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46)
846. 네가 모르는 이야기
원작 기준으로 게임의 시간관리가 엄청나게 팍팍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만의 스케쥴을 짜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히로인의 호감도를 끝까지 올려 엔딩을 보는 게임이기에 한눈 팔지 않고 정한 히로인과 자주 만나는 것이 기초 공략.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브 루트를 예시로 들어보자.
이브는 학생회에 모습을 자주 비출수록 호감도를 올리기 좋다.
필요한 스테이터스는 ‘선한 영향력’ 그리고 ‘학력’이다. 이브는 설정상 한 번도 학년 수석을 빼앗기지 않으니 한 학년 후배로서 계속해 학년 수석이 된다면 호감도가 오르기 쉽다.
그러면 대부분의 일과가 이쯤에서 확정이 난다.
이브와 친해지기 위해 마법학부를 택하고, 필기 수업을 중심으로 들어서 ‘학력’ 스테이터스를 최대치까지 올린다.
파티원은 이브와 자주 만나는 겸 친해졌던 학생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짜서 시너지를 위해 마법파티를 만든다.
원정은 아이템 사냥보다는 ‘실종 학생 수색’이나 ‘도와주세요. 제 후배가 아파요.’ 같은 포션 약초 탐색.
기숙사-학부-학생회-학생들의 의뢰 해결-기숙사로 이어지는 생활 루틴이 짜이고, 이를 철저하게만 지켜도 이브 루트의 배드엔딩은 피할 수 있다.
완전한 공략법은 없는 것이 이 게임에서 호감도작이나 원정 결과물은 랜덤 요소가 너무 심하다. 나만 해도 주사위 굴리기 몇 번 실패하면 트루 엔딩까지 꼬이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교내 이벤트를 정리해두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없었다.
지금 에밀리 하이멜로디가 말하는 ‘요리학부 부활 기념 요리 경진 페스티벌’같은 이벤트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다.
“진심으로 납품 업체로 참석하시려는 건가요. 스승님?”
에밀리가 곤란한 듯 난색을 표한다.
왜 그러지.
내가 모르는 ‘교내 이벤트’라고, 나도 끼워달란 말이다.
곧 졸업하는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왕따를 놓으면 저 울어버려요?
내가 빤히 에밀리를 바라보자, 에밀리는 이내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서는 머쓱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스승님께는 초청장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초청장?”
“네. 돈이 오가는 관계가 아니라, 저희가 모시려고 했습니다. 받아 주시겠습니까.”
“음….”
반대로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말이 좋아 납품이고 돈 받기지, 내가 건네주는 재료는 이 대륙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최상급.
즉 말 그대로 퍼주는 셈인데…. 내가 너희에게 대박 재료를 퍼주지 않는데도 나를 부른다고?
뭐지? 무슨 생각이지?
아 그렇군.
초청장의 의미. 즉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겠지. 내 요리 스킬이 필요한건가.
“알겠다. 참여하도록 하지.”
내가 확답하자 에밀리의 표정이 펴진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알겠다. 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 너희의 그 거래에 응하도록 하지.
***
이세계에서 잠시 앉아 어떤 레시피를 공개할지 고민하는 사이, 저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대고 끙끙 앓으면서 들어오는 이브는 나를 힐끗 보더니 그대로 소파에 쓰러졌다.
“이브.”
“뭐…에요. 헛소리 할 거면 나가요…. 진짜,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만…. 뭐. 나도 놀릴 생각은 없다.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다.”
“얼마나 얻어 맞았는지 궁금해요? 아니면 몇 분이나 버텼는지 궁금해요? 또 비아냥거릴 생각인가요? 하 진짜…. 쓰레기. 사람 마음도 모르고, 죽어요. 그냥….”
아니. 그렇게나 심한 말을?
내가 물어보려는 건 그게 아닌데 너무하시네요. 진짜.
“음. 아니 대단한 건 아니다. 그저…. 소파에 앉아서 쉬는 건 불편하지 않나? 최근 이 곳도 조금 넓어졌으니, 침대라도 하나 만들어줄까 하고 물은 거였다만.”
“…….”
“그렇게나 험악한 지레짐작이 돌아오니 나도 가슴이 아프군. 그냥 소파에서 쉬도록.”
이브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나를 노려봤다.
뭐. 네가 꼴아보면 뭐 어쩔 건데.
라고 괴롭힐 수도 있지만….
“필요한가?”
“윽. 으윽….”
“필요하면. 네. 라고 대답해라.”
“네….”
좋아. 좋은 대답이다.
나는 즉석에서 더블 퀸 사이즈 침대를 만들어 설치했고, 소파에서 비틀비틀 일어난 이브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웃었다.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잖나.”
