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53)
853. D-100
그렇게 살육의 밤은 끝났다.
바닥에 너저분하게 쓰러져있는 블랙 마켓의 쓰레기들.
어차피 애들 상대로 약이나 파는 놈들이니 그대로 잡아 죽여도 되겠지만, 나는 불살의 울프람이니기 때문에 그런 악행은 벌이지 않았다.
학생회 임원들을 불러, 놈들을 전부 지하감옥으로 연행했을 뿐이다.
이렇게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청소하면 언젠가 맑고 고운 제프린이 찾아오겠지.
알리샤의 친구도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알리샤랑 같은 제안을 받았지만, 마음 속 어둠에 져버린 그녀는 심각할 정도의 약 중독이었다.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서 목숨은 붙여놨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제대로 된 생활로 돌아올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뭐. 원작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으니 차라리 다행이다.
원작은 알리샤의 친구였던 소녀는 이미 죽어 없으니까.
알리샤의 마음 속 상처를 끝내 치유하거나, 아니면 치유에 실패해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루트가 참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게 순애파 히로인의 절망 어쩌고 하던데.
그래도 친구가 살아있으니 어떻게 고칠 방법이 있겠지.
“어떻게든…. 반드시 고칠게요. 제가 반드시….”
“음. 나도 돕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알리샤는 그 자리에서 부복해서 울었다.
“대신. 공짜는 아니다. 한 사람이 죽지 않게 보살피는 의료비는 결코 값싸지 않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결의 담긴 좋은 눈이다.
이 세계는 의료보험도 없으니, 학생 한 명을 죽지 않게 계속해서 돌봐주는 데는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나는 담담하게 그 대가를 입에 담았다.
“좀 더 능숙하게 던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훈련해라.”
“네…?”
설마 이런 대가를 말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지, 녀석이 눈을 깜빡였다.
“곧 제프린에 어마어마한 악이 발호할 것이다. 한 명이라도 실력있는 전사가 필요하다.”
“제가 전사라니…. 제 성적은….”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필요한 건 재능이다. 제프린의 성적표로 가늠할 수 없는 재능.”
툭. 손 위에 아일라가 만들어준 마지막 주머니를 올려놨다.
“제 재능….”
“그래. 나는 너의 투구에서 재능을 봤다. 앞으로 연마하도록.”
“알겠습니다. 황자님. 반드시…. 도움이 되겠습니다.”
오케이.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다.
이 녀석 전용으로 투척 폭탄을 준비하고, 팔 소모도 심하지 않게 해서, 졸업시키면 야구팀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이 세상은 아무래도 노는 게 부족하니까 말이야.
기사학부 출신 학생들이 용병대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프로 스포츠팀에서 뛰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필살기도 제각기 하나쯤 가지고 있고 말이야.
앞으로 수십 년. 그 재능을 확실하게 살려주도록 하지.
***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번 사건과 그 해결법을 아일라에게 먼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 나쁜 녀석들이 있었다니… 훌륭해요. 울프람.”
아일라는 아무래도, 제프린에 약을 유통하는 녀석들을 일망타진 했다는 게 크게 마음에 든 모양.
“그렇게 마음에 드나?”
“그럼요. 후후. 나쁜 녀석들은 혼내줘야죠!”
그리 말하며 허공에 주먹을 휙! 하고 내지르는 아일라.
분명 귀여워야 하는데, 그보단, 진짜 파공음이 들려서 조금 무섭다.
“아무튼, 내 광역 대응도 전부 해결이 됐구나.”
“필살기…. 는 아니죠?”
“음. 필살기는 아니지. 반드시 죽인다는 의미에서는 필살일지 모르나…. 그만큼 강하진 않다.”
그저 자체적 광역딜이 확보되었다는 이점은 챙겼으니까 말이야.
내가 내린 결론은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수 만 개의 방어무시 칼날을 담은 폭탄을 만든 후. 허공에 집어던진 후 이세계로 들어가버리는 것.
강하긴 하겠지만 그게 필살기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세계로 들어갈 수 없거나, 파티원이 있으면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딜은 충분히 확보했으니까 말이야.
