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62)
862. 후배 믿죠?
네프티를 방치하고 잠시 이세계로.
당연히 인벤토리에는 칼을 포함한 무구를 잔뜩 집어넣었다.
이브도 잠시 이쪽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니, 직접 만나서 전해주면 되겠군.
“준비한 물건, 가져왔다.”
“정말 다 들고 온 건 아니죠?”
이내 이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이브는 불안한 듯 이쪽을 바라봤다.
설마 그럴리가.
나도 저쪽에 만 개 넘는 무기가 넘어가면 어떤 사달이 벌어질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제프린 학생들을 무장시켜서 봉기를 일으킨다는 위협을 주는 건…. 아직 이르지 않나.”
“잠깐. 아직은 뭐에요. 아직이라니? 저는 그런 식으로 황제가 되고 싶다고 한 적 없는데요?”
“하지만 몇 번 실수해서 다른 장로 가문이 넘어가고, 이제 우리의 최종 방어선이 제프린이 된 순간…. 어쩔 수 없다. 반드시 선택해야 할 날이 온다.”
“그런 거 싫다니까요?!”
싫은 건 네 사정이고.
“그러니까. 잘 하도록.”
나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바닥에 검을 내려놨다.
“이건…. 전부 다 명검인데…. 아니. 어떻게…. 이런 무구들 없었잖아요?”
“방금 찍어냈다.”
“찍어…냈다?”
“음.”
이브는 고개를 갸웃했고, 가볍게 시연을 보여주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허공에 원석을 집어 던져서 망치를 한 번 두드리는 것 만으로도 완제품 명검이 나오니 그야 놀랄 수 밖에 없지.
“정말 찍어냈잖아….”
“그러니까 찍어냈다 말하지 않았나.”
만들어 진 건 2T 무구지만, 이 세계에서 2T면 뭐 거의 국보급 무구다.
“전원 하나같이 설명서를 붙여놨다. 그리고 이건 네 전용이다.”
“전용?”
“뜻이 담기지 않은 초월의 무구다. 이런 게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만, 기분 좋은 오산이다.”
정말 그랬다.
게임에서는 당연하지만 ‘성장 방향성’을 정해놓고 육성하기 때문에 ‘양산형 초월’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양산에도 초월이 깃들 수 있구나, 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초월이라고 했으니…. 어떤 초월인가요?”
“성능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초월이라고 이름 붙였으나 그 능력은 우리가 이름붙인 【1T】에 준할 뿐이다.”
“그런데 초월이라고요?”
“그래. 이브. 대량생산된 무구의 가장 큰 이점이 뭔지 아나?”
“양이 많다…. 대체품이 많다.”
“맞다. 그리고 또 하나. 대량 생산된 장비는 주인을 가리지 않는다. 키가 작은 이도, 큰 이도, 규격에 맞춰서 집으면 그만이다. 즉 그 물건은 주인을 가리지 않는다. 최초의 ‘비 전용 신화급 장비’ 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브는 스태프를 빤히 바라봤다.
포효하는 사자가 양각되어 있다거나, 열두 장의 날개가 첨단에 그려져 있다거나, 그 사이에 붉은 보석이 둥둥 떠 있다거나. 그런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만 갖춰져 있을 뿐. 신화무구 특유의 ‘특화된 장비’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군요. 음. 그래요. 이거라면…. 네. 이넬디아를….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검 백여 자루하고, 이 지팡이는 빌려갈게요.”
“그거면 충분하겠나?”
“충분하게 만들어야죠.”
녀석은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의를 내비쳤다.
음.
생각해보면 내 부탁으로 가지 않아도 될 황성에 가서, 싸우지 않아도 될 녀석들하고 기싸움을 펼치고 있는 건가.
그리 생각하니 조금 가슴이 찔린다.
“이브. 이브 폰 로엔그린.”
“뭐에요.”
“무리하지 마라. 이넬디아의 장난에 놀아날 필요도 없다. 이대로 제프린에 돌아와도 된다. 만약 너 자신을 시험하고 싶어서 녀석과 만난다면…. 패배하더라도 배우는 게 있다면 상관 없다.”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스스로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면 내빼도 된다는 이야기다.”
