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72)
872. 화살 다발
공기가 내려앉고,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다각, 다각. 스푼이 도시락 통에 부딪치는 소리만 겨우 들린다.
음식을 옮겨 입에 넣고 씹는 소리마저 울리지 않는다.
사고 크게 쳐서 기합 걸린 날 소대 저녁식사도 이것보단 밝겠다.
아무튼, 뭔가 말을 꺼내고 싶어도 분위기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렇게 밀푀유의 스튜와 샌드위치를 모두 먹고, 내 식사를 마치려는 그 순간.
스윽.
하고 네프티가 무언가를 내 쪽으로 밀었다.
상 위에 있던 그것이 내 앞으로 밀려오고 이내 녀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네프티가 만든 오늘 점심이다.
그것도 네프티 몫 말고 내 거.
“…….”
슬쩍 네프티를 보니 녀석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방긋 웃는다.
반대쪽의 밀푀유는 보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시려오는 웃음을 짓고 있다.
결국 네프티의 도시락을 풀고, 이내 그 안에 담겨 있는 고기 정찬 세트를 찍어 먹었다.
이미 배는 빵빵하다고, 이 이상 먹으면 내 위장의 한계가….
하지만 먹어야죠.
네 먹겠습니다.
우물우물. 다시 한 번 식사를 시작하면서, 머릿속에서는 희망의집 원장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이란 아들이 여자친구 데려오면 그렇게나 기뻐한다는데, 원장님은 지금 나를 보면 뭐라고 하실까.
기뻐하실까…?
***
그렇게 식사를 겨우 마치고,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돌아갔다.
속을 채워 넣었으니 어떻게든 움직여서 비워내야 한다.
일단 가볍게 사냥이라도 나설까. 단검을 들고 편의점을 나서려는 그 찰나.
“울프람. 있어?”
“황자님. 안녕하세요.”
“…….”
이번에는 루디카와 레지나가 나를 찾아왔다.
“울프람. 가볍게 원정이라도 나서지 않을래?”
“황자님. 이번에 정말 괜찮은 사교회를 찾아왔답니다.”
두 사람은 생글생글 웃으며 서로를 마주보고, 나를 보고, 용건을 말했다.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거절한다는 말이라는게 이런 건가.
미안해.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
그 날은 낮에 원정을 갔다가 저녁에 사교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누구에게 가 상담할 수도 없는 노릇.
내가 다중분신술을 쓰지 않는 이상, 내 몸을 갈아 넣을 수 밖에 없다.
허나 더 중요한 건, 나 혼자 어떻게 되는 건 상관 없지만, 파티 내부의 화합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설마…. 싶지만, 그 설마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큰 사고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
일단 최대한 파티원을 믿어보는 선에서 정리하고, 만약 안 된다면 차선책을 강구하는 수 밖에 없나.
“그 수는 쓰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수틀리면 어쩔 수 없군.”
그리고 찾아온 다음 날.
이제 평화는 돌아오지 않고, 내 자업자득으로 이래저래 피곤해 질 거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아침부터 정말 크게 꼬였다.
“…….”
네 명의 시선이 서로 마주친다.
아일라와 이브를 제외한 파티원이 아침부터 편의점에 모인 것.
대체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냐고 묻고 싶지만, 그걸 물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리 만무하여 묻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선배님.”
밀푀유를 시작으로, 다른 파티원들도 인사를 건네왔고, 이내 내 한숨을 유발했다.
“좋은 아침이구나 다들, 아침 식사는 했나.”
그저 문안 인사였을뿐인데, 모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뇨. 선배님. 아침 식사 대신 할만한 걸 싸왔어요. 어떠신가요?”
“아, 저도 싸왔습니다. 고기 요리입니다.”
“울프람! 아침 매운 요리는 어떻지? 분명 괜찮을 거다!”
“황자님. 완벽한 코스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함께 가시죠.”
…….
그래.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녀석들은 그렇다 치고, 뒤에 두 녀석.
아침 식사로 대체 뭘 먹일 생각이냐.
누구를 선택하실 거죠? 라는 듯 네 명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파티원들이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바란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다들 조용. 너희들의 요리는 내가 수납하고, 아침 식사는 내가 만들 테니 다들 들어와라.”
그 말에 서로 바라보다, 조금 불만족스럽다는 듯 이내 편의점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건,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는데.