“그러면 정말로 가는 건가요?”
“그래. 슬슬 준비해야겠지.”
제 7문에 진입할 때는 점점 다가온다.
시기상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원정조 녀석들의 장비도 강해지고 있고, 중요한 건 샤르의 포위섬멸진이 언제 완성되느냐겠군.
그것만 완성되면 언제든 7문으로 출발해도 된다.
“그렇군요. 정말 끝이 다가오네요. 원래라면 첫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니까요.”
“음. 그렇지.”
마지막 문은 졸업식 바로 전날 열기로 했으니까 7문에 들어가는 건 12월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금 당겨질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울프람. 음…. 제가 할 말이 있는데요. 아니 사실 하면 안 되는 말인데….”
녀석은 힐끔 이쪽을 올려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리고, 다시 올려봤다.
“하면 안 되는 말 같은 게 어디 있나. 편하게 말해보도록.”
“그게…. 아버지가 오래간만에 울프람과 한 번 찾아오라고 해서요.”
“글래스 백작이?”
흠.
일정을 보니 뭐 어렵진 않겠다.
“알겠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그게….”
아일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
아일라와 함께 제프린을 나와 서부로.
오전 중에 나간다고 이브에게 보고하고 나왔고, 허가증도 제대로 받았다.
”오래간만에 둘이서 외출하네요.“
”그렇구나.“
”열차는 어때요? 이번에 쿠션을 재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승차감이 많이 좋아졌다. 이 정도라면 바로 상업화해도 될 듯 하구나.“
”후후. 다들 열심히 고생했으니까요.“
평소라면 밝은 미소로 여행을 즐길 아일라였지만, 지금은 영 조용한 모양새.
무슨 일이지? 싶었지만 일부러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속도는 조금 개선해야겠구나. 좀 더 빠른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충분히 빠르지 않나요?”
아니. 아니다.
내가 살았던 한국의 기차를 생각하면 이건 거의 기어 다니는 수준이다.
“뭐. 개선의 여지가 많을수록, 도전하고 성장할 부분도 많아지는 것이니 말이다.”
“멋진 말이에요.”
한국 이야기는 할 수 없으니 그냥 수습하고 말았다.
그래서.
글래스 백작이 나를 부른 이유는 대체 뭘까.
***
트라이스타 영지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식사하기도 조금 늦은 시간이고, 대화는 다음날 나누기로 했다.
아일라도 슬슬 잘 시간인지 눈을 비비고 있었고, 나는 안내된 방에서 짐을 풀고 이세계로 들어가 샤워실을 쓰기로 했다.
늦은 시간이다 보니 ‘욕탕만 빌릴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 목욕 담당 시녀들이 다시 물을 데우고 난리가 날 거 같아서 한 선택.
따듯한 물에 몸을 녹이고 있자니,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울프람. 안에 있어요?”
“음. 먼저 씻고 있다. 지금 씻을 시간이었나?”
“아뇨. 오늘은 철야라서…. 거기에 제프린 날씨가 더운 상태라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나다 보니 잠깐 들린 거에요.”
“이해했다.”
들려온 이브의 목소리.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제대로 씻을 시간 따위 없겠군 그래.
이번에 집어넣은 죄수가 대체 몇이야?
“뭐. 어쩔 수 없죠.”
“음….”
뭐. 24시간 운영하는 글래스트헤임 욕탕도 있고 하니 괜찮겠지.
그리 생각했는데, 문 밖의 기척이 사라지지 않는다.
즉. 이세계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다. 라는 말인가?
“금방 씻고 나가도록 하지.”
“당신이 나와도 당신의 마력이 빠져야 들어갈 거니까 별 상관 없어요.”
뭐야 그게.
“글래스트 헤임쪽 욕탕은 안 쓰나?”
“제가 목욕하러 가면, 목욕으로 끝날 거 같아요? 다른 학생들이 달라붙어서 로비를 시작하는 욕탕 살롱이 된다고요.”
생각해보니 그건 그렇네.
“혼자서 씻을 시간이라는 건 중요한 법이지.”
