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35)
835. 진리된 복음
밀푀유는 조용히 편의점 천장을 올려봤다.
하고 있던 작업을 멈추고, 그저 조용히.
그리고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퓨 선배. 한숨이 크시네요. 무슨 일이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파르페는 오늘 무슨 일이니?”
“아, 과자 재료 좀 받아가려 왔습니다. 3호점도 4호점도 재고가 없다고 해서요. 프람 님은 안보여서 여기에 와 봤습니다.”
“그래. 일지 작성 확실하게 하고….”
“넵.”
그리 말하고는 내부 재고 창고로 들어가는 파르페를 보며 밀푀유는 다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울프람이 찾아왔고, 대화할 일이 있었다.
-밀푀유. 너의 학생회에는 인재들이 필요하고, 그런 인재들을 모으고 있다.
감사한 이야기지만, 들어보면 정말 만만찮은 이들이었다.
네프티 선배가 직접 맡아 가르치고 있다는 소질은 좋은 근접 전사 소녀나, 저기 창고에서 자재를 뒤적이고 있는 자신의 직속 후배.
암살자면서 화려함을 꿈꾸는 루디카 선배의 후배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2년 후에는 저 아이들을 전부 통솔하면서 이 제프린의 학생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거구나….”
욱신.
가슴이 욱신거린다.
울프람 선배님이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봤을 때의 욱신거림과는 그 궤가 다르다.
그냥.
순수하게 속이 쓰리다.
“어디…. 위장약이 어디 있더라.”
위장약과 진통제.
이전이라면 달고 살지도 않았을 가정상비약.
부담감과 중압감에 짓눌린 밀푀유가 최근 가장 많이 찾는 약이다.
울프람이 만들어 준 게 다 떨어졌을 때는 기성 약품도 쓰지만, 아무래도 울프람이 만들어주는 것 만은 못하다.
약병을 찾으니 마침 딱 한 알씩만 남은 상황.
“오늘 또 얻으러 가야겠네.”
울프람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생각에 밀푀유는 내심 기뻐하는 자신을 보고는 쓰게 웃었다.
그나마 최근에 선배님이 자신의 건강 상태를 챙겨주시고, 이렇게 언제든 만날 구실이 생긴다는 건 실로 기쁜 일 아닌가.
약을 입에 넣고 물 한 잔으로 털어 넘기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잘 해야지…. 힘내자….”
기운도 기합도 없는 목소리.
아무리 밝아졌다고는 하나 천성이 소심한 그녀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
할 일 없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밀푀유에게 위장약을 주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힘들어 보여서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그 다음으로는 네프티가 원시인을 교련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사교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화려한 암살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 녀석이 기뻐하다가 레지나의 눈빛을 못 이기고 겸양하고 이내 다시 예절교육을 위해 잡혀가는 것을 보고.
아무튼, 최근 키우기 시작한 후배들만 시야에 잡힌다.
밀푀유에게 던져…가 아니라 밀푀유를 지지해줄 든든한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 생각하며 멍하니, 평소 기온인 가을 날씨와 하늘을 즐기고 있자니, 메세지 하나가 날아왔다.
-울프람. 있나요.
-조금 피곤한 일이 일어났어요.
-당신이 저지른 일이니 알아서 수습하세요.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 말하고 일방적으로 메세지를 끊었다.
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니 허 참. 이거 완전 또 몰아가기에 마녀사냥에 좌표찍기 아닌가.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지.
“너무 많아서 감도 안 잡히는군.”
정말 무슨 일일까?
***
이세계로 넘어가니 이브가 사탕 공예를 하고 있었다. 녀석은 힐끔 이쪽을 보더니 손을 멈추지 않고 공예에 집중했다.
“사람을 불렀으면 그 사람과 대면하는 것에 집중해라.”
“시끄럽네요. 좋은 일로 부른 것도 아니니까. 제가 즐거움을 방해하지 마세요.”
“집중하라고는 안 하겠다만, 나쁜 일이 뭔지 그것부터 설명해라.”
“긴 말 안 할게요. 원정조의 인력부족이 문제에요. 원정조는 당신이 제안했고 네프티와 밀푀유가 담당했잖아요? 원정조원들끼리 조금 문제가 생겼어요.”
“그랬지. 그렇군. 워낙 혈기 넘치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이브. 책임을 나한테만 몰지 말도록, 너도 결재 허가를 내리지 않았나.”
