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41)
841. Title Heroine
사타나엘의 사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타나엘 본인은 아니다.
배신한 천사장 사타나엘 본신이랑 싸우려면 지상에서 놀고 있는 우리 파티로도 좀 힘들다.
즉 사타나엘의 사도. 일종의 권속이라고 보면 된다.
본신과 비교하자면, 글쎄다. 사타나엘과 나를 대등하게 놓는다면 그 사도는 밀푀유 수준이겠지.
물론 어마어마하게 힘의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밀푀유 수준은 된다는 것.
결코 얕봐도 될 상대가 아니다.
문제는….
“나쁜 기운이 느껴져요. 울프람. 저 앞에 뭐가 있는 건가요?”
내 옆에 있는 이 꼬맹이. 유즈나엘이 진짜 ‘천족’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보통 천족이 아니다. 출신 성분만 따지자면 나와 똑같은 황족.
즉.
대천사장의 딸. 유즈나엘이 과연 사타나엘의 사도를 보고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얼버무리기에는 이미 이 녀석도 상대의 기척을 느꼈다.
차라리 기절했다면, 나와 사타나엘이 일기토를 뜨고, ‘전투는 끝났다…. 돌아가자.’ 라는 말로 대충 훈훈하게 마무리 했겠지만 말이야.
어쩔 수 없다.
여기선 진실을 말해야지.
“이 기운, 축복과 저주가 같이 있구나. 타락한 천사의 사도가 있는 듯 하다.”
“네? 타락한 천사의 사도…. 잠시만요. 타락한 천사? 제가 알기로 역사상 그 천사는 단 한 명 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 한 명이겠지.”
“사타나엘…삼촌.”
유즈나엘이 주먹을 꽉 쥔다.
그런가. 대천사장이 아버지라면 사타나엘은 삼촌쯤 되는 존재겠군.
주변이 일그러진다. 마력과 축복과 저주가 함께하여 공간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나뿐만 아니라 유즈나엘, 그리고 기절한 두 명도 침식된다.
특히 마력이 아니라 축복으로 움직이는 유즈나엘에게 치명적이다.
“미안하지만 혼란스러워 할 시간도 없다. 유즈나엘.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바닐라와 요거트만 지켜라. 남은 건 내가 다 알아서 하도록 하지.”
“울프람. 사타나엘 삼촌은 엄청 강해요. 저희 아버지보다 강해요! 그런 삼촌의 사도라면….”
그야 더럽게 강하지.
“허나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자. 구석으로 물러나라. 놈이 온다. 가급적 저 거울 뒤로 도망쳐 있도록. 저 거울은 튼튼하니 제대로 숨어만 있다면 버틸 수 있을 거다.”
“네, 네….”
유즈나엘이 기절한 바닐라와 요거트를 끌고 거울 뒤로 숨는 것을 본 후. 거울 바로 옆에 신화 포식자를 박아 넣었다.
“우, 울프람의 검 아닌가요? 왜 이걸 바닥에 박아요? 싸울 때 써야죠!”
“그러고 싶지만…. 이 신화 포식자로 축복과 저주를 먹어치우지 않으면 너희가 오염될 거 같아서 말이다.”
거기까지 설명하고 문 너머를 바라봤다.
끼이이이익.
내 시선을 느낀 듯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저주와 축복이 흘러나온다. 창생과 사멸을 다루는 두 개의 이질적인 힘을 두른 채. 로브를 입은 남성이 이쪽을 내려본다.
사타나엘의 사도.
이브 루트. 12막.
준종결 보스전의 개시다.
***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다룬다는 것은 마력으로 막아낼 수 없는 두 개의 힘을 다룬다는 의미다.
그 때문에 신화의 전쟁은 천족 마족뿐만 아니라, 그 두 개를 융합시킨 타락천사들도 상대해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들었다.
물론 삼계협정에 의거 원래대로라면 내가 놈을 즉결 처형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놈은 천족도 마족도 아니고 일개 사도.
즉 인간이기 때문에 즉결 처형은 사용할 수 없다.
철저하게 불리한 이 싸움.
인벤토리에는 제대로 된 무기도 없고, 저 녀석에게 통할지도 미지수다. 마검이나 성검을 잘못 만들었다가 축복과 저주에 오염되어서 폭발하기라도 하면 이쪽이 더 큰 대미지를 입는다.
그러니까.
믿어야 할 것은 지금 말아 쥔 두 주먹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휙!
