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at the Academy Convenience Store RAW novel - Chapter (875)
875. Black Parade
울프람이 그렇게 자신이 다섯 조각으로 나뉠지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 시식 서비스가 될지 인생 한방 승부존의 줄타기를 하고 있을 때.
제프린을 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선두에 서는 금발 청안의 여인과, 그 뒤를 따르는 중장기사들.
그 외에 황실 내에서도 내로라 하는 마법사들도 동행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큰 목적을 가지고 제프린을 향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첨단에 선 여인. 이넬디아 폰 로엔그린은 미간을 좁혔다.
“황녀님.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괜찮다. 그래서 제프린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약 한 시간 남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 사이에 나는 사색을 하고 있겠다. 방해하지 말라고 전하도록.”
“네.”
아끼던 시녀의 배려도 무시할 정도로 지금 이넬디아의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얼마 전, 재능이 있어 지켜보던 동생이 가져온 물건.
하나하나가 국보급이라 할 수 있는 검들을 마치 대량생산하듯 찍어서 가지고 온 것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무구들을 구했는지, 어떻게 자신이 빼돌릴 방법은 없는지.
향후 자신의 오라비와 황위 레이스의 끝을 봐야하는 이넬디아로서는, 이브 폰 로엔그린의 그런 변수가 기쁘지 않았다.
“조용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훌륭한 혼처를 구해다 주었겠거늘…. 이브. 어찌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니.”
설령 비혼주의자에 은거를 하고 싶다 해도 존중할 의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방에 조용한 영지 하나를 구해서 박아 넣은 후. 거기서 신나게 마법 공부를 시키면 된다.
흙과 나무가 가득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브다.
중앙의 세속적인 정치에 질렸을 수도 있으니 낙향을 선택해도 거절하지 않았으리라.
그나마 그 의기가 드높고 마음이 올곧으니 악행을 일삼지는 않을 터.
마법의 천재인 만큼 그 시골에서 마법 개발이나 하면서 살면 될 텐데….
“후우. 알수가 없군. 정말 저 제프린에 위대하신 선조님의 유산이 있다는 건가? 지난 삼백 년간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유산이?”
이넬디아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해야 할까.
얼마 전, 제프린 사교회에 심어놓은 학생 한 명이 이브 파벌로의 전향을 선언한 사건이 있었다.
그 부모는 깜짝 놀랐지만, 제프린의 일은 제프린의 일. 밖의 일은 밖의 일이라는 제국의 인식에 맞게 졸업한 후 이야기 하겠다 했다.
누군가의 전향.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구들. 제프린 내부에서 준동하고 있다는 마족들. 수면 아래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넬디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몸이 직접 제프린을 향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곧 도착할 저 섬 학원이, 지금 이넬디아에게는 음모가 도사리는 악마성으로도 보였다.
***
창문이 생긴 울프람의 이 이세계에도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첫째로는 거실이 좀 넓어졌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집이지 싶을 정도.
소파를 놓고 다과 테이블을 놓고 찬장을 놓고 작은 운동기구를 놔도 공간이 좀 남는다.
둘째로는 우리의 방이 좀 넓어졌다. 우선 내 방이 넓어졌으니 이브 방도 좀 넓어졌으리라.
아무튼, 그래서 나는 소파에 앉아있고 이브도 한 칸 떨어진 자리에 나란히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외부 시간에 맞춰서 가는 시계를 만들다니, 훌륭해요.”
벽에 걸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는 밖의 시간을 표시해 주고 있다. 당연히 일반 시계보다 약 여섯 배 느리다. 하지만 이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이브는 포근한 미소로 시계를 바라봤다.
“다음 회의까지 앞으로 여섯 시간이나 남았어요. 세상에. 과자를 먹고 낮잠을 자고 샤워하고 나가도 시간이 남겠는걸요.”
“너무 늘어지면 오히려 지각할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별 잔소리를, 제가 지각하는 거 봤나요?”
아니 못 보긴 했지.
“그보다 시간이 남으니 잡담이나 하도록 하지.”
“당신이랑 할 잡담은 없는데요.”
“쯧. 말이 그렇다는 거다. 어디 우선적으로 처리할 것부터 이야기 하자. 우선 이오다. 필요한가?”
“무슨 의미에요…? 필요 없다고 하면요?”
“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있겠군.”
“아직은…. 필요해요.”