“당신이 제 결재를 의지해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니까, 결재는 의미가 없어요. 아니면 제 아래로 들어와서 하나하나 결재 받으면서 행동해볼 건가요?”
그건 진짜 싫은데.
“알겠다. 일단 가서 상황을 보도록 하지.”
“네. 그러세요. 후우. 진짜 바빠 죽겠는데….”
이브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사탕 공예에 열을 올렸다.
바쁘다는 녀석이 그거 할 시간은 있고?
“바쁘니까 이럴 때일수록 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뭐지. 이 녀석 마음을 읽는 건가.
그런 스킬트리는 본 적도 없는데.
***
원정조 대기소.
이제는 번듯한 건물이 된 그 곳에 들어가자, 찌릿할 정도의 투기와 함께…. 전체적으로 퀴퀴한 냄새가 퍼진다.
이건 땀 냄새랑 먼지 냄새다.
뭐 싸우는 녀석들이 모였으니 당연하지.
학생회에서 나온 접수원들이 있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다음 원정에 대해 토의하고 있다. 여기는 수익이 어떻느니, 저기는 나오는 무구들이 어떻느니, 공략법은 숙지했다느니.
내가 자주 와 본 것은 아니지만 평소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접수원 표정도 평소와 같다.
인 게임 서브 이벤트에서는 접수원에게 ‘상급 사냥터를 추천해줘!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라거나 ‘아앙? 이 교환금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하는 양아치들이 등장했지만, 지금은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브 녀석이 또 이들갑을…. 하여간 진짜.
그리 생각하며 내부를 돌아보고 있자니 하나의 이변을 깨달았다.
“접수원.”
“아 황자님. 어서오세요.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주셨나요?”
“하나의 직군이 보이지 않는다. 근접 전사…. 그 중에서도 탱커가 보이지 않는다만?”
“아. 탱커분들은…. 최근 대기소를 잘 찾지 않으세요. 보통 훈련장에 모여 계시답니다. 제 1 훈련장에 가보시겠어요?”
“친절한 안내 고맙군. 최근 뭐 다른 문제 되는 일이 있나? 기탄 없이 말해도 좋다.”
“그것도…. 제 1 훈련장에 가보시면 될 거 같아요.”
음?
보통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나?
훈련장에 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아무튼 고개를 끄덕이고 원정조 제 1 훈련장을 찾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방패를 내던져놓고 구석에 모여서 꿍얼거리는 탱커놈들이었다.
그리고 훈련장 내부에는 내가 모르는 기구가 하나 설치되어 있었는데, 바로 하늘 위에 장전된 거대한 철구였다.
사람의 상체는 가볍게 넘을 크기의 철구. 그리고 여기저기 금 가고 부서진 방패들.
이 땀내나는 탱커들 중. 내가 유일하게 아는 얼굴을 찾아냈고 가서 물어봤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아, 황자님. 안녕하십니까.”
“음. 나는 안녕하다만, 너희들은 안녕하지 않은 것 같구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붉은 머리의 호청년.
켈터스는 살짝 곤란하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다.
“그게 탱커 직군만 다들 급격히 의욕을 잃는 일이 벌어져서…. 못 보일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 이유를 묻는 것이다.”
내 말에 켈터스는 잠시 눈을 떨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 음…. 내. 황자님이 화내시고 벌하시더라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론을 논하는데 어찌 벌이 따라오겠나. 다만 진실만을 말하도록.”
“네. 사실…. 다들 얼마 전에 있었던 통칭 ‘필드 보스전’ 때문에 의욕을 잃은 상태입니다.”
“뭐라?”
“저 철구 보이시죠. 2층에서 고정장치를 풀면 철구가 벽면을 미끄러져서 그대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탱커의 방패에 부딪치고 그걸 버티는 연습을 하는 거죠.”
“어째서 그런 멍청하고 무식한 연습을 하지? 방패도 몸도 남아나지 않을 텐데.”
“그야. 황자님께서 보여주신 필드 보스들의 일격은, 전부 저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군.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구나.”
이 녀석들은 바실리스크의 꼬리치기를, 드레이크의 급강하를, 서펜트의 아쿠아 브레스를 방패로 막아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
“당연히 훈련은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았겠군.”
“네.”
켈터스가 쓰게 웃었다.
아쉬워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진 않은 모양새.
역시 주인공. 멘탈은 튼튼한건가?
“너는 어떻지?”
“저야 탱커와 딜러 둘다 전문직으로 삼을 수 있으니까요. 뭣하면 공격 전문으로 나서도 됩니다.”