눈 앞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는 축복을 몸을 최대한 낮춰서 피했다. 그것을 노리듯 내 뒷목을 향해 저주가 쏘아졌지만, 그보다 내 움직임이 아주 조금 빨랐다.
앞으로 내달려, 놈의 목을 향해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충분한 속도가 있다면 주먹 또한 흉기가 되는 법.
파앙! 우득. 우득…. 우드득. 콰아아앙!
안면에 주먹이 꽂히자마자 비틀어 놈의 광대뼈를 부수고, 그대로 끝까지 쳐 날린다. 휘이잉. 퉁. 퉁. 인간이 인간을 쳐서 낼 수 없는 소리가, 그리고 낼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 놈이 날아가고 그대로 벽에 쳐박혔다.
“우, 울프람!”
방금 전 일격에, 얼마나 많은 페인트와 캔슬을 섞었나.
원래라면 검으로 썼을 내 비기를 주먹으로 쓴 셈. 마지막에 내가 이기지 못했다면, 박살 나는 건 이쪽 주먹이다.
운이 좋게도 놈의 면상을 후려갈겨 광대뼈를 으스러트리는 것으로 판정승을 거뒀지만 말이야.
축복도 피하고, 저주도 피한다.
놈의 몸에 제대로 주먹을 쑤셔 박아서 캔슬과 평타를 연속으로 반복해 박살날 때까지 밀고 나간다.
한 대라도 맞으면 위험하고.
내 타격이 판정승을 거두지 못하면 주먹이 부서진다.
끝내주게 어려운 보스전.
하지만.
“이거 재밌군.”
내 생각에도 미친 소리지만, 꽤 진심으로 이 상황이 즐겁다 느꼈다.
***
내가 엘피라네의 목을 신화포식자로 일격에 긋지 않은 것은 녀석과 진심으로 한 번 싸워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며, 동시에 아무리 허상이라 한들 놈을 죽일 거까지야 있나. 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마계 군단장중에서도 아일라와 밀푀유를 상처입힌 그 망할 자식을 제외하면, 장담컨대 한 번도 진심을 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빨리 죽여버리면.
내가 제프린에서 즐길 컨텐츠가 줄어드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이 설탕으로 만든 세계가 부서지지 않게 나는 다정하고 상냥하게 놀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체력을 플레이 첫날에 줬다면, 장담하는데 최단 엔딩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지금의 재주를 첫날부터 가지고 시작했다면, 최단 엔딩까지 이틀이면 된다.
그 정도로 나는 이 세계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니까 막상 들어왔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최대한 천천히 먹고 싶다. 이것 하나였다.
아껴먹자. 또 아껴먹자. 마시멜로를 하루에 딱 하나만 먹어야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생일 케이크 8조각을 하루에 한 조각 먹어야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솔직히 좀 미안하다.
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거든.
진심으로 죽여야겠다.
오른 다리를 살짝 들어 축복을 피하고, 그대로 놈의 턱을 후려쳤다. 휘청. 놈이 흔들린다. 그대로 왼다리만으로 허공으로 뛰어 올라 저주를 피해냈다. 놈이 반응하기 전 그 갈비뼈에 주먹을 쑤셔박았다.
팡. 콰득. 콰드드드득……!!
가볍게 꽂아넣은 잽은 그 끝을 모르고 파고 들어간다.
이걸로 일곱 발 째. 닿는 순간 평타를 캔슬하고 다시 평타. 그리고 캔슬 후 다시 평타.
타격 부위를 부숴버리는 이 일격을 벌써 전신에 일곱 발 때려 박아 넣었다.
자.
여기서 문제입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격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전부 피하면 된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주먹이 으스러지는 공격수단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전부 쑤셔 박아 처넣으면 된다.
“시간이 없다. 빨리 끝내도록 하지.”
자세를 다시 잡고 놈을 내려봤다.
기분 탓일까.
그 눈 안에 아주 조금 절망이 보인 듯 했다.
***
유즈나엘은 눈 앞의 공방을 보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공방?
저걸 공방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전투의 매커니즘이 철저히 부숴지는 충격.
허나 그런 충격 속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울프람의 육체는 나약하다. 그 속도는 어마어마할지 모르지만 그저 속도만 빠를 뿐 호리호리한 몸은 어디 가지 않는다.
요컨데, 그저 빠를 뿐인 일격.
허나.
