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43)
843. 연상의 이해심
이브 폰 로엔그린의 기척감지가 이렇게나 뛰어날 줄이야.
하지만, 고작 퓨어 메이지의 기척 감지에 걸릴 정도라면 나도 재주 캐릭터 타이틀 내려놔야지.
이브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려는 그 순간, 바로 반대로 굴러 침대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상하다…. 울프람의 기운이 지금도 느껴지는데…. 어째서지?”
다박. 다박.
이브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오지마. 내게 다가 오지 말란 말이다아앗!
그렇게 침대 아래로 숨었다.
다행히 아일라 녀석은 이쪽도 꼼꼼하게 청소해두는지 먼지가 심하거나 쓰레기가 들어가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니 기침을 하거나 해서 이브에게 들킬 위험은 없다. 라는 건데….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체 왜 숨었지?
내가 다쳐서 왔고, 아일라가 나를 간호해주고 있었다. 곧 여기를 뜰 거다. 라고 말하면 녀석도 충분히 이해해 줄 거다.
축객령을 내릴지언정 그 이상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헌데, 나는 어째서 숨었을까.
아일라의 침대 위에서 쉬고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에 꺼림이 있었다.
대체 왜?
“…….”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이브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나가자. 나가서 이브에게 다 말하자.
나는 아일라의 침대 밑에 숨어 있었다고. 들킬 것 같아 나왔다고.
“…….”
안 된다.
차라리 침대 위에 있었으면 뻔뻔하게 말대답이라도 가능하지, 침대 아래에서 불쑥 나와봐라 제프린에서 추방될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들켜선 안 된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일라랑 항상 붙어다니니까 울프람의 기운이 옮은 걸까…. 아냐. 하지만 방 안에서 느껴지는데…. 뭐지?”
이브는 여전히 방을 둘러보고 있고, 발걸음 소리가 내 쪽으로 좀 더 가까워졌다.
“기운은 분명 여기에서 느껴지고 있는데….”
바로 앞.
시야를 내려서 침대 아래를 보기만 해도 내가 보인다.
차라리 나선다면 모를까 숨어있는 걸 들키면 그대로 진짜 인생 쫑나는 거에요.
생각해라. 대응할 방법은 있다. 뇌를 굴려라 생각을 멈추지 마라.
이브는 나를 황실 혈통의 상호 혐오로 추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즉….
마력감지에 들키지 않게끔 내 체력을, 황실 혈통이 꺼질 때까지 깎아내면 된다.
나는 슬쩍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붙잡고 그대로 손날을 세워 밀어 넣었다. 푸욱. 소리가 난다. 조술(爪術)에 조예는 없지만 그래도 자해딜 정도는 충분하다.
애당초 죽을 뻔 한 몸. 이대로 죽지 않을 정도만 딜을 꽂아 넣으면 된다.
【체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집니다】
【황실…혈…통을 더…유지할 수 없…습니다】
황실 혈통이 툭하고 꺼졌다. 즉 내 체력이 1이하로 내려갔다는 이야기.
숨이 멎을 것 같다. 이 침대 아래 공간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죽을 것 같다.
“으음…. 잘못 느낀 게 맞나 보네. 뭐 그 남자가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대낮에 아일라 방에 숨어 있을리가 없죠.”
황실 혈통이 꺼지자. 이브는 휙 하고 몸을 돌려 아일라의 방에서 나갔다.
좋아. 몸을 여기서 꺼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 때문에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휙! 소리를 내며 나갔다고 생각한 이브가 벌컥 문을 열고 안을 바라봤다.
“흠. 진짜 없네요.”
뭐지.
방금 내가 나갔으면, 꼼짝없이 들켰다…. 라고?
세상에. 이브 폰 로엔그린 주제에 저 정도의 철두철미함을 보이다니….
용서 못 해.
다음 번에 팬케이크를 목구멍 안에 두드러기가 날 때 까지 만들어주마.
크림을 잔뜩 넣고 유지방을 잔뜩 넣고 버터를 잔뜩 넣고 설탕을 잔뜩 넣어서 뱃살째로 터트려주마 이브 폰 로엔그린….
“후우. 그런데 진짜 못 나가겠네.”
나 혼자 남은 방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기어 나가면 되는데 말이지. 그 조금의 행동이 무척 어렵다.
침대 아래는 너무나 좁아서 포션을 꺼내서 입에 물 여유 공간도 없다.