아.
그러셨군요.
이 재능충 녀석이….
***
이후 켈터스와의 대화는 신변잡기 수준으로 짧게 끝났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마저 가볍지는 않았다.
딜딸에 미친 녀석들은 쉬이 무시하지만 결국 전장의 꽃은 탱커다.
생각해보자.
보스가 시간 제한이 걸린 전멸기 패턴을 쓰지 않는 이상.
그리고 딜량이 치유량을 넘어서는 이상.
모든 패턴에서 버틸 수 있는 완전한 탱커가 있다면 어떤 레이드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걸어 파티원의 목숨을 살려주는 탱커의 존재는 그만큼 귀하다.
그런데 이 탱커들이 절망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원정조는 사고가 난 것이 맞다.
반대로 말하면.
최초로 벽을 느끼고, 그걸 넘어서고 싶어하는 것이 탱커라는 점이 무척이나 흡족하다.
나는 구석구석 널브러져 있는 탱커들의 사이로 들어가서 입을 열었다.
【볼만한 낯짝을 하고 있구나. 단체로 모여서 궁상이나 떨고 있는 전열이라니 퍽 우습군.】
내 말에 탱커들은 슬쩍 이쪽을 바라봤고 놈들과 눈을 마주쳤다.
살짝 발끈하는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 다시 땅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쉰다.
이건 꽤 중증이다.
어쩔 수 없지. 실력 행사로 나갈 수 밖에 없나.
나도 꽤 무리가 가는 동작이라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바닥에 내팽개쳐져 굴러다니는 방패.
대부분 철구를 그대로 막았는지 여기저기 패이고 찌그러져있다.
그 안에서 그나마 괜찮은 녀석을 들어 올렸다.
정말 무겁다. 더럽게 무겁다. 내 장비 세팅이랑은 완전히 어긋난다.
그리고는 2층에 고정되어 있는 철구를 바라봤다. 저게 미끄러져 내려오면 이 방패로 막는 건가.
【켈터스 가서 저 철구를 떨어트려주겠나.】
“네, 네…? 정말요?”
【내가 이 상황에서 농담을 할 거 같나? 다만 모두가 지켜볼 수 있게끔 이목이 모였을 때 부탁하지. 신호는 보내겠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고 자세를 잡았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저 땅이나 파고 있는 어리석은 녀석들 자. 똑똑히 보아라.】
주변을 둘러보니 탱커들이 하나 둘 나를 바라본다.
“화, 황자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도 못했는데….”
그 안에서 특히 근육질인 녀석이 걱정했다.
【너희가 못한 것을 나에게 적용하지 마라. 자. 어서 철구를 떨어트리도록.】
“네, 네!”
데구르르르르르.
어마어마한 질량을 담은 녀석이, 인정사정없이 나에게 짓쳐든다.
아무리 대방패를 들고 있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일격.
하지만. 상관 없다.
가가가가가가각!
비틀어내지도, 흘리지도 않았다. 정면에서 받아낸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무지막지하게 멍청한 짓.
하지만, 완벽한 힘의 배분과 방패술이 있으면 오직 기교만으로도 철구를 막아낼 수 있다.
뚜둑.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다.
이런 짓을 한 멍청세라고 생각하자.
“와아…….”
“어, 어떻게 저 체구로 저게….”
“세상에…. 나는 피하거나 흘려내거나 벨 거라고 생각했는데….”
몸이 욱신거리지만 녀석들의 경탄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럼 이목을 집중했으니, 솔루션을 제시해야지.
【나 정도의 전투 경험이 있으면, 1회 한정이지만 받아내는 탱커도 가능하다. 하지만 너희는 불가능하다. 완전한 기교는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내리지만 너희에게 그런 기교는 기대할 수 없다.】
“아….”
“그,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는 그냥 이대로 주저앉아 있어야 합니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도 그 기교를 가르쳐주십시오!”
녀석들의 눈이 활활 불탄다.
그래. 그걸 가르쳐주러 왔단다.
【기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내리지만, 그건 몇몇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에게만 손을 내밀어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가능한 것을 그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비법을 제시하마.】
“그, 그게 뭡니까?”
뭐냐니.
그야 단 하나밖에 없잖아.
탱커들이 그것도 모르나.
【근육을 키워라. 압도적인 근육이 있으면, 소형방패로도 철구를 막아낼 수 있다.】
옛 성현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문제는 근육으로 해결된다.
혹시 해결되지 않았다면 근육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고민해보자. 라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