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58)
858. 소녀심
밀푀유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흔들거리는 다리. 새빨개지다 못해 터지는 것 아닐까 싶은 상기된 얼굴.
평소라면 녀석이 무너질까봐 걱정되어 다가갔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내 머리도 온전하지 못했다.
좋아한다…. 는 존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뢰한다. 친애한다. 그런 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어떤 말로도 바꿔 들을 수 없다.
그만큼 무겁고, 입에 담기 힘든 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어떤 말도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지 않았다.
“밀푀유.”
“못 들은 척 하시거나, 왜 저러지 같은 표정을 지으시거나, 그러셔도 상관 없어요. 다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저는 선배님을 남성으로서….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 말하고 꽉. 주먹을 쥔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연약한 몸.
허나 결코 눈을 피하지 않는다.
더할 나위 없이 솔직하고, 그 이상으로 올곧다.
파티 내에서 재주는 가장 낮다. 체력은 나와 비등하다. 마력은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 파티 내에서, 가장 마음이 강한 것은 밀푀유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런 녀석이 전해준 진심을 왜곡할 수 없다.
“알겠다. 이 싸움이 끝나면 이야기 하지.”
“선배님…?”
“두려워 말도록. 네 마음이 신뢰. 친애. 존경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에서 눈 돌리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은 싸움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점 너도 이해해주길 바라마”
“아….”
“다만, 이 싸움이 끝나면…. 많은 것을 털어놓으마.”
“네. 믿고 기다릴게요.”
밀푀유는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자신의 마음을 강요했으니, 대답은 기다려 주겠다. 라는 의미일까.
진심을 고백해서 가장 두근거릴 지금, 사리분별까지 하고 있으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다.
【황실 혈통이….】
타오르기 시작한 감정을 가라앉히고, 다시 검을 쥐었다.
우선 눈 앞의 싸움을 끝내고, 이야기해야겠지.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복제】
“간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
***
캉! 카아앙!
신화포식자끼리 서로 맞부딪쳐 검명이 일어난다. 서로의 티어는 대등하기에 일방적인 포식이 아니라 합이 맞아 떨어진다.
서로 두 걸음 물러나고, 반대쪽 손으로 허공을 헤집었다. 퀵 크리레이트 인벤토리에서 두 개의 투척 무기를 꺼내 들었고 녀석도 똑같이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휙.
하고 허공에서 두 개의 보석이 날아든다.
이쪽이 던진 것은 태초의 루비와 사파이어.
저쪽 또한 태초의 루비와 사파이어를 집어 던졌다.
화아아아아아악! 쩌저저저저적!
불꽃과 얼음이 허공에서 노닌다.
허나 내가 바라는 것은 투척 무구에 의한 데미지가 아니다.
그것으로 시야를 빼앗고, 사각으로 들어가 녀석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것.
그리고.
카드드드드득!!!
녀석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빙결과 염무의 폭풍 안에서 검이 한 번 더 맞부딪쳤다.
완벽하게 같은 수.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는 것은 나도 지금 웃고 있다는 이야기다.
본래 다른 녀석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이 던전에서, 지금 나는 목숨을 걸고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밀푀유가 이런 방식으로 마음을 고백한 것은 정말 예상 외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결코 알아 먹을리 없다고 확신했던 거겠지.
“동감이다.”
나도 밀푀유의 그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누구를 탓하겠나.
바로 옆에서, 그렇게나 나만 바라봐주던 후배의 진심을 못 알아본 내 잘못이지.
허나 그것도 조금 뒤로 물려놓자.
지금은 눈 앞의 나를 지우는데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다행히 황실혈통은 잡다한 감정을 지울지언정, 투쟁심과 호승심만큼은 결코 지우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오른 손의 신화포식자와 왼 손의 검은 단검이 서로 교차했다. 칼과 칼이 백중세를 이루자, 이번에는 서로가 정강이를 부러트릴 기세로 걷어찼다.
“후우….”
“…….”
둘 다 정강이는 무사했지만, 손목이 뻐근하다.
이쪽도 저쪽도 최선의 수를 써서 싸운다면, 이후에도 연전을 펼쳐야 하는 내가 불리하다.
물론.
이 녀석과 싸우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가 소환될 일이 없다.
그러면 뭐, 다른 녀석들이 나오고 꽤 쉽게 싸울 수 있겠지.