***
아침 식사는 어제 점심을 방불케 할 정도로 조용했지만, 오늘은 그렇게 당해줄 수 없었다.
식사 도중 입을 열었다.
“오늘은 원정을 나설 것이다. 합류하고 싶은 녀석은 남아서 합류하도록.”
“저는 참여하겠습니다.”
네프티를 필두로 자리에 있는 모든 파티원이 원정을 가겠다 말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마실을 나가보자고.
우리가 향한 곳은 타이탄. 대지의 정령왕 샤르가 기거하는 곳이다.
“아직 이 곳에 도전해야 할 곳이 남았나요?”
밀푀유가 바로 옆에서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슥 걸어나갔다.
녀석이 살짝 당황해서 이쪽에 손을 내밀었지만, 그걸 애써 무시했다.
“샤르. 듣고 있지. 저항력이 최대치인 거대 골렘을 소환하도록.”
내 말에 구우우웅 소리를 내며 타이탄 옆 공터에 거대 골렘 한체가 소환됐다.
인간형이 아니라, 다리가 여덟 달린 거미형이다.
애당초 인간형 골렘이라는 것은 낭만에 최적화된거지, 본디 진짜 강한 골렘은 괴수의 형태를 띄고 있다.
“오늘 상대해 볼 녀석은 이 놈이다.”
“강해보이네요….”
“음. 사전 정보만 간단하게 말하면, 땅의 정령왕인 샤르 급의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 그리고 강한 물리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이브와 아일라가 빠진 전장에서 너희 넷이 이 몬스터를 공략할 수 있는지 보고 싶구나.”
“…….”
네 사람은 서로를 멀뚱 바라봤다.
“할 수 있겠나? 해낸다면…. 그래. 네 명에게 각기 하루 할애해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지. 다른 녀석에게 방해 받지 않도록 말이다.”
내 말에 녀석들의 눈이 빛났다.
아 맞다.
“참고로 나도 빠진다. 그 어떤 지령도 내리지 않을 테니 알아서 싸워보도록.”
어쩔 수 없다.
가슴 아파도 이번만큼은 내가 빠져야 한다.
***
전투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전장을 달려 나선 것은 루디카였다.
“…….”
검은 단검은 내 인벤토리에 있으니 본인 맞춤으로 제작된 최상급 더크를 들고 있을 터.
허나 저 정도 골렘의 방어력은 더크로도 충분히 뚫을 수 있다.
문제는, 저게 대지의 정령왕이 특별히 고안해서 만들어낸 골렘이라는 사실이다.
“으우아으아아…?!”
단검이 골렘을 긁어내려다가 이내 툭. 하고 멈춰 섰다. 표면이 재생해 단검을 붙잡았고, 루디카의 움직임이 아주 잠시 멈췄다. 공간 전체를 덮는 골렘의 다리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으나,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촤아아아아아악…!
루디카가 미끌어지고 겨우 착지하는 찰나, 교대해서 나선 것은 레지나였다.
“다음은 저에요!”
초월에 도달한 녀석의 마법은 물리를 넘어서 공간을 제어한다.
그 편린. 앱솔루트 바인드가 허공에 펼쳐지고, 골렘의 몸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콰득. 콰득. 콰드드득…. 골렘의 몸이 땅에 박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대지의 정령왕이 소환한 골렘을 대지에 쳐박아서 어쩌겠다는 건가. 물의 정령을 바다에 쑤셔넣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결국 레지나의 마력이 크게 닳아 바인드가 풀리고, 골렘은 그 자리에서 몸을 복원했다.
“아….”
아차 싶었는지 레지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가뜩이나 마력 저항력이 높은 골렘이다.
허공으로 날린다면 모를까, 완전한 실수. 결국 마력고갈로 주저앉고, 그 반대편에서 밀푀유가 나섰다.
“힘을 빌려줘. 【풍검】 【천강궁】…!”
이전, 주인 잃은 신화급 무구들을 어느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 밀푀유는 검을 허공에 던지고, 이내 화살을 세 발 걸어 녀석에게 쐈다.
쾅. 쾅. 쾅…! 골렘의 무게축을 담당하는 다리가 동시 공격에 크게 흔들리고, 허공에서 검이 한 자루 떨어져 골렘의 중심을 노렸다.