“놀리는 거에요?”
“아니다. 그림을 크게 보라는 거다.”
“…….”
“지금은 져도 된다. 뭐, 정말로 수틀린다면 8문을 공략한 이후 이전에 했던 대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다. 피는 조금 흘리겠지만, 우리의 피는 아니다.”
이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리가 말했던 계획. 일종의 극론(極論)
초월종과 제프린의 학생들을 이끌고, 이들을 무장시켜서 황실 한복판에 폭탄 드랍. 이후 무력으로 황궁을 점거하고, 다른 황족들을 반역자로 몰아서 즉결처형. 서부가 우리를 돕고 중앙은 레지나가 찍어누르고, 반발세력들은 루디카의 이름 아래에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진심으로…. 그 계획을 진심으로 말했던 거에요?”
“진심이다. 나는 허언을 입에 담지 않는다. 흐르는 건 우리의 피가 아니다.”
“우리…. 어디까지가 우리고, 어디까지가 남인데요?”
“당연하지 않나. 파티원을 중심으로 극히 일부가 ‘우리’ 그 외에는 전부 남이다. 그리고. 너도 내 파티원이다.”
조금 겸연쩍은 말이긴 하지만, 분류로 따지자면 이브 또한 엄연한 파티원이다.
“후우…. 그래요, 그렇단 말이죠.”
“그래. 그러니까….”
“반드시 이기고 와야겠네요. 가서 져선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요.”
“어째서지?”
“그야.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그렇죠! 반드시 이겨서 돌아올 테니까 거기서 다리나 꼬고 허세나 부리고 있어요!”
그리 말하고 이브는 검을 전부 마력으로 들어올린 후, 마지막으로 내가 건넨 신화급 지팡이를 잡아 들곤 이쪽을 보고 혀를 빼꼼 내밀었다.
“잘난척 하지 마시죠!”
그리 말하고 녀석은 휙. 하고 이세계를 나갔다.
혼자 남은 방에서 자리에 앉아 어깨를 으쓱했다.
저것도 뭐. 이브답긴 하네.
***
담화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넬디아와 이시스 앞에 선 이브.
갑자기 사라진것도 놀랐지만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브의 모습에 놀란 두 사람은 이내 뒤이어 등장한 무구의 향연에 그저 눈을 크게 뜨고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브는 바로 옆에 신화급 지팡이를 둥실 띄운 후,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내려봤다.
말 그대로 천지패황의 자세. 전신으로 패기를 발산하며 크게 선언했다.
“국보급 명검 백 자루. 신화 시절 위대하신 선조님이 쓰셨던 마검에도 분류되지 않고, 저희들이 발굴해 낸 거에요.”
“뽀, 뽑아봐도 되겠니?”
“마음대로 하시죠.”
이넬디아는 검을 한 자루 쥐고는 칼집에서 뽑아들었다.
검을 쥔 순간 몸이 움찔 떨렸다. 이렇게 완벽한 무게중심. 살짝 뽑자마자 샹들리에 빛에 반사된 검면이 예사롭지 않다.
이넬디아도 한때 검을 쥐었으며, 심미안은 차고 넘치는 황녀.
무엇보다 분석에 나름 소질이 있어, 이 무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견은 그저 장식일 뿐. 지독하게도 실전적인 무기다.
당장이라도 몬스터의 피를 빨아들이고 싶어 칼날이 울부짖을 것 같았다.
그런 무기가, 백여 자루.
“저 지팡이…. 아름다워….”
바로 옆에 있는 이시스 또한, 이브가 띄워올린 지팡이를 보고는 눈을 빛냈다.
매혹을 주로 쓰는 그녀가, 한낱 지팡이에 매혹되어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제프린의 아무것도 몰랐다고…? 제프린에, 이만한 무구들이…. 제국을 뒤엎을지도 모르는 힘이 숨겨져 있었다는 거니?”