잠깐 숨을 돌리자.
체력을 조금 더 회복시키고 기어 올라가면 되겠지.
그렇게 손을 뻗어 침대 아래에 편하게 누운 그 때. 손 끝에 걸리는 게 있었다.
얇은 종이다발 아마도 노트다.
침대 아래에 노트?
아일라가 노트를 침대 아래에 숨겨놨다고?
음…. 으음.
이걸 집어 들어도 되나, 아니면 조용히 내버려둘까.
잠깐 고민하고 고뇌한 끝에.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디. 무슨 내용이지?”
잠시 후 침대 위에 앉아 노트를 팔락거리는 내가 있었다.
***
이전에 아일라가 반역일지를 쓴다는 말을 했었지.
하지만 그 반역일지는 아닌 듯 했다. 그 반역일지는 지금 아일라의 책상 위에 있다.
이건 다른 노트다.
하지만 그 밝고 순진한 아일라가 숨겨놓은 노트라니,
내심 죄책감에 몸부림치면서도, 손은 슬쩍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건….”
내용을 눈에 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반역이 아니라 반성 일지였다.
‘오늘 원정에서 울프람이 상처를 입었다.’
‘투척형 무기를 가진 몬스터였는데, 녀석의 사선에 내가 있었다.’
‘즉 울프람은 나를 지키기 위해 상처를 입은 것이다.’
‘마계의 문에 들어갔다. 우리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해져야지.‘
’마계의 문의 군단장은 강적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가 상처 입었다는 것 같다.‘
’울프람은 무리해서 시간을 되돌렸다.‘
’그리고 명백히 한계를 넘어서 싸웠다.
‘나는 울면서 삐약이를 다독일 수 밖에 없었다.’
‘강해져야지’
‘울프람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야지.’
‘울프람이 크게 다쳐서 왔다.’
‘삐약이의 친구들이 업어서 왔는데, 한 눈에 봐도 큰 부상을 입었다.’
‘울프람은 지금 내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
조용히 노트를 덮고, 원래 있던 자리에 놓았다.
읽지 말걸 그랬다.
가슴이 아파. 진짜 엄청나게 아프다. 손이 덜덜 떨린다.
이건.
반성일지였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을 아프게 했던 것들을 적고, 고통 앞에서 구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는 일지였다.
그러니 숨겨놨던거다.
내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서,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숨기듯 침대 아래에 넣어 둔 거다.
무력한 자신을 숨기고 항상 앞에서 웃을 수 있게, 차곡차곡 적어두되 티를 내지 않은 것이다.
설마 내가 침대 아래까지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음….”
조용히 노트를 다시 넣어놨다.
아일라가 저렇게 아파하는 모든 이유는 내 상처 때문이다.
진짜. 너무 대충 살고 막 굴리긴 했나 보다.
앞으로는 덜 다치는 방향으로 가야 하나….
***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누워있는 사이 방문이 열리고 아일라가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생긋 웃는 얼굴.
하지만 그 미소 안에 자책과 괴로움이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하면 내 양심이 아파온다.
“울프람. 아픈 곳은 좀 어때요?”
“괜찮다. 많이 괜찮아졌어.”
“다행이에요!”
“…….”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노트를 봤다고 해야 할까.
그걸 밝히면, 이 녀석이 내게 가진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
고민은 순간이었고, 결론은 나왔다.
“아일라.”
“네. 울프람. 어디 불편한 곳이 있나요?”
“미안하게도, 침대 아래에 있는 노트를 봤다.”
“아…. 그, 그렇군요. 그걸 봤나요.”
당장 미움받고, 실망할지 몰라도 속이고 싶지 않다.
“음. 미안하구나.”
“아뇨. 숨겨놓지 않은 제 잘못이에요. 으, 으흠…. 네. 그렇군요. 봤군요.”
“음….”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먼저 그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아일라였다.
“미안해요. 그런 푸념을 적어놔서….”
“아니. 왜 네가 사과하지. 잘못은 내가 저질렀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이렇다.
내가 아파하는 것에 더 아파하고, 그래놓고 그 아파한걸 들킨걸 사과한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반역의 마녀’같은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빨리 낫고, 다음부터는 다치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야겠구나.”
“그래줄 건가요?”
“미안. 약속은 못 하겠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일라가 잠시 눈을 빛내더니 이내 작은 한숨으로 이어졌다.