눈 앞에서 펼쳐지는 저 공세를 보라.
그저 평범하게 닿았을 뿐인 잽이. 그대로 몸을 으스러트리며 밀고 지나간다.
어린아이의 목검이 닿는 순간 철구가 되어 전신을 유린한다.
본디 있을 수 없는 전법이다. 저런 게 가능하면 그 누구도 강해지기 위해서 고생하지 않는다.
맨주먹을 내질러 상대에게 닿는 순간 적을 붕괴시킬 수 있다면, 근력이라는 개념은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제프린 원정조의 에이스 탱커 소리를 듣는 유즈나엘도, 저런 전술을 쓰는 이가 더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러니 저것은 투법이나 전술이 아니다.
“어, 음….”
유즈나엘은 잠시 입을 오물거렸다.
저것을 어떻게 칭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단어가 정립되지 않는다.
투법이나 전술이 아니라면? 무술도 아니고 기교도 아니라면 뭐지?
평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나 하며 머릿속 어린이 단어사전을 최대한 살펴본 결과, 가장 근접한 단어들을 떠올렸다.
저것은 기적이다.
저것은 절망이다.
“…….”
상반된 단어는 때론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구나.
유즈나엘은 그리 깨달았다.
자신의 등 뒤에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오직 눈 앞의 기적에 집중했다.
***
사타나엘의 사도 공략법은 생각 외로 단순하다.
놈의 체력 회복이 어마어마하니, 저주와 축복 면역 아이템을 들고 화력으로 찍어 누른다.
신화 포식자도 쓸 수 없는 지금. 단기 결전으로 놈의 머리를 깨부순다. 라는 목적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곱게 죽어라.”
“…….”
바로 앞으로 다가가 놈의 미간에 주먹을 꽂아 넣으면 끝.
이제 내 승리로 이 전투는 마무리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짧았지만 속은 꽉 찼던 울프람의 대모험도 여기서 끝입니다. 와 만세.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내지르려는 그 순간 느껴진 위화감.
녀석의 눈에서 절망이 사라졌다.
내가 잠시 멈칫한 그 순간.
“꺄아아악?!”
찢어지는 유즈나엘의 비명 소리.
사도의 등 뒤에서 축복과 저주가 길게 뻗어, 내 뒤를 향해 날아간다.
방금 전까지 나를 공격하던 축복과 저주가 노리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유즈나엘은 천족.
녀석의 능력으로는 저주는 방어할 수 없다.
한 대만.
딱 한 대만 더 때리면 죽일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
유즈나엘이 알아서 막을 거라 믿고 이 놈을 끝장을 볼 건가.
아니면, 사도에게서 등을 돌려 쪼꼬미들을 구하고 한 번 더 전투를 펼칠 것인가.
고민할 시간은 없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였다.
전신을 돌려 거울 쪽으로 내달리려 한 그 순간.
“뭐라…?”
거울 속에 상이 맺혔다.
녀석이 그 안에 있다.
올려 묶은 단정한 금발.
푸르디 푸른 눈.
오직 저 녀석에게만 허락되는 순백과 황금의 망토.
이쪽을 힐끗 본 녀석은 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는 허공에 손을 내젓는다.
가벼운 동작이나 그 효과는 절대적.
거울 안에서 내저었음에도 현실을 침윤해 만들어지는 빛의 창.
그 창들이 엮여 만들어낸 빛의 폭우.
화아아악!
본디 마력으로는 저주와 축복을 견제할 수 없으나.
초월해버린 마법은 차원을 넘어서서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브 폰 로엔그린의 1차 초월기.
구원자의 일광.
허상은 이쪽을 보고는 픽 웃고는 중지를 치켜들었고, 그대로 몸을 돌려 거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브의 허상은 용무가 끝났다는 듯 모습을 감췄다.
“하….”
솔직히 멋지다.
분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
반박할 말이, 단어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저것이 내가 가장 신뢰하는 이브 폰 로엔그린의 모습이다.
학생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반드시 구하러 와주는 빛의 학생회장.
“완전히 한 방 먹었군. 이브 주제에 말이다.”
등 뒤에 서있는 사도의 정수리에 주먹을 쑤셔 박아 절명시킨 후 그 어떤 상도 비치지 않는 거울을 향해 중지를 치켜 들었다.
이브를 인정했다는 패배감에 치켜 들었으나.
패배감이 영 싫지는 않았다는 건 평생 비밀로 해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