“저도 여기 와서 처음으로 알았답니다.”
문으로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녀석이 어깨를 으쓱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서부 쪽은 어때요?”
“별 문제 없다. 다만 아일라가, 그리고 글래스 백작이 나를 왜 불렀는지 모르겠군.”
“그래요? 보통 황손을 초대한다고 하면 반드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대귀족과 황족이…. 아니 잠깐 기다려봐. 아일라 트라이스타랑 당신은…. 음. 그런가? 그렇게 되나?”
“뭘 그리 중얼거리지?”
내가 되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뇨. 서부의 맹주 글래스 백작과 울프람 폰 로엔그린 황자라면 모를까…. 조금 다른 부름일 수도 있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음. 슬슬 일어나서 나가려고 하는데 말이다.”
“아 그래요. 그러시던가요.”
“…….”
그렇게 퉁명스레 말하는 이브였지만, 문 밖의 기척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브이브야.
네가 죄수들 집어넣고 번호 매기느라 피곤한 건 알겠는데 말이야.
“지금 내가 나가도 괜찮은가?”
“아…….”
“…….”
아무리 가운데에 탈의실이 있다곤 하지만, 목욕이 끝나고 얇은 옷만 입고 있는 나랑 마주쳐도 되겠냐는 의미로 묻자. 녀석이 그제야 현실을 깨달은 듯 하다.
“당연히 나오면 안 되죠. 큭. 무슨 생각을 하는 거에요?! 이 쓰레기. 믿을 수 없어.”
“내가 나가는 길은 거기 하나 뿐이다만?”
“아….”
정말 피곤해서 뇌가 안 돌아가나 보네.
“잠깐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금방 나가도록 하지. 네 방 문을 두드리는걸 내가 나간다는 신호로 알도록.”
“뭐…. 네. 그러죠.”
그리 말하고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고 닫는 소리도 들렸다.
옷을 갈아입고, 이브의 방 문을 두 번 두드렸다.
문 앞에 초코바와 과자 세트를 놔뒀으니, 알아서 먹겠지.
***
다음 날.
글래스 백작과의 제대로 된 접견이 이루어졌다.
다만, 자리에 아일라는 없었다.
“백작. 아일라는….”
“아. 그 아이는 잠깐 현장을 보러 갔습니다. 오늘은 황자님과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백작은 아일라의 아버지니, 확실한 예절로 대한다.
그 때문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존대를 해왔고 그 망나니 황자 치고는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서로 흉금을 털어놓을 정도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황자님께서 이리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작께서 찾는 게 보통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를 어떤 용무로 찾으셨는지 듣고 싶군요.”
“음. 으흠. 네. 사실 오늘 제가 황자님을 찾은 것은….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뭐든 물어보시죠.”
“황자님께서는 졸업 이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할 것은 많지요. 우선 서부의 도시를 중심으로 철도를 깔고, 열차를 운영하고, 광탄열차와 여행열차를 나누고, 중앙과 견주는 제2의 도시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듣던 글래스 백작은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네.
이걸 모르는 백작이 아닌데?
“네. 그 비전에 대해선 언제나 깊게 공감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제 질문이 조금 엉성했군요.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여쭈고 싶습니다. 저는 글래스 트라이스타 백작이 아니라, 아일라의 아버지로서 여쭈는 겁니다.”
“예.”
“졸업하고 나시면, 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식. 그러니까…. 수학 식이나, 그런 게 아니겠지?
아일라의 아버지. 글래스 백작이 울프람 폰 로엔그린이 아니라, 울프람에게 던지는 물음일 거다.
그러니까.
“식…. 말씀이시군요.”
“졸업까지 앞으로 세 달. 슬슬 이런 이야기도 화두로 올릴 수 있지 않을지. 허허. 딸 둔 아버지의 주책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
잠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에 잠겼다.
맞다.
아일라는 졸업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 졸업은 이제 세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즉.
100일 내로 결론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차를 내려놓는 손이 살짝 떨리고,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어간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황실 혈통이….】
야.
너는 진짜 좀 닥치고 있어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