사실 녀석을 이기는 법은 간단하다.
“지금의 나를 넘어서면 되는 것 아닌가.”
“…….”
내가 미소로 그리 말하자, 녀석은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 검을 들고 까딱 흔들었다.
어허.
어디 짝퉁이 본체님 앞에서 그렇게 건방진 짓을.
평생 사랑 고백 한 번 못 들어본 찐따녀석이 말이지.
나는 등 뒤에 나를 좋아한다고 선언한…. 그것도 방금 고백한 후배가 지켜보고 있단 말이다.
여기서 추한 모습을 보여줘서 ‘역시 선배님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소리를 들어봐라.
고백에 대답도 하기 전에 1차임 스택 정립되면 그게 또 무슨 쪽이겠어.
“하.”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세상에. 전투 중에 이런 농담을 떠올리기나 하고 말이야.
결국 못참고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나 같은 녀석에게는 분에 넘칠 정도로 솔직하고, 대단한 고백이라서 말이다.”
저 고백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네놈을 쓰러트리는 것 보다 백배 어렵거든.
“그러니까, 가급적 빠르게 죽여버리고, 고민 할 시간을 좀 더 벌고 싶구나.”
서로 내딛는 걸음이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이쪽도, 그리고 저쪽도 생각하는 게 똑같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너는 방금 전까지 나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조금 더 강하지 않겠나?”
신화 포식자가 서로 얽히고, 견디지 못해 튕겨져 나갔다. 데구르르, 검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보다 빠르게, 심장을 노리고 검은 단검을 찔렀다.
푸욱!
녀석의 검은 단검이, 내 몸을 꿰뚫고 들어온다.
그리고.
꾸욱…. 꾹…. 우득…드득….
내 검은 단검 또한, 놈을 꿰뚫었다.
녀석의 검은 단검은, 내 손바닥을 꿰뚫고, 바닥에 핏물을 그린다.
그리고 내 검은 단검은 내 입에 물린 채로, 녀석의 가슴께를 내리 눌렀다.
콸콸 흘러나오는 붉은 피.
검은 단검의 기본 공격은 ‘방어무시’
허나 단검은 칼날로만 이루어진게 아니다.
단검의 가드가 내 손뼈에 걸려 앞으로 못 나가는 사이, 내 입에 물린 검은 단검은, 훌륭하게 녀석의 심장께에 닿았다.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쪽을 내려본다.
“…….”
“나를 복사한…건 훌륭하다만…. 그게 전부…구나.”
결국 네놈은 무언가가 만들어낸 복제.
취할 수 있는 전법은 오직 ‘이득’을 심화하는 것 뿐.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발상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까득!
턱을 억지로 꺾어서 단검을 겨우 반바퀴 돌린 후. 두 걸음 물러섰다. 쑥. 하고 내 손목을 관통했던 단검이 빠져 나왔고, 손아귀에 힘을 줘 억지로 지혈시켰다.
그 사이, 놈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치뜨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울프람 폰 로엔그린의 복제】를 물리쳤습니다.】
【동등한 초월격의 상대입니다. 보상을 상향 지급합니다.】
【모든 소모품을 복구하고 상처와 부상을 회복합니다.】
시스템이 내 승리를 선언하며
그그그그그긍.
저 너머의 문이 열리고, 복도가 보인다.
첫 번째 방은 이렇게 공략 성공.
이제 두 번째 방으로 가면 되는데, 그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지.
“밀푀유.”
“네, 네!”
“미안하구나. 네가 마음에 둔 남자의 전법은 결국 극한으로 치달으면 이렇게 추해진다.”
내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짓자, 밀푀유가 앞으로 다가와 상처 입었던 손을 꼭 잡았다.
“아뇨. 정말 멋있으셨어요….”
“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
“설마요! 언제나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제 앞을 지켜주시던 그 모습 그대로셨어요.”
“그런가.”
그렇게 순수하게 호의를 전하니 또 할 말이 없다.
차라리 여기서, 으음. 대답은 조금 나중에 들을게요! 같은 소리를 해줬으면 나 하나 아프고 끝인데 말이지. 차지는 않더라도 생각할 시간을 준다거나 말이야.
하지만, 이 녀석의 반짝거리는 눈은 여전히 변함 없어서, 그게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이 던전은 되돌아 갈 수 없을 뿐. 시간 제한이 있는게 아니니 말이다. 잠시 대화를 나누도록 할까.”