“미안하구나.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다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걱정 많이 하는 거 알죠?”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까 사과한다.
아일라는 잠시 나를 보다가 이내 풋 웃었다.
“어쩔 수 없네요. 두 달이나 누나인 제가 이해해야죠. 동생이 다쳐서 돌아오는 건 익숙하답니다.”
“동생…. 아 그렇군. 스피카 이야기인가.”
“이렇게 다 큰 남동생도 늘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요?”
누가 다 큰 남동생인지.
아일라를 빤히 바라봤지만 녀석은 그저 방실방실 웃을 뿐.
이번만큼은 돌려줄 말이 없다.
“알겠다. 노트를 본 것도 그렇고…. 앞으로도 너에게 민폐를 끼칠 거 같아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죄를 하고 싶은데, 바라는 게 있나?”
“울프람이 안 다치는 것?”
“…….”
“알아요.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마세요. 음. 사죄의 표시라…. 그렇네요. 장신구를 받고 싶어요.”
“어떤 장신구지? 말만 하도록 바로 신화급 장신구를 준비해주지.”
“울프람. 전에 말했죠. 파티 리더로서의 능력으로 파티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요.”
“음. 그랬지.”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드의 구조나, 레이드 용어를 설명할 때. 파티 개념과 파티 리더로서 내가 할 수 있는걸 뭉뚱그려 설명한 거지만 말이야.
“그러면 저도 보고 싶어요.”
“파티의 정보 말인가? 그건 어렵다.”
“아뇨. 파티 전원일 필요 없어요. 단 한 명의 정보면 돼요.”
단 한 명.
그게 누구인지는 말 할 것도 없다.
“내 정보를 항상 알아볼 수 있는 악세서리라.”
“불가능할까요?”
“아니 가능하다. 당장이라도 만들어주지.”
인벤토리에서 최상급 재료를 꺼내들고 전부 녹여 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살짝 긁어 내 피를 섞었다.
“우, 울프람. 가뜩이나 아픈데 저 때문에 피를 흘릴 필요가….”
“아니. 이 정도는 괜찮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무리하는 모습을 봐오지 않았나.”
“그건 그런데요….”
그럼에도 침울해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태를 갖춰가는 반지에 의지를 담는다.
나는 아직 정확히 내 초월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확히는 무언가 하나 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겠지.
예를 들어보자. 이 게임 세계에 들어온 ‘울프람으로서의 이영진’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변화시키는 ‘신화 포식자’ 라는 초월을 깨달았다.
허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울프람으로서의 울프람’은 위엄을 증가시키기 위해 그 이름도 긴 칼을 만들어냈다. 주변 모두를 최면으로 이끄는 마검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이영진으로서의 이영진’은 어떤 초월일까. 그걸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는 옆에 있는 소녀에게 단 하나의 선물을 만들어주기 위해 혼을 담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
이내 손바닥 안에서 하나의 반지가 완성되었다.
얇게 짜낸 금실을 세 가닥 서로 교차시켜 반지를 이루고, 작은 다이아를 박았다.
표면에는 마법 문자가 음각되어있는데, 이것이 아름다운 문양처럼도 보인다.
다이아는 피처럼 붉으나 결코 삿되지 않고, 오히려 타오르듯 아름다웠다.
“이 다이아의 색이 변함에 따라 내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반지다.”
“그렇군요. 정말 아름다워요….”
“네가 앞으로 계속 끼고 다닐 반지인데, 외견에도 조금 신경 썼다.”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은, 이내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런 반지를 울프람이 직접 끼워주기까지 하겠네요?”
“그거야 어렵지 않다.”
“네, 네? 잠깐만요. 네?”
나는 아일라의 오른손을 잡고, 그대로 반지를 밀어 넣었다.
자주 쓰는 손과 거슬리지 않은 부분등을 생각하면 약지가 괜찮겠지.
“자. 딱 맞는구나. 아주 잘 어울려.”
“…….”
“왜 그러지?”
“아뇨. 후우. 네. 지금은 이걸로 참을게요. 네. 그렇겠죠. 그런 거죠.”
아일라는 두 달이나 누나인 제가 참을게요. 네. 하고는 웃었다.
허나 방금 전까지 짓던 둥실 거리는 미소와는 조금 다른…. 본편의 아일라 같은 미소에 가깝다.
음?
음…?
으으으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