초월종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결국 생명체 ‘정치’나 ‘연민’에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도구’는 다르다. 철저하게 소지한 자의 의사에 따라서 활용할 수 있다. 아닌 말로 요정 여왕 한 명과 드래곤 한 마리 보다. 이 전설의 무구 백 자루가 이넬디아에게는 진정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요. 아무것도 몰랐죠. 그리고 저희는 독점했어요. 이제 황실의 힘을 써서 제프린에 온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에요.”
“우리에게 전부를 보여 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거고….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니?”
“전부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최소 시, 십만은 넘어요.”
“뭐?”
그 말에 이넬디아와 이시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아니었다면, 분명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브의 시선이 맞지 않고, 눈이 핑핑 도는 것. 그리고 숨을 가쁘게 몰아 쉬는 것. 어딘가 허둥거리는 것 까지 말이다.
허나 이브의 그 말이 가져온 충격에 두 사람은 잠시 정신을 놓았고, 그 사이에 이브는 크게 두 번 호흡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십만 자루의 무기. 제프린 전체를 무장해도 될 무기에요. 그 뿐만이 아니라 ‘도구’는 얼마든지 ‘사상’을 끌어올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 무력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파벌을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겠…구나.”
“부디 잘못된 생각을 하지 마세요. 이 황실 혈통의 규칙에 의해 우리는 서로를 증오할 수 밖에 없지만…. 저는 그래도 제 마법의 첨단에 혈육의 피를 묻히고 싶진 않아요.”
“…….”
이렇게 말해도 통할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으면 황위가 아니지.
하지만.
아무 말 없이 정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남자가 있다.
정말 수틀린다면, 그 남자는 직접 칼을 뽑고, 이들의 목을 베고, 아무렇지 않게 비웃고, 그리고 그 상처와 무게를 혼자 짊어지리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럼에도 잘못된다면…. 이브는 끝내는 그의 길을 지지하고, 동죄로 지옥에 떨어지리라.
이것은 그가 지켜야 할 대상에 들어가 조금 안심한 자신의 마지막 속죄였다.
***
이브(가)이 방금 만든 검 100자루(를)을 강탈해 갔다!
울프람은(는)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았다!
등 뒤에는 이미 만 자루에 가까운 검들이 도열해 있다. 어차피 몇 번 쓰면 뽀개질 무기라지만, 말 그대로 도산검림이군 그래.
“그럼 오늘의 양산 무구는 여기까지 만들도록 할까.”
“아,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네프티는 무기의 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일렬로 나란히 깔려고 했던 장비들이지만, 이내 놓을 장소가 부족해 도떼기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마냥 대충 쌓아서 던져놨다. 저걸 전부 퀵 크리에이트 인벤토리에 넣었다가는 인벤이 터질 거라고.
“장난은 이쯤 하고,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해야 하니 슬슬 움직이도록 하지.”
“전력…. 어디 원정 나가시나요?”
“큰 원정에 나가야 하지 않겠나. 가장 소중한 이의 목숨을 책임질 귀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네, 네?”
얘는 아직 눈치를 못 챘나 보네.
“네프티. 네 방패의 재료를 구하러 갈 생각이다.”
“제…. 방패?”
“음. 쉬운 원정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움직일 거면 지금이 가장 좋겠구나.”
“자, 잠시만요. 선배님. 방금…. 가장 소중한 이의 목숨이라고 하셨죠? 그럼 제가 가장 소중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다른 누구보다 탱커가 가장 죽기 쉬워지니 말이다.
“그, 그렇군요. 제가 가장…. 에헤. 그렇구나.”
“그럼 슬슬 준비하도록 하지. 이번 원정은 적어도 2박 3일은 걸릴 거다. 네프티는 준비할게 따로 있나.”
“2박 3일…. 다른 분도 가나요?”
“음?”
“다른 파티원 분들도…. 가시나요?”
“아니 당장 연락한 녀석은 없다. 원한다면 연락을….”
“아뇨. 둘이서 가고 싶습니다.”
평소처럼 나를 바라보는 눈.
허나 굳은 결의와, 그 안의 불길이 보였다.
“그럼 그러도록 하지.”
꽤나 어려운 던전이지만, 녀석의 결심이 그렇다면 나는 믿고 키워줄 뿐이다.
뭐, 둘이서 2박 3일이라고는 해도 별 일 생기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