이브를 슬쩍 보니, 녀석은 살짝 긴장한 듯 주먹을 쥐었다 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필요한가. 이오가 할 수 있는 건 이스티티아도 전부 할 수 있다.”
“그, 그렇지만…”
이브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이오가 아직 필요하다 했다.
하여간 물러 터져서는….
“알겠다. 그러면 다음 주제다. 마계의 문이 제프린에서 열렸다는 보고가 올라간지 꽤 됐는데, 황실의 움직임은 어떻지?”
“아 그게….”
이번에는 정말 당황한 듯 이쪽을 봤다.
입을 뻐끔거리는 게 마치 붕어같구나. 하지만 나는 대답 못하는 붕어는 붕어싸만코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지는데, 너는 어떻니?
“대답하도록.”
“찾아 온다고 했어요.”
“언제 말이지?”
“곧, 이라고는 했는데…. 아마 제가 황실에서 난리 친 것이 있으니, 조금 더 일찍 찾아오지 않을지….”
그리 말하고 녀석은 시선을 살짝 돌렸다.
“왜 말하지 않았지?”
“바, 바빠서…?”
“여기서 하루종일 늘어져있는데 바쁘다.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따로 없구나.”
“…….”
“어쩔 수 없지. 내가 처리하도록 하마.”
“처, 처리라뇨. 이넬디아 언니를 처리할 생각인가요?”
“그런 수가 있었나.”
똑똑한데.
이 제프린은 이미 우리 수중에 있으니까, 이넬디아가 찾아와서 원정지를 직접 보고 싶다고 말하게끔 유인하고 그대로 처리해버리면, 불운한 사고로 황손 한 명이 줄어들게 되는 거다.
이브도 나와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안색이 창백하다.
“그, 그건….”
“알고 있다. 지금은 그리 급하지 않으니 할 생각은 없다.”
녀석이 침묵한다.
“아, 아무튼. 제가 제대로 하면 그런 일도 없잖아요?”
“제대로 못해서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윽….”
“어쩔 수 없군, 손님맞이 준비가 안 됐는데 찾아오는 불청객은, 일단 다른 곳에서 한 숨 돌리게 해야겠어.”
그리 말하고 이세계를 나섰다.
이브가 만약 자력으로 황위에 오르지 못한다면, 나도 다른 황손들을 적당히 처리해야겠지.
“일단 그 녀석들에게 연락을 넣어볼까.”
***
이넬디아가 제프린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만난 것은 엘피라네도, 필티아도 아니었다.
바로 얼음여왕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
-호오. 하르크의 후예인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얼음 여왕 라이아 다이아 프로스트인가. 그대를 만나게 해준 기적에 감사한다.”
얼음 여왕이 누구인가.
프로스트헤임 격전지에서 상대 마족 삼천을 상대로 공간 자체를 얼리며 전장을 막아 세우고, 끝내 그들 모두를 절멸시킨 중간계의 영웅 아닌가.
고대의 영웅을 만났다는 감격에 이넬디아는 가볍게 목례했다.
평소 이상으로 딱딱한 어투지만, 위대하신 선조님의 친구분을 만나는데 이 정도 격식은 필요하리라.
-예의가 잡혀 있군요. 이전에 왔던 이오라는 아이는 정말 멍청했는데 말이죠.
“이오가…. 아. 재학 시절 원정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다.”
-네. 정말 멍청한 아이였답니다. 후후. 하르크의 피가 이렇게나 옅어졌나 하고 크게 고민할 정도로 말이죠.
“그, 그렇군.”
대놓고 핍박을 줄 정도였나. 이넬디아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그리고 방금 전부터, 어마어마한 추위가 느껴져 머리가 어지럽다.
-아무튼 따라오시죠. 다른 정령왕을 소개하도록 하죠.
“오, 오오…. 영광이로군. 하지만 나는 제프린 중앙구에….”
-지금 제 소개를 듣기 싫다는 건가요? 다른 정령왕들을 무시하겠다는 건가요? 좋네요. 그 기개. 아주 마음에 듭니다.
“용건이 있었지만, 정령왕을 만나는 명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안내를 부탁하마.”
-아. 다른 호위들은 내버려두고 오세요. 감히 저런 이들이 정령왕과 대면할 정도로 저희들은 값싸지 않답니다.
“물론이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석하도록 하지.”
훗날.
이넬디아는 그 선택을 결코 해서는 안 됐다고 회고한다.