“뭐에요. 또 뭐요….”
“감사합니다. 는 어디에 갔지?”
“제 감사 인사는 역겹다면서요?”
“으음. 지금은 그 역겨움이 사라지고, 한 번 들어도 괜찮을 것 같군.”
“감사…합….”
“됐다. 듣고 있자니 역겹군. 그냥 누워라.”
“…….”
이브는 풀썩 쓰러져 침대에 머리를 박고는 중얼거렸다. 아마 ‘죽여버릴거야. 진짜 죽인다. 울프람 당신은 내가 쳐죽인다.’ 이런 소리를 한참 내뱉고 있겠지만, 뭐? 자기 허상한테 쳐발리고 침대에 머리묻고 웅얼거리는 소리는 잘 안들리는데?
***
그렇게 약 두 시간.
이브가 눈물로 매트를 적시고 그대로 잠들었다.
2차로 매트를 침으로 적시며, 새 침대의 오열소리가 내 귓가에 구슬피 들린지 한참 후.
“으음…. 아. 으윽….”
“깼나.”
“네. 깼네요. 근데…. 뭐지. 지금 혹시 침대에 바인드나 구속 장치를 걸었나요?”
“그럴 이유도 필요성도 못 느낀다만.”
“그러면 대체 왜 제 몸이 안 움직이는 거죠?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건 그저 네가 운동부족이라 심각한 근육통에 시달려 쓰러져 있을 뿐이다.”
“아니 근육통의 괴로움 뿐만이 아닌데…. 이건 대체 뭐죠?”
“그리고, 동시에 마력통도 겪고 있는 거겠지.”
“마력통…?”
이브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마력이 소멸되는 지역에는 가봤지만, 자신보다 압도적인 마력에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마력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해진 건 처음이잖나.”
“아…. 그건, 아니 누가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거에요?”
누구겠어.
내가 침묵을 고수하자, 이브는 볼을 부풀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네요. 여기와 밖의 시간은 얼추 다섯 배 차이라고 했던가요? 딱 다섯시간만 쉬고 나가야겠어요.”
“그 정도로 몸이 회복될 거라 자신하나?”
“자신은 없지만…. 제가 해결해야 하는 서류가 있어서요. 아니 이걸 왜 당신한테 말하고 있지?”
“어떤 서류지?”
“별건 아닌데…. 요리학부에서 최근 성과를 내서 자체적으로 축제를 하고 싶다고 해서요. 꽤 중요 안건이니까요.”
“요리학부가 말인가?”
“네. 지금까지 기사학부와 마법학부. 양대산맥이었던 제프린에서 제3의 학부로 클 수 있을지, 솔직히 많이 기대되거든요.”
이브는 그리 말하고는 최선을 다해 몸을 반 바퀴 돌려 천장을 보고 대자로 누웠다.
“그 몸으로는 무리다.”
“알고 있지만, 해야 할 일은 무리 해서라도 해야죠.”
“아니. 아니다. 이번 건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네?”
“나도 그 요리학부에서 초청장을 받았다. 네 전권 대리로 내가 움직여도 되는 일 아닌가. 거기에 요리학부에는 나도 아는 얼굴이 몇 있으니 말이다.”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지만…”
“왜 그러지? 여전히 뭔가 걸리는 게 있나?”
“그러니까…. 그. 아뇨 없어요. 열심히 잘 해보세요.”
묘하게 실망한 듯 한…. 화난 듯 한 모습.
설마 자신의 업무를 빼앗아가서 이브의 프라이드가 용서하지 못한 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아. 혹시….
“새로운 요리 메뉴 중 흥미로운 게 있다면, 그대로 재현해주도록 하지. 걱정하지 말고 쉬어라.”
“정말인가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럴 때는 솔직하게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튼 특별히 흥미가 가는 요리가 있나?”
“달콤 프라이드 치킨이라는 메뉴를 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프라이드 치킨은 기름지고 짠 맛이 베이스인데, 어떻게 달콤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그렇군.
신경쓰이는 건 프라이드가 아니라 프라이드 치킨이셨다?
***
내 주도 아래에 행사는 차근차근 확실히 진행되었다.
초빙할 수 있는 손님은 몇 없었지만, 그래도 내 연락이 닿는 교수. 특히 필티아 교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각층의 교수들이나, 엘피라네를 신봉하는 제프린의 순혈 전통주의 교수들도 참석 의사를 보였다.
에밀리는 향후 요리학부를 이끌어갈 인재 소리를 듣는 재녀.
내 바로 옆에서 행사의 실무를 배우며 요리 레시피도 하나 둘 얻어갔다.