역시나 훌륭한 전술이다. 순식간에 약점을 분석하고, 놈을 흔든 후 핵을 노린다.
하지만, 밀푀유는 아직 초월의 초입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 두뇌는 초월에 다가가고 있으나, 가진 바 육신의 능력이 한참 모자라다.
결국 화력부족으로, 다리에 맞고 루디카 mk.2가 되어 허공을 누볐다.
마지막으로 네프티가 달려들었지만, 네프티는 어디까지나 탱커,
전투 지속시간은 가장 길었지만, 그럼에도 유효타는 가장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네 명 다 주저앉고는, 숨을 몰아쉰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파티원 사이를 슥 지나가며, 신화 포식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집어 던져, 골렘의 핵을 꿰뚫었다.
피이이이이잉!
한 줄기 빛처럼 쏘아진 신화포식자는 놈의 핵을 뚫었고, 골렘의 거체는 이내 흙으로 화해 사라졌다.
“이 오합지졸의 전투. 잘 보았다.”
내 말에 녀석들이 움찔한다.
“혼자 돌격해서 붙잡히고 날아간 암살자. 그걸 잡아주지도 않고 지형파악도 하지 않은 채 광범위 마법을 사용하다 마력이 고갈된 마법사. 화력의 부족을 알면서도 화합보다는 독선을 생각한 책략가. 제일 앞에 서서 가장 마지막에 도전한 전사. 아주 훌륭한 합이구나.”
내 말에 녀석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들의 마음은 기쁘고,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부족하고 모자란 몸이다만 그런 나에게 주는 친애는 실로 가슴 따듯한 것이다. 허나….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내 대답은 분명 8문이 끝나고 주겠다 했는데…. 이런 합으로 도전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 맞다.
내가 답을 주는 것은, 모든 싸움이 끝나고 나서다.
그런데 이런 합으로, 고작 저런 보상으로 벌써부터 합이 깨질 정도라면 애당초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차라리 너희들을 전부 빼버리고, 나와 아일라. 이브. 그리고 엘피라네나 필티아 누나와 가는게 나을 정도다.”
이 앞에 기다리고 있는 던전은, 내가 총력을 다해 키운 파티원들 전원이 합심해도 완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의 무사와 안전을 위해서라도 남은 두 번의 큰 전투에서 너희를 불참시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그 말에 누군가는 주먹을 꽉 쥐고, 누군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
혼내는 건 여기까지 할까.
“허나, 나는 믿어보고 싶구나. 내가 믿고, 내 눈으로 선택하고, 함께 성장한 너희들을 믿어보고 싶다. 자. 일어서라.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전략을 세우고 합심해 놈을 쓰러트려봐라. 내 믿음을 배신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 말에 녀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무구를 점검하고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네프티가 시선을 끌고, 레지나가 필요한 만큼 봉쇄하고, 밀푀유가 놈의 몸을 흔들고, 마지막으로 루디카가 골렘의 핵에 단검을 박아 넣는 것으로, 내 신뢰와 믿음은 다시 복구되었다.
“너희들이 평소 경쟁하거나, 혹은 서로에게 불평과 불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파티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것만을 부탁하고 싶다. 합심 끝에 이길 수 있는 적들만 남은 이상. 너희들의 내분은….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다.”
뭐.
화살 하나는 혼자 꺾을 수 있지만, 다발은 꺾기 어렵다는 그런 옛 이야기다.
녀석들은 서로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기뻐했다.
그래.
이게 파티고 이게 단합이지.
그렇게 작지만 큰 교훈을 남기고 오늘의 작은 사건이 끝났다.
***
이후.
오늘의 훈련과 그 의의를 들은 이브가 작은 의문을 표했다.
“왜 아일라 트라이스타는 없나요?”
“아일라는 일격으로 저 골렘보다 거대한 흑수정을 쏘아낼 것이다.”
“아하….”
아일라라면 화살다발이고 뭐고 혼자 다 꺾어버리고는 에헴! 하고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콧방귀를 뀌겠지.
그리고 이브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다 해냈으니, 네 명하고 하루씩 데이트 해야겠네요.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 한 애들이랑 하루씩 데이트…? 완전 인간 쓰레기네요 이거.”
“…….”
음?
음….
그게….
그렇게 되는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