“네…. 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벽에 기대 앉았다.
전보다는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를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무엇까지 말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세계는 사실 디지털 세계고, 나는 현실에서 넘어온 29세 편의점 알바라고 한단다. 올해 30살이 되었지. 너 그거 알고 있니? 나 같은 아저씨를 네가 좋다고 하면 현행법상 이 아저씨는 잡혀가요. 라는 부분부터 시작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심성 착한 후배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 선배님이 사실은 빙의자셨고, 게임의 지식을 전반적으로 다 알고 계셔서 그렇게나 강하신 거구나, 원래는 29살 엠생게이머셨는데 운 좋게 넘어오신 거고 나도 운 좋게 얻어걸려서 학생회장까지 갈 수 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까.
그도 아니면.
아주 졸렬하고 처절하며, 동시에 입에 담기에도 유치한 거절이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생각할 것도 없다.
내가 정한 파티원에게는 그 어떤 상처도 주고 싶지 않다. 그게 내 결심이었기에…. 처음부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황실 혈통…. 이라는 우리 가문에만 적용되는 기술이 있다.”
“네….”
“그리고 내 황실 혈통은 말 그대로 황제의 위엄. 그리고 권위를 보장하는 대신 황족에게 어울리는 행동거지와 예의범절을 【강요한다】.”
“읏……. 이, 이게 그러니까….”
“맞다. 방금 전 강요한다. 부분에서 가슴이 철렁거렸지. 그게 나의 능력이다.”
이후. 밀푀유는 조용히 내 말을 경청했다.
나는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나갔다. 같은 혈통을 이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던가 피가 얼마 없으면 천한 말투나 성격이 나온다던가 말이다.
그리고.
“결국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른다. 네 고백이 무척이나 기쁘다는 건 알겠지만, 정말 나는 이 감정을 기쁘다고 정의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순식간에 가라앉아 추론조차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면 결국…. 저는….”
“거절…. 이라고 하기도 어렵구나. 거절 또한 자신의 마음에 답을 내릴 수 있을 때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 군요. 그러면 평생…. 저는 답을 들을 수 없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러니 네 마음에 대한 답은 7문의 공략이 끝나고, 8문 또한 마무리 지었을 때 내려도 되겠나.”
“네?”
8문의 공략이 끝났을 때.
그 안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면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가능할 거다.
이름하여 【다회차용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이용권】
만약 원작대로 그게 드롭된다면…. 반드시 지우고 싶은 스킬이 하나 있거든.
“아무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네 진심에, 나도 진심으로 답할 수 있도록 조금만 시간을 다오.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
밀푀유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 생각하고 있자니, 밀푀유가 슥. 몸을 이쪽으로 붙이고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부드러운 감촉과 마음이 평온해지는 향이 폐부를 간지럽힌다.
【황실 혈통이…】
아니. 이게 아니고.
“밀푀유. 방금 전 기다려달라고 하지 않았나.”
“네. 기다릴게요. 하지만 선배님이 설령 마음에 답을 내리지 못한다고 하셔도, 저는 이미 내렸으니까. 이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나요?”
“…….”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밀어내고 싶었지만, 그 때 상처받을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니 밀어낼 수 없었다.
“알겠다. 편할대로 하도록.”
“네. 편할대로 할게요.”
그렇게 잠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두 번째 방을 향했다.
그리고.
“밀푀유.”
“…….”
“밀푀유 폰 사브레. 대답해라.”
“으, 으흠. 네. 선배님.”
“내가 나를 죽인 이상 네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두 번째 순번이 소환될 터. 그런데…. 저건 뭐지?”
“선배님…. 이네요.”
내 앞에는, 두 번째 울프람이 서 있었다.
“…….”
시스템이 버그를 일으킨 걸까.
밀푀유를 바라보니, 녀석은 이쪽을 힐끗 보다가 얼굴을 붉히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그게요. 저는 짐작가는 게 있는데요.”
“뭐든 말하도록.”
“바, 방금 전에 제가 한 번 더 반해서….”
아하.
그러셨구나.
지금부터 그럼 잘못하면 대 울프람 6연전 엔딩이 나겠네?
“밀푀유.”
“네에….”
“최종전까지 나와 대화를 하거나, 말을 걸어오는 걸 금지하겠다.”
“너무하세요!”
누가 할 소리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