
“그 정도로 싸게 넘어가 주는 거다. 알고 있겠지? 루디카에게 이 건을 이야기하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멋대로 습격해 죄송합니다. 제 목 하나로 용서해주세요.”
스텔라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라고는 안 했는데.
“그럼 어디. 이야기 해보도록. 대체 어떻게 암살자를 양지로 올릴 생각인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네···. 그러니까요.”
그 뒤로 시작된 스텔라의 이야기.
발단은 동기의 부상이었다.
【단검】 샤도우 가문의 암살 의뢰 성공률은 100%다.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실패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하면, 실패하면 또 다른 암살자를 보내 성공할 때까지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문 전체가 어마어마하게 유능하지만 한 번 실패하는 순간 대상의 호위는 더욱 든든해지고, 암살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가기에 샤도우 가문의 피해도 적잖다고 한다.
루디카가 매번 암살 의뢰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그런 뒷수습. 가족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게, 그래서 제 동기가 다쳤거든요. 두 번 다시 단검을 들 수 없게 되어서···. 하지만 보상은 안 나오고···. 그게 전부 저희가 도구처럼 일만 하기 때문이다. 저희도 의사 표명을 하고 대외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면 막 대하진 않을거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리 말하고 우물쭈물거리는 스텔라.
“왜 그렇게 긴장하지? 루디카 앞에서는 자신 넘칠 정도로 떠들지 않았나.”
“막상 타인한테 말하려니까, 부족한 게 많지 않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걸 말로 옮기는 건 꽤 어렵네요.”
“어렵다고 했지만, 나는 꽤 마음에 드는 발상이다. 나쁘지 않구나.”
“저, 정말이신가요?”
“하지만 부족하다. 많이 부족해.”
내 말에 녀석의 표정이 콰광! 하고 벼락 맞은 것 마냥 바뀌었다.
“며, 몇 년을 고심한 건데···. 부족하다니, 어디가요···?”
“우선. 가문 전체의 인식을 바꾼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게 향후 몇 년, 몇 십년에 걸쳐서 해야 할 대 사업이지? 거기에 수단도 애매하다. 살인 예고장을 보내거나, 암살에 표식을 하거나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샤도우 가문의 양지화 보다는, 수수께끼의 종교 숭배로 보일 확률이 높지 않겠나.”
“앗, 아앗···. 그건 그렇···. 그렇구나···.”
스텔라는 양 손으로 땅을 짚고, 저 이제야 깨달았어요. 라는 표현을 온 몸으로 하기 시작했다.
거 참 외향적인 녀석이로고.
“허나 걱정하지 마라. 더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네, 네···? 어떤 방법이죠?”
“우선 한 명. 대표 인사를 정하고, 그 녀석이 혼자 양지로 가서 샤도우 전부를 대변하면 된다.”
“네?”
요컨데 얼굴 마담이다.
실세는 어찌 되었던, 한 명이 지금부터 샤도우 가문은 사교 활동도 하고, 양지로도 나가고, 충분한 의사 표명도 하며, 겸사겸사 외교 창구가 되는 것이다.
가문 전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개인이 가문 전체를 대표해 양지로 나가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한결 더 쉬워지겠지.
“그,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내 말을 들은 스텔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래. 사교계에 데뷔하고, 모두에게 두렵지만 동시에 다가가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요컨데 카리스마 있는 악역 영애가 되면 모든 게 해결 된다.”
“와아···. 그러면, 가주님이 그런 악역 영애가 되는 건가요? 보고 싶다.”
“그럴리가 없잖나.”
“네? 하지만···. 가주님이 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루디카에게 가서 오늘부터 드레스 입고 사교계에 진출해서 악역 영애가 되라고 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
“나는 네 랑영이나 멸화란은 막을 수 있어도, 루디카의 최종비의는 막을 자신이 없다. 너는 있나?”
“아뇨···.”
스텔라는 다시 절망해서 콰광! 소리를 내며 땅을 짚었다.
입으로 콰광 소리를 내는 녀석은 또 오랜만에 보네.
“하지만 다른 녀석이 있지 않나.”
“네, 네? 다른 녀석?”
“그래. 누구보다 가문을 양지로 끌어 올리고 싶어하며, 가주에게도 대들 정도로 배짱 있고, 동시에 화려함으로 치장했으며 외견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녀석 말이다.”
“아···.”
내가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키자,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얼굴을 붉혔다.
“저, 외견이 그럭저럭 괜찮나요? 에헤. 그런 칭찬은 또 처음이라···. 감사합니다. 황자님도 잘생기셨어요.”
그 부분에서 감탄할 줄은 몰랐는데.
“음. 아무튼 네가 카리스마 있는 악역 영애가 되어서, 사교계에 데뷔하고···. 샤도우 가문 전체를 대변해서 양지로 끌어올리면 된다.”
“그, 그렇네요.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전부 다 해결 되겠어요! 명쾌한 해답. 감사합니다!”
“음.”
“그런데···. 악역 영애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교과서나 본보기도 없잖아요?”
그 물음에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보라색 눈동자의 방실거리는 햇님반 영애는 있어도 악역 영애로서 그 녀석은 죽었어.
그리고 무엇보다.
“악역 영애를 목표해야 하는 건 맞지만, 더 중요한 건 암살자로서 기본기를 갈고 닦는 거다.”
“갑자기요?”
“그야. 샤도우 가문이 쌓은 원한은 수백 년에 걸친 두꺼운 지층이 되었을 텐데 거기서 가문 전체를 대표하는 영애가 나오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엄청 노려지겠네요. 사교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마차가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겠어요.”
“그래. 그럴 때 마다. 멸화란이나 랑영으로 대처할 수는 없다. 오직 매일 쌓은 기본기가 중요한 것 아니겠나.”
“아. 맞는 말씀이세요. 기본기는 재미 없고 화려한 걸 좋아하지만, 악역 영애가 되기 위해 오늘부터 기본기를 공부하겠습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리 말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는 스텔라.
그리고 잠시 후.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내게 물었다.
“저기. 그러면 제가 악역 영애가 되면, 매일 살해 당할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되겠지.”
녀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면서, 엄청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하, 하고 싶지 않아···. 하, 하지만 해야 하는데···. 하고 싶지 않은데···.”
뭐.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힘 내라.”
“남 일이라고 너무 편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남 일인걸.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