“감사합니다…. 황자님. 정말 큰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음. 그러면 현장 쪽을 돌아보도록 할까.”
“아, 아뇨.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황자님께서는 여기서 대략적 지시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알겠다.”
문제는 에밀리의 표정이 영 편해보이지 않는다는 것.
뭔가 맥을 잘못 짚은 걸까?
아무튼, 행사일은 빠르게 다가왔고, 이번 일의 전권을 내게 맡긴 이브는 여전히 허상한테 쳐맞고 다닐 그 무렵.
최근 격변하는 제프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최상급의 ‘봄’에 맞춰 요리학부의 연회가 열렸다.
솔직히 그리 크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요리학부 건물은 기본적으로 낡고, 시설도 충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최대한 닦고 청소했으며, 이 세계에 오기 전, 고등학교 현장답사로 갔던 전시회를 떠올려 배치했다.
각 요리의 기원. 최근의 변화. 한 눈에 볼 수 있는 팜플렛과 요리 모형의 전시. 그 요리를 설명해주는 도슨트. 그리고 옆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시식코너까지.
“학생. 이 요리는 뭐지? 무척 향이 좋군.”
“청량초와 홍염조개를 우유, 버터와 함께 볶은 겁니다. 향신료로는 후추와 소금이 들어갔습니다.”
“호오. 어디 한 그릇 줘보게….”
“네.”
한 노교수가 요리를 먹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보통 요리가 아니군 그래. 맛도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마법적 효과가 들어갔어. 그 효과도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네. 홍염조개는 강렬한 불속성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청량초와 우유. 버터로 억누른 겁니다. 이러면 홍염조개의 모든 속성이 사라질 것 처럼 보이지만, 투입하는 양에 따라서 차가운 몸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온열의 효과가 있습니다.”
“호오….”
그래.
지금까지는 이 세계의 식량사정. 특히 재료 조달이 까다로워서 발전하지 못했지만, 원래 이 세계에서 진짜 요리란 ‘버프 효과’를 달고 다니는 녀석들을 말한다.
마법이 마력을 분배하고 술식으로 짜올리는 기적이라면, 요리 또한 재료를 분배하고 조리법으로 짜올리는 기적인 셈.
총 행사 주관자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옆을 지나가자, 교수에게 설명하던 도슨트 학생이 이쪽을 바라보고는 생긋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쟤랑은 일면식도 없는데?
아니. 그 뿐만 아니었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다른 학생들 특히 요리학부의 모든 학생. 심지어 교수들까지 나를 보고는 눈으로 인사하거나, 목례를 하기도 했다.
***
행사 첫 날이 마무리되고, 교수들도 떠나 학생들만 남은 행사장 조리실.
말 그대로 무대 뒤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곳에 요리학부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녀석들은 오늘의 행사를 되새기며 모두 충만한 미소와 자신감 어린 눈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 앞에 서서 총 지휘를 마치고 모두의 용기를 북돋는 리더가 바로 에밀리.
나도 같이 참석할까 하고 물었지만, 녀석은 부르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뭐. 요리학부생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자리에 내가 끼긴 좀 그렇지.
“다들. 오늘 전시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참석한 분들은 대부분 호평 일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축제는 앞으로 사흘. 끝까지 웃으면서 끝냅시다.”
그녀의 말에 학생들이 네! 하고 소리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에밀리의 격려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말이 이어졌다.
“다들 제 말에 집중을 못 하네요. 알고 있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알아요. 네. 웃지 마세요. 원래라면…. 오늘 이 자리에 최 중요 손님으로 모시고 싶었지만 결국 이번에도 손을 빌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요리학부의 은인. 오늘 이 행사의 진정한 주역.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을 모시겠습니다.”
그 말에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희의 환호가 부족한 듯 합니다. 자. 오늘 이 행사가 성립할 수 있던 것은, 어디까지나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님께서 제프린의 재료 유통을, 그리고 요리라는 개념의 진화를 이끌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은인께 감사를 담아. 다시 한 번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에밀리의 그 말에, 회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 박수치는 이들이 한데 엮여. 나를 찾고 있다.
상황을 완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한 번 더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무언가를 제공해주고 대가를 받는 건 익숙했다. 거래는 일상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충분한 이득을 취하면서 겸사겸사 무언가를 얻는 것도 자주 했다.
허나.
아무것도 한 기억이 없음에도, 누군가가 나에게 환호해주는 것은 처음이다.
삼류 황자가 아니라, 은인 울프람을 부르는 소리.
이렇게 낯설기만 한 호의의 폭풍에 휘말려, 잠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