“뭐야? 이거? 하르크의 후예? 아하, 아하하! 거짓말. 이렇게 허접하고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지고 그 녀석의 후예라고? 그냥 벌레잖아? 죽어. 죽어버리렴. 왜 살아있니? 꺄하핫!”
자신의 마력을 틈새까지 파고들어 파악한 후, 배를 잡고 자리에서 구르는 홍염 여제 그랑펠리시에.
그녀의 말은 모멸에 가까웠으나, 이넬디아는 자신의 무의 재능이 그리 썩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고 있다.
-어머나. 이 분이 하르크의 후예인가요. 하르크도 항상 노력하는 이였죠. 당신도 그런 노력만은 본받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편히 쉬다 가세요.
아름다운 얼굴로, 머리 위에 판형을 그린 후 그 위에 글씨를 양각하는 대지의 정령왕 샤르.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가시가 있다는 사실을 이넬디아는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노력은 재능 있는 자가 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
초대 황제님은 재능이 있음에도 노력하셨지만, 자신은 재능도 없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듯 한 모습.
마지막으로 아인 플뤼겔은 이쪽을 힐끔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자신의 작업에 집중했다.
슬쩍슬쩍 눈치를 주는 얼음여왕. 대놓고 이쪽을 비하하는 홍염 여제. 은근슬쩍 비하하는 말을 자애 속에 섞는 대지의 정령왕.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바람의 정령왕까지.
-그러고 보니 결혼은 했나요? 인간들은 그 정도 나이가 되면 결혼하는 게 상식이라고 들었답니다.
“아하하. 이런 재능으로 어떻게 짝을 맺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상대방만 불쌍하지!”
-어머나…. 사랑은 재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랍니다. 물론 재능이 있으면 더 좋지만요.
“결혼…….”
대체 내가 왜 이 곳에 있는가. 무엇이 아쉬워 이런 소리를 듣고 있는가.
네 명이 교차되어 공격하는 롤링 크로스 어택에 이넬디아의 정신이 점점 멀어져갔다.
***
음.
정령왕 네 명에게 연락을 넣어, 이넬디아를 극진히 대접해달라고 했다.
이전에 이시스를 박살낼때는 엘피라네와 필티아가 주축이었지만, 같은 패를 또 쓰는 건 내 성미에 안 맞는다.
네 명에게 ‘내 숙적이고 너희를 이 제프린에 가두려는 방침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녀석이니 극진히 대접해다오.’ 라고 말했으니 알아서 조리 돌리겠지.
아 최대한 내 이름은 나오지 않게 부탁했다.
이넬디아는 나를 이브의 등에 올라타서 꿀이나 빨려는 간신배로 알고 있으니, 그 이미지를 쭉 이어가면 무언가 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
아무튼.
그렇게 머리가 산발하고 눈이 충혈된 이넬디아를 만난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녀석은 제프린 중앙구의 가장 큰 카페 테라스에서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테이블에 머리를 쳐박은 채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족을 만나는데 너희의 허가가 필요한가?】
기사들이 나를 바라보고 막아섰지만, 황실 혈통으로 살짝 밀어내자마자 물러났다.
그리하여 이넬디아의 앞에 앉아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나 계속 들어 봤는데…
“라이아…. 은근슬쩍 위로하는 듯 하며 권위로 찍어누르고, 아인 플뤼겔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샤르는 말 안에 맹독이 가득한 쓰레기…. 여기까지는 다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랑펠리시에, 네녀석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 감히 나보고 늙었다니, 샐러맨더 사육장 냄새가 난다느니…. 아니다. 나는 늙은게 아니다…. 나는 아직 젊다. 어리단 말이다. 한창때란 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그러느냐…. 나는….”
음.
생각보다 우리 친구들이 아주 잘 해 준 모양이군.
나는 녀석의 앞에 앉아, 그 뒤통수를 내려다봤고, 이넬디아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 앉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시선을 마주하고, 나는 양 손을 벌리곤 웃었다.
“어서 와라. 제프린에 온 것을 환영하지.”
“울프람…?”
“요정여왕 엘피라네 오웬이 너를 만나고 싶어 하더군. 따라와라.”
“아, 알겠…다.”
신고식은 잘 치렀지?
그럼 이제 개막쇼를 보여줘야겠네?
원래 원더랜드에서는 요정이 맞이해주는 거 맞잖아?
오